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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쓰는 감각의 문법, 미디어아트

    2021-10-06 7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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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기사 3. 2D스크린을 3차원 실제공간으로 확장한 미디어아트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스컬맵핑 아트스튜디오



    트롱프뢰유(trompe-l’œil)는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시각적으로 환영을 불러일으켜 자극과 충격을 전달하는 기법인데, 용어 자체에 눈속임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나 현대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서 살펴볼 수 있다. 최근에는 미디어아트에서도 트롱프뢰유 기법이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디어 파사드(Media Façade)가 대표적이다. 미디어 파사드는 미디어(media)에 건물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facade)가 합쳐진 용어로, 건물의 외벽에 다양한 영상을 투사하는 것을 일컫는다. 조명과 그림자의 원근감을 이용해 3D 효과를 준다.

    미디어 파사드는 트롱프뢰유 기법을 활용해 3D 효과를 자아낸다

    [Photo : unsplash.com]

    빛, 기술, 미디어가 합쳐져 환영을 자아내는 미디어 파사드는 조명과 투사 기술의 발달 과정에서 본격화되었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뉴스전광판을 미디어 파사드의 시작으로 보며, 국내에서는 압구정에 위치한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처음으로 미디어 파사드를 활용했다.

    미디어 파사드와 기존의 스크린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스크린은 투사되거나 출력되는 영상을 잘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다면, 미디어 파사드는 기술적 구조와 콘텐츠 간의 연결성이 중요하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덱시아 타워(Dexia Tower)의 경우 일반 시민들이 건물 앞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이용해 직접 이미지를 전송하여 조명을 변하게 만들 수 있는데, 미디어와 관객이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 파사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장소에 적합한 스토리텔링과 몰입감이 미디어 파사드의 핵심이다.




    벨기에 브뤼셀의 덱시아 타워(Dexia Tower)

    [Photo : Flickr.com]

    미디어 파사드는 건축 분야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스포츠 경기장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설계 회사 파퓰러스(Populous)는 엔터테인먼트 경기장 MSG Sphere를 설계하면서 미디어 파사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런던과 라스베이거스에 건설 중인 MSG Sphere 건물 외벽에는 예술가와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스크린을 설치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상도의 LED 스크린으로 우주와 심해의 이미지들을 탐험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다. MSG Sphere에 담길 콘텐츠는 스타 트렉(Star Trek) 등에서 일하며 30년 이상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해 온 테드 킹(Ted King)이 담당한다. 관객들에게 몰입감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설계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미디어 파사드가 건물 외벽에 고정 설치된 LED를 가리키는 데 비해,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은 건물 외벽뿐 아니라 프로젝터에 의해 영사시킬 수 있는 거의 모든 오브제를 스크린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프로젝션 맵핑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영상을 보여주는 기존의 스크린 방식에서 탈피해 실재하는 공간으로 영사 범위를 확장한 기술이다.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 레피크 아나돌(Refik Anadol)은 주로 공공 건축물을 활용해 프로젝션 맵핑 기술로 이미지를 투영하는 작업을 한다. 그는 2018년 LA 필하모닉 100주년 행사에서 사진, 비디오 등 100년간의 필하모닉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여 콘서트홀 건물 외피를 캔버스처럼 활용한 바 있다. 이처럼 프로젝션 맵핑으로 공간에 투사된 영상은 마치 환영(illusion)처럼 기존의 표면을 전혀 다른 장면으로 보이게 하는데, 이는 또 다른 가상공간이 형성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LA 필하모닉 100주년 행사 장면

    [Photo :  Refik Anadol]

    프랑스의 미학자인 니콜라 부리오(Nicholas Burriaud, 1965~)는 자신의 저서 '관계의 미학(Relational Aesthetics)'에서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인터랙션을 기반으로 한 DIY(스스로 만드는) 미술이 등장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와 같은 미술 형태를 관계의 미학이라고 칭하면서 현대의 미술관이 경험에 몰입하게 만들고 타인들과 소통하는 핵심 장소로 부상했다고 분석한다. 작년부터 올해 8월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열린 '팀랩: 라이프(teamLab: LIFE)'는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전시였다고 평가된다.

