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 퇴근 후 난 오늘도 그곳에 간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 배우고 익히는 게 즐거운 사람들

 

혼밥, 혼술, 혼영. 혼자 즐기는 그 무언가가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그런 세상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영화관에 가지 않고도 우리는 홀로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영화를 소비하고 즐긴다. 한창 붐빌 때 혼자서 두 자리 차지한다고 냉대받던 시절을 지나, 딱 1인분도 배달해주는 식당들이 클릭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이제 홈 카페∙홈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집 안에서, 그리고 온라인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면하지 않고도 SNS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뿐더러, 기존의 관계 역시 이를 통해 더 공고해지기도 한다. 사람들끼리의 소통과 공감이 좋아요라는 수치로 환산되어, 새로운 관계망이 거미줄처럼 형성되는 시대다. 인터넷의 엄청난 발전으로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들로 인해 일상의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넘어 이젠 횰로(홀로+욜로)가 대세인 세상을 과연 10년 전만 해도 예측이나 했었을까. 이젠 기술의 발전 그 자체를 넘어 기술의 진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현재의 일상을 예측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밀레니얼 세대는 여태껏 우리가 살아온 것과 꽤나 다른 세상을 사는 셈이다. 대면이 필연적이었던 과거의 소통을 지나, 굳이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현재의 관계 형성 방식은 이들에게 낯설지 않다.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대면이 불필요하다 느낄 수도 있다. 게임이나 SNS에서도 충분히 관계를 쌓을 수 있을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맺고 있는 다른 관계들보다 온라인에서의 관계가 더욱더 깊을 수 있다는 걸 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요즘 청춘들은 직접 대면할 수 있는 다른 이들을 찾는다. 관계의 욕구는 온라인으로만 해소되지 않는 듯, 대면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따로 있는 듯 말이다. 유료 독서 모임 트레바리(Trevari),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의 모임인 취향관과 문토, 담화관 등 소셜 살롱이라 이름 붙인 오프라인 모임의 출현이 서비스 폭을 넓히는 추세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이들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 연령층이 20-30대 밀레니얼 세대라는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게다가 덕후라는 단어가 비하의 의미가 아닌 한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으로 인정받는 요즘, 끼리끼리의 문화는 이제 대세가 되었다. 어딘가에 소속되려면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혹은 무얼 좋아해야 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밀레니얼에게 학연과 지연은 더는 중요한 네트워크 요소가 아니다. 어느 대학 소속인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 묻는 건 힙하지 않다. ‘좋아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얼마나 좋아하세요?’처럼 나의 기호와 취미를 증명할 수 있는 질문이 더 멋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무언가가 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세상, 비슷한 사람을 찾고 싶은 건 이들에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글을 읽고 쓰며 인사이트를 나누는 모임, 트레바리 Ⓒ 트레바리

퇴근 후 직장인 A씨(29)는 강남역으로 향한다. 독서 모임 트레바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굳이 모임에 참여할 정도로, 같은 책을 읽고 나누는 대화가 즐겁다.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그것도 매우 즐겁게 말이다. 과제 개념의 400자 독후감도 필히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네 달간 총 3-40만 원을 기꺼이 지불해 가며 독서 모임에 참석한다. 단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말이다. 친한 지인이 트레바리의 멤버라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퇴근하고 피곤한 몸 이끌고 굳이 독서 모임에 가는 이유가 뭐냐며 말이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재밌거든요.다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 대화가 재밌고, 그래서 얻는 것들이 참 많다며 그는 대답했다.

 

유료 독서 모임인 트레바리의 성공을, 아니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서비스의 지속과 유지를 예상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소프트뱅크(SoftBank)로부터 50억 원을 투자받은 어느 날, 사람들의 의구심은 경탄으로 바뀌었다. 2015년 9월 이용자 80명으로 시작한 트레바리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며 근래에는 6천 명으로까지 이용자 수가 늘었다. 사람들은 가치 있다고 느끼는 활동에 기꺼이 돈을 쓴다. 즉, 독서 애호가의 모임은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각 분야 전문인이 다양한 취향의 모임을 이끄는 소셜 살롱 취향관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2018년 서비스를 시작한 취향관은 다양한 모임을 운영한다. 취향이 이미 확고해서 본인에게 맞는 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곳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나만의 취향을 탐구하며 자신의 기호를 확립해나갈 수도 있다. 독서∙그림∙글쓰기 등 서로 간에 맞닿을 수 있는 취향을 공통분모 삼아 멤버십 형태의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세 달을 하나의 시즌으로 설정하여 현재 8번째 시즌이 성황리에 모집을 마감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에 기반한 취향관은 취향이 가진 힘과 그 가치를 증명하는 아주 좋은 예시다.

