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M+뮤지엄은 2021년 11월 개관한 아시아 최초의 현대 시각문화 미술관이다. 미술관 이상의 미술관(Museum and more)이란 목표 아래 건축, 디자인, 영상, 시각 예술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컬렉션과 전시를 선보인다.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 지역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이처럼 M+의 모든 행보는 다양성, 상호작용, 관계 맺음을 목표로 설립 과정부터 건축, 그리고 운영까지 섬세하게 설계되었다. 그렇기에 국가, 인종, 문화, 장르, 시대를 뛰어넘는 가장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멜팅팟을 선보인다.
지금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M+뮤지엄이지만 개관을 준비하는 10년 동안 여러 난항을 겪었다. 애초에 M+가 세워진 홍콩 서구룡 지구는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먼 간척지였고, 그곳을 찾는 관광객도 대부분 쇼핑과 음식에만 관심이 있었다. 당연히 미술관에 대한 기대치는 낮았고, 거기에 홍콩의 국가보안법 이슈와 코로나 팬데믹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당초 계획보다 정식 개관이 늦어졌다. 하지만 M+뮤지엄의 등장은 단숨에 홍콩 서구룡 지구를 문화예술과 아트 페어의 중심지로 바꿔놓았다. 그 이유는 M+가 보유한 상당 수준의 컬렉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전시와 프로그램, 쇼핑과 다이닝 등 다채로운 즐길 거리 덕분이었다. 창의적이다 못해 급진적이기까지 한 운영 방식 뒤에는 M+를 하나의 예술 공동체로 묶어 낸 사람들이 있다.
M+뮤지엄의 수준 높은 건축, 전시, 프로그램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면밀히 살펴보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예술 공동체로 발돋움한 M+뮤지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바로 미술관의 가치를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M+의 시작이 된 사람들부터 M+의 운영을 맡은 사람들, 그리고 M+와 협력하는 사람들까지, M+뮤지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일을 살펴보자.
M+의 시작이 된 사람들
M+의 명성이 된 수준 높은 컬렉션의 시작점에는 스위스의 컬렉터 울리 시그(Uli Sigg)가 있다. 그가 기증한 총 1,510개의 중국 현대 미술 작품 컬렉션은 M+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9년 중국으로 파견된 시그는 중국 작가들과 교류하며 격동의 역사를 간직한 예술 작품을 수집했다. 1972년부터 2012년까지 40년을 아우르는 회화, 판화, 조각, 사진, 디지털 아트가 컬렉션에 포함됐다. 시그는 중국 현대 미술의 발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한 그 컬렉션을 홍콩 정부에 기증했다. 그렇게 탄생한 M+ 시그 컬렉션은 중국 예술의 역사를 다채로운 시선으로 포괄하는 M+뮤지엄의 정체성과 결을 같이 한다.
수하냐 라펠(Suhanya Raffel) 관장은 M+의 기준점을 만든 사람이다. 라펠은 1994년부터 2013년까지 호주 브리즈번 현대미술 갤러리에서 아시아-태평양 현대 미술 컬렉션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어 큐레이터이자 컬렉션 디렉터로 퀸즈랜드 아트 갤러리에서 활동했으며, 2013년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아트 갤러리에서 컬렉션 디렉터이자 부관장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2016년 마침내 M+뮤지엄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녀가 관장이 되며 내세웠던 M+의 운영 방침은 지역과의 연결을 놓치지 않으면서 국제적으로 더 광범위한 다양성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 가치관에 따라 M+는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아카이빙, 그리고 주민과의 소통을 이어가며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연결하는 거대한 소통의 허브가 되었다.
