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플롯 중 하나는 언더독(underdog) 스토리다. 골리앗에 맞서 승리를 거둔 다윗처럼 파워 게임에서 약자가 강자를 꺾는 이야기는 하나의 환상이자 승부의 세계에서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처럼 모두가 패배를 점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믿고 승리한 이들의 이야기는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영원한 강자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불굴의 의지를 보인 이에게 우리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지 않는가. 그렇기에 언더독의 주인공을 다룬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최근 국내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영화 <슬램덩크>가 그랬듯 말이다.

 

브랜드와 마케팅의 세계에도 언더독이 있다. 이 언더독들은 다국적 브랜드와 대자본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며 로열 소비자층을 확보했다. 규모는 작지만 존재감은 확실한 이들을 우리는 스몰 브랜드(Small Brands)라고 부른다. 스몰 브랜드는 빅 브랜드(Big Brand)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국내 유명 광고기획자 이근상이 쓴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의 정의에 따르면, 빅 브랜드는 빠르게, 가능한 크게, 최대한 넓게 성장해 온 브랜드나 기업을 통칭하는 반면 스몰 브랜드는 느리게, 적게, 좁게 성장하는 자영업·소기업 브랜드로 과도한 확장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추구한다.

 

스몰 브랜드는 왜 확장보다 집중하는 쪽을 택했을까? 그 배경에는 새로운 소비자층으로 떠오른 MZ세대가 있다. 그들은 평균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타인과 차별화하는 소비 지향성, 지속가능성과 기후위기 등을 고민하는 가치소비자 경향을 띠고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소비하는 브랜드가 아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하며 브랜드가 지향하는 철학과 진정성에 반응한다. 그렇기에 대중적 인지도와 업계 점유율이 높은 빅 브랜드여도 향후 MZ세대의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를 사로잡지 못하면 언제든지 근미래 주요 소비자층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2021년, 윤리경영 실패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유통가 CEO들이 잇달아 물러난 사례가 있다. 자숙을 핑계로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다 복귀하던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 이례적이다. 새로운 소비 권력으로 부상한 MZ세대가 기업에 윤리와 투명성을 요구하면서 윤리경영은 선택이 아닌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는 필수 조건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너 일가의 마약 스캔들과 대리점 갑질 논란으로 촉발된 N유업의 불매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동종업계의 타사가 같은 시기에 흑자를 낸 것과 달리 N유업은 2019년부터 꾸준히 영업손실을 겪으며 빅 브랜드도 새로운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앞서 소개한 책의 저자 이근상은 스몰 브랜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케팅보다 브랜드의 진정성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상호신뢰가 곧 진정성이며 소비자를 현혹하고 속이는 마케팅은 통하지 않는다. 진정성을 갖추려면 이 브랜드가 어떤 브랜드인지 정체성부터 확립되어야 한다. 어떤 소비자를 위해 어디서 어떤 이유로 브랜드가 출발했는지, 그리고 사회 속 어떤 역할을 꿈꾸는지 등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 조건들을 살피다 보면 평균과 대중(mass)을 타깃으로 대규모 마케팅을 펼치는 빅 브랜드가 차라리 더 쉬워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직조하는 것처럼 스몰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심층적이고 직관적인 스토리텔링 영역에까지 다가서야 한다. 사실 이런 마케팅이 성행하는 곳 중 하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이다. 스타 혹은 아티스트에 진정성 있는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을 빌드업하고 팬들이 스타와 정체적 동일감을 형성하며 이를 교류하는 메시지를 적극 소비한다. 그런데 인적 자원이 곧 브랜드가 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뿐만 아니라 의류, 음식, 숙박업 등 다양한 물적 자원 영역에서까지 진정성이 엄청난 강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곁의 스몰 브랜드가 만들어 내고 있는 새로운 흐름을 살펴보자.

