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ose
  • 조금 달라도 결국 '우리'의 이야기

    2022-10-26 10분 분량

    20명 중 1명, 약 5%의 비율.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물다고 할 수도 없는 숫자다. 바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 대비 장애인의 비율이다(2020년 국내 등록 장애인 숫자 기준, 보건복지부). 통계적으로 우리나라 국민 20명을 무작위로 데려오면 그중 1명은 장애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며, 이는 우리가 장애인을 일상 가운데 꽤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쩌면 오늘도 길거리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이들 중 몇 명은 장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Photo : unsplash.com]

    장애는 이만큼 우리와 가까이에 있지만 우리의 사회적 인식이 장애인에게 꼭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부 몇몇은 장애를 대하는 생각과 시선부터 다르다. 나와는 조금 다른 생김새 때문에,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기타 여러 이유로 장애인은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할 때 장애인들은 지니고 있는 신체의 한계로 인해 비장애인에 비해 어려움에 부딪힐 확률이 조금 더 높다. 그러나 다르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감정, 꿈, 욕구, 그리고 인격이 있다. 장애가 있든 없는 우리는 모두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사회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한 명의 개인일 뿐이다.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우리 삶에 놓인 소소한 재미와 보편타당한 것들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장애를 극복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처럼 여긴다. 장애인으로서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장애를 극복한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마치 부족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서 비장애인들의 삶에 도전하고 있는 듯 이야기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장애인의 모습들도 그래왔다. 장애를 이겨낸 누군가의 이야기가 마치 못해낼 것을 해낸 인간 승리의 이야기처럼 비쳤고 장애인과 사는 가족은 굉장히 특수하거나 불행한 사정처럼 그려졌다.


    [Photo : unsplash.com]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 미디어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장애인을 특별하거나 불행한 대상으로 그리는 게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장애인의 삶을 미디어를 통해 그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다양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긴다. 미디어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미디어의 특성에 맞게 그 이야기가 더 다채롭게 소개된다는 점도 특별하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미디어는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장애인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당신의 일상을 살아보는 경험 _드라마, 영화

    이전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인은 재미나 엉뚱함을 주는 존재, 혹은 조연으로서 주인공의 상황이 어려움을 더 부각하는 역할로 주로 등장했다. 때로는 그들의 장애가 어떻게 극복되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애인이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 등장하여 그들이 겪는 차별과 지닌 고민을 조명하는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2년 큰 화제를 몰고 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있다. 우영우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지만 비범한 암기력을 지닌 주인공이 우수한 성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물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주인공이 천재성을 발휘해 동료들과 함께 사건을 능숙하게 해결한다는 점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장애인을 극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경우가 비교적 드물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사회 전반의 많은 관심을 불러왔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Photo : ENA 채널 공식 페이스북 계정]

    2018년 방영됐던 드라마 <라이프>에서는 다른 유형의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여기서는 1급 지체 장애가 있는 정형외과 전문의 예선우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장애인 전용 콜택시, 전동 휠체어, 장애인이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들을 자세하게 그려냈고, 이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인식을 개선하는 데 있어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이 드라마에서는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장애인이 사회와 직장에서 겪는 현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비장애인들의 관점에서 장애인들의 사회생활을 어떻게 잘못 인식하고 있는지 꼬집기도 했다.


    [Photo : JTBC 홈페이지]

    해외의 경우, 이러한 장애인의 삶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다채롭게 그려지고 있다. 법의학을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 <본즈>에서는 사고로 인해 다리의 기능을 잃어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된 하진스가 등장한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자신의 직무 그대로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데, 한 에피소드에서는 이러한 하진스가 자신이 장애를 갖게 된 이후 이전과는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한 구성원의 이야기를 그림으로써 이는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임을 상기시켜주며, 또한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친구이자 동료임을 상기시켜준다.

    2021년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202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CODA>의 경우도 장애인을 극의 주인공으로 삼은 유명 사례이자 실제 농인 배우들을 출연시켜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CODA(Children of Deaf Adults)는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지칭한다. 이 영화에서는 가족 내 유일한 청인이자 CODA인 루비가 등장한다.

