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2000년, 낙후된 공업 지역이었던 런던 템즈강 남쪽에 새로운 미술관이 생겼다.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화력발전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만들어진 미술관은 곧 명소로 떠오르며 침체되어 있던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뉴욕 모마(MoMA),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함께 세계 3대 현대미술관으로 꼽히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이야기다.

 

테이트 모던이 도시재생의 좋은 예로 꼽히는 이유는 단지 버려진 산업유산을 활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테이트 모던의 거실로 불리며 많은 관심을 받는 거대한 로비, 터빈 홀(Turbine Hall)은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일반적인 미술관처럼 건물의 전면인 강변 방향에 출입문을 내는 대신, 템즈강을 따라 걸어온 보행자들이 자연스럽게 터빈 홀로 들어오도록 서쪽에 문을 낸 덕분이다.

 

그렇게 템즈강 산책로의 일부가 된 터빈 홀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린아이들이 도시락을 먹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외형이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으로 남기보다, 지역 사람들이 들어옴으로써 완성되는 미술관이 된 테이트 모던은 도시재생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 Tate Modern Turbine Hall

팔복동과 팔복산업단지

 

런던에 뱅크사이드가 있다면 전주에는 팔복동이 있다. 전라북도 전주시 팔복동은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지만, 전쟁을 겪고 난 후 미국 원조를 중심으로 하는 전쟁 복구사업과 단편적인 경제정책이 시행되면서 공장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팔복동 공단의 형성은 지역이 농업 중심 사회에서 제조업 중심의 사회로 급격하게 변하는 계기였다. 전북 각 지역의 사람들과 도외 지역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팔복동으로 모였고,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수만 명을 넘으면서 쪽방촌과 자취 생활의 성행 등 새로운 주거 형태도 나타났다.

 

그러나 60년간 전주 사람들을 먹여 살린 팔복동 산업단지도 탈산업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제조업 중심의 경제 발전이 쇠퇴하면서 1980년대 이후 공장의 기능을 상실했고, 몇몇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유휴공간으로 남은 채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때 2500여 명이 넘었던 초등학교 학생들은 90여 명으로 줄었으며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쪽방촌 등도 현재는 사라졌다. 대신 팔복동에는 찬란했던 산업화 시대를 증명하듯, 공장의 폐수와 매연 등으로 극심해진 환경오염만이 남았다.

팔복산업단지 재생과 팔복예술공장

팔복예술공장 메인 조감도, ⓒ중도일보

오랜 기간 방치되었던 유휴 공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문화 재생 사업을 시작하며 폐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시작은 카세트테이프를 만들던 ㈜쏘렉스의 공장에서 시작되었다. 카세트테이프가 대중화되었던 1979년 가동을 시작해 아시아 곳곳으로 수출까지 하던 회사였지만 CD 시장의 성장과 맞물려 사업이 쇠퇴하다 1991년 운영을 멈춘 곳이었다.

 

카세트테이프 공장은 문화 재생 사업을 거쳐 팔복예술공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테이트 모던을 롤모델로 삼아 기존의 건물을 허물지 않고 녹슬고 색이 바랜 건물 외벽에 철골 구조물을 덧대는 선택을 했다. 곳곳에 놓인 테이블은 공장의 대형 철문을 잘라 만들어졌고, 공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굴뚝에 새겨진 ‘㈜쏘렉스’라는 글자는 지우지 않고 남겨 두었다.

카페 써니 , ⓒ인천일보

팔복예술공장은 2개의 단지로 구성되었다. 1단지는 예술창작공간으로 창작 스튜디오와 전시장, 연구실, 커피숍, 옥상놀이터 등이 있다. 창작 스튜디오에는 13명의 작가가 상주하며 직접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거나 시민과 관광객에게 예술 교육을 진행한다. 또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커피숍이다. ‘써니’라는 이름을 가진 커피숍은 지역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인근 주민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름 써니는 옛 공장인 ‘썬전자’의 썬과 노동운동 소식지 ‘햇살*’에서 따온 이름으로 근로자와 시민들이 회의장 등으로 이용할 수 있는 탈경계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팔복예술공장으로 조성된 공장은 원래 썬전자(현 쏘렉스)라는 카세트테이프 공장이었는데, 썬전자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노동운동의 가장 긴 투쟁지로 알려져 있다. 1989년도에 약 400여 일간 파업하며 그 기간 ‘햇살’이라는 간행물을 만들어 파업 일지와 소식을 담아 자신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외부인들에게 알렸다.