실리콘밸리가 사랑한 스니커즈: 올버즈

실리콘밸리의 스니커즈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스티브 잡스가 즐겨 신었다는 뉴발란스부터 떠올리겠지만 사실 요즘 실리콘밸리를 주름잡는 신발은 올버즈(Allbirds)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이라고 극찬한 이 신발은 출시 2년 만에 100만 족 이상 팔렸으며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 전 트위터 최고경영자 딕 코스톨로, 버락 오바마가 주요 고객이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투자자이다. 물론 어느덧 한국을 비롯해 35개국에 진출한 올버즈를 스몰 브랜드라 칭하기에는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2014년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올버즈 브랜드의 중심에는 환경을 최우선에 둔 진정성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출발한 올버즈는 유칼립투스 잎과 사탕수수 등에서 추출한 천연원료로 신발을 만든다. 창업자이자 한때 뉴질랜드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활동했던 팀 브라운은 알록달록한 색과 로고로 뒤덮인 합성섬유 신발에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이후 재생 에너지 전문가이자 공동창업자 조이 즈윌링거와 손잡고 밑창은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스위트폼(SweetFoam), 끈은 폐플라스틱에서 추출한 재생섬유로 울러너를 만든다. 적극적인 친환경 원료 사용으로 미국 MZ세대 사이에서 실용성과 윤리성 측면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는 “타협하지 않고 우리가 믿는 바를 확고히 밀어붙인 게 통했다”고 성공 비결을 밝혔다. 패션계의 전형적 프로세스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자세로 제품을 만들었다는 이들은 계속해서 더 나은 재료가 생기면 원료를 업데이트하며 제품을 개선한다. 실제로 2016년 출시된 울러너는 27번 가까이 업그레이드되었다.

 

환경을 향한 이들의 도전은 최근 출시된 플랜트 페이서로 이어진다. 플랜트 페이서는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 플라스틱 소재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쌀, 감귤, 코코넛 껍질 등 식품 부산물로 만든 비건 가죽을 100% 활용해 제작했다. 일반적으로 신발에 사용하는 소가죽보다 탄소를 88% 적게 배출한다. 팀 브라운은 “오랜 기간 패션 회사들은 환경보다 비용을 우선시하면서 합성 물질과 지속 불가능한 가죽을 사용하는 기존 방식에 의존해 왔다. 우리는 이러한 생산 방식을 끝내고자 식물성 가죽으로 만든 비건 스니커즈 플랜트 페이서를 제작하게 됐다”며 올버즈만의 철학을 밝혔다.

 

사실 올버즈는 가성비 관점에서 보면 훌륭한 신발은 아니다. 친환경 재료는 다른 스포츠화, 제품 라인으로의 확장 가능성이 낮으며 비교적 높게 형성된 가격대도 부담스럽긴 하다. 앞서 소개한 플랜트 페이서의 가격 또한 18만 원 정도로 책정되었으며 올버즈는 12만 원 정도 한다. 즉 올버즈가 비교적 낮은 가격대의 경쟁력을 형성해 대중적인 신발로 발돋움하려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올버즈는 가격대가 조금은 있더라도 가장 환경을 생각하는 신발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며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소비자들과 함께한다.

아시아에서 6번째로 오픈한 올버즈 코리아 플래그십 스토어 전경 © eyesmag
100% 식물성 가죽으로 제작된 올버즈의 플래트 페이서 © Futureworld

시작부터 지지자를 모아라: 제주맥주

국내 맥주 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한 수제 맥주 업체인 제주맥주는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대구 출신에, 대학교는 뉴욕에서 나온 창업자 문혁기 대표는 제주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비빔밥 프랜차이즈를 론칭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맛본 수제 맥주에 감탄해 그 길로 국내 수제 맥주 론칭을 결심한다. 당시 한국의 맥주 시장은 하이트, 카스 등 대기업 중심이었고 수제 맥주는 전무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큰 브랜드 중심으로 전개된 맥주 사업은 다양한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당시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터가 쓴 기사 화끈한 음식, 지루한 맥주에도 “카스와 하이트는 목 넘김은 좋지만 미각을 자극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영국에서 수입한 장비로 만든 북한 대동강 맥주 맛이 놀라울 정도로 좋다”란 평이 있다. 이 평이 한국 내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크게 공감을 산 것을 보면 한국인들에게도 한국 맥주는 특색이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개성 있는 맥주를 향한 소비자의 수요를 읽어 낸 문혁기 대표는 자신의 부족한 경험과 노하우를 상쇄할 협력 파트너를 구했다. 뉴욕 1위 수제 맥주 회사인 브루클린 브루어리(Brooklyn Brewery)였다. 그렇게 제주맥주는 브루클린 브루어리 첫 아시아 자매 회사로서 시작됐다.

 

문혁기 대표가 브루클린 브루어리로부터 배운 건 단순한 양조 기술이 아니다. 로컬리티를 상품에 접목한 마케팅 기술까지 배워 제주도란 로컬리티를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적극 접목했다. 양조장은 단순히 맥주를 생산하는 시설이 아닌 갓 나온 맥주를 시음하고 제조 과정을 관람할 수 있는 관광지로도 기능할 수 있다. 그는 국내에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고 최대 관광지 중 하나인 제주도가 물망에 올랐다. 거기에 맥주의 맛을 좌우하는 물도 주된 고려 대상이었기에 삼다수 등 원래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제주도가 최종 낙점되었다.

