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그야말로 지금 콘텐츠 IP 쟁탈전 중이다. 콘텐츠 IP(Intellectual Property)는 지적재산을 콘텐츠 산업에 적용한 개념으로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적 확산과 부가 사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관련 지식재산권 묶음을 지칭한다. 훌륭한 IP를 보유했다는 뜻은 음반 시장에서는 스테디셀링 아티스트, 콘텐츠 시장에서는 히트 드라마·영화·웹툰 등의 판권을 보유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미 상업적으로 검증된 콘텐츠이기에 이를 활용한 OSMU(One Source Multi Use)의 다양한 콘텐츠는 기존 1차 IP에서 다변화된 수익을 창출하는 캐시카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최근 큰 인기를 끈 송중기 주연의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미 웹소설로 성공해 상업성이 보장된 콘텐츠였다. 원작은 드라마뿐 아니라 동명의 웹툰으로도 연재돼 드라마와 시너지 효과를 냈으며 웹소설-드라마-웹툰 모두 성공한 슈퍼 IP 급의 성과를 남겼다. 이는 웹소설 IP를 바탕으로 드라마, 웹툰으로까지 각색되며 다방면의 수익을 안겨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성공, 해외 OTT 유입으로 OTT 간 구독자 경쟁이 극심해진 현 상황에서 콘텐츠 업계에 좋은 IP는 필수 불가결한, 꼭 확보해야 할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원천 IP가 수두룩한 웹툰, 웹소설은 일종의 보물 창고로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가 원작의 판권을 사려고 극심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Photo : kinolights]
2차 IP 쟁탈전이 벌어지는 곳 : K팝
콘텐츠 산업이 탄탄한 원작을 찾아 헤매는 중이라면 K팝 산업은 아티스트를 활용한 2차 IP 개발로 새로운 수익 창구를 모색하고 있다. K팝 산업에서 통상적으로 1차 IP는 아티스트 론칭, 음반, 음원, 공연 등 전통 수입원을 의미한다. 2차 IP는 그 파생 상품으로서 굿즈 상품, 영상 콘텐츠 사업, IP 라이선싱 그리고 팬플랫폼 등이 있다.
K팝 산업에서 1차 IP 대비 2차 IP를 점점 선호하는 이유는 투자 대비 높은 수익과 부가가치 창출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 K팝 걸그룹 앨범 평균 제작비가 15~20억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초기 투자 비용에 비해 흥행 여부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1차 IP 시장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2차 IP로 수익 모델을 다변화하는 산업 논리는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중 팬플랫폼은 K팝의 코어 집단이라 할 수 있는 팬덤을 응집하는 종합 플랫폼으로서 K팝 시장의 새로운 수익 창출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Photo : 유튜브 <구라철>]
다른 콘텐츠 산업과 달리 K팝은 팬덤을 형성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분야다. 콘텐츠 사업은 비교적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타깃팅이 가능한 반면, K팝은 다소 한정된 1030 소비자를 타깃으로 움직이며 이 소비자들은 상호 경쟁적이다. 예를 들어 같은 시기에 컴백한 걸그룹 A, B가 있다고 치자. 이때 내가 A 그룹의 팬인 내가 B 그룹의 앨범을 살 확률은 희박하다. 내 가수 앨범 판매량을 높여 음악방송 1위를 안겨줘야 하는 데다 설사 여러 아티스트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특성상 본진이라 불리는 가장 로열하고 코어한 아티스트에게 하는 것만큼 차애의 아티스트에게까지 적극적인 소비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 소비자층의 특성상 1차 IP 시장 속 팬덤을 활용한 수익 창출은 곧 양적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며 그 파이가 커지기는 어렵다. 이미 BTS의 성공으로 글로벌 소비자층까지 유입되며 그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더 큰 파이를 찾을 수 있을까?
2022년 K-POP 음반 수출입액은 약 2천 940억 원이며 이는 4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인 미국에서 2022년 가장 많이 팔린 CD 톱 10 중 K팝 음반이 7장이나 이름을 올렸다. 현재의 호황을 이어가기 위해 더 많은 소비자층을 어디서 찾을지가 1차 IP 시장의 최대 고민으로 부상할 것이며, K팝이 단순히 하나의 글로벌 트렌드로 소비되고 쇠퇴할 것이란 전망 또한 하나의 리스크로 기능한다.

