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실용적이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의 시초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바우하우스(Bauhaus)가 2019년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바우하우스는 독일의 시각, 조형 예술학교이다. 1919년 설립된 이래 실용과 심플을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으로 예술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단순한 삶에 대한 갈증을 점점 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바우하우스의 실용적이면서도 심플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온다. 바우하우스의 철학과 같은 맥락으로 일본의 유명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kondo marie)의 정리법이 최근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리 컨설턴트인 곤도 마리에는 지저분한 집을 정리하면 마음도 정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넷플릭스를 통해 그녀의 차분한 정리 영상을 보며 현대인들은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실용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욕구는 어느새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언제나 그렇듯 산업계는 이런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다. 심플, 실용, 미니멀리즘의 라이프 스타일로 태어난 브랜드들은 이미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심플, 실용, 미니멀리즘을 아이덴티티로 내세운 유명한 브랜드들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다. 일본의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MUJI), 독일의 생활가전 용품 브랜드 브라운(Braun), 미국의 전자제품 브랜드 애플(Apple), 스위스의 사무가구 회사 비트라(Vitra) 등이 그 예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가 아니라 조금은 낯설더라도 실용과 심플의 디자인 철학을 보유하고 있는 제품군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을 이어가는 몇몇 브랜드를 만나보자.

 

옥소(OXO)

옥소는 미국의 주방용품 생산 전문 기업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주방 용품에는 실용과 심플의 디자인 철학이 잘 녹아있다. 옥소의 창립자 샘 파버(Sam Farber)는 브랜드명을 앰비그램(Ambigram)이라는 문자 디자인 기법을 통해 만들어냈다. 엠비그램은 좌우, 위아래 그 어느 쪽으로 뒤집어도 같은 단어로 읽힐 수 있게 디자인하는 것을 말한다. 브랜드 명에서도 알 수 있듯 그 어떤 순간에도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겠다는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샘 파버의 이런 디자인 철학은 그의 결혼 생활에서 비롯됐다. 관절염을 앓고 있는 그의 아내는 주방 도구를 잡고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아내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사용자라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주방용품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옥소는 이프 디자인 어워드(iF Design Award)에서 여러 번 수상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에도 팝 컨테이너(POP Container) 제품을 통해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제품은 심플한 디자인의 주방 밀폐 용기이다. 이 단순한 밀폐 용기의 가장 큰 특징이자 비밀은, 뚜껑 가운데에 큼직한 버튼이 있다는 것이다. 이 버튼을 누르면 팝!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는데, 사용자는 이 버튼을 한 손으로 눌러서 손쉽게 용기의 뚜껑을 열 수 있다. 뚜껑을 닫을 때도 버튼만 누르면 밀폐 상태가 된다. 뚜껑 밑 부분에는 소금이나 설탕을 덜어낼 수 있는 스푼이 매달려 있기도 하다. 그래서 사용자는 스푼을 따로 찾을 필요 없이 바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를 위한 이런 세심한 배려가 옥소 주방용품의 특징이다.

2019 iF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 팝 컨테이너. 뚜껑에 스푼을 매달아 분실의 걱정을 줄였다. Ⓒ OXO

발뮤다(BALMUDA)

발뮤다는 고등학교 중퇴생 겐타로(GenTerao)가 2003년 설립한 일본의 가전용품 브랜드이다. 겐타로는 발뮤다를 만들기 전에는 7년 동안 뮤지션을 꿈꾸며 음악을 했다고 한다. 창립자의 특이한 이력만큼 브랜드 성장 스토리도 독특하다. 혁신적인 선풍기 개발로 디자인 업계에서 큰 지지를 받고 성장했는데, IT전문 잡지 맥 월드(Mac world)는 이들을 유니크한 디자인과 제조 공정에 기꺼이 큰 비용을 지불하는 가치 있는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불편함을 찾는데 주력하는 발뮤다는 선풍기 하나로 국제 디자인 대회에서 입상하며 명성을 얻었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 이프 디자인 어워드(iF Design Award) 등 세계 유명 산업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영광을 얻은 제품은 그린 팬(Greenfan)이라는 선풍기다.

 

단순해 보이는 이 선풍기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인공바람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했다. 발뮤다는 기존의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성분의 인공바람에서 벗어나 자연풍과 최대한 가까운 느낌의 바람을 만들기 위해 날개의 움직임, 모터, 선풍기의 동작음을 치밀하게 연구했다. 이런 집요한 노력 끝에 이중 구조 날개라는 그들만의 독자 기술을 이용해 부드럽고 기분 좋은 자연바람을 재현하는 선풍기를 완성했다. 소비자들은 이 기분 좋은 바람에 40만원이 넘는 금액을 기꺼이 지불한다. 발뮤다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으로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속에 흰색과 검은색의 심플한 디자인으로 탄생한 그린 팬은 소비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발뮤다의 그린 팬 Ⓒ BALMUDA

아티폭스(ARTIFOX)

아티폭스는 미국의 미니멀리즘 오피스 가구 및 용품 브랜드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만 기능과 디자인에서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브랜드의 모든 가구는 엄선된 높은 품질의 재료로 실용성, 디자인, 생산성,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여 제작된다. 또한 기존의 가구들이 가지고 있는 사소한 불편함을 제거하면서도 멋진 디자인까지 놓치지 않는다. 아티폭스의 설립자는 사라(Sarah)와 댄(Dan)이다. 사라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건축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 아티폭스의 디자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댄은 산업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업계의 커리어를 쌓으며 아티폭스의 기능성, 실용성 측면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는 미니멀리즘적 심미주의와 생산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끝에 아티폭스를 설립했다.

 

아티폭스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아름다움과 실용성의 공존이다. 목표는 디자인적 가치와 사용자의 생산성 향상으로, Desk 02가 대표적인 예시다. Desk 02는 미니멀한 디자인과 실용성을 동시에 겸비한 사무용 책상이다. 사용자가 직접 세팅과 디자인을 할 수 있으며, 책상 합판 하단부에는 자유로운 위치와 방향으로 콘센트를 꽂을 수 있는 케이블 그리드가 설치되어 있다. 이 케이블 그리드를 통해 사용자는 자유롭고 쉽게 원하는 위치에 콘센트를 설치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는 케이블 그리드에 세로로 길게 뚫려 있는 구멍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구멍에 핸드폰을 세워 놓을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해 전기 코드를 손쉽게 정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열려있는 장치를 통해 사용자는 모든 설정을 자신에게 가장 편한 대로 할 수 있다. Desk 02는 사용자에게 맞춤성(Customization)을 제공함으로써 최적의 편안함과 실용성, 디자인의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숨 돌릴 틈 없이 꽉 채워진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삶의 방식은 어느 순간 간절히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그렇지만 단순한 삶은 말그대로 단순함만 주는 것이 아니다. 더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바쁘고 복잡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함과 실용성의 결합은 사용자를 더 높은 생산성으로 이끌어준다. 심플한 디자인의 심미성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까지 선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용과 심플을 추구하는 디자인 브랜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0년 전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했던 바우하우스의 철학은 이제 예술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삶의 밀도는 채우려고 했을 때만 올라가지 않으며, 오히려 정리와 여백, 여유로운 삶을 통해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질 때 장기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단순함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맞는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다. 비워야 더 채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