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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지 않는 스토어

    2022-07-13 10분 분량

    매장의 사전적 정의는 물건을 파는 장소이다. 당연한 듯 보이는 매장의 정의에는 물건을 사기 위해 직접 매장으로 들어가서 제품을 살펴보고 구매하던 시대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하루배송, 로켓배송, 당일배송이라는 문구가 온라인 시장을 장악한 요즘 같은 세상에 매장을 직접 찾아가는 일은 번거로운 일처럼 여겨진다. 집에서 간단히 제품명만 검색하면 각종 사용자의 후기와 상세한 제품 정보까지 찾을 수 있어 매장의 역할도 갈수록 축소되는 추세다.  

    실제로 입어보는 시착이 중요한 의류 매장조차 대부분 온라인몰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의류 편집숍인 무신사(MUSINSA)는 2019년까지 오프라인 매장이 없었으며 자체 브랜드인 무신사 스탠다드의 매장은 2021년, 비교적 최근에 오픈했다. 2009년 시작해 2015년에 연간 거래액 1,000억을 돌파한 편집숍에게 무려 10년 동안 오프라인 매장이 없었던 것이다. 무신사의 사례만 살펴보아도 오프라인 매장의 입지가 갈수록 약화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무신사는 왜 2019년에 무신사 테라스를 오픈했을까? 이는 매장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분석이 반쪽짜리 정답일 수 있음을 나타낸다. 분명히 판매하는 장소로서의 매장의 역할은 축소되고 있다.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비율은 전국에서 판매할 수 있는 온라인 시장에 비하면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장의 역할에는 판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매장은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모니터 너머로 쏟아지는 제품에 관한 정보와 후기들은 분명 유용하지만 제품을 직접 경험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매장에서는 판매뿐 아니라 체험이 가능하다.

    매장의 역할
    [Photo : Pexels]

    매장에서의 제품 사용 경험은 언제나 판매를 위한 부차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기에 제품을 체험하기만 하는 고객은 구입하는 고객에 비해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판매 기능이 온라인으로 이전된 시대에서 매장의 핵심 역할은 이제 체험으로 넘어왔다. 온라인에서는 체험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제 매장에서의 체험은 제품에 대한 체험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품 사용 체험은 고객들에게 제품에 대한 이미지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형성에도 관여한다. 제품이 비치된 공간의 인테리어와 직원들의 서비스와 같은 복합적인 요소가 소비자의 머릿속에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다. 매장에서의 체험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가 성공적으로 구축된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제품을 구매한다. 이미지와 같은 매력 자본이 소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 속에서 매장은 판매 출구가 아니라 제품을 체험하게 하는 브랜드의 공간으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매장의 체험적 기능을 생각해본다면 각종 브랜드가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전략을 채택하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제품 체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브랜드의 이미지 자체를 체험하고 판매하기 위해 매장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제 매장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공간이 아니다. 제품을 체험하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마케팅 공간이다.


    #1.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

    [Photo : 시몬스]

    시몬스(SIMMONS)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TV 광고를 보는 전 국민에게 각인되었다. 시몬스는 한 줄의 문구로 전 국민에게 편안함이라는 시몬스 침대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와 같은 시몬스의 뛰어난 마케팅 능력은 성수, 이천, 부산, 청담에 오픈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는 침대가 없다. 시몬스의 매장에 침대가 없다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사실에서 우리는 브랜드 이미지 자체를 재구축하려는 시몬스의 전략을 살펴볼 수 있다.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는 시몬스 창립 150주년을 맞이해 2020년에 진행한 시몬스 하드웨어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다. 시몬스 하드웨어 프로젝트에서는 침대 대신 다양한 소품을 배치해 매장을 운영했었다. 시몬스 자체에 활기차고 젊은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가 약 6만 명의 입장객을 모으고 성공적으로 끝나자 기존의 프로젝트에서 더 확장하여 시몬스의 공간이라는 기획을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라는 이름으로 런칭한 것이다.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해운대

    [Photo : 시몬스]

    부산 해운대에 처음 오픈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는 해운대의 피서지 이미지와 호응할 수 있도록 이국적인 휴양지의 모습으로 꾸며졌다. 이러한 해운대 스토어의 컨셉은 청담 스토어로 이어졌다. 청담 스토어에 부산의 수제버거 브랜드 버거샵을 입점시키고 해운대 스토어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재현해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공간으로써 스토어를 기획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위해 2층에는 시몬스 스튜디오와 테라스가, 3층에는 디지털 아트 전시장을 배치했다. 실제로 디지털 아트 전시장에는 조회수 1,000만 뷰를 기록한 시몬스의 멍때리기 광고가 재생되기도 했다. 이는 시몬스의 침대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공간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몬스 자체를 체험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시몬스라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이미지 자체를 재구조화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시몬스의 '멍 때리기' 광고 Oddly Satisfying Video(OSV)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는 스토어를 오픈한 지역과도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한다. 성수 스토어에서는 성수동의 특성을 살려 철물점의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문구류를 판매했고, 이천 스토어에서는 이천의 특산물인 쌀을 판매하고 가족 단위 입장객을 타깃으로 삼아 전시관에 시몬스의 역사와 모델들을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망한 집만 들어가자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는 시몬스 침대 브랜드전략부문장 김성준 상무는 해당 프로젝트에 지역 상권을 살리려는 의도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부산, 성수, 청담의 매장들은 방치되거나 문이 닫힌 공간들이었다. 각종 팝업 스토어가 위치와 무관하게 매장 인테리어와 같은 내부적인 부분에 주로 신경쓰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인테리어가 지역과 조화될 수 있는지, 매장을 오픈한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까지 고려한 시몬스의 차별화된 전략은 충분히 성공적인 기획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이미지 구축 전략에 성공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는 젊은 고객에게 어필하여 실제로 매출 상승효과를 발생시켰다. 시몬스 스토어에 방문한 고객들은 해당 매장에서 침대를 전혀 보지 않았어도 침대가 필요할 때 시몬스의 침대를 구매한 것이다. 브랜드 공간 체험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가 의도대로 구축된다면 이는 제품의 이미지에도 전이되며, 결과적으로 구매로 이어진다. 시몬스는 매장을 체험적 공간으로 재해석하여 팔지 않는 매장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성공시킨 것이다.




