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나라. 같은 언어를 쓰는 집단의 문화를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라. 바로 북한이다. 이토록 가까울 수 있는 곳이지만, 남한의 사람이 북한과 닿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제한된다. 통일부장관이 허가한 방문증명서를 받고 직접 방북하거나, 언론이 전하는 북한의 소식을 듣거나. 마지막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해석을 읽어보거나.

 

남한은 정보의 접근성과 특수성 때문에 다소 단편적인 색안경으로 북한 사회를 바라보기 쉽다. 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철도연결을 비롯한 다양한 남북교류 사업이 구상 및 활성화되고 평양냉면 특수 같은 현상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북한의 일상은 멀게 느껴진다. 분명 과거에 하나였지만 지금은 다른 체제로 존재하기에, 우리가 준수하는 지표로 북한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대개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북한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북한의 일사불란한 질서와 체계는 뜻밖의 속도와 과감한 혁신을 만들어낸다. 북한 사회는 사회∙문화적인 현상과 정치∙경제적인 장치가 맞물려 독특한 트렌드가 작동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변화하는 것이 북한이다.

 

북한의 트렌드는 자본주의의 자유 경쟁 방식과는 달리, 자력갱생의 가치를 들고 사회주의 발전 속에서 촉발된 북한 기업들의 경쟁적 산물이다. 이러한 차이점과 함께 중요하게 읽혀야 하는 부분은 변화와 발전의 모습으로 충만한 북한의 모습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 『북한 트렌드 2020』, 김민종, 책과나무

 

이러한 북한을 다각적인 관점으로 넓게 바라보는 것은 외려 우리가 아닌, 바깥 세계다. 국제기구 및 연구소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향력과 잠재력을 읽어내기 위해 수많은 조사와 연구를 실시한다. 이렇게 쌓인 탐구된 북한 데이터는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세계는 북한의 어떤 모습을 관찰하며, 무엇을 읽고 싶은 것일까.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소비에트 속 조선 디자인, ≪Made in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展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은 북한의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가극 등 문화예술(북한에서는 문학예술이라 칭한다) 부문을 총괄하는 단체다. 모든 작품은 당성∙계급성∙인민성을 갖추되, 주체사상과 노동계급의 이해, 인민 대중의 감성이 녹아야 한다. 특히 북한 미술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담는 주체미술을 지향한다. 최근에는 북한의 최우선 과제인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에 따라 산업미술 부문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소품 포장부터 기차 같은 대형 운송수단까지, 시대별로 변화하는 산업 그래픽은 인민의 미감과 현실, 사상 감정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다.

 

북한에서는 그래픽(graphic)을 도안이라 칭한다. 영국의 유일한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공공 갤러리 하우스 오브 일러스트레이션(House of Illustration)에서 북한의 도안미술을 보여주는 ≪Made in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展≫이 열렸다. 특이한 점이라면 단 한 명의 영국인이 25년간 모아온 컬렉션으로 탄생한 북한 전시라는 것. 컬렉션의 주인이자 조경학을 가르치던 니콜라스 보너(Nicholas Bonner)는 관광객을 찾기 힘들었던 90년대 초의 북한을 찾은 뒤, 북한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조경에 매료되었다. 이후 북한 전문 여행사 고려투어를 창립했고, 북한을 수없이 오가며 사탕 껍질, 성냥갑 등 모든 도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1만여 점 중 200여 점의 도안들이 세계에 소개되었다.

 

개관 이래 최다 방문 수를 기록한 <Made in 조선>은 세계 순회전의 시작점으로 당연하게도 서울을 택했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4월까지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에서 남한의 사람들과 만난 이 전시는 작품과 공간 등 모든 것을 영국 전시와 동일하게 구성했다. 보너의 요청으로 영국 전시를 진행했던 큐레이터와 공간 디자이너가 한국 전시를 감독했다. 분명 내용은 북한이지만, 영국에서 온 Made in 조선인 이유다.

전시는 선전화(프로파간다) 포스터, 일상생활용품, 엔터테인먼트의 도안을 보여주는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짙게 녹은 20세기의 작품부터 북한 고유의 색채와 양식화된 모양이나 동적인 레이아웃을 결합하는 현대 도안까지 다양하게 준비했다. 북한의 모든 것이 국가의 기획으로 움직이듯, 도안미술 역시 국가의 기획과 승인으로 이루어진다. 산업미술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겉치레로 소비욕을 불러오는 미술도안을 배격하라는 김정일의 명시를 철저히 따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도안은 장식적인 패키지보다는 핵심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이미지와 간결한 타이포그래피를 위주로 삼는다. 곳곳에 묻은 사회주의 특유의 리얼리즘 미술도 북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적 이미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일회용품에는 대개 로동당의 상징인 낫∙망치∙서예 붓이나, 북한의 발전을 대표하는 천리마 동상이 새겨져 있다. 평범한 포장지에 불과할 수 있지만, Made in 조선 속 도안들은 북한의 일상에 녹아있는 정치적 국수주의와 전반적인 산업미술의 흐름을 담아낸다.

