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문화·예술·교육·사회 전반에 대한 아티스트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 <젊은 예술, 생각을 디자인하다>. 작가의 태도, 가치관, 창의성, 소통, 감성이 반영되는 작업이나 작품활동 이야기, 작가 개인의 생각을 따라가 보며, 문화예술이 우리 삶과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와 강점을 알아보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와 함께 예술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이성형

서커스하는 광대, 마린보이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남을 웃기는 광대가 된 사람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지금 그가 우리 앞에 있다. 남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마임 예술가 ‘마린보이’ 이성형이다. ‘넓고 큰 사람’을 꿈꾸는 마린보이 이성형. 그가 걸어갈 광대(廣大)의 길을 마주해 본다.


 

PART 1.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커스 하는 광대, 마린보이 이성형이라고 합니다. 공연을 시작한 지는 15년 정도 됐습니다. 처음에 서커스를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커스를 배울 곳이 없었기 때문에 독학으로 공연 하면서 지금까지 하고 있고요, 서커스와 더불어 다양한 예술과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마린보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 전라남도 고흥의 나로도라는 아주 작은 섬에 살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작은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이었어요. 섬에 살았기 때문에 늘 바다를 보면서 많은 꿈을 꿨어요. 그래서 공연에서 사용할 이름을 만든다면 바다 소년이라는 뜻을 담아서 마린보이로 활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마린보이로 활동을 시작해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Q. 예술을 전공하신 게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네. 저는 4년제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어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와서 복학했는데 전공이 저한테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돼서 서울로 올라오게 됐어요. 서울에 와서 처음했던 아르바이트가 거리에서 피에로 분장을 하고 마케팅을 하는 일이었어요. 그걸 경험한 다음부터 서커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집중적으로 저글링도 배우고 서커스도 익히면서 공연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Q. 단순히 아르바이트의 경험 때문에 광대의 길에 들어서진 않았을 것 같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는 일을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제 성격을 비추어 볼 때 저는 뭔가 만드는 작업을 좋아해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어야 했는데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어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반 친구들 모두 조용히 공부하고 있으면 저는 교실 제일 뒤에서 안경에 보드마카를 칠하고 화분을 들고 서 있었어요.

 

그때 영화 <레옹>이 나왔을 때거든요. 친구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웃고 교실이 시끄러워지니까 선생님이 오셔서 혼나기도 했어요. 그런 경험을 많이 했어요. 그때부터 웃겨 주는 게 제 역할이었던 거죠. 군대에서도 동기나 선임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부보다는 직접 사람을 대하면서 웃음을 주는 일이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PART 2. 아티스트의 작품 활동과 관점을 살펴보다

 

 

Q. 서커스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공연을 시작할 때쯤 마술사들이 방송에 많이 나올 때였어요. 마술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젊은 사람들이 취미로 마술을 익힐 때였죠. 물론 마술도 충분히 매력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마술은 어찌 됐든 뭔가를 감추고 숨기면서 재미를 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서커스 같은 경우는 실제로 다 보여주면서 재미를 주게 되니까 그런 부분에서 차이가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마술도 노력이 필요하지만 서커스의 한 장르인 저글링 같은 경우에는 오랜 시간의 노력이 공연에 그대로 나타나거든요. 예를 들어서 마술은 비싼 장비를 사용하면 누구를 사라지게 할 수 있고, 누군가를 무대 위에 나타나게 할 수도 있지만 서커스는 아무리 좋은 도구를 사용해도 큰 차이가 없거든요. 연습을 통해서 몸으로 익혀서 할 수 있는 표현이니까 서커스의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Q. 서커스는 큰 무대가 아니어도 거리를 다니면서 할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생각해 볼 때 ‘나도 무대 위에서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신가요?

 

어느 무대가 더 좋고 설레고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무대면 다 좋아요. 어떤 날에는 거리에서 공연을 하면 제 앞에 관객이 1천 명이 있을 때도 있고 2천 명이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반대로 어떤 공연 장소에 가면 관객이 10명만 있을 때고 있고, 10명도 안 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관객이 1천 명이라고 해서 더 기쁘고 10명이라고 아쉽고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제 앞에 있는 관객들을 보면서 즐거움을 얻고, 그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즐거우니까요. 관객 수와 상관없이 무대 장소와 상관없이 공연을 할 수 있고 보고 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늘 행복했던 것 같아요.