    #2. Samsung 837

      Samsung 837 외관

    [Photo : Samsung Newsroom]

    시몬스보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체험 공간을 선보인 바 있다. 바로 2016년 2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1,600평 규모의 Samsung 837 매장이다. 삼성전자는 Samsung 837이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님을 지속해서 강조한다. 지역과 연관된 상품을 판매했던 시몬스와 다르게 Samsung 837은 해당 기업의 제품뿐 아니라 어떠한 제품도 판매하지 않는다.

    Samsung 837디지털 놀이터(Digital Playground)라고 소개한 삼성전자는 해당 공간을 삼성전자의 제품들을 체험하는 놀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Samsung 837에서는 타사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을 위해 언제든지 Samsung 837의 전용 앱이 설치된 삼성의 최신 핸드폰을 빌릴 수 있게 함으로써 삼성전자의 제품을 자연스럽게 체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Social Galaxy 

    [Photo : Samsung Newsroom]

    3개 층으로 구성된 Digital Playground는 공연을 위한 강당과 디지털 스크린을 포함해 다양한 체험적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픈 라디오를 위한 스튜디오와 다양한 삼성 가전을 포함하고 체험할 수 있는 주방,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놀이방, 심지어는 다양한 홈 가전이 배치된 거실까지 포함되어 있다. 2016년에는 Samsung 837의 오픈을 기념해 미국의 최대 방송사인 ABC의 간판 프로그램 Good morning America를 독점 생중계했으며, 해당 연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마션, 인사이드 아웃 등과 같은 영화 상영회 또한 진행한 바 있다. 고객들의 다양한 체험에 집중하고 있다.

    Samsung 837 공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바로 Social Galaxy다. Social Galaxy는 디자인 스튜디오인 Black egg와 협업해 만든 터널이다. 삼성전자의 핸드폰, 태블릿을 포함한 300여 개의 디스플레이로 이루어진 Social Galaxy 터널에 방문객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입력하면 자신이 올렸던 게시물이 터널 속에 전시된다. 자신이 어떤 게시물을 SNS에 올렸는지를 마주하며 추억을 상기시키는 Social Galaxy는 삼성전자만이 할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을 제공한다.

    시몬스가 지역과 상생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인테리어를 구상했다면, Samsung 837은 해당 건물이 위치한 뉴욕의 지역 주민들과 상생하기 위한 사업을 지원한다. 뉴욕의 미트 패킹에 위치한 Samsung 837은 뉴욕의 소외 계층을 위한 예술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Free Arts NYC를 지원하는 Art prep party에 참여한 바 있다. 지역의 자선 단체를 돕는 일은 Samsung 837의 임무 중 하나라고 소개하면서, 지역 주민에게 다양한 체험적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유희하는 공간으로서 Samsung 837이 활용되고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Samsung 837




    미국 삼성전자의 Galaxy studio와 Samsung 837의 총지배인이자 고객경험관리 파트의 부사장인 잭 오버튼(Zach Overton)은 Samsung 837의 목표가 거래에서 벗어나 제품이 제공하는 경험에 집중(The goal of this space is to move away from the transaction and focus on the experience the product delivers)하는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제품 구매와 판매라는 전형성을 벗어나 체험에 집중하는 공간인 Samsung 837은 삼성의 공간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해당 공간을 각종 행사 및 행사와 관련된 제품을 전시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단순히 신제품을 전시하고 홍보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제품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초청하거나 관련 유명인을 초청해 토크쇼를 열고 직접 질의응답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고객들과의 소통 창구로서 Samsung 837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NFT 아트갤러리로 Samsung 837을 활용하면서 다양한 NFT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을 초청해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NFT 거래 플랫폼을 탑재한 TV를 준비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다시 매장으로

    미국의 아마존, 홍콩의 알리 익스프레스가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매장 종말론이 주목받았던 시대가 있었다. 온라인 주문의 효율성과 간편함이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집어삼킬 것이라는 예언은 반쪽짜리 예언이었다.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으로서 오프라인 매장의 약화 현상은 실제로 일어났지만, 그것이 오프라인 매장 자체의 약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체험과 경험을 중시하고 그것이 브랜드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현시대 매장의 역할은 기존의 매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오히려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매장은 더 이상 단순한 제품 판매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제품 체험뿐 아니라 브랜드 자체를 체험할 수 있는 브랜드의 공간으로서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변화시켰으며 제품을 위한 공간이 아닌 문화적 공간으로서 매장을 탈바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