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코로나19라는 신종 질병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 1년이 넘었다.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으며,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처럼 피해 규모가 매우 큰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염병들은 의학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위생 개념의 보편화, 그리고 기반 시설 확충 등으로 인해 비교적 빠르게 수습되었다.
이에 반해 코로나19는 고도화된 기술과 위생 보편화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1세기에 들어 발생했던 사스(SARS)나 메르스(MERS)같이 짧은 시간 안에 소멸할 것으로 생각했던 우리들의 예상과 달리 이 질병은 일상생활과 일상 공간의 모습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렸다. 마스크 없이 외출할 수 없게 되었고, 공공시설들은 문을 닫거나 내부 시설물들의 거리를 넓혀야만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일상에서 당연하게 해 오던 활동들을 중단하게 되었다. 타 전염병에 비해 사망률은 낮으나 빠른 전염 속도와 치명적인 증상들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에는 제약이 생겼다. 또한 업무 이외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인식되던 주택이 점차 업무와 학습 영역이 결합된 복합공간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이렇듯 코로나19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도시의 형태와 기능을 바꿔 나가고 있다. 물론 백신이 보급되며 팬데믹의 강도가 점차 약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속해서 나타나는 변이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사회의 문물을 무력화시킨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도시는 이전과 같이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며, 이러한 요소들을 반영한 형태로 재탄생될 것이다. 도시의 패러다임은, 그렇게 달라지고 있다.
There is an urgent need to rethink and transform cities to respond to the reality of covid 19 and potential future pandemics, and to recover better, by building more resilient, inclusive and sustainable cities.
코로나19의 현실과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잠재적인 팬데믹에 대처하며 더욱더 빠른 회복을 이루기 위해 도시를 재고하고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더 탄력적이고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세워야 한다.
– 안토니오 구테흐스 (Antonio Guterres) 현 유엔사무총장 –
통합된 도시
코로나 발생 전까지 도시는 몇 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팽창하며 확장을 거듭하였다. 기본적인 인프라만 갖추고 있던 소도시들은 유입 인구 증가와 다원화된 수요 및 소비의 증가로 인해 이를 충족시킬 만한 시설들을 확충하면서 그 규모를 대도시로 키웠다. 이렇게 생겨난 거대 도시인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는 더욱 커진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로 진화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팬데믹은 이러한 거대 도시의 맹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고 말았다. 도시가 확장되며 상업 및 문화, 경제의 중심지인 중심업무지구(CBD)는 외곽에 주로 사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졌고, 이에 따라 증가한 이동량은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시적 진보가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면서 전문가들은 이동량을 최소화하면서도 필요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 환경 설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15분 도시이다.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의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가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도시의 다양한 사회적 기능(생활, 일, 공급, 돌봄, 배움, 즐김)과 핵심 구성 요소들(생태, 근접성, 연대, 참여)이 15분 이내에 충족될 수 있도록 도시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파리는 보행자와 자전거 도로를 늘리고, 그동안 한 곳에 집중되어 있던 각종 편의/업무 시설들을 주거지에서 15분 이내에 위치한 곳에 분산시키는 계획을 실행 중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담론이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다른 국가들에서도 벤치마킹하는 등 파리의 15분 도시 계획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연해진 고정성
코로나는 우리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도시의 요소들이 유연하게 변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시켜 주었다.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찾아가야 했던 직장이나 학교는 상당수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직장의 경우, 분산 오피스 공간들이 생겨나면서 대면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공간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한 장소의 기능이 시간에 따라 전환되거나, 없었던 시설이 새로 생기는 등 팝업 공간들도 지속해서 개발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대규모 수용 시설들이 임시 병동으로도 활용되었으며, 비교적 감염 위험이 적은 야외에서는 팝업 재래시장, 또는 놀이 시설과 같은 공간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유연성은 물리적 공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교통의 이용 양상 역시 전염병을 통해 변화하는 중이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했던 예전과 달리 자전거나 스쿠터와 같이 Door to door 이동이 가능한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의 이용 빈도가 늘고 있다. 정거장들로 연결된 대중교통과 달리 퍼스널 모빌리티는 정거장 이외의 반경까지 도달할 수 있어,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이동 루트를 조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코로나 이전부터 존재했던 교통수단 공유 서비스는 코로나 발생으로 인해 더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퍼스널 모빌리티 공유 사업 시장이 확대되었으며 아마존이나 우버 같은 다국적 기업들도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했다.
