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방치된 철길 동네를 찾은 스타트업과 디자이너들

순환 경제 워킹 빌리지 <Hof van Cartesius>

네덜란드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위트레흐트Utrecht는 활발한 상업 도시이자 철도 교통의 중심지다. 네덜란드에서 문화 행사가 가장 많이 열리는 암스테르담의 뒤를 잇는 작지만 알찬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과 암스테르담 사이에는 복합 비즈니스 및 산업 단지인 Werkspoorkwartier가 있다. 이곳의 중심이던 Werkspoor 공장은 70년대에 문을 닫았지만, 지역 잠재력을 발견한 소규모의 창조적 사업가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지금은 전통 산업체와 레저 복합 단지, 시립 서비스 등이 공존하는 곳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도시를 구성하는 사업가 조직이 너무 영세했던 걸까. 도시를 조직하는 구성 요소와 기반 시설의 느슨한 결속, 일관성 없는 개발, 약화된 커뮤니티 상호작용, 아름답지 못한 도시 경관 등이 문제로 남았다. 이 복잡한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접근 방식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도시화 기획이 필요했다. 이 지역 안에서도 특히 방치된 철길이 놓인 유휴지 Vlampijpzone를 창의적으로 개발하겠다는 위트레흐트 시의 공모전이 등장했고, 많은 팀이 앞다투어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그리고 세 명의 여성 Bianca Ernst, Charlotte Ernst, Simone Tenda는 Hof van Cartesius(이하 HvC)라는 프로젝트로 우승을 거머쥐며, 20년 간 Vlampijpzone을 바꿀 도시 기획자의 삶을 시작했다.

Hof Van Cartesius란?

홈페이지 : http:/hofvancartesius.nl

HvC는 사회적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젊은 스타트업 CEO와 디자이너들, 즉 창조적 사업가들이 폐건축자재로 자신이 쓸 근로 공간을 직접 짓고, 이곳에 살며 공동체 간 협업을 통해 순환 경제 비즈니스를 실행하며 마을을 성장시키는 순환 경제 도시 개발 프로젝트다. 실험적이고 유연한 DIY형 녹색 근로 환경, 그 한자리에 모인 혁신가들이 창조적인 협업을 통해 경쟁력 있는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는 것이 HvC의 틀이다.

분해하고 조립하는 DIY 녹색 근로 환경

HvC는 마당을 중심으로 각종 사무실과 작업 공간 유닛이 둘러싼 파빌리온형 마을이다. 모든 유닛을 쉽고 빠르게 분해하고 조립 가능한 DIY 형태라 전문가나 건설 업체의 도움 없이 입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지을 수 있었다. 필요한 자재는 위트레흐트의 건물을 철거하며 나온 폐자재를 임대로 계약해 사용했다. HvC 프로젝트의 기한인 20년 뒤에는 기자재를 제공자에게 반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HvC 프로젝트의 구심 개념인 자원의 순환 경제로, 유통, 사용, 수거, 재활용, 잔여 폐기물 제거 과정을 거쳐 다시 유통하는 회수 및 재활용 모델을 따르고 있다.

 

마을 건설 초기에는 폐자재를 공급 받을 안정적인 루트가 없었다. 자재를 찾기 위해 시내를 오가며 보낸 시간과 노동도 상당했다. 마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공동체는 아예 건축 자재를 사고 파는 지역 네트워크를 직접 만들어 운영했다. 자재 시장을 공동체와 지역 주민이 함께 이용하면서 수요와 공급은 늘어났다. 네트워크를 오가는 이들이 폐자재 활용법을 공유하면서 집단 지성과 행동력이 생겨나 순환 경제의 동력에 가속이 붙기도 했다. 행여나 새 자재 구입을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HvC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자재가 정말 필요한지, 재활용 가능하고 친환경적인지를 판단해야 회수 및 재활용의 순환 경제 모델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HvC는 노동 생산성을 자극하는 녹색 근로 환경이다. 안마당을 중심에 둔 사용 계획도 그 연장선상이다. 모두에게 개방된 오픈 스페이스이자 도시 농장인 안마당은 공동체가 소비할 로컬 푸드를 만드는 공간이다. 다수의 힘이 필요한 농업 행위는 개인과 개인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지식 교환과 협력 증진을 발생시킨다. 창조적인 협력 역시 마을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동력이다. HvC의 거대한 유리 파사드는 협력 촉진에 제격이다. 건물과 외부를 투명하게 연결하는 유리 파사드는 지역 공동체와 벽 없는 상호작용을 장려하고, 공동체 내에서도 소통과 협업을 보다 쉽게 시도할 수 있도록 열린 분위기를 조성한다.