내년 6월 개관할 예정인 팔복예술공장 2단지는 ‘전주 꿈꾸는 예술터’라는 이름의 예술교육공간으로 꾸며진다. 1단지와 2단지는 컨테이너 박스 7개를 개조한 구조물로 구름다리 형태를 만들어 이었다.

천 명의 마음을 그리는 예술공장

 

그러나 팔복예술공장이 단지 산업화의 유물을 재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도시재생 사업이 공간을 먼저 만들고 콘텐츠를 채우는 방식이었다면, 팔복예술공장은 공간 이전의 콘텐츠를 먼저 고민했다.

 

1. 공동체의 회복과 환경 회복

2. 공장 속의 섬

3. 전통문화도시 전주에서 팔복예술공장의 정체성은?

4.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5. 운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존재하고 있지만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장소와 공간을 회복시키는 작업은 쉽지 않다.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한 후 프로그램을 짜는 기존의 보편적인 방식으로는 잊힌 장소를 재생하기 어렵다는 것이 황순우 팔복예술공장 총괄디렉터의 결론이었다.

© 전주문화재단

“재생은 기억에서부터 온다고 본다. 1년 동안 공간을 설계하지 않고 기억을 재생시키는 작업, 참여하게 하는 작업, 예술가를 통해서 그 공간을 다시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을 했다. 물리적인 것은 맨 마지막에 했다. 아무리 물리적인 재생을 해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굉장히 많은 시간, 사람, 사건, 내용 속에서 만들어진 장소에서 그것이 사라졌는데 공간만 잘 만들어놓는다고 장소가 회복될까? 장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되짚어야 한다.” 

– 황순우 팔복예술공장 총괄디렉터, arte 인터뷰 中

 

그래서 그는 설계를 미루는 대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 속 팔복산업단지의 모습을 찾아 나섰다. 이곳이 어떤 장소였고, 여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함께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장소적 맥락을 찾는 아카이브 작업이 선행되었던 것이다. 또한 주민과 시민, 전문가 등 분야별로 10~15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누는 라운드테이블(팔복살롱)을 진행하며 앞으로 팔복예술공장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지, 이곳에 어떤 콘텐츠를 채울 것인지 함께 토론하고 인터뷰했다.

 

arte365 인터뷰 기사 보기) 기억의 재생으로부터 새로움에 이르기까지, 황순우 팔복 예술공장 총괄기획자

© 팔복예술공장 페이스북

‘천 명의 얼굴과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1년 가까이 진행된 프로젝트는 공간의 성격과 운영 방향을 결정지었다. ‘예술의 힘이 작동하도록 예술 하는 곳’이라는 대원칙 아래 다섯 가지 세부 원칙들이 정해졌다.

 

1. 예술을 하는 ‘곳’

2. 공원으로서의 건축: 예술놀이터

3. 예술가와 함께 

4. 주민과 함께

5. 보존을 위한 철거

 

그리고 마침내 예술공장이 설계되어 설립되는 과정에도 인터뷰를 통해 도출된 다섯 가지 원칙이 반영되었다. 팔복예술공장이 뜻하지 않은 장소이자 일상에 ‘덤’이 되는 비일상적이고 낯선 공간이 되어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각자의 편견을 깨고 실험과 창작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지역을 이끄는 네모의 변화 

 

서울에 대부분의 문화 자원이 집중된 상황에서, 지방 도시에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공간이 등장하고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컨텍스트(context)가 없는 핫플레이스는 반짝인기에 그칠 뿐이다. 한 지역 내에서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상호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공간 안에 지역이 가진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다.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빠르게 성장해온 한국에서는 도시재생조차 ‘속도전’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형적이고 비상식적인 문제들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파괴되고 개인 간의 단절이 생기면서 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오랜 시간 함께 대화를 나누고 지역의 일에 참여하며 미래의 모습을 그려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황순우 팔복예술공장 총괄디렉터는 ‘천 명의 얼굴과 마음’ 프로젝트를 비생산적이고 지루한 작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카이브란 것은 지난하면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팔복예술공장 재생 과정은 지역의 대표자에 의해서만 의사가 결정되거나 관 주도의 사업에서 ‘동원’이라 일컬어지는 행사성 사업이 아닌 누구나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다시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테이트 모던은 그 자체로 하나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빈부격차와 문화적 격차가 심하던 두 지역을 문화예술로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화예술은 그 문턱이 낮다는 점에서 시민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훌륭한 매개체이자 도시를 변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단순한 재생을 넘어, 지역을 변화시키는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