 

Q. 개인적인 일로 감정이나 컨디션이 안 좋을 있을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도 공연을 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제가 처음으로 공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거리에서 피에로 분장을 하고 풍선 인형을 만들어 주는 거였어요. 피에로 분장을 잘 보시면 입은 항상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 옆에는 항상 눈물이 그려 있어요. 슬픔을 감추고 관객한테 웃음을 주는 대표적인 모습인 거죠. 그게 광대의 역할인 것 같아요.

 

저는 광대로 살기로 마음을 먹었었으니까 힘든 상황이 있어도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만큼은 다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조금 내성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어요. 보통 날에는 공연에서 보여드리는 모습과 다르게 굉장히 조용하고 말도 잘 안 하거든요. 그래서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과연 공연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무대에 올라가면 180도 바뀌어서 제2의 인격으로 관객을 만나니까 다르게 보죠. 힘든 일이 있어도 그냥 다 잊고 무대에 올라가요. 무대에서만큼은 즐겨야 하니까요.


PART 3. 우리네 인생을 담는 광대

 

 

Q.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무대가 궁금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무대는 10년도 넘은 무대였던 걸로 기억해요. 한 기업에서 어떤 보육원을 후원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공연에 초대돼서 가게 됐어요.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굉장히 외롭게 자란 친구들이잖아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오는 것도 굉장히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그런 모습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공연을 시작했는데 아이들의 호응이나 반응이 없는 거예요.

 

보통 공연이 시작되면 아이들이 오히려 긴장을 하고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데 그곳에 있던 친구들은 냉소적으로 앉아 있더라고요. 저는 최대한 제 에너지를 다 쏟아서 공연을 이끌어 갔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약했어요. 공연이 끝나고 짐을 챙겨서 내려가고 있는데 건물 창가 쪽에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자기 방 창문을 열면서 “잘 가요, 마린보이!” 라고 외치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참 뿌듯했어요. ‘아, 이 친구들 마음 안에도 분명히 따뜻함이 있었구나. 내가 조급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었죠.

 

두 번째 경험도 비슷해요. 제가 지금 한 기업체와 6년째 사회봉헌 활동을 함께 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짝수 달은 두 번씩 공연을 다니고 있는데 장애인 복지시설이나 노인 복지시설을 많이 방문해요. 한 번은 장애인 시설에 갔는데 스무 명 정도 되는 친구들이가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어서 누워서 고개만 움직이면서 공연을 보는 상황이었어요. 그 친구들이야 말로 박수를 쳐 줄 수도 없고, 환하게 웃어줄 수도 없는 아이들이었죠. 아이들은 마음껏 반응하지 못하지만 저는 최대한 열심히 보여줬어요. 그런 공연을 끝냈을 때 친구들은 방으로 돌아가고 담당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셔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고, 아이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물론 쉽게 반응할 수 있는 박수나 환호 소리도 좋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순수한 눈빛. 그냥 밝게 웃어주는 에너지가 담긴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이 생기는 것 같아요.

 

Q. 서커스 공연을 준비할 때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서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마린보이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빨간색 미니자동차를 떠올리실 거예요. 제가 그 작은 미니자동차를 타고 공연장에 등장하거든요. 사람들은 그 자동차를 장난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오니까 굉장히 놀라는 반응을 보여요. 그 미니자동차를 제가 만들었어요. 저는 뭐든지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요. 에너지를 가진 거요. 그게 바람일 수도 있고, 전기와 모터가 만나서 움직이는 어떠한 장치일 수도 있죠. 그런 아이디어들을 얻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조금 더 놀라게 해줄까, 어떻게 해야 더 재미있게 등장할 수 있을까. 공연 중에 어떤 모습으로 그들을 놀라게 할 것 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많이 던지는 편이에요. 그래서 제 작업실에는 각종 전자장치와 부품들이 가득해요. 이것저것 조립도 해보고 실패하면 다시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뭔가 일상에서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작업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떠한 기계 장치에 배우가 참여하는 그런 작업을 통해서 아이디어 자극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Q. 마린보이 공연 중 ‘폐지 수레를 끄는 할머니’ 작업을 사진으로 봤어요. 그 기계도 직접 만든 건가요?

