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이제 우리는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속성을 나타내는 정보통신기술(ICT) 용어를 생활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기업의 경영 전략에서 디지털이 최우선시된 것도 최근은 아니다. 24시간 스마트폰과 동고동락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말 그대로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 시대다. 이런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종이매체 신문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 듯 보인다. 디지털 시대를 헤쳐나가는 신문의 도전과 생존 전략이 궁금하다. 전통적 미디어의 강자로서 역설적으로 디지털 퍼스트의 바람을 몰고 온 해외 사례를 함께 살펴보자.

 

Paper First vs Digital First

디지털 퍼스트란 모든 조직과 인력, 가용자산을 아날로그 부문에 집중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이를 정보화와 스마트화, 디지털화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춰야 함을 말한다. 미디어에서 디지털 퍼스트는 종이신문보다 온라인상에 기사를 먼저 게재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그동안 신문의 전통적 발간 프로세스는 기자가 취재한 기사를 편집장들이 편집회의를 거쳐 각 지면에 배치해 초판을 찍어본 후 다음날 새벽 최종 본판을 인쇄해 배포하는 것이었다. 그 후 기사를 신문사 홈페이지에 올리고 주요 포털 등 온라인에 제공하는 것이 지금까지 일반적인 신문 제작 방식이었다. 디지털 퍼스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뒤집은 것이다. 온라인에 기사를 우선 올리고 그 내용으로 다음날 신문 지면을 정하는 것이다. 신문 발간 패러다임의 대변화다. 이러한 미디어의 디지털 퍼스트는 한 보고서에서 출발했다.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2014)

시계를 5년 전, 2014년으로 돌려보자. 화제의 주인공은 미국의 주요 일간지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2014년 5월 뉴욕타임스의 내부용 혁신보고서가 유출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97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그동안 종이신문에 집중해 온 페이퍼 퍼스트(Paper First)에서 급변하는 추세에 뒤처지지 않고 소비자 중심의 디지털 퍼스트 마인드로 새롭게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디지털 퍼스트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 미디어 시장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대표적 아날로그 권력의 대명사로 글로벌 신문시장을 이끌어온 리더 신문사가 궤도 수정을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하는데, 보고서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저널리즘 영역에선 가장 앞선 기업이다. 디지털시대에 미디어 기업이 직면한 많은 어려움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위대한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매일매일 생산해 내는 보도는 깊이 있고, 폭넓을 뿐 아니라, 영민해서 독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경쟁자들을 크게 앞서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중요한 분야, 즉 우리가 만든 저널리즘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기술에서는 경쟁자들에게 뒤처져 있다. 우리는 늘 우리가 작업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지, 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칠지에 대해 늘 고민해 왔다. 하지만 정작 디지털시대의 암호를 해독하는 데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해왔다.

 

글로벌 미디어 선두주자인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전략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하지만 그것은 반성만은 아니었다. 보고서는 반성에서 출발해 전통적 미디어 강자가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혁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에서 미디어 혁신의 길을 찾다

그렇다면 뉴욕타임스는 왜 디지털 퍼스트 카드를 꺼내 들은 것일까? 사실 뉴욕타임스가 종이신문에 집중했다고 하지만 미디어 강자답게 이미 2009년에 인터랙티브(interactive) 뉴스팀을 신설하는 등 나름 디지털시대를 차분히 준비해 오고 있었다. 인터랙티브 기사는 그래픽, 사진, 동영상 등을 통합 편집한 뉴스 콘텐츠다. 스크롤, 클릭, 링크 등 독자가 반응해 움직이는 웹 페이지를 구현하는 것으로 지금은 일반화된 형식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모험이었고 새로운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2012년 12월 기념비적인 디지털 콘텐츠가 탄생했다. 인터랙티브 기사 스노우 폴(Snow Fall)이다.

 

이 기사는 크릭 터널의 눈사태(The Avalanche at Tunnel Creek)를 부제로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캐스케이드 산맥에서 일어난 눈사태를 멀티미디어 자료와 디지털 효과를 잘 버무린 기사로 존 브랜치(John Branch)라는 기자가 만들었다. 단순한 기사라기보다 완전히 새로운 뉴스 콘텐츠로, 한 편의 영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기사는 텍스트가 아닌 화면 전체를 가득히 채운 눈발이 날리는 현장 영상으로 시작한다. 중간중간 현장 사진과 함께 인터뷰 영상, 시각화한 데이터, 모션 그래픽, 슬라이스 쇼 등을 제공한다. 6일 만에 290만 명의 독자가 이 기사 사이트를 방문해 350만 페이지뷰를 기록했고 SNS에서도 총 8만 건이 넘게 공유됐다. 독자들은 1인당 평균 12분가량 이 기사에 머물러있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이 디지털 기사로 2013년 퓰리처상 기획 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이후 많은 언론이 인터랙티브 기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채 6개월도 안 되어 영국의 유력 일간지인 가디언(The Guardian)이 파이어스톰(Firestorm)으로 인터랙티브 기사의뒤를 이었다. 이 기사는 태즈메이니아섬에서 발생한 산불과 이를 겪는 가족의 이야기를 더욱 진화한 형태의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준다. 독자들은 마우스로 현장에서 벌어진 일과 사람들의 얘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기사는 영상과 멀티미디어 그래픽을 더해 기사를 읽는 독자가 현장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또한 챕터 별 구성으로 지루함을 덜었고 독자와 상호작용을 통해 몰입감을 극대화해 스노우 폴에 버금가는 주목을 받았다.