[Photo : 케이팝레이더 공식 웹사이트]
팬플랫폼은 이런 고민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1차 IP로 확보한 소비자들이 이탈하지 않고 계속 콘텐츠에 몰입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며, 어플 형태로 제공되는 쉬운 접근성은 언어적,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기 용이하다. 최근 종결된 이슈인 SM을 둘러싼 하이브-카카오 간의 경영권 분쟁 중심 역시 팬플랫폼을 점유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라는 분석이 있을 만큼 현재 K팝 시장에서는 음반만큼이나 팬플랫폼을 중요하게 여긴다.
팬플랫폼 양대 산맥 : 위버스와 버블

[Photo : 각 사 홈페이지]
현재 서비스 중인 대표적인 팬플랫폼으로는 하이브의 위버스(weverse)와 디어유의 버블(bubble)이 있다. 스타와 팬이 함께하는 세계란 의미의 위버스는 다음의 3가지 서비스로 크게 나뉜다. 스타가 팬들에게 글을 남기고 댓글을 달 수 있는 ①상호 소통 커뮤니티 ②인스타그램 라이브 같은 라이브 방송 ③다양한 굿즈와 상품을 파는 위버스샵이다. 과거에는 팬들이 자생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면 스타가 종종 방문해 글을 남기는 식이었는데 위버스는 이런 팬카페 같은 커뮤니티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 구현했다.


현재 위버스에는 하이브 아티스트는 물론 YG 소속 41개 팀(개인)이 입점해 있다. 글로벌 K팝 성공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BTS와 블랙핑크가 모두 입점해 있는 위버스는 월간 이용자 수만 해도 690만 명(2022년 3분기 기준)을 넘는다. BTS 가입자만 해도 1,485만 명이다. 여기 더해 2021년 하이브가 미국 이타카 홀딩스(Ithaca Holdings)를 인수하면서 소속 아티스트인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와 같은 메가 스타들도 입점할 예정이라 위버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참고로 이타카 홀딩스는 저스틴 비버를 발굴한 미국 음악산업계 거물 스쿠터 브라운이 설립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하이브와 파트너십을 구축해 음악, 영화, 엔터테인먼트, IT 여러 방면에서 시너지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위버스의 비전은 단순한 커뮤니티성 팬플랫폼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경준 하이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위버스가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종합적이고 고도화된 플랫폼”임을 밝히며 스타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총망라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하이브가 음반, 아티스트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를 넘어 글로벌 플랫폼 IT 기업을 표방하기 시작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위버스는 그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기훈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하이브 상장 이후 6개월간의 성과가 글로벌에서 하이브만이 보유한 온라인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 덕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다른 기획사와 비교했을 때 하이브만의 차별점은 경영진이 연예 기획사가 아닌 게임 사업을 했었다는 특이한 배경에 있다. 박지원 대표는 과거 넥슨 코리아의 CEO였고, 산하 레이블 빅히트뮤직을 이끄는 신영재 대표 역시 넥슨에서 피파온라인 사업 실장으로 일했다. 이처럼 IT 인터넷 기업에 가까운 정체성을 지닌 덕에 팬데믹과 같은 위기에서도 온라인으로 사업 수완을 발휘해 다른 기획사 대비 적은 타격을 입었다는 설이 있다. 이에 더해 하이브는 사업 매출의 80~90%가 콘서트와 음반에서만 나오는 포트폴리오가 아닌 IT 플랫폼 쪽으로 수익 창구를 다변화해 K팝 기획사의 다음 단계를 그리는 중이다.

