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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를 그린 20세기 청년, 백남준

    2022-09-28 10분 분량

    올해 한국 미술계가 잇따른 경사를 맞고 있다. 국민 화가 이중섭의 작품이 새삼 다시 주목받고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관심도 미술계를 설레게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며 미술관들도 관람객 맞이에 다시 분주해졌다. 특히 서울에서 국제적인 아트페어 프리즈(FRIEZE)가 열리며 7만여 명의 관람객이 행사장을 찾았고, 세계적인 컬렉터 딜러들도 모였다. 또 하나 올해는 백남준의 탄생 90주기다. 한국이 아시아의 미술 허브로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있다. AI가 그림을 창작하고 디지털아트가 부상하고 있는 2022년,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다시 조망해 보았다.




    1932. 7. 20~2006. 1. 29

    백남준 작고 16주기, 탄생 9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뿐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을 비롯해 대전, 전주, 포천 등 전국 곳곳에서 그를 조명하는 전시, 기획전이 줄을 잇고 있다. 그중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사실상 올해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1,003개의 모니터를 쌓아 만든 거대한 탑 <다다익선>. 브라운관이 낡아 30년 동안 수선을 거듭해오다 2019년 대대적 복원에 들어간 작품을 다시 점검해 4년 만에 시험 가동을 시작했다. 백남준 하면 떠오르는 가장 친숙하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작품으로 축제의 문을 연 것이다. <다다익선>은 지난 15일 점등과 재가동 기념행사를 마친 뒤 다시 대중 앞에 우뚝 섰다.

    다다익선

    [Photo : 국립현대미술관]

    올 초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은 백남준 작품 전시에 집중했다. 개관에 맞춰 소장전으로 166대의 TV 모니터를 거북 형상으로 꾸민 <거북>을 전시했다. 이어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기획전 21세기 천지창조 시스틴 채플을 기획한 데 이어 두 번째 특별기획전인 땅의 아바타, 거북을 진행하고 있다. 참고로 <시스틴 채플(성당)>은 30년 만에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된 작품이다.

    거북

    [Photo : 울산시립미술관]

    이외에도 대전 신세계 갤러리에서는 백남준과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작품을 전시하는 백남준, 이이남 IN PROGRESS(현재진행형)가 열렸다. 집창촌에서 문화예술과 인권 공간으로 탈바꿈한 전주 덕진구 서노송 예술촌 뜻밖의 미술관에서는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라는 주제로 백남준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포천문화재단과 백남준문화재단 또한 포천반월아트홀에서 멀리 보다: 백남준의 TV 전시를 진행했다.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성장기를 보낸 정신적 고향, 서울 창신동에 위치한 백남준기념관에서도 상설 전시와 함께 심포지엄과 세미나, 청소년·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20세기에 21세기를 그려 보이다

    작가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따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한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러한 축제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백남준의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는 작가가 만든 비디오 700여 편을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라는 이름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방송 클립, 퍼포먼스와 전시 기록 영상, 비디오 조각을 영상과 함께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백남준의 인간적인 모습 또한 엿볼 수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Photo : 직접 촬영]

    최근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두 개의 특별전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와 <바로크 백남준>를 동시에 진행했다. 먼저 전시장 1층의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는 백남준 작품의 주요 행로를 시간의 역순으로 되짚었다. 이 역행하는 일대기는 연대별 대표 작품의 소개라기 보다는 예술가로서의 도전과 고정관념에 대한 투쟁사처럼 보인다.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아방가르드를 전시회의 이름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레이저 작품 <삼원소> 앞에서 힘차게 소리 지르며 퍼포먼스하는 그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1977년 한정판으로 발매된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 LP 음반에 귀 기울이고 1964년 원격 조정기로 <로봇 오페라>를 움직이는 청년 백남준과 마주하게 된다.

    10개의 꼭지를 둘러보면 그의 선견지명과 미래지향적 사고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1993년 <칭기즈칸의 복권>과 <사이버 포럼> 작품을 통해 동서양의 교류와 소통을 다루는 한편, 한참 뒤 펼쳐질 인터넷 시대의 실현을 먼저 보여준다. <사이버 포럼>은 1994년 미국 전역을 순회한 <전자 초고속도로>의 전시 작품이다. 그는 전자 초고속도로를 통해 전자통신이 우리 눈에 보이는 고속도로처럼 사회의 기반 시설로 자리 잡고 사회경제적 변화를 일으켜 세상을 바꿀 것을 예견했다. 놀랍게도 백남준이 이 개념에 대한 글을 쓴 것은 1964년이었다. <사이버 포럼>은 위성 안테나를 지붕으로 하는 미래 도시의 시청 앞에서 자유롭게 발언하는 로봇을 보여 준다.