라펠이 M+의 기준점을 세웠다면, 부관장이자 수석 큐레이터 정도련(Doryun Chong)은 M+만의 독특한 색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 정도련은 1999년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2003년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 센터, 2009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기획한 파격적이고 신선한 전시로 명성을 쌓았다. 그 후 2013년에는 초대 수석 큐레이터로 임명되어 M+ 뮤지엄의 준비 과정에 합류했다. 현재 M+의 전시 및 프로그램 총괄을 맡은 그는 국가, 문화,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하고 참신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그 단단한 설계는 M+ 뮤지엄을 중심으로 수많은 다양성을 가진 주체들이 모여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창조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외에도 M+에는 또 다른 두 명의 부관장이 있다. 한 사람은 M+의 컬렉션 아카이빙과 관리를 담당하는 베로니카 카스티요(Veronica Castillo)다. M+의 컬렉션은 디자인, 건축, 영상, 비주얼 아트 등 다양한 예술이 역사와 문화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서사, 그리고 예술가의 작업 과정을 모두 포괄하는 기록을 중시한다. 그렇기에 카스티요는 컬렉션의 색을 유지하며 M+가 유의미한 아카이브가 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관리를 맡는다. 부관장 데이비드 추이(David Tsui)는 M+의 상점과 식당, 각종 시설에서 통합적인 경험이 가능하도록 전반적인 운영과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두 부관장은 M+ 뮤지엄이 내부적으로는 가치관에 맞는 아카이브를 충실히 쌓아가며, 외적으로는 그 가치관이 서비스와 맞물려 관람객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만든다.
M+를 만드는 사람들
앞서 언급한 주요 운영진의 비전이 M+ 뮤지엄의 토대를 만들었다면, M+를 실제로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 가치관을 실현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M+뮤지엄에는 총 세 가지 부서가 있다. 큐레토리얼(curatorial), 수집&전시(collection & exhibition), 미술관 운영(museum operations)이 바로 그것이다. 다양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우는 M+뮤지엄에는 서른 개가 넘는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한다. 이들은 각자의 문화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늘 상상을 뛰어넘는 신선한 기획을 만들어낸다.
큐레토리얼 팀에서는 정도련 부관장을 중심으로 디자인, 건축, 시각 예술, 무빙 이미지 등 전문 분야로 나뉜 큐레이터와 연구팀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이 가장 주목하는 최근의 이슈와 작품은 M+뮤지엄에서 자체적으로 발간하는 M+매거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신 기술과 예술적 경험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상호 작용과 연결, 예술‧건축‧디자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생태와 지속가능성, 예술을 통한 아시아 역사의 재조명 등 카테고리는 무척 다양하다. 가장 큰 특징은 현시점에서 가장 뜨거운 논의를 이어갈 뿐만 아니라,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역사, 문화, 매체, 예술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는 사실이다.
2024년 예정된 전시를 살펴보면 특히 사진, 건축, 패션에 무게를 둔 전시가 눈에 띈다. 프랑스국립도서관과 함께하는 흑백 사진전, 마지막 모더니즘 건축가 이오 밍 페이(I. M. Pei) 회고전, 중국 최초 쿠튀르 아티스트 궈 페이(Guo Pei)의 컬렉션 등 쟁쟁한 라인업이 준비되어 있다. 이외에도 홍콩, 베트남, 태국 등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매체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디자인부터 재료까지 모두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새롭게 조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M+ 큐레토리얼 팀은 다루는 카테고리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M+뮤지엄의 미래를 그려 나간다.
베로니카 카스티요 부관장을 중심으로 한 수집&전시 팀은 컬렉션 아카이빙, 소장품과 전시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의 보존과 아카이빙, 일정 조정과 전시 디스플레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는 만큼 작품 복원 전문가, 전시 관리 매니저 등 관리자와 기술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관리하는 고정 컬렉션은 총 네 가지다. M+ 컬렉션(M+ Collection)은 디자인, 건축, 영상, 비주얼 아트를 포함한 아시아의 다양한 작품을 모아둔 컬렉션이다. M+ 시그 컬렉션(M+ Sigg Collection)에는 중국 현대 미술의 역사를 아우르는 울리 시그가 기증한 작품이 모여있다. M+ 라이브러리 스페셜 컬렉션(M+ Library Special Collection)은 20세기와 21세기의 희귀한 책, 만화, 그래픽 디자인 등을 아카이빙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전시다. M+컬렉션 아카이브(M+ Collection Archives)는 예술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창작의 과정에서 나온 스케치와 드로잉 등 광범위한 과정 자체를 기록한 자료를 모아두었다. 각각의 컬렉션은 M+뮤지엄이 쌓아온 궤적 그 자체를 보여준다.