    팀랩(teamLab)은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터, 수학자, 건축가 등을 포함해 500여 명의 멤버로 구성된 아트 콜렉티브(art collective)다. 현재 대표 디렉터인 이노코 도시유키(猪子寿之, 1977~)가 2001년에 네 명의 친구와 함께 웹디자인 및 앱 개발 회사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일본의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1962~)의 권유로 2011년 대만의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Kaikai Kiki Gallery)에서 전시를 하면서 산업의 영역에서 미술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대중적으로는 주목을 받은 계기는 일본 국영방송인 NHK의 음악 프로그램 '홍백가합전 紅白歌合戦' 에서 가수들이 춤을 추는 동작에 따라 배경 영상이 연동되어 움직이는 리얼타임 트래킹 시스템(real-time tracking system)을 선보이면서부터다. 이후 팀랩은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초대형 전시장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는 가상의 자연환경을 구현하고 있다.




     팀랩의 Transcending Boundaries 전시 전경

    [Photo : teamLab★]

    도쿄 오다이바(Odaiba)의 모리 빌딩(Mori Building)에 위치한 상설 전시관 팀랩 보더리스(teamLab Borderless)는 1만 제곱미터의 공간에 520대의 컴퓨터와 470대의 프로젝트를 설치해 3차원 체험형 가상현실을 선보인다. 팀랩의 전시장은 미술관의 전형적인 형태인 화이트 큐브(White Cube)가 아니라, LED 프로젝터, 인터랙티브 센서, 초고해상도(8K UHD) 인피니티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블랙박스(Black Box)다. 이곳에서 관람자들은 소프트웨어가 생성해내는 이미지들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이루어진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모먼트 팩토리(Moment Factory) 또한 가상과 현실의 중첩 세계를 정교하게 설계하고 구현하는 미디어아트 스튜디오 중 하나다. 모멘트 팩토리가 프랑스 Les Gets ski resort에서 선보인 《ALTA LUMINA》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물질과 비물질의 공존을 잘 보여준다. 팀랩의 전시가 미술관 내부에서 경험되는 데 반해, 모먼트 팩토리의 전시는 야외에서 야간 산책 형태로 이루어진다. 관람객들은 빛, 음악, 이미지, 디자인에 상호작용성을 결합한 몰입적이고 다감각적인 경험에 참여한다.

    모먼트 팩토리(Moment Factory)가 프랑스 Les Gets ski resort에서 선보인 《ALTA LUMINA》

    [Photo : MOMENT FACTORY]


    이러한 다감각은 최근 미디어아트 전시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넘나들며 공연, 전시, 영상, 게임 등 멀티 장르를 다루는 콘텐츠 기획사 미쓰잭슨(Ms. Jackson)은 최근 시각·청각·후각·촉각·공간지각으로 느끼는 개별적 경험에 주목한 전시를 선보였다. 올해 11월까지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는 《비욘 더 로드(Beyond the Road)》가 그것인데, 2019년 영국의 사치갤러리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상륙했다.

    영국의 뮤지션 제임스 라벨의 음악을 중심으로 전시가 진행되며, 관람객들로 하여금 정해진 동선이나 구체적인 정보 없이 촛농 방, 향수 방, 채플 방 등을 탐험하게 한다. 눈, 코, 귀를 자극하는 실감 몰입형 전시로, 관람객 각자가 머무는 공간과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미국의 미술 평론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d Krauss, 1941~)는 현대의 미술관이 직접적인 육체의 경험이 아니라 극단적인 감각을 구하고, 미적 감동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강렬함 자체를 추구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인간은 미디어아트가 구현하는 세계를 경험하기 이전부터 소설, 연극, 영화와 같이 서사(narrative)가 있는 예술에 몰입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을 즐겼다. 일상의 삶이나 현실에서 벗어나 좀 더 흥미로운 세계를 체험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 세계와 기술을 매개하여 시뮬레이션으로 감각하는 가상 세계가 중첩돼 있다. 특정 세계가 다른 세계에 포함되거나 결코 한쪽 세계만이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통해 가상과 실재가 본격적으로 중첩되는 경계선을 보여준다. 가상의 접점을 서서히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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