 

획일적인 기존 맥주 시장에 지친 이들을 타깃으로 시작된 크래프트 맥주답게 제주맥주는 시작부터 팬덤을 겨냥했다. 맥주의 미식화를 목표로 내건 제주맥주는 주식형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다. 이는 다양성을 내건 상품들이 출시 전 진행하는 리워드형 크라우드 펀딩과는 구별되는 형식이다. 리워드형 펀딩은 특정 상품 혹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후원·기부 중심으로 하던 펀딩으로, 초기 사업 자금은 확보할 수 있어도 로열 팬덤 층을 형성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대신 주식형 크라우드 펀딩은 선주문 후 생산 제품을 받는 게 아닌 기업의 주주를 공모해 사업 자금을 확보하고 추후 배당금이나 유상으로 보상하는 방식의 증권형 펀딩이다.

 

소비는 쉽다. 그러나 기업의 가치에 공감해 투자자가 된다는 건 다소 진입장벽이 높다. 제주맥주는 시작부터 이러한 팬덤을 찾아내 기업의 로열한 소비·투자자 기반을 다졌다. 2017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크라우디에서 진행된 이 펀딩에 총 481명의 투자자가 모였고 공개된 지 11시간 만에 목표 금액 7억 원을 넘겨 107%의 달성률을 기록했다. 청약은 선착순으로 진행됐고 최소 청약 금액은 10만 5천 원(6주), 최대 투자 가능 금액은 투자자의 성격에 따라 200만 원(일반투자자), 1,000만 원(소득요건 구비 등 적격투자자), 2,000만 원(전문투자자)으로 나뉘었다. 펀딩을 통해 주주가 되면 연간 파티 참여, 연 1회 동반자 1인을 포함한 양조장 방문, 제주맥주 신제품 출시 시 우선 시음권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받는다.

 

펀딩 투자 소개란에 제주맥주는 왜 오늘날 크래프트 맥주가 일반 맥주에 비해 각광받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 맥주는 단일 품종 대량 생산의 법칙으로 주로 대기업이 생산한다. 이 방법은 효율적이나 획일적이다. 크래프트 맥주는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독창성과 고품질로 승부를 본다. 전통적인 제조 방법에 다양한 재료를 첨가해 소비자의 취향을 충족하며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에 잘 부합한다. “소맥 문화가 아닌 맥주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 수는 없을까?”


맥주 생태계의 새로움과 다양성을 지향한 제주맥주는 팬이 곧 소액주주인 새로운 팬덤 마케팅을 제시해 스몰 브랜드가 비록 좁고 뾰족하지만 확실하게 팬덤을 형성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사례로 남았다.

2021년 업계 최초 코스닥에 상장한 제주맥주 © 중소기업뉴스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핸드픽트 호텔의 외관 © 신동아

하룻밤이 아닌 지역에 머문다는 감각으로: 핸드픽트 호텔

서울의 오랜 주거 지역 상도동에 위치한 핸드픽트 호텔은 객실 수도 43개에 불과한 작은 호텔이다. 핸드픽트는 로컬과 긴밀한 상생을 고민하는 대표 김성호의 고민이 녹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브루클린의 위스호텔(Wythe Hotel)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위스호텔은 2012년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황량한 폐공장 지대에 들어선 호텔이다. 호텔이 들어선 뒤 활력을 잃은 도시는 5년 만에 트렌디한 상점이 즐비한 곳으로 탈바꿈했고 이 과정에서 위스호텔은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

 