 

또 다른 섹션인 오늘의 평양에서는 영상으로 북한을 보여준다. 평양의 상징적인 건물과 일상생활을 기록한 조어그 데이버(Joerg Daiber) 감독의 <작지만 큰 세계: 특이한 평양>과 대집단체조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상영됐다. 전시장 한켠에서는 평양의 슈퍼를 재현한 팝업스토어 프로젝트 <평양슈퍼마케트>가 각종 라이프스타일 소품으로 재미를 더했다. <Made in 조선>은 한민족이지만 다른 문화로 발전한 남북이 도안미술, 즉 그래픽디자인이라는 창구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유의미한 경험의 장 아니었을까. 컬렉터인 보너는 파이돈(Phaidon) 출판사와 함께 동명의 도안집을 발간했으며, 국내에서는 컬처앤아이리더스가 출판한 한국어판을 만날 수 있다.

북한의 숨은 문화를 소개하는 여행사, 고려투어(Koryo Tour)

우리는 북한의 흑과 백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 두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 니콜라스 보너, 고려투어 CEO

 

북한을 대표하는 대동강맥주는 북한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맥주이자, 북한 맥주의 세계를 단번에 뒤바꾼 대표 맥주다. 탄생 비화는 러시아의 발티카 맥주를 맛본 김정일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발티카에 비견될 만큼 질 좋은 북한 맥주를 만들고 싶었던 김정일은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의 설비를 구해오라 지시한다.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 담당자가 설비 수급에 고초를 겪자, 한 독일 공장 관계자가 중고 설비를 파는 양조장을 귀띔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독일의 맥주 설비를 들여온 데다 양강도의 질 좋은 홉과 맥아를 아낌없이 넣어 만든 것이 대동강맥주다.

 

이렇게 탄생한 대동강맥주의 공장 전시실에는 자발적인 품질평가를 위해 자국 경쟁 업체의 맥주뿐 아니라 해외의 유명 맥주들이 놓여있다. 2019년에는 만경대상 국제마라톤경기대회에 참여했던 맥주회사 미켈러(Mikkeller)의 미켈 보 베그쇠(Mikkel Borg Bjergsø) CEO의 제안으로 코펜하겐 미켈러 맥주축제(MBCC)에 함께했다. 레저 어플 여기어때가 자사 직원 400명을 상대로 남북 교류로 안전한 여행이 가능해지면 판매하고 싶은 북한 액티비티 상품의 가상 기획 설문을 조사한 결과, 61.3%로 1위를 기록한 답변은 대동강맥주 공장 탐방과 품평회였다.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다”던 다니엘 튜더(Daniel Tudor)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의 말도 화제였지만, 여유로운 북한 주민만 마실 수 있다는 대동강맥주를 통해 북한의 문화를 간접 체험하고 싶은 마음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런 대동강맥주 탐방을 현실화한 곳이 있다. 바로 영국인들이 설립한 북한 전문 여행사 고려투어. 투어 참가자는 5박 6일 동안 대동강맥주 공장을 포함한 평양과 평성의 맥주 공장들을 견학한다. 베일에 싸여있던 북한의 맥주 산업 종사자에게 직접 설명을 듣는 자리다. 단순히 술을 마시기엔 다소 아까운, 북한의 맥주 산업을 알아보고 분석할 기회다. 백화점 루프탑의 파라다이스 비어 바(Paradise Beer Bar)에서 북한 맥주가 판매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1,249유로(한화 약 160만 원)의 비용으로 즐기는 이 투어는 아쉽게도 남한 거주민을 제외한 외국 시민권자만이 참여할 수 있다.

 

투어를 개방한 북한의 행보가 의외처럼 여겨지지만, 최근 북한은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관광 절차를 간소화하고 관광특구를 지정하는 등 적잖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원산-금강산 지구 일대의 대규모 관광단지도 완공된다면 획기적인 관광 자원이 될 예정이다. 북한이 소유한 비행기 기종을 타보는 비행기애호가관광을 비롯한 13개 테마 관광을 선보이며, 국제예술공연인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국제영화제 <평양국제영화축전> 등의 축제를 기획해 방북을 유도하고 있다.

건축의 눈으로 합친 남북한,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반도 오감도>

시인 이상이 쓴 15편 연작시 「오감도」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이 처한 근현대성의 모호한 경계에서 불안 의식에 떨며 살아야 했던 민족의 자화상이다.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에서 황금사자상을 차지한 한국관의 <한반도 오감도>가 그 의미를 품고 이름을 차용한 작품이기도 하다. 남북한의 현대 건축사를 탐구한 <한반도 오감도>는 분단 이후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의 길을 걸어온 두 국가의 건축 세계를 드러낸다. 한 민족, 두 국가가 서로의 건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불완전한 상태의 한국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까마귀의 눈(오감도)으로 관찰한다. 마침 비엔날레 총감독이었던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제시한 국가관 전체 주제는 ‘근대성의 흡수: 1914~2014’였다. 지난 100년과 앞으로의 100년을 함께 짚어보자는 의미다.