공유된 공간 속 개인의 영역
공원이나 유원지 같은 공적 공간은 많은 이들에게 자유로운 휴식처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설계된 만큼 이동 제약을 최소화하고, 이동 동선도 비교적 자유로운 구조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며 이러한 장소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용되었다. 그런데 2m 이상 타인과 접근금지와 같은 법적 제도 도입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지정 구역을 정하도록 유도하는 건축 디자인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도미노 파크는 잔디밭에 수많은 원을 그려 넣어 사람들이 이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세계 최초 공원 안 사회적 거리두기 조경을 도입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도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는 추세다.
물리적 차원에서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식은 휴식 공간에 적용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도로와 같은 이동 공간, 콘서트와 같은 공연 예술 공간, 그리고 재래시장과 같은 야외 공간에도 적용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장치들은 기존처럼 이질적인 형태가 아닌 일상생활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거나 피해가 가지 않는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 변화와 함께 이 변화는 택티컬 얼바니즘(Tactical urabanism)의 사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앞의 전술적인(Tactical)이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패러다임은 단시간에 고안된 일시적 해결책을 도시환경의 변화 양상에 맞추어 적용하려는 시도다. 팬데믹의 확산세가 줄어들면 솔루션을 축소해 나갈 수도 있고, 감염자들이 급증하면 그것에 맞게 솔루션을 변형하거나 규모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하면서도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코로나 시대, So What can we do?
서울도시건축관은 이러한 도시 변화에 대한 담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2020년 8월 17일부터 협력적 연구와 제안을 위한 오픈 콜을 시작한 바 있다. 코로나에 대처하기 위한 단기적인 해결책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협력을 진행한다는 측면에서 <WTA: What is to be Asked>라는 타이틀로 개최되었다. 그동안 이 오픈 플랫폼에서는 전문가들과 연구자, 시민들이 모여 팬데믹으로 인해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고 그 기록들을 아카이빙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WTA는 두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첫 단계는 주제 제안으로, 전 세계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개설해 WTA라는 주제에 맞는 짧은 의견부터 긴 제안서 등을 작성하고, 참여자 간 네트워킹과 정보 교류를 도모하였다. 두 번째 단계는 연구와 제안으로, 제안서를 제출한 팀 중 다섯 팀을 선정하여 더욱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두 번째 단계와는 별도로 첫 번째 단계는 WTA 세션이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2021년 3월 16일부터 열린 <팬데믹 1년, 시민과 함께 생각하는 도시의 미래 What is to be Asked> 전시는 팬데믹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기록들, 여러 주체의 경험과 기억들, 그리고 WTA 플랫폼을 통해 제안된 주제와 연구들을 집대성하였다. 이 전시는 관람객들이 그저 결과물들을 눈으로만 보도록 거리를 두지 않고, 관람객 역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행위자로서 아카이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해시태그 속 함축성
전시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전시를 소개하는 판넬이었다. 판넬 위에는 수많은 해시태그가 붙어 있었다. 대부분은 WTA라는 대주제 속에서 자신들이 묻고 싶은 질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모습, 그리고 코로나 종식 염원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하에 있는 전시관을 내려간 뒤 뒤돌아 계단을 올려다본 순간, 팬데믹과 관련된 짧은 해시태그들로 채워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시태그는 본래 SNS에서 쓰는 메타데이터 태그로 특정 주제에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이용된다. 이번 전시의 경우, 코로나에 대한 추상적이고 파편화된 정보를 구체화하고 집적하려는 의도가 있는 만큼, 이 해시태그들 역시 사람들이 팬데믹에 대해 가진 각기 다른 관념들을 드러낸다.
물론 이 모두는 장기적이고 과학적인 절차를 밟은 연구로부터 도출된 결론들이 아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생각에도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으며, 때로 획기적이거나 혁신적인 연구가 진행되는 데 큰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또한 사회적 파급 효과가 중요한 이 시대에서 하나의 짧은 문구는 구체적인 긴 글보다 때로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전시는 해시태그가 앞으로도 전지구적 위기에 관한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데 더욱 요긴하게 사용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변화되는 인간의 경험
리서치 디자인 랩 디플루언스(D.FLUENCE)의 전시물은 우리가 그간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경험적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원형의 바닥에는 일상적인 행동들이 코로나 시대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반영한 감정 키워드들이 적혀 있다. 이 감정 키워드들은 원의 외부로 향할수록 인간관계 내 상호작용과 공간에 대한 인식으로 구체화되고, 인터뷰를 통해 12개의 핵심 가치들로 요약된다.