[Photo : 중앙일보]
버블은 SM 자열사 디어유(DearU)에서 운영 중인 팬플랫폼이다. 버블이 위버스와 차별되는 지점은 스타와 팬이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처럼 메시지를 주고받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한 아티스트당 월 4,500원의 구독료를 내면 마치 카톡처럼 스타와 실시간 채팅을 주고받을 수 있다. 내 최애에게서 매일 문자가 오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인터페이스는 팬들의 판타지를 직관적으로 충족한다. 이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위버스는 그간 SNS처럼 게시글과 댓글을 이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업계 2위이긴 하지만, 소통을 전면에 내세운 버블은 위버스보다 성공적인 수익 모델을 갖추었단 평가를 받는다. 하나의 그룹이 아닌 한 그룹 내 개인별로 구독하기에 그룹 멤버 수에 따라 N개의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룹 단위로 구독료를 내는 위버스보다 수익성이 높다.

[Photo : 디어유 공식 홈페이지]
현재 버블의 누적 유료 구독자 수는 2022년 4분기 기준, 160만 명이며 2022년 연간 매출은 약 492억 원에 달한다. 입점 아티스트 수는 총 129개로 국내 팬덤 플랫폼 중 가장 많다. 특히 디어유는 엔씨소프트에서 운영하던 팬플랫폼 유니버스를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여기에 일본 최대 규모 팬덤 서비스인 기업 엠업(m-up)홀딩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해외 진출 가능성까지 노리고 있다.
세계 2위 음악 시장인 일본 아티스트 풀을 확보한 것은 디어유가 일본, 아시아를 넘어 미국까지 현지화 전략으로 글로벌 사업을 확대할 전망으로 보인다. 참고로 엠업홀딩스는 공식 팬클럽 플랫폼 300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료 회원 수 200만 이상을 확보한 일본 대표 팬플랫폼이다. 대표 아티스트로는 전설적인 국민 록밴드 글레이부터 <프로듀스 101> 일본판 그룹 INI, AKB 자매그룹 SKE48 등 초대형 아티스트들이 있다.
초대형 팬플랫폼의 탄생?

[Photo : 문화일보]
최근 하이브와 카카오를 중심으로 SM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며 이슈가 됐었다. 90년대부터 아이돌 산업을 주름잡던 K팝의 명가, SM의 IP를 확보하기 위한 두 대형 플랫폼의 치열한 쟁탈전이었다. 하이브에게는 국내 유일무이한 경쟁 팬플랫폼 버블을 인수할 기회였으며, 북미와 남미에 치중된 시장을 SM이 집중 점유하고 있는 아시아와 동남아로까지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위버스와 버블이 통합된다면 K팝 글로벌 팬덤 약 1,000만 명을 모은 공룡 팬플랫폼이 탄생할 수도 있었다. 이는 하이브가 글로벌 소니, 유니버설, 워너 뮤직 등 빅 3 메이저 음반사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으로까지 점쳐졌다.
킬러 IP를 확보한 만큼 이를 활용한 2차 IP 수익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했다. SM 경영진을 비롯해 국내 음악계에서 하이브 SM 인수가 독과점이라고 꼬집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하이브가 인수할 경우 국내 기획사 산업 내 매출 66%, 음반·음원 시장의 70%, 공연 시장의 89%를 점유할 수 있었다.