미술관 운영팀 역시 주요한 역할을 한다. M+뮤지엄이 가치관과 목표에 따라 실제로 굴러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관람객과 만나는 최전선에서 경험을 설계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추이 부관장을 중심으로 회계사, 건축가, 비즈니스 매니저, 엔지니어, 프로젝트 매니저 등 다양한 직군이 여기에 포함된다. 운영팀은 M+뮤지엄의 대외적인 브랜딩을 담당하며, 홍보 마케팅과 전반적인 숍, 식당 운영 또한 맡고 있다.
M+뮤지엄에는 홍콩의 자랑인 스카이라인을 담은 루프 가든을 포함해 각종 편의 시설, 전시와 연결된 출판물 및 상품을 판매하는 숍, 카페와 각종 레스토랑 등이 다수 입점해 있다. M+뮤지엄이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쇼핑과 다이닝이 모두 가능한 복합 문화예술 체험 덕분이다. 운영팀은 통합적인 예술 경험과 주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M+의 가치관을 방문객들이 직접 흡수할 수 있도록 촘촘한 경험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M+와 함께하는 사람들
M+뮤지엄 운영에는 직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함께한다. 이들은 M+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예술의 영역을 압도적으로 확장한다. 최전선에서 M+뮤지엄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친밀한 가이드들, 컬렉션과 향후 전시에 관한 리서치와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자원봉사자들,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에듀케이터 등 규모도 분야도 다양하다. M+와 협력하는 수많은 국적의 예술가들과 업계 종사자들까지 따지면 그 수는 어마어마하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M+ 영콜렉티브의 활동이다. M+영콜렉티브는 청년들이 직접 대중 워크숍을 만들어보도록 지원하는 M+의 사업이다. 새로운 세대의 관심사와 적극적인 지역 교류 활동을 지지하며, 그들의 시선으로 현시대 예술과 대중과의 연결점을 짚어보는 M+뮤지엄의 새로운 시도다. 영콜렉티브는 그들의 시선으로 미술관을 더욱더 깊고 재미있게 탐험할 수 있는 대중 프로그램뿐 아니라 게임 등 미술관에서는 보기 힘든 소재를 이용해 즐거운 축제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영콜렉티브의 창의적인 활동은 M+뮤지엄의 프로그램을 한 단계 더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M+의 새로운 행보에는 샤넬과의 협업이 있다. M+뮤지엄은 2023년 7월부터 3년간 샤넬과의 파트너십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협약에 따라 실케 슈미클(Silke Schmickl) 샤넬 무빙 이미지 리드 큐레이터는 M+뮤지엄의 무빙 이미지 컬렉션, M+시네마 프로그램, 영상 복원 사업 등 영상과 관련한 전반적인 큐레이션에 참여한다. M+뮤지엄과 샤넬의 콜라보는 결코 뜬금없는 만남이 아니다. 샤넬은 2021년부터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CHANEL Next Prize) 제로를 통해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인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같은 샤넬의 행보는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M+뮤지엄의 목표와 같은 연장선에 있다. 이처럼 M+뮤지엄은 자신들과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파트너들을 계속 새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M+뮤지엄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식은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거대한 역동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 매체를 넘어 그 역동적인 교차점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M+뮤지엄의 가치관과 방향성 그 자체다. 아무리 훌륭한 가치와 목표를 가진 미술관이라고 해도, 그것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경험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가치를 경험으로 잇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미술관의 가치는 전달되고, 실현되고, 발전하며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