디플루언스는 이러한 기록들을 집합하여 총 4가지의 경험적 가치 클러스터에 조응하는 디자인 비전(배달 체계, 가상 감지팟, 디지털 스토리텔링, 디지털 공공기반)을 설명하고 있다. 이 비전들은 과학적인 공상보다는 현재 개발되고 있는 VR, AR, 자율주행 자동차, 블록체인 등을 포스트 팬데믹의 상황과 결부시킨 연결고리에서 기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2016년도부터 급부상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대두되며 서서히 진보하고 있던 기술들이었다. 하지만 제한된 현장감과 즉각적인 판단력 결여와 같은 문제들로 인해 우리의 일상에 완전히 스며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해당 기술들은 우리 사회에 더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를 단순히 불가피함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만 단정지을 수 없다. 팬데믹 시대의 도래는 물리적인 대면 접촉으로만 가능했던 일들의 불가능함에서 기인하는 불편함부터, 정보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부터 오는 좌절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낳았다. 이러한 감정들이 축적되면서 기술의 진보 방향성을 변화시킨 것이다. 디플루언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 발전에서 인간적인 요소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이를 고려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공원과 사회, 그리고 팬데믹
대학교 연구 협력 플랫폼 공원문답의 전시물은 공원의 목적과 이용 양상 등을 성찰한다. 또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가져올 공원의 역할에 대한 확장 가능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한다. 이들은 동네 공원의 대기능과 세부기능들을 분석하며, 각 동네 공원 사회가 공원 녹지와 하천, 도시가로 네트워크로 구성된 산책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동네 공원과 일상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필요한 기반시설을 일컫는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연결성을 파악하며, 두 요소의 연결고리가 감염병 취약 계층의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대안 생태계를 마련할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공원문답은 시민들에게도 자신이 상상하는 공원의 미래를 표현할 수 있도록 참여를 유도하고 있으며, 이 모든 기록은 한곳에 모여 전시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공원의 모습은 인공적으로 구성된, 녹지와 수목으로 채워진 자연환경이다. 그러나 공원문답은 이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공원은 지역사회의 SOC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공원의 구조와 역할에 따라 전염병 대비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즉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공원의 방재 기능 활성화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지진과 같은 잦은 자연재해로 인해 조성된 방재공원들이 재난 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공원의 방재 기능이 여전히 홍수를 막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다.
코로나는 자연재해와 달리 피해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고, 특히 계층 간 피해 차이가 극심해질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전제하에 SOC와의 연결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공원문답은 연구 결과를 통해 포스트 시대 공원의 사회적 변화가 미래 사회의 위기관리에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을 강조한다.
유연해지는 지역 사회 네트워크
도시 내 자원과 아이디어의 이동, 즉 도시의 신진대사에 대해 연구하는 팀인 어반 플로우(urban flow)는 팬데믹이 초래한 폐기물 증가로 인한 환경 악화 문제와 지역 차원에서의 지속가능하고 유연한 네트워크를 통해 균형 잡힌 도시 시스템을 구축할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들은 해방촌의 커뮤니티 네트워크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진행하였고, 이를 발판 삼아 가상의 커뮤니티를 설정하고 서사를 부여했다. 이들이 개발한 프로젝트 플라키(plaki)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게임 형식의 전시물로, 지역에서 발생한 폐기물들을 재활용함으로써 경제, 사회적으로 더욱 가치 있는 자원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코로나로 인해 배달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며 플라스틱 용기 폐기물이 급증했다. 마찬가지로 버려지는 일회용 마스크의 수도 증가하였다. 이에 대응해 폐기물들을 업사이클링하여 더 가치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친환경적 움직임도 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어반 플로우는 개인의 행동을 넘어 대안적인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체계 조직의 필요성을 제언한다.
우리의 몸은 조직들의 순환 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이 순환 체계가 붕괴되면 생명력이 약해진다. 도시를 지탱하는 환경이 폐기물에 의해 파괴되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도시 역시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이처럼 플라키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신진대사라는 아이디어에 담긴 메시지를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전달한다.
감염을 방지하는 공간의 탄력성(resilience)
건축학과 대학생 연구팀인 엠엔케이(M&K)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의 방역시스템과 구조를 분석하여, 더 효과적인 방역과 함께 감염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간 구조 변형 대안들을 제시하였다. 이 대안들은 감염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불가피하게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취약계층의 상황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이들은 먼저 온라인으로 필수공중보건기능과 재난불평등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으며, 도출된 결과들을 토대로 19가지 바이러스 위기 대응 도시를 위한 공간 모형을 디자인하였다. 이 19가지의 개별 모형들은 각각 출입구, 바닥, 입면, 수직 동선, 그리고 방역 시스템이라는 5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되었다.