[Photo : 동아일보]
카카오 입장에서도 SM 인수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카카오는 2022년 3월 리더십까지 변경하며 비욘드 코리아를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은 카카오의 미래 10년 핵심 키워드로 비욘드 코리아를 꼽고 “한국이라는 시작점을 넘어 해외 시장이라는 새로운 땅을 개척해야 한다는 카카오의 미션이자 대한민국 사회의 강한 요구”라고 말했다.
2025년까지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 비중 30%를 달성할 것이란 목표는 카카오가 SM 인수에 더욱 사활을 걸게끔 만들었다. 대다수 매출이 해외에서 나오는 SM의 성과가 카카오의 영업 이익에 반영될 것은 물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구축해 온 해외 플랫폼에 SM IP를 유통해 사업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카카오가 인수한 미국 웹툰 플랫폼 타파스,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우시아월드에 아티스트 세계관을 녹여낸 웹툰, 웹소설 콘텐츠를 연계할 수도 있다.
SM 입장에서도 카카오와의 파트너십은 그토록 염원하던 메가 플랫폼과의 협력이란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SM 경영진은 최근 발표한 SM 3.0 전략에 최적화된 파트너가 카카오라 밝히며 강력한 IP와 IT 및 AI 기술 간의 시너지, 카카오 음반·음원 유통 플랫폼 멜론을 활용한 IP 수익 극대화, 카카오 스토리 영상 제작 역량과 결합한 SM 유니버스 IP 구축 및 확대 등 협력의 장점을 꼽았다. SM은 그간 자체 IP를 활용해 자체 플랫폼을 여럿 만들었지만, 버블을 제외하고 모두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훌륭한 IP는 보유했지만 이를 2차 IP로 수익화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기술력과 전문성을 보유한 메가 IT 플랫폼과의 협력은 필수적이었기에 카카오와의 협력은 SM으로서는 강력한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Photo : SMTOWN 유튜브 채널]
어디를 가든 독과점 문제는 있다_ 신생·중소 엔터 기업은 더욱 어려워져
어딜 가든 팬플랫폼 시장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특히 SM의 디어유(버블)는 위버스와 통합되거나 카카오 산하 레이블 아티스트가 새로이 입점하거나 SM이 어디로 인수되든 계속해서 호재일 전망이 우세하다. 단 이러한 국내 K팝 산업 질서의 재편은 그 자체로 독과점이며 K팝 콘텐츠의 다양성 또한 저해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그간 SM과 하이브가 강대강 구도로 차별화된 컨셉과 음악을 통해 K팝 시장의 다채로운 매력을 드러냈는데 하이브에 인수되면 그런 모습은 보기가 힘들 것이다.
우리 모두 2010년대 SM, YG, JYP 3강 구도로 각 기획사의 노하우가 응집돼 경합을 벌이던 K팝 시장의 황금기를 기억한다. 거대한 자본과 점유율을 지닌 하이브(+SM)가 출현하면 타 경쟁사들을 압도할 것이며, 열악한 자본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신생 및 중소 엔터 기업의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간 중소기업 만든 기적의 사례는 빅히트, 지금의 하이브다. 방탄소년단이 데뷔하고 성공하기 전까지 그들의 수식어는 중소기획사 출신이라는 흙수저였다. 만약 하이브가 인수에 성공했다면 앞으로 제2의 방탄소년단과 같이 중소기획사 출신 아이돌 성공 사례는 더욱 보기 어려워졌을 수도 있다.
SM 인수전을 둘러싼 K팝 산업 양자 구도
[Photo : 조선일보]
음반·아티스트 시장이 아닌 기획·제작·유통 측면에서 보면 카카오 또한 플랫폼 독점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미 작년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를 통해 우리는 플랫폼 독점이 사회를 어떻게 마비시키는지 목격했다. 국내 음원 플랫폼 멜론, 티켓 예매 사이트 멜론 티켓을 운영하는 카카오 입장에서도 SM을 인수할 경우 시장의 독과점을 형성할 수 있다.
[Photo : unsplash]
여러모로 SM의 인수는 K팝이 얼마나 세계적인 메가 IP로 성장했는지를 가늠하는 사례이자 오늘날 더 많은 IP와 플랫폼을 확보하려는 치열함을 확인하는 이벤트가 될 것임이 자명했다. 그것은 K팝 수입의 원천이 되는 코어 에너지 팬덤, 즉 팬플랫폼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코어 에너지란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이 과정에서 팬덤이 철저히 소외되었다는 점이다. “팬은 그저 ATM(현금지급기)이냐”는 K팝 산업 내 가장 자조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말을 다시금 소환할 때가 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