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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붕 없는 뮤지엄, 에치고츠마리

    2022-04-20 10분 분량

    도시화는 현대 사회 발전의 필연적인 과정이자 결과다. 문명의 발전은 생산의 분업과 기계화를 이루어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노동력이 필요한 자본과 노동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는 이들의 각기 다른 수요는 사람들을 한 지역으로 모이게 했고, 도시라는 이름의 하나의 거대한 집합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도시는 산업, 사회, 문화 등 수많은 분야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2차 및 3차 산업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도시는 점점 거대해져, 이제 사람들은 어떤 국가를 떠올릴 때 그 국가에 어떤 주요 도시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Photo : unsplash.com]

    급격한 발전 끝에 어느 정도 안정권에 진입한 선진국들은 이제 도시가 아닌 지역에 집중한다. 대도시가 아닌 군소도시나 농촌 또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모든 계약에 반대급부가 있듯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 또한 자연스럽게 농촌 인구의 감소를 야기하고 그 지역이 자생할 수 없는 과소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스스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해서 한 지역을 해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런 문제를 겪는 국가들은 과소화 현상을 겪고 있는 지역, 그중에서도 특히 고령화되어 생산가능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지역의 자생방안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의 쇠퇴를 막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지속적인 생활 여건과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을 우리는 도시재생이라 부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의 에치고츠마리 지역에서 진행된 아트 네크리스(Art Necklace, 예술 목걸이) 정비사업은 예술을 이용해 소외 지역의 자생 방안을 찾아낸 훌륭한 도시재생 사례 가운데 하나다. 에치고츠마리는 니가타현의 도카마치시츠난마치 두 지역을 묶어 일컫는 지명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고시히카리 쌀과 사케의 본고장이지만, 저출산-고령화, 청년층의 탈농 현상이 심각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지역 붕괴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도쿄시보다 넓지만, 전체 지역 주민 1인당 노동 생산성이 시간당 1.6달러(한화 2000원 정도, 2020년 일본 전체 평균 49.5달러)밖에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에치고츠마리에는 아트 네크리스 정비사업(Art Necklace)이 시작됐다.

    도카마치 지역에 자리한 그림책 미술관

    [Photo : 하치&다시마 세이조 그림과 나무 열매 미술관 공식 페이스북 계정]

    아트 네크리스 정비사업은 에치고츠마리에 속하는 6개 지역의 각기 다른 색깔과 특색을 살려 예술지대(Art field)로 탈바꿈하고 이를 마치 목걸이처럼 연결해 하나의 지역 예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프로젝트다. 에치고츠마리에는 각 지역마다 전통 박물관, 농가극무대, 현대미술관, 그림책,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등이 자리해 예술 마을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도카마치 지역에서는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그림책 박물관이(Hachi & Seizo Tashima Museum of Picture Book Art) 들어섰고, 나카사토 지역에는 암반 지대를 관통하는 삭막한 콘크리트 터널에 설치 미술을 이용해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되게 돕는 빛의 터널이 (Tunnel of Light, Kiyotsu Gorge Tunnel) 만들어졌다.

    에치고츠마리에 속한 여섯 마을에 모두 랜드마크가 있으며, 각 지역의 지리 및 문화적 개성을 잘 살려 에치고츠마리만의 예술 정체성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랜드마크는 기존에 사용되었다가 인구 감소로 인해 사용되지 않는 시설들을 재활용했단 점에서 도시 재생의 좋은 선례가 되기도 한다.

    나카사토 지역에 설치된 ‘빛의 터널’

    [Photo : 빛의 터널 공식 페이스북 계정]

    또한 에치고츠마리는 아트 네크리스 사업의 성장 과정을 3년마다 대중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만든다. 바로 이 이벤트가 세계 최대의 국제 예술제이자 대지의 예술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Echigo-Tsumari Art Triennale)다. 아트 트리엔날레 동안 에치고츠마리는 세계 각국의 현대 예술가들을 초청해 그들의 작품을 기존의 에치고츠마리에 존재하는 상설 전시작들과 함께 소개한다.

