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을 이루는 지역들이 각각의 지역문화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N개의 서울>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 동네의 문제X이슈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시도, 동네를 바꾸는 움직임을 통해, 동네 곳곳에서 만드는 새로운 서울X문화를 기대합니다.
지역의 문화 사업은 어떻게 기획해야 할까? 이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은평구의 예술인들은 자체적인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역예술가 10명이 모여 총 5회의 워크숍을 열고, 진행된 내용을 바탕으로 2020년에 추진할 지역문화 사업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 프로젝트의 팀명은 참여한 사업명에서 착안해 이슈다 307 기획단이라 지었다.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은평구 지역 구성원의 문화 사업 제안을 받는 <이슈(issue) 잇-수다> 공모전이 열렸다. 은평의 지역문화(예술)이라는 주제 아래 공연, 워크숍, 공론장 등 자유 형식의 제안서를 받았다. 제안서의 검토는 일방적인 결정 방식이 아닌, 지원자가 모두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자체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어 본인들이 직접 심사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총 3회를 진행했고, 그중 마지막 회차에 참여했던 예술가 10인은 논의를 통해 파일럿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심사 전 각자의 제안서 내용을 바탕으로 워크숍을 진행한 뒤, 피드백을 주고받아보는 프로젝트였다. 지역 문화예술 사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함께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갖기 위해서였다. 이 기회를 통해 제각각 활동하던 지역 예술가가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을 배우고 서로 알아가자는 의미도 있었다. 그렇게 이슈다 307 기획단이 결성되었다. 여기서 숫자 307은 이들이 처음 모여 회의를 진행했던 공방 307호를 의미한다. 이들은 5회 워크숍이 끝난 뒤 자체 종합 평가를 진행했다. 지난 12월 12일에 진행했던 4・5회 워크숍과 종합 평가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들여다보자.
<움직임 워크숍>
12월 12일,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는 무용가 모지민의 <움직임 워크숍>이 열렸다. 발레 전공자인 모지민은 안무가이자 뮤지컬 배우, 드랙 아티스트로도 활약 중이다. 또한, 논-바이너리 젠더퀴어(이분법적 성별을 거부하는 성 정체성)로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예술가다. 그는 무용이 자신의 삶에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무용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 역시 무용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워크숍은 몸을 움직이고,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해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몸의 움직임으로 정신의 세계를 넓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책상 앞에서 움직이지 않을수록 사고도 점점 딱딱하게 굳어진다. 현대인들 대부분이 앓고 있는 병이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발레 기초 동작을 통해 평소에 쓰지 않았던 몸의 근육을 사용해보고, 새로운 사고를 깨워보는 작업을 진행했다.
– 무용가 모지민
<움직임 워크숍>은 기초 발레의 동작과 스텝을 배우는 1부, 모던 발레의 짧은 안무를 따라 추는 2부로 나누어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슈다 307 기획단은 연극, 미술, 글쓰기 등 자신의 장르와는 전혀 다른 무용을 체험했다. 모지민은 참여자의 동작을 잡아주며 유연하게 난이도를 조절했다. 참여자들이 어려워하는 동작은 보다 쉽게 수정하고, 난이도가 높은 동작은 반복하며 바른 자세를 취하도록 도왔다. 처음 해보는 동작을 어려워하는 참여자도 있었지만, 수업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은평의 숨은그림찾기>
같은 날 오후, 소설가 김주욱의 <은평의 숨은그림찾기>가 열렸다. 이 워크숍은 자신의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김주욱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2008년에는 소설가로 데뷔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다. 2017년에는 화가 양경렬의 작품과 이어지는 7개의 단편 소설을 실은 <핑크 몬스터>를 출간했다. 이번 워크숍은 그가 <핑크 몬스터>에서 도전한,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처럼, 강렬한 이미지가 있는 글을 쓰고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그리며 통합적인 예술을 체험하도록 구성되었다.
김주욱의 워크숍 주제는 ‘그림을 읽고 이야기를 그리다’였다. 참여자들은 그림을 매개로 이야기를 상상하고, 영감을 통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평소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지 않는 참여자도 있었지만, 한 번에 한 단계씩 천천히 표현 방법을 익혔다. 또한, 경험과 생각을 자신만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워크숍의 본 의도는 은평의 곳곳을 사진 찍거나 스케치하고, 현장에서 얻은 영감을 글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과 일정상 의도대로 워크숍을 진행하지 못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참여자는 글과 그림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한층 가까워질 수 있었다.
예술 장르의 통합과 확장으로 꿈꾸는 지역 문화
이렇게 총 5회차로 구성되었던 이슈다 307 기획단의 파일럿 프로젝트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워크숍이 끝난 뒤 기획단은 한자리에 모여 각자 진행했던 워크숍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평가회를 열었다. 프로그램의 발전 방향뿐 아니라 파일럿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에 대한 피드백도 이루어졌다. 평가회에서 나왔던 논의 사항들은 추후 회의를 거쳐 내년 진행할 지역문화 사업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확실히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사실 짧은 시간 안에 단기 프로그램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워크숍에 참여한 다른 예술가들이 이론과 실기를 적절히 잘 조합해 진행한 것이 참 좋았다. 짧은 체험으로 어떤 결과물을 가져가는 것도 나름대로 좋지만, 내년에는 시간을 오래 들여 충분히 고민한 자신의 이야기로 작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오길 바란다.
– 옥정호(미술)
다른 예술가의 워크숍에 참여하며 자극을 많이 받았다. 설명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는데, 워크숍을 진행한 두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쉬웠다. 동작도 그냥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싶고, 춤출 때의 호흡법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면 실제로 또 춤을 춰볼 시간이 부족한 문제가 있다.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서로 편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어 좋았다.
– 모지민(무용)
다른 지역 예술가를 더 깊이 알게 되어 좋았다. 5회 워크숍은 원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획했던 터라 아쉬운 점이 많다. 짧은 시간 안에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게 조금 무리였다.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글을 쓸까 한다. 현장에서는 간단한 메모 후 거기에 생각을 덧붙이고 다듬어 글을 완성하면 좋을 것 같다. 어떤 형식(소설, 에세이, 시 등)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헷갈렸다는 피드백이 있었는데, 사실 자유로운 부분이지만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차근차근 정리해서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주욱(글쓰기, 미술)
이슈다 307 기획단의 파일럿 프로젝트는 지역 예술가가 자체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 다른 예술 분야를 배우고 성장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지역 문화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고집하는 대신 서로 마음을 열고 참여해 피드백을 주고받고, 함께 지역문화 사업의 미래를 그려보았다는 점도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다.
참여 예술가들은 평가회를 마무리하며, 올해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은평구만의 지역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특별히 주민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 지역 예술가들이 단순히 사업에 소모되기보다는 주체적이고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참여해 그 속에서 성장하길 바란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처럼 지역문화 사업과 지역 예술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상상하는 올해의 작업이 있었기에, 내년 은평구의 사업은 더욱 빛날 것이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