    루비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 유명 음대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기지만 언어로 대화가 불가능한 농인 가족들을 두고 멀리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이러한 상황적 맥락에서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빚어내는 갈등을 넘어, 농인과 청인이 함께 사는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그리고 가족으로서 서로가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해 집중한다. 이를 통해, 장애 그 자체가 아닌 장애인이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과정과 그 안에서 생기는 조금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경험들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특히 농인 가족들이 딸의 노래를 온몸의 감각을 이용해 듣는 장면을 통해 농인들이 그들만의 방법대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보여줬다.



    영화 CODA 트레일러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장애 정도가 약해 일상생활이 가능한 소수 장애인의 이야기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장애가 미디어에 자연스럽게 자주 노출될수록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 캐릭터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이 결코 부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게요_유튜브

    어느덧 유튜브는 새로운 유형의 미디어 채널로 급부상했다. 그저 동영상을 올리는 공간에서 벗어나 이제는 개인 방송국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하나의 미디어로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에피소드 하나에 1시간 이상 분량의 이야기를 할애하는 기존의 미디어 콘텐츠에 비해 유튜브에서는 짧은 호흡으로 다양한 주제를 더욱 쉽게 담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용자가 콘텐츠 제작에 어렵지 않게 뛰어든다. 이를 활용해 장애를 지닌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유튜브를 통해 세상과 소통함으로써 장애인들의 일상을 소개하고 비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일에 직접 나서고 있다.

    유튜브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는 박위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위 씨는 건물 2층 높이에서 떨어져 경추가 골절되면서 전신이 마비되었다가 오랜 재활 끝에 상반신 기능을 회복한 지체장애인이다. 그가 만드는 위라클의 주 콘텐츠는 장애인으로서 휠체어를 타고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하반신 마비 장애인들의 화장실 이용까지 지체장애인의 일상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보여준다.

    특히 자신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삶에 대해서 소개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러한 콘텐츠 제작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동등한 위치에서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구성원임을 알리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박위 씨는 이러한 장애 인식 개선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서울시 복지상 장애인 인권 분야 대상을 받기도 했다.



    유튜브 ‘위라클’


    <원샷한솔>을 운영하는 김한솔 씨는 시각장애인이다. 김한솔 씨는 고등학교 때 레버씨 시신경 위축증을 진단받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된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 한솔 씨의 콘텐츠 또한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받는 오해에 대해 소개하고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그냥 시각장애인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를 보여주기 위해 영상을 만든다고 밝혔다.

    그의 영상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며 심지어 어떤 것까지 혼자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독자들의 궁금증에 대해 몸소 답한다. 그뿐만 아니라 영상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한 영상에서 컵라면을 직접 끓여 먹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점자가 없어 뜨거운 물을 어디까지 부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을 본 한 구독자가 식품 회사에 개선 문의를 하였고 이에 해당 회사는 대표 제품들 포장 패키지에 제품명과 물 붓는 선 위치를 알려주는 점자를 추가하기도 했다.



    유튜브 ‘원샷한솔’ 




    해외의 경우 국내보다 더 다양한 유형의 장애 관련 유튜브 채널이 존재한다.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지닌 아이들을 인터뷰하는 <Special Books by Special Kids>, 장애인과 비장애인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Squirmy and Grubs>, 비장애인 엄마와 장애인 딸의 일상을 담은 <Angie and Ruby> 등의 채널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사례와 마찬가지로 유튜브를 통해 들려지는 실제 장애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들은 거창한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 장애인의 진짜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때로는 비장애인들로부터의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인식을 몸소 경험하며 겪은 이야기들이 꾸밈없이 전달된다. 그저 장애를 가졌을 뿐, 비장애인들과 같은 인격과 바람을 지닌 사람이 언제 기쁘고, 언제 슬프며, 또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콘텐츠들을 통해 우리는 장애인들을 동정과 측은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유튜브 ‘Squirmy and Grubs’ 




    많은 전문가가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장애인은 그저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제공하는 장애인식개선 교육자료에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장애인 또한 당연히 도움을 거절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장애의 유무보다는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장애인을 대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비장애인들보다 이겨내야 할 불편함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점들이 무조건 피상적인 연민이나 동정의 이유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인인식개선 홍보영상 


    장애인을 위한 물리적 도움을 제공하기 이전에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편견 같은 비물리적 요소들을 우리 스스로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대중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미디어는 그러한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단지 장애를 감동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 또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장애는 물리적인 차원에서 불편한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먼저 그들을 불편한 존재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