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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구석 관객에게 바치는 언택트 시대의 무대

    2021-12-01 7분 분량

    

    오직 인간만이 얼굴을 갖고 있으며,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외모와 다른 인간들과의 소통을 자신의 근본적 경험으로 만들며, 오직 인간만이 얼굴을자신의 진리의 장소로 만든다. 

    - Giorgio Agamben 『얼굴 없는 인간』 -




    [Photo : Pexels]




    돌아갈 수 없는 사건

    어떤 사건은 그 사건을 통과한 후에도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감각을 남긴다. 지금의 팬데믹 상황이 그렇다. 코로나의 여파로 대부분의 업무와 행정을 비대면으로 처리하는 것이 보편화되었고, 수업과 회의를 웨비나(Webinar)로 진행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언택트 세상 속에 살다 보니 타인과 직접 마주해 소통하던 감각마저 점차 흐릿해지는 듯하다. 문화 산업 현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관객과 아티스트가 직접 마주하는 대면 현장은 공연의 필수 요소였다. 언제든 집에서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무수히 많음에도 사람들이 공연에 열광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온몸으로 마주하는 직접적인 체험 말이다. 관객은 아티스트뿐 아니라 나와 동일한 대상에 열광하는 다른 관객들을 마주함으로써 강렬한 예술적 체험을 경험한다. 가수의 활력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장 에너지는 대면(face-to-face)을 공연의 필수 조건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사람 사이에서 개인의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갑자기 위험한 행위가 되었다. 팬데믹 상황이 심각해지며 정부 차원에서 검열/처벌해야 하는 행위로까지 전락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작금의 시대에서 인간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바이러스가 얼굴을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되었으며, 모르는 이의 얼굴을 눈앞에서 온전히 마주하는 것은 불안하고 두려운 경험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백신과 치료제로 기약할 수 있는 희망적인 가능성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가급적 소리를 내지 않는 공연뿐이다. 지금 상황에서 마스크 없이 사람들과 같이 뛰고 소리 지르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팬데믹 속에서 얼굴을 잃어버린 우리는 어떻게 강렬한 예술적 체험의 일환인 공연과 문화 산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대면과 대면을 넘나드는 현대카드의 문화 산업을 통해 이에 대한 이정표를 확인할 수 있다.


    1. 방과 공연장의 연결 가능성, 슈퍼마켓콘서트



    슈퍼마켓콘서트의 티저


    현대카드는 전 세계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무렵인 2020년 4월, 슈퍼마켓콘서트라는 다소 생소한 콘서트를 선보였다. 2020년 2월에 선보였던 현대카드 DIGITAL LOVER 홍보 캠페인의 일환인 이 콘서트는 대면 공연의 단순한 대안으로 제시된 게 아니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장기화될지 예측할 수 없었으며, 슈퍼마켓콘서트 역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를 겨냥해 기획된 공연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코로나라는 상황적 조건이 맞물리면서 슈퍼마켓콘서트는 언택트 시대의 성공적인 비대면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크러쉬, 그레이, 제시, 강민경 등이 참여한 슈퍼마켓콘서트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화려한 조명과 번쩍이는 무대가 아닌 동네 슈퍼마켓이나 아티스트의 작업실, 집 등을 무대로 삼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아티스트와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감각은 대면 공연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된다. 그러나 비대면 콘서트에서 관객과 아티스트는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슈퍼마켓콘서트에서는 오히려 아티스트와 관람객 모두가 편하게 생활하던 공간에서 공연하고 관람하는 쪽을 택했다. 편안함과 친밀감을 부여하기 위해 과감히 공연장을 포기한 것이다. 애당초 오프라인보다 디지털에 친숙한 세대들을 겨냥해 기획된 공연이었지만, 슈퍼마켓콘서트는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공연에서 관객과 아티스트가 어떻게 물리적 거리를 넘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지를 성공적으로 보여 주었다.




    2.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 [Let’s Dive, Fan-made Live]



    Fan-made live


    대면 공연이 지닌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그 어떤 돌발 상황 없이 촘촘히 짜인 스케줄대로만 진행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은 그 공연에서 흥미를 덜 느낄지도 모른다. 공연은 직접적이고 일회적인 경험이기에 그 상황에서 어떠한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며, 이러한 유의 긴장감은 공연 관람의 즐거움으로도 연결된다.

    관객들의 떼창으로 당황하는 아티스트의 표정이나 갑작스러운 앙코르 요청에 여유 있게 대처하는 아티스트의 모습 등은 관객이 아티스트와 소통하고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영상 속 아티스트 모습보다 같이 당황하고, 같은 사건을 공유하는 공연장의 아티스트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나 비대면 공연은 일반적으로 녹화된 영상을 보여 주거나 생중계되는 현장을 관람하는 구조이기에 공연의 예측 불가능성이 반감된다. 현대카드는 이러한 비대면 공연의 치명적인 지루함을 상쇄하기 위해 Fan-made Live를 기획했다.