코로나 이전부터 존재해 온 건축적 불평등 구조는 코로나 이후 더욱 견고해졌다. 자본력을 갖춘 집단들은 재화 혹은 서비스의 소유를 통해 대면 접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집단들은 마스크를 쓴 채 감염 가능성을 무릅쓰고 공유된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실제 하위 계층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러한 이유로 인해 또 다른 취약계층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공공장소들은 근본적인 환경을 개선하기보다 체온 측정기, 방명록, QR 코드 같은 방법을 통해 감염 의심자 판별 정도의 대책을 세우는 데 그치고 있다. 엠엔케이가 제시한 방안은 출입구를 늘리거나 가설구조물을 설치하여 공간을 넓히는 등, 현재 시행되는 출입구 혹은 공동구역 봉쇄와는 정반대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모듈 변경이 가능하다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고, 일부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방역을 시행한다는 점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 팬데믹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엠엔케이의 대안은 방역 체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간이라는 관념에 대해
리서치 디자인 회사인 프라우드(PRAUD)는 만남과 교류, 대화의 상호 연결성을 위한 공간이자 문화적 혼합성을 위한 중간 공간인 제3의 공간이 코로나라는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키오스크, 정보센터, 푸드 트럭과 같이 집과 직장 사이에 위치한 이동하는 공간인 제3의 공간은 감염의 위험성이 증가하면서 자동화와 무인화의 양상을 갖추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이들은 하나의 움직이는 방, 제4의 공간이 된다.
보쉬 (BOSH)와 아이데오 (IDEO)와 같은 기업들은 이미 업무 공간에 이동성을 부여하여 업무 프로세스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프라우드 역시 전시된 자동차 좌석에 앉아 위로 올라가면 보이는 수많은 거울을 통해 제4의 공간을 가시화하였으며,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하고 성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프라우드의 관점은 코로나 대응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공간 자체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흔히 이동성이 있는 매개체에 결합되는 개념인 자율주행은 고정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공간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레스토랑, 업무 공간, 심지어 도시 전체가 특정한 위칫값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선박처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예: 바퀴)와 함께 상황에 따라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는 것이다.
이들이 제시한 반 공간(half space) 역시 공간을 절반으로 나누어 상부는 대면 목적에 맞게 형태를 변환할 수 있고, 아래는 이동 가능한 교통수단의 형태로, 코로나 상황이지만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대면의 상황들에 대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러한 점에서 프라우드의 연구물은 문화적 연결고리를 생성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전 지구적 위기를 맞은 제3의 공간에 팬데믹이 탄생시킨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어, 그 가치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 1년을 서술한 모든 기록
전시관은 선정된 다섯 팀의 연구 결과물 이외에도 코로나에 대한 수많은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 벽면에는 2020년 코로나 첫 환자가 발생한 시점부터 전시가 시작된 2021년 3월까지 팬데믹과 관련된 모든 일을 정리한 연표가 걸려 있다.
연표 아래에는 그동안 WTA 플랫폼에서 다양한 참여자들이 온라인 회의 플랫폼인 줌(zoom)을 통해 진행한 토의를 담은 동영상이 태블릿 PC를 통해 상영되고 있다. 왼편에는 팬데믹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삶과 관련된 연구보고서, 정책 제안서, 서적, 논문과 같은 데이터들이 전시되어 있다. 통로 사이에는 WTA 플랫폼을 통해 제기된 수많은 질문을 담은 포스터들이 전시관 천장 위에서부터 길게 내려와 있다. 이 방대하고도 다채로운 아카이브는 우리가 어떻게 미래에 대비할 수 있을지에 관한 지침서가 되어 주는 필수적인 존재들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흔히 이전 시대에 존재했던 역사적인 위인들이나 전쟁과 같이 대규모의 희생을 초래한 큰 사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재의 사건도 미래에는 모두 역사가 될 것이다. 특히 이번 팬데믹은 21세기 위생 개념의 발달과 과학 기술의 진보가 이전 세기와 비교도 안 되게 이루어진 시점에서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유발했다는 점, 그리고 전 세계에 걸쳐 생활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는 점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1910년도에 일어난 스페인 독감의 악몽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적 기록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현재의 기록들이 일반인이 제기한 하나의 질문이든, 혹은 수백 장이 넘는 전문가의 서적이든 상관없이 코로나라는 복잡한 수수께끼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단 점에서 잠재적인 가치가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부터 독감으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몸이 회복되면 곧바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찬 기대는 2021년 8월이 된 이 시점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도시건축관의 전시를 바라보며 그동안 달라진 환경으로 인해 어려워했던 복잡한 상념들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코로나가 종식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기보다 반복될 수 있는 사태에 대비하여 현 상황을 다각적으로 분석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 위기를 직시하고, 함께 극복할 수 있는 탄력적인 도시를 만들어 갈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