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환경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생태학적 세계관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생태학적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태도를 뜻한다. 환경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이 1962년 『침묵의 봄』이라는 저서를 통해 생태적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는 사회운동을 촉발한 일을 계기로 자연과 인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다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게 되었다. 생태학적 세계관을 예술적 구현물로 표상하는 시도들 또한 늘어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1990년대 초에 이르러 생태미술(Eco Art)이라 불리게 된다.
생태미술은 자연환경을 작품의 주제로 다룬다는 점에서는 대지미술(Land Art)과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대지미술가들이 자연환경 보호보다는 예술을 우선시해 자연에 인위적인 힘을 가해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생태미술가들은 인간 중심적 관점을 극복하고 자연과 공진화(co-evolution)하는 편을 택한다. 즉, 대지미술이 생태주의적인 의도를 담고 있음에도 여러 생태계 문제와 부딪힐 가능성이 있는 것과 달리 생태미술은 사회운동의 성격을 지니며 그 자체로 생태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사실 생태학적 가치를 미술품 전시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전시는 준비에서부터 철거 과정까지 필연적으로 폐기물을 배출하기에 자연을 주제로 기획한다고 해도 오히려 의도와 달리 생태 보호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열린 국립현대미술관의 《대지의 시간》 (2021.11.25~2022.2.27)은 나름의 생태적 가치를 잘 담아내는 쪽을 택했다. 《대지의 시간》은 전시장 가벽을 없애고 영구적으로 재사용 가능한 구체를 이용해 전시장을 구획하며 환경보호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은빛의 커다란 구체가 곳곳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이 구체는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스스로 공기량을 줄여나가고, 전시 종료 후 공기를 빼면 작은 상자 안에 담아 보관이 가능하다. 필요할 경우 다른 전시에서 다시 부풀려 재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재활용 방식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 제작 시 매체를 재사용한 정소영 작가의 <미드나잇 존>(2021)을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작품 구상을 위해 미술관을 방문한 어느 날 지하 수장고에 방치되어 폐기를 기다리고 있던 유리 진열장을 발견한다. 그는 유리 진열장의 비어 있는 공간을 보면서 작품이 수집되고 보관되는 방식을 상상하고 심해의 풍경을 담아낸다. 작가는 2020년부터 진행한 해양과학 리서치에서 해양 광물들을 근접 촬영했는데, 이를 바닷속에 잠든 물질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탐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상 작품으로 표현했다. 설치와 영상으로 이루어진 정소영 작가의 작품은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시간에 심해의 표현을 담아내면서 바다라는 생태계를 재인식하게 만든다.
생태미술의 기본 전제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데 있다. 전시를 관통하는 이러한 주제를 잘 담아낸 작품이 OAA(정규동) 작가의 <인과율>(2021)이다. 건축가 정규동은 세상 모든 것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건축적 언어로 표현했다.
우리 모두는 어디선가 떨어져 나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인 것처럼 살아가지만, 여전히 무언가의 일부로 존재하며 모든 것은 인과율을 따르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메시지를 건축 용어인 텐서그리티(Tensegrity)에 착안해 담아냈다. 텐서그리티는 텐션(tension)과 인테그리티(integrity)의 합성어로, 안정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불연속적인 압축재들이 연속된 인장재들과 상호작용해 평형상태를 이루어야 함을 말한다. 작품의 아랫부분을 보면 접착제 없이도 작품이 지지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자연과 인간도 이처럼 견고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확보할 때라야 평형 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김주리 작가의 거대한 설치 작품 <모습(某濕, Wet Matter)>(2021)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시장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거대한 흙덩어리가 놓여 있는데, 가까이 가보면 이 흙덩어리는 젖어있는 상태의 모호한 형상을 취하면서 공간을 점유한다. 이 거대한 젖은 흙덩어리는 나무와 흙 냄새를 머금고 주변을 서성이는 관람객을 작품의 시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이 작품은 작가가 중국 단둥 지역 압록강 하구의 습지를 답사한 경험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국경과 같이 여러 경계와 구분을 만들어가지만, 강바닥의 흙은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고 연결하며 생태적 가치를 품는다. 작가는 이 지역의 부드럽고 유연한 땅에서 영감을 받아 액체와 고체, 혹은 물과 땅의 중간상태인 <모습>을 만들어낸다. 이로써 인간이 자연의 한순간이자 순환의 일부로서 관계하는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연환경에서 추출한 표본 자료로 생태계를 구현해내는 방식은 대표적으로 한스 하케(Hans Haacke, 1936~)의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스 하케는 1960년대 초반부터 비물질성을 작업 소재로 삼아 자연 현상을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해 온 작가다. 선풍기 바람을 이용해 파란색의 천을 전시장 공중에 띄운 <푸른 돛(Blue Sail)>(1964)이나 물의 상태 변화 과정을 가시화한 <응결 상자(Condensation Cube)>(1963-1965) 등이 그 예다. 이러한 하케의 작업은 생태학적 세계관의 근간을 작품에 구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생태미술의 중요한 선례가 된다.
우리는 유별난 환경 안에 사물을 놓거나 다른 사물들과 함께 그것들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시각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비논리적인 병치로 말미암아 우리는 기억의 사슬을 부수고 사물들은 신비하고 자율적인 실재물로서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한다.
– 베르너 하프트만(Werner Haftmann)·미술사학자 –
생태학(Ecology)이란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이다. 생태 도감 삽화를 그리기도 했던 헤켈은 여행을 갈 때마다 현미경과 수채 도구를 챙겼고, 동식물들에 대한 1천여 점의 판화를 남기기도 했다. 헤켈이 이름 붙인 생태학은 유기체와 그것을 둘러싼 환경의 관계에 주목하는 학문이며, 생태학적 세계관은 이러한 생태학을 토대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대지의 시간》은 생태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국적 생태 미학의 기원을 찾고 그 흐름을 추적한 시도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수집·정리·분류하여 아카이브를 구성하기도 했다.
광범위한 아카이브 중 눈길을 끈 작품은 故 전국광 작가의 <수평선>(1975)을 재현한 퍼포먼스 기록이다. 1975년 전국광(1945~1990)은 한국미술청년작가회 야외작품발표회에서 당시 국내 미술계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야외 작품을 발표했다. <수평선>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안면도 꽃지해변의 바위에 흰 광목천을 감아 수평선이 연결되어 보이게 만든 것인데, 당시 찍은 슬라이드 필름에 문제가 생겨 사진을 남기지 못한다. 이에 생태미술 작업을 해 온 임동식 작가가 자신의 작품 <1975 안면도 꽃지해변 전국광의 수평선 작업을 그리다>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임동식 작가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퍼포먼스 영상은 한국 생태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생태미술은 전시라는 매개를 통해 생태계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환경 문제가 특정 지역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로 확산할 수 있음을 환기하고, 이를 통해 생태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특히 생태미술은 자연을 매체나 소재로만 차용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미술을 제안한다. 즉, 생태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생태미술은 미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인식을 포괄한다.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자연과 인간을 포함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의 관계에 대한 재정립을 통해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전환과 실천을 요구받고 있다. 생태미술은 여기에 응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