 

거대한 역학 속에서 남과 북은 각각 현대사회의 신화를 창조했다. 북한은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지구상 최후의 공산국가이며, 이상사회임을 자처한다. 남한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 강국으로 눈부시게 도약한 지난 세기 최고의 성공 신화를 일궈냈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에 분명 모종의 진실이 있다.

– 배형민,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

 

본래 남북 공동전시를 꿈꿨으나 북한의 불참으로 인해 남한이 홀로 기획한 <한반도 오감도>는 상하부의 이중 서사로 전시를 구성한다. 전시의 상부는 남북한이 지녀온 근대성의 고민을 같은 시선의 지평에서 보려는 노력의 서사다. 하부는 남북한의 건축, 즉 일상적 공간이 근대성의 흡수를 향해 나아가는 사건을 조감적으로 담았다. 전시 섹션은 삶의 재건(Reconstructing Life), 모뉴멘트(Monumental State), 경계(Borders), 유토피안 투어(Utopian Tours)로 구성했다.

 

전쟁을 마치고 제로베이스(zero-base)로 돌아온 남과 북은 다른 체제의 근대성을 흡수하며 다른 이상을 가진 다양한 건축을 도시에 세워갔다. <한반도 오감도>는 서울을 대표하는 일본 유학파 김수근 건축가, 그리고 평양을 대표하는 소련 유학파 김정희 건축가가 이끌어간 두 도시를 사진, 영상, 출판, 모형, 포스터, 인스톨레이션 등 다면적인 접근 방식으로 표현했다. 남한의 수도가 급진적 경제 성장과 사회 재건을 거친 자본주의의 도시로 변모하는 동안, 북한의 수도는 국가와 수령 주도의 계획경제체제를 갖춘 사회주의 도시로 자리 잡은 흐름을 담아낸다.

 

북한의 기본주택은 국가가 짓고 주민을 배정하는 살림집이다. 투자를 모집하고 국가의 허가를 받은 기관∙기업소가 아파트를 지으면 일부 개인이 구매하며, 최근 아파트 주거율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해방 직후에는 소비에트 건축양식의 영향이 강했지만, 이후 선조의 건축예술과 민족적 특성을 현대 미감으로 재현하자는 김일성의 민족적 건축관이 중시되면서, 독특하고 웅장한 건축물이 대거 등장했다. 특히 최근의 북한식 주체건축은 인민대중제일주의 사상의 깊은 반영으로 대규모의 공적 시설이 많다. 2012년에 탄생한 창전거리를 시작으로, 과학 중시 정책의 일환인 미래과학자거리,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려명거리 등의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는 평양의 현대적인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평소 접하지 못했던 북한의 건축과 도시를 보여준 <한반도 오감도>는 남한의 건축가들이 독단적으로 채운 전시가 아니다. 북한이 비운 자리는 북한 문화를 지속적으로 탐구한 국내외 북한 연구자의 자료로 패치워크하듯 기워냈다. 하나의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지역의 조각을 모으듯, 외국 작가와 협업해 제3자의 시선으로 관찰한 북한의 모습도 여백을 촘촘히 채웠다. 이러한 시도는 심사위원평에서도 리서치 인 액션(Research in Action)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기획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출품을 의뢰받은 북한의 건축가들이 직접 그린 미래 건축의 작품도 전시장에 함께 걸렸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1980년 도쿄 UIA 콘퍼런스가 끝난 후, 남북한 건축가들이 함께 보낸 송별파티의 사진 한 장이 있다. <한반도 오감도>의 모든 맥락과 서사를 응집한 사진이자 배치다.

한국관에서 전시 중인 <한반도 오감도>. 북한의 건축가들이 그려보내온 미래의 북한이 인상적이다 © 슬기와 민

바깥에서 바라보는 북한은 어떤 모습이고, 최근의 대충매체가 전하는 북한의 변화는 무엇일까. 여전히 비핵화와 정치적 이슈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북한의 소식이지만, 다른 프리즘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 시선들은 비인간적으로 정형화된 프로파간다적 이미지 안에 숨어있는 북한의 섬세함, 인간미, 고투가 녹은 진정성의 삶을 예술, 문화, 건축 등 다양한 요소로 드러낸다. 오늘 언급한 사례를 제외하고도 북한을 연구하고 수집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빌렘 반데르 레일(Willem Van Der Bijl), 프란치스쿠스 브루르센(Franciscus Broersen) 등 북한 미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컬렉터가 등장했고, 레이덴 대학(Universiteit Leiden)에서는 북한 전문 연구강좌와 학술대회가 수시로 열린다. 끈기 있게, 통찰력 있게 북한을 관찰하는 외부의 시선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북한의 이면을 귀띔한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행위, 도덕, 질서, 관념 등을 절대적으로 지키려 한다. 동시에 세계의 흐름과 시대적 요구, 인민의 기호에도 조금씩 균형을 맞추어가고 있다. 북한이 마지막까지 고수한 스탈린식 리얼리즘과 전체주의 스타일에서 발견되는 그들만의 희소성과 독창성은 세계로 하여금 돋보기를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듯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창구와 투명도는 아직 불충분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더욱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또한 다양한 해석으로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 북한이 가진 사회문화적 특수성을 존중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