 

제가 직접 제작했어요. 다른 분들이 저한테 자주 물어요. 도대체 당신의 진짜 직업은 뭐냐고요.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선뜻 보행 로봇을 만드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냥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과연 그것들이 실제로 움직이면 관객들이 거기에 얼마나 마음이 움직일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우리가 실제로 거리에서 만난다면 그렇게 도와줄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제 생각이 바뀌게 된 시점이 있어요. 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2014년이요. 2014년 이전의 제 작업들은 늘 관객에게 놀람과 즐거움을 주는 작업이었어요. 제 작업의 포커스가 대부분 웃음 코드에 향해 있었던 거죠. 그런데 2014년 이후에는 달라졌어요.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조금 더 고민하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부분이요. 제가 이메일 서명으로 쓰는 글귀가 있는데 ‘세상에 기쁨과 세상의 슬픔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광대가 되겠습니다’라는 표현이거든요. 이전까지는 늘 기쁨을 위한 작업을 중심으로 해왔다면, 지금은 슬픔도 함께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말씀하셨던 폐지 줍는 할머니 작품 이름을 ‘고물수레’라고 해요. 그 외에도 자전거를 활용해서 만든 작업이 있어요. 광화문에서 세월호 추모 1000일 집회가 열렸을 때였어요. ‘고물수레’ 작업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을 때였어요. 저는 제 모든 에너지를 ‘고물수레’ 작업에 다 쏟았을 때였는데, 추모 집회가 있다고 해서 저도 뭔가 참여를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공연자로서 어떤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관객이 만든 장치가 있는데 그게 관객 9명이서 자전거 펌프로 바람을 모으는 거예요. 자전거 펌프 호스가 한 호스로 연결이 되고, 한 호스가 커다란 공기탱크에 들어가게 되고, 그게 어느 정도의 압력에 도달하고, 관객들이 모은 하나 하나의 공기들이 큰 뱃고동 소리로 울려 퍼지는 작업이예요.

 

그걸 준비해갔는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자전거 펌프 뒤에 줄을 서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가 굉장히 추운 날씨였든요. 그 추운 날씨에 사람들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 바람을 모으는데 일정한 압력에 도달하고 뱃고동 소리가 퍼지니까 뒤돌아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저를 조금씩 변하게 만들었어요. 광대는 늘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외의 감정들도 이끌어 내서 공연에 표현을 하게 된 거죠. 기쁨도 있지만 슬픔까지도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관객들도 마찬가지고요. 관객이 있어야 제가 있는 거니까 그 관객들의 다양한 모습까지도 제가 감히 위로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어떤 광대가 되고 싶으세요?

 

광대라는 단어의 뜻은 한자로 쓰면 넓을 광(廣)에 큰 대(大)자입니다. 세상에 대한 많은 것들을 넓게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자꾸 보게 되는 것 같고 조금 성숙해졌다고 그래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날씨 좋은 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 바람을 이용을 해서 관객들이랑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고 굉장히 사소한 것들도 자꾸 고민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외국에 제가 좋아하는 유명한 광대들이 많은데 그런 광대들을 보면 자기의 인생이 보이는 작업들이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거창하거나 멋있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 우리의 인생, 평범한 사람의 인생처럼 보이는 작업을 해요. 뭔가 특별한 장치로 공연을 서포트 해서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인 거죠. 저도 아직 뭐 좋은 광대라고 할 수 없는 것 같고 조금씩 그런 광대가 되어가는 중인 것 같아요.


PART 3. 아티스트가 꿈꾸는 작업

 

 

Q. 지금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그 작품으로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굉장히 오랫동안 꿈을 꿔왔던 것 같아요. 공연을 시작하면서부터 꿨던 꿈인데 작은 서커스 텐트, 나만의 극장이 있으면 어떨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잠깐 인천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 학교 옆 공터에 동춘서커스단이 왔었어요. 피에로 분장하신 분도 계셨고, 어깨에 원숭이 한 마리를 올리고 공연을 하는 분도 계셨고요. 제가 그곳에 가서 동춘서커스단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의 경험이 나를 광대의 길로 부른 게 아닌지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그렇게 연결고리를 찾다 보니까 저도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저만의 텐트, 저만의 극장 안에서 공연을 해 보고 싶더라고요. 신나는 예술 여행 같은 프로그램이어도 괜찮고, 제가 혼자서 혹은 여러 친구들과 함께 어딘가 찾아가서 그 마을에 작은 축제를 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이 텐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그 안에서 펼쳐질 공연이 더 중요하긴 한데 제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게 섬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이름이 마린보이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텐트가 어떻게 보면 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 안에서는 섬에 관한 이야기, 제가 어렸을 때 바다를 보면서 꿈꿔왔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요.