    Fan-made Live는 말 그대로 팬들이 만들어 가는 라이브 공연이다. SNS와 애플리케이션 댓글 창에 내가 듣고 싶은 아티스트의 노래를 남기면 그 곡을 아티스트가 실제로 불러 준다. 댓글 창에는 곡명만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티스트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제스처나 복장을 남길 수 있고 아티스트는 이러한 팬들의 커스텀을 반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2020년 4월에 시작된 이 기획은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출연했고 관객들은 매번 내가 댓글로 남긴 노래를 부를지, 내가 남긴 댓글처럼 옷을 입고 등장할지를 기대하며 공연을 즐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출연하지 않을 경우 본인의 최애 아티스트를 추천할 수도 있다. 팬들은 무대가 어떻게 흘러갈지 끊임없이 기대하고 호응하며 대면 공연만큼의 긴장감을 즐기는 중이다.

    Fan-made Live를 통해 우리는 비대면 공연의 상호 소통 가능성을 확인했다. 대면 공연장에서 관객이 직접 공연 자체를 기획했던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Fan-made Live에서는 팬들이 직접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아티스트들은 그것을 일정 부분 실현할 수 있다. 오히려 대면 공연에서보다 상호성이 강화되었으며, 관객들은 비대면 공연임에도 거기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면 공연만큼의 울림과 떨림은 덜할지라도 비대면 상황에서 관객과 아티스트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Fan-made Live는 비대면 공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3. (비)대면 문화 산업, Art Street



    현대카드의 Art street 영상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이 모이는 공연의 경우 비대면을 제외하고는 마땅한 돌파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직접 마주하는 것만이 예술적 체험과 직결되는 장르가 있다. 대표적으로 전시가 그렇다.

    간혹 전시장에서 작품을 마주할 때 엄청난 예술적 충격과 분열에 가까운 정신적 충격을 받는 사례가 존재한다고 한다.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자서전에서 1817년 산타크로체성당에서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발다사레 프란체스키니(Baldassare Franceschini) 등의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아 과호흡과 격렬한 정신적 충돌과 분열이 일어났다고 고백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는 예술 작품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특이한 신체적 반응이나 체험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탕달 신드롬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때때로 작품 앞에서 알 수 없는 경외감과 위압감에 압도되는 상황을 경험한다. 이는 지면이나 화면 같은 매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마주할 때라야 가능하다. 그렇기에 전면적인 비대면 전시는 어쩌면 작품이 야기하는 특별한 예술적 체험 자체를 생략한 것이 될 수 있다.

    2020년 6월, 현대카드는 Art Street란 이름으로 전시된 작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오프라인 스토어를 열었다. Art Street는 코로나로 지친 소비자들을 위한 기획인 동시에 젊은 예술가를 위한 기획이기도 했다. 방역 지침에 따라 전시 인원이 통제되면서 서울 한복판에 있는 주류 전시 공간조차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위기를 겪는 젊은 예술가들을 고려한 프로그램이었다.

    Art street는 위기에 직면한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전시 및 판매 공간을 제공했다. 기획 의도에 맞게 상대적으로 젊은 아티스트 크루들을 섭외했고 가급적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했다. 피규어 형태에 집중하는 <끽태점>, 식물과 꽃의 여러 이미지에 주목하는 식물상점과 유리/조명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글로리홀의 협업 기획 <식물상점x글로리홀>처럼 젊은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소개했다. 유명 밴드 보컬의 모자로 유명해진 <Dadaism club> 또한 아티스트 크루로 참여해 유스 컬쳐를 대표했다.

    아티스트의 작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다. 작품이 자신에게 어떤 감흥과 의미가 있는지 직접 대면해서 온전히 느껴야 이루어지는 아주 특별한 소비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Art Street은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마주하고 구매하는 것이라는 문화에 대한 현대카드의 가치관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Art street은 VR 로 공간 소개 영상을 제공하여 비대면 전시의 가능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 구매는 대면으로만 가능하지만, 해당 스토어에 방문할지 여부는 온라인으로 결정할 수 있다. VR 영상을 통해 확인한 작품을 직접 방문해 구매하는 Art street은 비대면과 대면이 어떻게 융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코로나 속 문화와 예술

    초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소외되었던 분야는 문화 ·공연과 같은 영역이었다. 당장 생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인지 방역 지침에서 공연과 전시는 언제나 논외였으며 시급한 사안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화 산업이 생업과 무관하다는 인식은 인간의 기본 조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인간은 단순히 먹고 자고 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한 세계에서 다시 의미를 찾는 중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은 이를 통해 세계를 총체적으로 재인식하고 나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다.

    문화와 예술 산업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 속의 타자와 소통하는 것. 그렇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화 산업에 투자하는 일은 훗날 당장의 생사 문제로 이어질 만큼 중대한 사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한, 문화 ·예술 산업은 인간 존재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