두 작품의 성공은 세계 신문업계를 흔들었다. 디지털 대세가 자리를 잡으며 고작 종이신문의 기사를 옮겨 싣는 수준의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던 많은 신문사에 위기의식을 안겨줬다. 그리고 후폭풍이 이어졌다. 정확하게는 후폭풍의 속도가 빨라졌다. 가디언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로 이름을 날렸던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가 2016년 3월 26일 자를 끝으로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한 것이다.

 

이는 매체를 100% 온라인 매체로 전환하기 위해서였고 디지털이라는 파고를 넘기 위한 결단이었다. 한때 발행 부수 40만 부를 넘어섰던 인디펜던트였지만 온라인 전환 당시는 4만부 정도에 그쳤다. 인디펜던트의 마지막 인쇄 신문 1면 헤드라인은 ‘Stop Press’. 이로써 매체는 종이신문의 종말을 알렸다. 사실 그 전부터 종이 매체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미국의 3대 시사주간지로 불린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는 2008년, 뉴스위크(News Week)는 2012년을 끝으로 인쇄판을 접고 온라인 전용 매체로 전환했다.  또한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가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팀 조사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2004년 후 미국에서 폐간된 신문사만 약 1,800개에 달한다. 또다른 조사에 의하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신문사 편집국 기자의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최상의 콘텐츠가 최고의 무기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 중 하나는 온라인 콘텐츠 유료화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이 훌륭한 콘텐츠에 반드시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질 좋고 깊이 있는 기사에 대한 수요는 절대 줄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물론 이는 줄어드는 광고 수입을 대체할 확실한 수입원에 대한 절박한 고민에서 나왔다.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 최상의 콘텐츠만이 가장 확실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는 구글, 페이스북 등 디지털 뉴스 플랫폼이 전체 광고시장의 절대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결단이었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뉴스 미디어 연합(NMA)의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2018년 검색 및 구글 뉴스 서비스를 통해 전달한 언론사 콘텐츠로 47억 달러를 벌었다. 이 수치는 미국 뉴스 산업 전체가 지난해 디지털 광고로 벌어들인 금액인 51억 달러와 맞먹는다.

 

2014년 초 76만 명이었던 뉴욕타임스의 유료 구독자는 해마다 급증했다. 2017년에는 360만 명, 2018년에는 4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전략으로 뉴욕타임스는 2016년 디지털 분야에서 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버즈피드, 워싱턴포스트, 가디언의 디지털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다. 그리고 2012년부터는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보다 많아졌다. 이후 2017년 1월 또 하나의 보고서가 공개됐다. 보고서 타이틀은 독보적 저널리즘(Journalism That Stands Apart). 2020년까지 뉴욕타임스의 미래 전략을 담고 있는데, 디지털 기반의 저널리즘이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한 디지털 구독자 수의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뉴욕타임스는 미디어 시장에서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독보적 뉴스나 뉴스 매개 방식이 시장점유율 또는 매출에서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고 미래 전략으로 종이신문보다 디지털에 집중한다는 의지를 재확인 하고 있다.

올 초 뉴욕타임스는 인터넷판과 종이매체를 합친 구독자 수를 2025년까지 1천만 명 이상으로 늘리는 경영목표를 발표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의 최고경영자 마크 톰슨(Mark Thompson)은 지난 6월 영국에서 열린 제71차 세계뉴스 미디어총회(World News Media Congress)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기 독자 유치를 위해서는 전문적 지식과 데이터, 과학, 상품, 디자인, 디지털 마케팅 등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최고의 저널리즘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뉴스와 칼럼, 기획 기사를 생산하는 회사다. 여기에 투자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지금까지 1851년 창간한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로 세계 미디어 시장을 선도해온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퍼스트시대에서도 당당히 리딩 매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전략을 살펴봤다. 뉴욕타임스의 혁신과 도전은 끊임없이 변신하는 최고의 콘텐츠만이 미디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절대 원칙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혁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뉴욕타임스의 세 번째, 네 번째 보고서를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