 

Q. 신나는 예술여행을 활동을 ‘남도’라는 섬으로 가셨던데요. 비슷한 이유에서였나요?

 

남도가 제가 살았던 나로도랑 멀지 않아요. 배 경로가 없어서 그렇지 거리 상으로는 정말 가까운 섬이거든요. 저는 섬에 가면 늘 설레는 마음이 생겨요. 바다 냄새를 맡으면 그런 것 같아요. 한 번은 마을 어르신들밖에 없었을 때, 한 스무 명 정도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는 곳에서 공연을 했어요. 마치 손자 재롱 잔치를 보듯 공연을 보셨던 기억이 나요. 제가 미니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니까 어르신들이 굉장히 놀라셨어요. 섬에서 차를 보기도 힘든데 미니 자동차를 서울에서부터 타고 온 줄 아시더라고요.

 

어르신을 위한 공연을 하고 나서 한 초등학교에서 게릴라 공연을 하게 됐어요. 아이들을 위해 10분만 해달라고 부탁 하시더라고요. 배편 시간도 남았을 때라서 공연을 가기로 했죠. 아이들을 만났는데 아이들이 너무나 밝게 맞이해주는 거예요. 이제까지 신나는 예술 여행을 다녔지만 그렇게 아이들이 밝게 맞이해 준 적은 처음 이었던 것 같아요. 스무 명 정도 채 안 됐던 것 같은데 그 아이들이 저를 맞이해 주는 그 에너지가 저를 굉장히 설레게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저를 영웅 보듯 바라봤는데, 그 아이들에게 제 고향도 나로도라는 섬이라고 이야기를 해준 기억이 나요. 진짜 마린보이와 섬 소년 소녀들이 만났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Q. 마린보이가 하는 일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의 교육 현장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가지신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아요. 저는 학생들에게 조금 더 자유로움을 줬으면 좋겠어요. 한창 놀 나이에는 많이 놀았으면 좋겠고, 예술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작업,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고요. 일단 학생들이 지나치게 공부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공연 예술들을 접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축제들도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아이들을 위한 축제는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 축제도 좋을 것 같고, 거리 예술 축제에서도 아이들만을 위한 거리 예술 축제가 생겨났으면 좋겠고요. 공연으로 만나는 거는 간접적인 거잖아요. 그냥 재미있는 공연을 눈으로 보는 건데 공연에 예술 체험까지 더해진다면 그건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거잖아요. 실제로 마린보이가 썼던 공도 사용해볼 수 있고, 외줄 위를 걸어볼 수도 있고. 그런 다양한 경험이 더해진다면 아이들은 성취감도 얻고 도전정신도 생길 것 같아요. 세상을 살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뭔가 색다른 것들을 찾게 되죠. 그게 새로운 취미일 수도 있고 굉장한 도전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예술도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어할 때 그들이 찾을 수 있는 돌파구가 됐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가까운 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술.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PART 4. 공식질문

“우리 사회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

 

 

Q. 예술가로서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관객을 만나면 행복을 주는 사람. 행복 안에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겠지만 보다 많은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제 삶의 목표이기도 하면서 예술가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갖는 고민이에요. 관객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제가 행복한 세상에서 관객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어떠한 매개체가 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Q. 마린보이에게 광대란 어떤 의미일까요?

 

아내가 저한테 일 중독자라고 하더라고요. 공연을 시작하고 난 이후로 거의 쉰 적이 없었어요. 16년을 그렇게 지냈더라고요. 저도 저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싶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고 구상하고 다음 목표를 위해서 다가가야 하니까요. 관객을 만나기 위한 작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철저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마린보이는 제 전부인 것 같아요. 제가 가진 모든 것.

 

그런 생각도 한번 해봤어요. 내가 내일이라도 당장 공연을 그만하고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문득 팔을 다치면 어떻게 하나 생각해보다가 정말 팔을 다치면 한쪽 팔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공연을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다리를 다치면 어떻게 하나 생각해보다가 다리를 다쳐도 할 수 있는 공연을 생각하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제가 늘 관객과 공연을 하는 삶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걸요. 그래서 즐거우니까 쉬지 않고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다음 한 발을 나가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이 행복하고요. 그게 관객들을 웃게 했을 때 더 행복하고. 그래서 마린보이 활동이 관객들을 웃게 하려고 하지만, 관객들의 웃음에서 제가 다시 행복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