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문화·예술·교육·사회 전반에 대한 아티스트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 <젊은 예술, 생각을 디자인하다>. 작가의 태도, 가치관, 창의성, 소통, 감성이 반영되는 작업이나 작품활동 이야기, 작가 개인의 생각을 따라가 보며, 문화예술이 우리 삶과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와 강점을 알아보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와 함께 예술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이재선

한국화 작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한국화 작가 이재선. 공필 인물화라는 장르를 선택하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대중이 위안을 얻기도 잘못된 점을 인식하는 메시지 있는 작품을 통해 한국화로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이야기해준 이재선 작가와의 인터뷰 지금 시작합니다.


 

PART 1.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Q. 이재선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공필 인물화를 그리고 있는 한국화 작가 이재선이라고 합니다. 사실적인 그림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화를 하면서 ‘공필’이라는 장르에 끌렸던 것 같아요.

 

Q. 작가님의 학창시절이 궁금해요. 어떤 계기로 한국화 작가로 ‘공필인물화’ 장르를 선택하게 되었나요?

 

당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사실적인 그림이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학창시절 그 또래들이 생각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심 내지는 불합리성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손꼽아서 말할만한 계기가 있는건 아닌데. 저는 청소년, 청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저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으로서 기성세대와 관계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는다든지 하물며 아르바이트하고 제때 임금을 못 받는 경우가 있었고 아니면 당장 내가 할 일이 있는데 윗사람이 시키면 순응해야 한다는 관념적인 것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학창시절에는 되게 못마땅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뭐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서양화 같은 경우 하이퍼리얼리즘이라든지 사진이랑 그림이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똑같이 그리는 장르를 좋아했었어요. 근데 배우면 배울수록 그리면 그릴수록 사진처럼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진이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굳이 그릴 필요가 있을느냐라는 의문이 들었고, 사진과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좀 더 회화적인 부분으로 점점 이동해온 것 같아요.

 

제가 학부 생활할 때는 한국화를 배운다면 산수화 아나면 채색화 거의 이 두부류밖에 없었거든요. 군대 제대하고 저희 교수님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그 교수님이 공필이라는 장르를 처음 가르쳐주셨어요. 뭔가 많이 달랐거든요. 기존에 알고 있던 수묵 인물은 먹을 써서 인물을 표현하는데 분위기와 붓의 터치라든지 이런 것 위주였다면 공필화는 세밀하고 뭔가 달랐어요.

청춘, 외면

Q. 한국화와 공필이라는 장르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공필화는 그림이에요 카피가 아니라 오로지 창작이라는 점이 중요해요. 공필이라는 장르는 한국화로 보면 화풍 자체가 대부분 중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넘어왔는데. 넘어오면서 우리나라화 되고, 일본화 됐거든요. 큰 맥락과 기법적인 부분으로 공필을 쉽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어진이에요. 왕의 얼굴이나 사대부 집안 초상화 이런거. 아니면 궁중 채색화같은 병풍이 있는데, 제가 하는 공필이랑은 조금 달라요.

 

동양화와 서양화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서양은 빛에 따른 어둠하고 밝음이 있어서 그림자로 어둠과 밝음이 나뉘거든요. 근데 한국화, 공필의 경우는 그 사물의 본질적인 부분을 중요시해서 사물을 볼 때, 어떤 부분이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전·후 혹은 상,·하 이렇게 더 본질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거든요. 접근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 바라보는 관념이 다른 거죠.

 

공필을 예로 들면 옷에 주름이 있으면 위에 있는 부분 아래에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걸 기준으로 어둠을 주거든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 부분을 가장 어려워하는데. 서양화는 명암으로 입체감을 표현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 우선 ‘선’으로 입체감을 표현해야 하니까. 선이 겹쳤을 때 어떤선이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머릿속에 개념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 부분을 잡는거 자체가 어렵죠. 저도 어려웠고요. 어느 선이 위고, 아래고, 뒤고 옆이고 이해를 하는데 이해를 하는게 아니죠. 개념만 아는거죠. 그래서 사물을 그림으로 적용하는게 어려웠거든요. 연습밖에 답이 없어요. 계속 순서를 고민하고, 본질적인 부분을 생각하고 하다 보면 그런게 자연스럽게 보이더라고요.