그는 변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자신의 유년 시절 추억이 서려 있는 상도동의 가능성을 핸드픽트 호텔이 일깨워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많은 관광객이 뉴욕을 찾지만 맨해튼 한복판에 숙소를 잡는 경우가 많지 않듯 호텔이 지역문화로 살며시 녹아들 수 있게끔 (핸드픽트 호텔이)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도시와 동네가 지닌 고유의 모습은 내·외국인 모두에게 특별한 콘텐츠가 된다”고 밝힌 것처럼 핸드픽트 호텔은 지역 곳곳의 색을 고스란히 담은 로컬 호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설은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갖추고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강조했다. 가령 시간이 남는 여행자에게는 동네 산책 코스를 안내하고 직접 농장을 운영하며 수확한 채소, 과일 등을 활용한 레스토랑 나루를 운영한다. 그래서일까 대형 호텔도 운영이 쉽지 않다는 한식당, 한식 조식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전문지 모노클(MONOCLE)에서 2018년 세계 100대 호텔 중 한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핸드픽트는 개인이 투자받아 세운 호텔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티크 호텔이라고 정의한다. 이때 부티크 호텔이란 대형 호텔들과 건축, 디자인, 운영 컨셉 및 서비스 측면에서 차별성을 형성하며 이색 서비스와 개성을 강조한다. 핸드픽트의 부티크는 지역에 스며드는 호텔이다. 호텔이 추구하는 럭셔리함보다 내 집 같은 편안함을 강조했으며 상업지역이 아닌 주거지역(상도동)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호텔에서 머무는 감각이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외관은 주변 지역에 위압감과 위화감을 주지 않고 지역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붉은 벽돌과 유사한 톤으로 구성하고 그 안은 검은빛의 구로 철판(구로공단에서 자주 쓰는 공장용 철판)으로 만들어 튀지 않으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부 로비는 이용객을 압도하는 웅장함이 아닌 동네에 있는 열린 공간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람 냄새가 나게끔 설계했다. 모두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이질감이 드는 요소(벽에 걸린 그림, 화려한 패턴의 카펫)를 모두 제거했다. 지하 1층과 10층 꼭대기에는 동네 주민을 위한 서비스들도 있다. 지하 1층에는 무료 키즈존이 있어 언제든지 주민들이 편안하게 머무르다 갈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카페, 레스토랑, 꽃집,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 시설을 갖췄다. 여담으로 10층에 있는 연회장은 동네 주민들의 돌잔치 공간으로서 지역 내에서 인기라고 한다.

 

핸드픽트 호텔은 3대째 상도동에서 살아온 토박이, 김성호 대표의 진심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그는 과거 15년간 호텔 컨설팅 사업을 하면서 주 클라이언트인 최고급 호텔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법한 것들을 핸드픽트에 적극 도입했다고 한다. 큰 브랜드가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길을 개척한 핸드픽트 호텔의 개성은 하룻밤을 자고 가는 공간이 아닌 체험하고 로컬에 정주하는 공간으로서 호텔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통계를 보면 호텔이 오픈하고 난 뒤 상도동에 연간 7,000~8,000명의 외국인 방문했다고 한다. 상도동이란 숨겨진 공간이 관광자원으로 개발된 셈이다.

 

핸드픽트의 성공으로 국내 유수의 호텔업계와 리조트업계에서 로컬 호텔 관련 벤치마킹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호텔 신라, 아난티 코리아, 한화리조트 같은 대기업에서도 방문과 문의가 줄을 잇는다고 한다. 동네의 작은 브랜드가 자기만의 정체성으로 우뚝 선 훌륭한 사례이다. 김성호는 핸드픽트 이태원점 등 추가 사업화 방향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렇지만 호텔왕과 같이 소유하는 개념으로서 호텔에 접근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서울을 공간적 콘텐츠가 풍부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표준화된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가치 있고 기억에 남을 공간을 계속 만들고 싶다는 그의 포부는 작은 브랜드의 가치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코 하나의 물결만 따르지 않는다

스몰 브랜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마치 사람처럼 모든 브랜드는 하나의 물결만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자의 존재 이유를 예각화하고 깊이 뿌리 내리는 스몰 브랜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귀감이 된다. 앞서 소개된 저자 이근상은 “(브랜드와 마케팅에서) 일등이 하나밖에 나올 수 없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크기로 회귀하는 게 아닌 성장 요구를 깊이라는 기준으로 상쇄”하는 것이 존재감을 짙게 남기는 작은 브랜드만의 전략이라고 한다.

 

최근 국내를 강타한 MBTI 열풍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중 하나는 인간의 다양한 성격과 캐릭터를 16가지 유형으로만 획일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세대, 성별, 학력 등 거대한 뭉텅이로 사람을 유형화하고 나누는 기존 분류 체계에서 16가지 유형화가 보여주는 세분된 세상은 얼마나 디테일할까. 다양해지고 그렇기에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기를 강조하는 현 사회에서 브랜드는 자신의 MBTI와 꼭 맞는 소비자 아니, 팬(지지자)을 계속해서 찾아 나설 것이다. 그것이 작은 브랜드가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업계 내에서 거대한 파도로 일어서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