       

                                         칭기즈칸의 복권                                                                           사이버 포럼 

    [Photo : 직접 촬영]

    1974년 작 <TV 부처>는 CCTV를 통해 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참여 욕망을 전하고 있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서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인공위성을 이용해 뉴욕과 파리 그리고 독일 등 여러 나라 방송국들이 참여하는 쌍방향 위성 생방송이 가능함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TV 부처

    [Photo : 직접 촬영]

    특히 백남준은 1966년 선언문-유토피안 레이저 TV 스테이션이란 글에서 미래 수천 개의 크고 작은 레이저 방송국이 생겨날 것을 예언했다. 당시의 우리나라는 흑백 TV가 막 보급되고 방송국조차 한 개만 있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의 플랫폼 천하를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언젠가는 모두가 각자의 TV 채널을 갖게 될 것”이라도 했다. 미래 현대사회의 미디어 생태계를 정확히 예측한 그의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백남준을 텔레비전과 비디오 작업을 주로 담당해 온 작가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그는 미디어 외에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융합하고 로봇, 무선통신 등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미술 아니, 예술의 지경을 넓혀왔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에게 장르 구분은 의미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전자음악과 퍼포먼스를 활용한 작품, 1980년대에는 위성을 이용한 작품, 그리고 1990년대에는 레이저를 사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 갔다.

    이러한 흐름은 전시장 2층의 <바로크 백남준>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17세기~18세기 바로크미술은 전체와 부분의 조화를 통한 균형을 강조하고 과격한 운동감과 극적인 효과를 특징으로 한다. 또한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 역시 두드러진다. <바로크 백남준>은 이러한 바로크미술의 사조와 분위기를 전체적인 전시 콘셉트로 삼았다.

     비디오 샹들리에 No.1

    [Photo : 직접 촬영]


    언제나 도전하는 청년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바로크 레이저>와 <시스틴 성당>이다. <바로크 레이저>는 1995년 독일의 한 교회 전체에 대규모 프로젝션과 레이저를 설치해 완성했던 작품이다. 독일의 바로크 건축가 요한 슐라운을 기리기 위해 그가 만든 교회의 모든 창을 닫고 캄캄한 공간 속에서 연출되었다. 홀로그램에 가까운 3차원 이미지를 영사하는 장치로 바로크식 중앙 돔을 가로지르는 레이저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붉은 레이저 광선이 비디오와 맞물려 몽환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레이저는 당시 구하기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는 기술이었지만 백남준은 연구를 거듭해 레이저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특별전에 전시된 <≪바로크 백남준≫에 대한 경의>는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이정성 엔지니어와 미디어·레이저 아티스트, 건축가 등 네 명이 힘을 합친 작품이다.






    그중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작품은 <시스틴 성당>이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참가한 백남준에게 황금사자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16세기 시스틴 성당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등을 통해 종교적 환영을 물감으로 풀어냈다면, 백남준의 <시스틴 성당>은 40여 대 프로젝터가 만들어 내는 영상과 사운드의 폭풍 하모니를 통해 새로운 환영을 만나게 한다.

    철골 비계에 설치된 수많은 프로젝트가 물고기 떼와 성조기, 요셉 보이스 등의 영상을 사방에 무작위로 쏟아내고 압도적 몰입감에 파묻히게 만든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감성으로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작품이다. 오히려 현대적 감각과 리듬에 동화되기까지 한다. 현실을 완벽하게 복제해 스크린에 덧입혀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요즘의 디지털 이미지들과는 다르다. 감각을 뒤흔들어 현장에 있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몰입감을 선사한다.

    백남준 자신도 “이것은 디스코장이 될 뿐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더 많은 정보를 흡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 실험이 된다”라고도 했다. 최근의 가상현실(VR)이나 메타버스(Metaverse), 미디어아트 등도 이런 도전의 흔적들이 아닐까.




    때론 과학자보다 예술가의 미래 예측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고들 한다. 세기를 넘어 미술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비디오아트를 넘어 인류가 살아갈 새로운 세상을 그린 비저너리(Visionary)가 우리 옆에 있었다는 사실이 벅차다.

    새삼 주목하고 싶은 것은 미래에 대한 그의 유토피아적인 시각이다. 언제나 청년이었으며 장난기 가득했던 그의 메시지 안에는 미래 사회에 대한 밝은 시선과 따뜻함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처럼 그는 기술과 미디어를 이용해 더 유쾌하게 소통하고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을 그려왔다.

    그는 생전에 국내 기업 PR 광고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다소 어눌한 우리말로 자신은 청년이라며 "창조! 창조! 창조!"를 힘줘 외쳤던 게 기억난다. 그의 작품이 시대를 넘나들며 계속 빛을 발하는 것처럼 끝없는 창조정신이 이 시대의 모든 도전하는 이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전달되길 기대해본다. 多多益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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