 

취향관은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자기를 탐구하고, 살롱에 참여해 다른 이들과 대화하면서 자신만의 취향을 정해 가는 공간이다. 우리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 박영훈 취향관 공동 대표

 

영화라는 공통분모로 모임을 운영하는 담화관, 취향이 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문토 역시 유유상종형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양한 멤버들이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평소 생각하지 못한 것을 듣거나 나의 이야기를 공감받기도 한다는 문토. 문토의 멤버들은 성장할 수밖에 없는 모임이라고 이야기한다. 학연이나 지연에 기반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취향 기반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임이란, 어찌 보면 폭넓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밖에 없는 최적의 환경이 아닐까. 억지로 누가 등 떠민 교육이 아니라 기꺼운 마음 가득한 자발적인 배움이다 보니 성장의 질에 차이가 나는 건 필연적일 것이다. 그 안에 재미가 있고 나와 비슷한 이들 또한 있으니, 무얼 나누건 신명 나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다.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와 함께 진행한 취향관의 인사이트 토크 Ⓒ 취향관

퇴근 후 녹초가 된 젊은 세대들이 굳이 모임에 참여하려는 이유가 뭘까? 재미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불필요한 수고스러움의 이유에 대해 말이다. 나는 자아에 대한 관심과 성장에 대한 욕구야말로 이들 세대가 태생적으로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전 세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주안점은 조직 내 주어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경쟁의 장이 그나마 마련되어 있기도 했고, 그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의 승승장구와 보장된 미래 또한 매력적인 동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앞서 성공한 나름의 롤모델들이 만들어 낸 발자국을 따라 빠른 보폭으로 걷는 것, 경쟁에서 승리할 때 얻을 수 있는 성취가 동기이자 목표였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에게 조직 내 경쟁은 무의미하다. 인생을 투자했을 때 담보 받을 수 있는 회사의 미래 가치가 하락했을 뿐 아니라, 그 속에서 내 삶의 질 역시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중요한 건 일과 삶 사이의 적당한 균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내 삶의 즐거움과, 긴 안목에서 내가 얼마큼 성장할 수 있느냐가 되었다. 보장된 미래가 저문 상황에서 젊은 세대는 내면에 대한 관심과 함께 나만의 역량을 기르고 개발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만, 이들은 태생적으로 그 한계조차 이미 잘 알고 있다. 꾸준히 할 수 있는 힘과 배움의 동력을 얻는 건 대면이 가장 유효한 방법임을 말이다. 네트워크 또한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자연스레 얻을 수 있는 유익임은 물론이다.

 

결국 성장 욕구와 이에 수반되는 가장 원초적인 재미야말로 요즘 세대가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오프라인 공간으로 나오는 이유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마음껏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인정까지 받으며,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끼리 모이는 모임. 온라인에선 채울 수 없는 대면의 힘을 통해 사람들은 더 큰 만족감을 얻는다. 돌아가는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뿌듯한 마음과 성취감은 웹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을,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을 찾는다.

 

물론, 오프라인이기에 갖는 한계 역시 존재할 수 있다. 취향과 관심사를 공통분모로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안성맞춤일 수 없다. 각자 생각하는 모임의 방향과 지향점 또한 상이할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취향 그 자체보다, 같은 취향을 좋아하는 이성이 목적인 사람 또한 존재할 것이다. 또한,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재난급의 사태로 인해 아마 모든 오프라인 공간 운영자는 크게 휘청했을 것이다.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한 온라인 환경과 달리, 운영인력을 비롯한 다양한 운영 공수도 오프라인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느 기업에나 존재하는 리스크(risk)와 다름없다. 취향 공동체를 운영하는 기업의 흥행은 대면의 단점을 상쇄하는 서비스의 질과 만족감 때문이었다. 다른 취향 기반 기업들 역시 서비스를 얼마나 더 뾰족하고 날카롭게 가다듬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누군가에겐 한계처럼 작용하는 오프라인 공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각각의 취향과 개성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모임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소셜 살롱의 성장을 위한 미션이자 지향점인 셈이다. 보다 많은 사람의 취향을 캐치(catch)하고, 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참여를 끌어내는 것. 이 미션을 잘 수행하는 기업은 살아남고, 소홀히 한 기업은 도태되거나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끼리 맞닿는 대면에는 분명히 힘이 있다. 고전적인 형태라고 할지라도, 분명 온라인에선 채울 수 없는 그 함께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혼자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을 같이 이루었을 때, 혼자선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이 함께이기에 가능해지는 일을 경험한다. 본 글에서 언급한 취향 공동체들을 통해 그 힘을 엿볼 수 있다. 결국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모임을 통해 얻는 재미와 인사이트가 밀레니얼이 바라는 것들이 아닐까. 배움은 늘 힘들고 고되다고 믿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 청춘에게 배움은 고되거나 힘든 무언가가 아닌, 즐거움 그 자체인 듯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하는 건 꼰대다. 지금의 밀레니얼은 젊어서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그 성장을 기반으로 더 멀리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퇴근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모임에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혹자는 고되고 힘들겠다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앞을 향해 가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 즐거운 빛이 역력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상황. 바이러스 종식을 맞은 이후에 취향 공동체를 찾는 것이 우리와 사회를 지키는 일이지 않을까.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라는 공자의 말에 진실로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테다. 분명한 건, 이 말에 공감할 이들은 소셜 살롱의 재미를 또렷이 아는 사람들이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