    2000년 첫해에는 138개 팀이 153개의 작품을 출품했으며, 2018년에는 363개 팀이 379개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 가운데 210개는 영구(상설)전시작이었다. 이는 예술제마다 100~200점의 작품들이 새로 출품되고 있으며 상당수는 상설전시작으로 남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에치고츠마리 지역 내의 마을 중에서도 작품 전시를 희망하는 마을의 숫자가 해마다 증가해 현재는 200개의 마을이 예술제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예술제가 2018년에 열렸기에 예정대로라면 2021년도에 개최되어야 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한해 미뤄져 올해 2022년 4월 29일부터 11월 13일까지, 6개월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개최될 예정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관심을 받았던 과거 행사와 마찬가지로 이번 예술제에도 94명의 신규 작가 및 114점의 신규 작품이 출품되어 여전히 문화예술계가 에치고츠마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상설 전시를 포함한 에치고츠마리의 모든 예술 전시 및 관광 산업 전반이 위축되었던 상황에서 개최되는 이번 예술제는 마을마다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략 760㎢에 달하는 에치고츠마리 전 지역에 걸쳐 출품된 작품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전시될 예정이기에 에치고츠마리 지역을 포함한 일본 내부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술제가 재개된다는 사실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Human beings are part of nature)”라는 기본 철학 아래 진행되는 예술제는 매년 이 범주 안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담아낸다. 특히 일본과 에치고츠마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예술제의 주제가 되곤 한다. 예를 들어 2012년 예술제에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주제로 품었다. 작가들은 큰 주제에 맞춰 작품을 출품했는데, 프랑스의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는 무인지대(No Man’s Land)라는 설치미술을 통해 자연재해 이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에 대해 조망했다.

    ‘No Man’s Land’
    [Photo : 에치고츠마리 아트필드 홈페이지]

    2015년에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시골의 폐교 현상을 주제로 삼았다. 예술제 조직위원회와 작가들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전시관으로 만들고, 폐교의 운동장을 활용해 작품을 출품했다. 이러한 예술제의 철학 덕분에 방문객들은 전시된 작품들을 접할 때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폐교 운동장에서 벼와 나무를 이용해 만들어진 작품 (‘Memory of the Earth 2022’, Uchida Haruyuki 작)
    [Photo : 에치고츠마리 아트필드 홈페이지]

    일반적으로 에치고츠마리를 찾는 사람들은 이 지역을 대지의 예술제가 열리는 마을로 인식한다. 예술제로 인해 에치고츠마리가 많은 대중에게 주목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저 예술제가 열린다는 사실만이 에치고츠마리를 도시재생의 우수 사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예술제는 10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된 아트 네크리스 사업의 성과이자 에치고츠마리의 새로운 지역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다.

    에치고츠마리가 예술제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추구하려는 궁극적인 방향성은 소외된 지역을 예술마을로 변모시키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역 사회활동 참여를 도모하고, 관광 자원 개발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의 조화와 협동, 그리고 재생을 추구하는 데 있다. 에치고츠마리는 다양한 연령대의 지역 자원봉사자와의 협업을 통해 예술제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지역과 예술제를 사랑하는 외부인과 지역주민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 두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마쓰다이 타나다 은행(Matsudai Tanada Bank)을 설립해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돕고 있다. 일손이 부족하여 경작이 중단된 농경지를 직접 관리해 에치고츠마리를 아끼는 외지 사람들이 주말농장 식으로 직접 쌀과 채소를 경작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얻는 수익금은 에치고츠마리 지역의 농업 발전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노력은 외지인의 관심뿐 아니라 실제 지역민들이 자신의 고장을 더욱 사랑하게끔 만드는 효과도 가져왔다. 그 덕에 에치고츠마리의 전입 인구와 전출 인구의 폭은 프로젝트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농업의 명맥을 이어가는 에치고츠마리

    [Photo : 에치고츠마리 아트필드 홈페이지]




    소외된 지역의 도시 재생은 선진국마다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과제다. 도시화로 인한 농촌 인구의 유출과 과소화, 그리고 이로 인한 지역 사회 시스템의 전반적 붕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서사구조와 닮았다. 하지만 에치고츠마리의 이야기는 그러한 서사구조를 타파하는 멋진 독창성을 보여준다.

    농업만이 유일한 살길이었던 지역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예술 관련 인프라를 설치하고 예술제를 열어 국제적인 관광자원으로 만들었다. 또한 논밭을 뒤엎고 산업단지를 만들거나 멋진 쇼핑몰을 지은 것이 아니라 마을 그대로의 모습과 역사가 담긴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며 지역에 예술을 스며들게 했다. 더 나아가 일시적인 경기 부양책이 아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예술 지대의 정체성과 함께 에치고츠마리 지역 본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현장 박물관(Field Museum) ‘Matsudai NOHBUTAI’ 
    [Photo : 에치고츠마리 아트필드 홈페이지]




    물론 모든 지역이 에치고츠마리처럼 예술을 이용해 도시 재생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예술이라는 도구만이 소외된 지역을 살리는 방법은 결코 아니다. 다만 건물을 짓고 땅을 뒤엎는 콘크리트 중심의 개발만이 지역을 살리는 재생의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단 점에서 에치고츠마리의 사례는 분명 우리에게 유쾌한 도전이자 새 패러다임의 제시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