조선의 봄

PART 2.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

 

 

Q. 학창시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어떤 연고도 없는데 공필이라는 장르를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군복무 마치고 학부 3학년 2학기 때 공필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고 고민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인물을 그리고 싶긴 했는데 공필이란 장르로 그려야 할지 아니면 수묵 인물을 선택할지 고민했거든요. 왜냐하면, 공필 인물화라는 장르는 알지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그려야 하는지 인지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런 고민 중에 4학년 졸업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에서도 공필 인물을 배울 수 있지만, 더 오리진한테 배우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중대 대학원이 인물화가 좋다고 생각해서 동대학원이랑 고민했는데 이럴바에는 그냥 중국으로 가보자해서 유학을 선택했고, 당시 공필을 알려주셨던 지도교수님이 중국의 하가영(何家英) 교수님한테 배우고 오셨었거든요. 저희 교수님도 추천해주셔서 오리진한테 배우는게 정통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유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처음에 중국어도 못 했어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갔거든요. 보통 졸업식이 2월에 하잖아요. 저는 목표를 정했으니까. 졸업식하고 한 2~3일 있다가 바로 출국했어요.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중국어를 하나도 못 했는데 제가 우리 학교에서 첫 번째 중국으로 간 유학생이었거든요. 저를 바라보는 후배라든지 아님 선배라든지 아니면 선생님들도 계시고 그러한 부담감도 없었다고 할 수 없죠. 처음에 언어를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Q. 졸업하자마자 중국으로 혼자 갈 때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없으셨나요?

 

이 질문 많이 받았거든요. 근데 망설임은 없었어요. 저는 얼른 가서 그분한테 배우고 싶었거든요. 망설임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출국할 때 어머니, 아버지 지금 아내도 공항에 배웅해주려고 왔었어요. 보통 그렇게 떠나면 슬퍼하고 아쉽고 그렇잖아요. 근데 제가 너무 웃으면서 들어갔다고 자식놈이 뭐 저러냐고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때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Q. 유학 생활 처음에는 학업이나 생활면에서 적응하느라 고생하셨을 것 같아요.

 

유학하면서 힘들었던게 있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중국으로 유학 간 첫 번째 학생이다 보니까, 정보가 너무 없었어요. 중국어도 모르고, 어떤 책을 봐야 하는지 기본적인 지식 자체가 아예 없다 보니까. 제 책장에 있는 중한사전이 진짜 오래된 거거든요. 교수님이 저 사전 한 개 가지고 가면 된다고 하셨거든요. 막상 가보니까 다른 학생들은 전자사전이랑 HSK라고 중국어능력시험 문제집도 다 가지고 왔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두꺼운 사전만 있으니까 공부할 때 효율적이지 못했죠.

 

그리고 중국, 한국이 학기가 달라요. 한국은 3월 개강인데 중국은 9월에 첫 학기를 개강하거든요. 그래서 가자마자 공부를 못하고 1년 반을 기다려야 했었어요. 대학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다 해놨는데 기다려야 되는 상황인거죠.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당시 한국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런걸 통해서 미술 호황기였거든요. 제가 중국에 막 들어갔을 때 아시아프 아트페어가 처음 생겼으니까요.

 

대학생, 대학원생 작품도 다 매진되고 부러웠어요. 나는 그림을 배우려고 여기 왔는데 학교를 들어가서 공부하기 위해 그림은 건들지도 못하고 언어공부만 하고, 소식을 듣다 보면 미술시장도 좋고 친구, 선·후배들도 직접 그림을 팔고 있는 상황 자체가 부럽고, 나는 여기 동떨어져 뭐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림을 배우고 있었으면 마음이 좀 괜찮았을텐데, 배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언어공부만 하고 있었으니까 답답했어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그 시기였던 것 같아요. 내가 목표를 갖고 중국에 왔는데, 정작 그림을 못 그리고 있었던 그 상황 자체가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도 한국에 있었으면 공모전도 하고 아트페어도 나가서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부분이 저에게 있어서는 부러움이 있었죠.

신명

Q. 중국에 온 지 1년 반 후, 첫 배움을 시작했을 때 기억하시나요?

 

그때는 자존감이 땅바닥에 떨어졌어요. 한국에서 학부를 다니면서 그래도 인물화의 가장 기초적인 소묘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고, 그런 생각으로 중국 유학을 갔거든요. 아무리 1년 반 동안 그림을 안 그렸다고 하지만 처음 중국 친구들과 수업을 하는데 그때 모델 수업이었어요. 교수님이 오시면 그림을 그리고 매일 평가를 하거든요. 다른 학생 그림까지 다 펼쳐 놓고 제 그림을 봤는데 너무 차이가 크게 나는 거에요. 한국에서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였는데 처음에 너무 자존감이 낮아지더라고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하고 어떻게 보면 경쟁관계잖아요. 근데 그런 마음도 생기지 않았어요. 너무 차이를 크게 느꼈으니까요.