마당, 정원, 코워킹 스페이스 등 마을의 모든 공간은 입주민 공동체 뿐 아니라 도시 주민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공간에 대한 이들의 니즈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기 마련이다. HvC는 분해하고 조립하는 DIY형 건물이기에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추가 비용 없이 손쉽게 공간을 바꿀 수 있다. 또한, 마을 자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도록 재조립할 수 있는 완전한 유기적 마을이기도 하다. 대도심 한가운데건, 풀숲 사이건 상관 없다. 이처럼 공동체의 유연한 행동력과 창의적인 해결력을 향상시키는 유기적인 공간은 창조적인 도시로 향하는 상향식 개발의 주춧돌인 셈이다.

젊은 사업가로 똘똘 뭉친 혁신 공동체, 새로운 순환 경제 비즈니스를 만들다

HvC에 입주민들의 직업은 굉장히 다양하다. 도시 기획자, 교육자부터 목공사, 제빵사, 맥주 브루어, 사진가, 공예가, 큐레이터, 패션 디자이너, 그래픽/웹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게임 개발자, 태양전지판 설비자, 의료기기 스타트업 CEO 등 직종을 불문한 공동체 구성이다. 젊은 창조적 사업가들은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졌지만, 혁신적인 비즈니스와 지속가능한 사회의 결합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꿈꾸는 점에서 끈끈한 연대감과 사명감을 공유한다.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던 젊은 혁신가들이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순환 경제 활동을 함께 연구하는 창조적인 협력은 공동체 내부의 힘을 강화했다.

 

가령 나무와 금속을 다루는 디자이너는 폐자재를 활용해 마을에 필요한 친환경 비품들을 직접 만든다. 지역의 맥주 브루어리에서 나오는 효모 찌꺼기로 빵을 구워 파는 제빵사의 베이커리는 공동체와 지역 주민에게 인기다. 교육자는 안마당의 채원에 지역 어린이를 초대해 환경 워크샵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역 공동체와 상호작용하는 역할을 맡았다. 역량은 다르지만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을 실행하는 것은 공동체가 함께한다.

HvC에 입주한 창조적 사업가들은 일반적인 코리빙 스페이스와는 다른 HvC의 녹색 근로 환경 속에서 의식주를 함께 하며 협업의 기회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자신들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서, 비즈니스 협력 뿐 아니라 마을의 성장을 위한 전반적인 유지 관리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HvC 공동체는 꿈을 성실하게 건설하는 사업가이자, 공동체와 마을 전체를 건설하는 디벨로퍼다.

Community-run circular working village

순환 경제로 만든 DIY 녹색 근로 환경,

이곳에서 뭉친 혁신가 공동체의 새로운 순환 경제 비즈니스

사실 순환 경제의 이점과 환경에 끼치는 영향력을 알고 있는 기업과 정부의 수는 적지 않다. 하지만 이를 현실적인 이익 활동이나 정책에 반영하기엔 녹록치 않은 현실이다. 기존의 기업 활동과 정부 정책은 대개 쓰고 폐기하는 단선형 경제를 기반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 공장이 떠난 빈자리를 소규모의 창조적 사업가의 대거 유입으로 채운 위트레흐트는 특유의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순환 경제를 잘 소화할 수 있는 도시 구성원과 함께 창의적인 도시 개발을 기획할 수 있었다.

 

HvC의 프로젝트 기한은 20년이다. 20년이 흐른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도시 개발에 있어 시당국의 전통적인 역할이 HvC 프로젝트에서는 붕괴됐다. 위트레흐트 시는 그저 HvC의 성장 과정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지원할 뿐 기획, 운영, 감독, 관리 중 어느 것도 담당하지 않는다. 기존의 개발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협력자와 조율하며 순환 경제형 도시를 구성하는 HvC 프로젝트는 이전에 관찰되지 않았던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스타트업과 디자이너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협력자로 떠올랐다. 사고방식이 멈춰있는 정적 집단과는 정반대의 인적 자원이자 공동체 구성원으로,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위해 자신의 역량과 비즈니스를 발전시켜온 젊은 혁신가들이다. HvC에 모인 이들은 마을이 커질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자 컨트롤러다. 이들이 만든 매력적인 DIY 파빌리온의 사회적 플레이스메이킹Place-making을 마을 공공에 개방함으로써 도시에서 존속할 수 있는 자생력 역시 획득한다. 혁신적인 마을이 공공과 연결될 때 발생하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과 멀티미디어 생산도 도시의 진화 과정에 적잖은 보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