 

처음에는 공필을 한게 아니라 한 학기 동안 소묘만 했거든요. 아주 기본적인 어떻게 보면 그림에 있어서 구상작업을 하는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소묘만 했는데 같이 그림을 펼쳐놨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 아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 중국 친구들 그림을 같이 펼쳐 놓았을 때 차이가 크다 보니까 초반에는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Q. 그 부분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교수님, 친구들한테 정말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교수님이 그림에 대해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주진 않으세요. 그러한 부분들은 다 친구들한테도 배우고.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는데. 조금 지나고 이 친구들이 잘하는 게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테고 당연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니까 친구들한테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아직 이 친구들보다는 못하지만 내가 교수님, 친구들한테 많이 배워서 나중에 졸업 할 때는 이 친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는 목표를 가졌거든요. 그러다보니 색칠하고 붓을 쓰고 이런 세세한 부분들은 중국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배우고, 그림은 그림다워야 한다는 큰 맥락과 좋은 그림은 교수님이 가르쳐주시고요.

 

Q. 작품 활동을 할 때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든 점도 있을텐데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선 그을 때 힘들거든요. 힘이 들어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고칠 수 없으니까요. 교정이 힘들어요. 먹을 이용해서 종이나 비단에 그림을 그리는데 선이 한번 잘 못 나가버리면 고치는 것 자체가 힘드니까 거기서 진을 다 빼요. 그 선 하나하나 그을 때 정신을 그 쪽에만 집중해야만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오래 걸려요. 선을 한 번에 오래 긋지 못하다 보니 팔에 힘이 많이 들고 어쨌든 정신을 다 그쪽에다가 쏟다 보니까 요즘은 체력적인 부분도 그렇고 선 그을 때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선 긋는 작업할 때는 핸드폰도 꺼놓거나 무음으로 해놓고 전화도 잘 못 받아요.

 

하는 이유요? 좋아요. 희열도 있어요. 확실히 공필이란 장르로 그림 작업을 하다 보면 잘 될 때가 있고 잘 안 될 때가 있거든요. 잘 안 될 때는 너무 힘들어요. 근데 잘 됐을 때 있잖아요. 그리고 전 작품과 지금 작품을 보면서 내가 늘고 있음이 보일 때, 희열감도 있고 성취감도 있고요. 아, 내가 잘못된 길로 가진 않은가 보다라는 안도감도 들고요.

 

제일 큰 거는 이게 제가 좋아하고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고, 어찌됐든 그 유학시절을 허송 세월 보낸 게 아니라 그래도 ‘열심히 제대로 시간을 알차게 보냈구나’라고 생각이 드는게 있어요. 제가 대충 어설프게 배워왔으면 대중들은 냉철하거든요. ‘이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아니다’ 라고 말하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대중과 소통을 통해 느껴지는 화답도 있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그런 여러 가지 부분이 공필이라는 장르를 고집하고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청춘

PART 3. 나만의 정체성을 찾다

 

 

Q. 작가님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의미 있는 작업이 있었다면 소개해 주세요.

 

딱 하나를 꼽기에는 그런 것 같아요. 다 애착이 있는 작품이어서요. 음…, 예전에는 전통적인 그림을 그렸어요. 중국에서 개인 졸업작품도 그렇고. 한국 들어와서 초반에 의뢰 들어온 작품도 그런 쪽이 많았었고. 전통적인 그림을 왜 그렸냐고 물어보신다면 그랬던 것 같아요. 중국 유학생때 사생 수업을 하거든요. 중국은 여러 소수 민족들이 같이 있는 나라잖아요. 그렇다보니 아직도 전통의상을 입고 돌아다니고 생활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 마을에 직접 가서 40일 정도를 거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그분들을 그렸어요.

 

그러면서 같이 간 중국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눴는데 중국인들은 자기 문화에 자긍심이 정말 높았어요. 중국화를 그리는 친구, 중국화 전공 친구여서 그런지 몰라도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 중국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 크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나는 그러한가?, 내 정체성은 어떠한가?”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더라고요. 우리 문화가 좋은지 안 좋은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친구들이랑 대화하면서, ‘한국인으로서 내 정체성은 뭐지?’ 돌아봤죠. 제가 느꼈을 때 한국사람 중국사람이 확실히 다르거든요. 살아온 공간 자체가 다르다 보니까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다르거든요. 그러한 부분을 찾아가는 정체성 확립의 과정에서 소재 부분에서 전통적인 그림을 그림으로써 우리나라의 문화라든지 그런 부분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확립해나간 것 같아요. 근데 마냥 전통적인 소재를 가지고 내 맘대로 그린다기보다는 문헌을 찾아보고 역사적 고증을 받는다든지 이러한 방식으로 조금씩 알아갔던 것 같아요.

 

중국의 영향을 받긴 받았죠. 받긴 받았는데 기법적인 부분정도에서 영향은 있었던 것 같아요. 공필이라는 장르 자체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보면 거의 맥이 끊겼던 상황이고 중국 일본에서는 계속 이어져 왔으니까요. 맥이 끊긴 상황에서 공필을 중국에서 배워왔으니까 아무래도 기법적인 부분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작품에서 나오는 느낌은 확실히 중국, 한국, 일본친구들 공필을 하고 있는 각 나라의 공필 작가들의 느낌이 다 다르거든요. 문화적 환경적 차이일 수도 있고, 성장한 배경자체도 다르고 사고하는 부분 자체도 다르다 보니까 각 나라마다 혹은 개인마다 그림으로 옮겨졌을 때는 다 맛이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김치찌개를 끓여도 끊이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것 처럼요.

회가

Q. 학생들도 가르치신다고 들었어요. 교육할 때 가장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두 가지 점을 고려해요. 제가 학교 다녔을 때만 해도 물론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아카데믹한 부분을 소홀히 한다고 해야 하나요. 그 부분이 가장 기초적인 부분인데 그 부분을 간과하는게 있더라고요. 기초가 튼튼해야 나중에 작가 생활을 함에서도 자기의 메시지라든지 생각을 좀 더 탄탄하게 그림으로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이 소홀하다 보니 작품활동 초반에는 소재가 참신하다든지 단적으로 그림이 화려하다든지 이러한 부분에서 괜찮더라도 오래가지는 못하더라고요.

 

대중은 처음엔 관심 보이다가도 계속 유지되면 더이상 원하지 않거든요. 그 작가가 좀 더 발전했으면 좋겠는데 기초가 탄탄했으면 계속 끌고 나갈 텐데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기초가 없다면 발전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들이 학부 생활에서 나무로 치면 튼튼한 뿌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림의 기초적인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요.

 

또 한 가지 부분은 저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학생 시절은 다양한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가능하지 않은게 현실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대신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해요. 인문학적 상상력이 있어야지 작품에도 그 부분이 녹아난다고 생각해요. 경험이 가장 중요하지만, 내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더라도 전 세대 혹은 후세대의 상황이 담긴 소설이 있으면, 그 좋은 소설을 읽었을 때 그 상황이 내뿜는 공기라든지 이런 부분이 감각으로 느껴지거든요. 그런 것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이 늘어나면 나중에 작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책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을 해주는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는 책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미디어가 솔직히 보기 편하잖아요. 근데 그런 것은 오래 남지 않잖아요.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은 함축되어있고, 책을 읽음으로써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갖게 된 인문학, 철학이 대단한게 아니라 저만이 저만 가질 수 있는 개똥철학으로 뒤섞여서 작가로 살아가는 제 튼튼한 뿌리가 만들어지는거죠.

산수연행렬도

PART 4. 공식질문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의 역할은?”

 

 

Q. 대중들이 한국화 혹은 공필을 어떻게 생각하고 즐겨주었면 좋겠는지, 그리고 한국화 작가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한국화라고 하면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이미지가 고리타분한 미술이라는게 있어요. 대부분 한국화라고 하면 수묵 그림을 떠올리셔서 그런 것 같은데요. 수묵은 물론이고 채색화 요즘은 민화도 있고 종류가 정말 다양하거든요. 한국화로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있다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예전처럼 흑백뿐만 아니라 색깔이 들어간 그림도 있고, 사실적인 그림도 있고, 여러 가지 그림이 있다고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작가로서는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메시지가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저는 조정래씨의 광팬인데 조정래씨가 작가는 이 사회의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나침반까지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사회를 환기해주는 아니면 희망을 주는 부분에서 메시지 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그럼으로써 대중들이 서로 소통하고 위안을 얻고 어떠한 부분에서는 잘못된 점을 인식할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