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지름 약 157m, 높이 약 112m에 달하는 세계 최첨단 돔 공연장, 스피어(The Shpere)가 지난 2023년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개장했다.
  • 총 3조 원을 투자한 스피어에서는 초고해상도 내외벽 스크린과 16만 개의 스피커, 4D 테크놀로지 등 오감을 자극하는 최첨단 아트앤테크를 만날 수 있다.
  • 다음 장소를 물색하던 스피어 엔터테인먼트는 영국 런던 등이 불발된 뒤, 현재 경기도 하남의 K-스타월드 미사아일랜드에 유치를 추진 중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Las Vegas)에 이목을 끄는 둥그런 건물이 등장했다. 지난 가을, 공식 개장한 공연장, 스피어(Sphere)다. 기획에서 완공까지 총 7년이 걸린 이 건물은 팬데믹 탓에 당초 계획보다 2년 더 늦어진 지난 2023년 9월에 문을 열었다. 스피어(구(球))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거대한 돔 모양의 공연장은 마치 하나의 행성처럼 자기만의 소우주를 품은 듯하다.

 

건축에서 돔은 반구형 지붕과 그 속의 텅 빈 곳을 핵심 건축 양식으로 삼는다. 돔(dome)의 어원은 라틴어 Domus(집)에서부터 출발했다. 르네상스 때는 Domus Dei(신의 집)로, 종교적으로 신성한 공간을 지칭할 때 쓰였다. 성당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Duomo와도 관련된 돔이란 용어는 시간이 지나며 신의 권능과 신성함을 상징하는 포괄적 의미로 쓰이게 됐다. 특히 둥근 천장은 완전함, 영원함, 천국을 상징하며 기독교에서 창조주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기능했다. 대표적인 돔 양식에는 성 베드로 성당(바티칸), 세인트 폴 성당(런던), 판테온(로마) 등이 있다. 흥미롭게도 공연장 스피어 또한 이러한 돔의 신비를 활용해 공연장이 줄 수 있는 경이로움과 웅장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스피어의 첫 공연자로는 아일랜드 출신 록 밴드, U2가 나섰다. 정식 공연 명칭은 <U2: UV Achtung Baby Live at Sphere>. 2023년 9월 29일부터 2024년 3월 2일까지 총 40회에 걸쳐 진행되는 레지던시 공연이다. 콘서트 이름은 1991년 발매한 그들의 일곱 번째 앨범 <Achtung Baby>에서 따왔다. <Achtung Baby>는 U2의 가장 성공적인 음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모든 걸 버리고,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했다”는 보노(Bono)의 말처럼 이전까지 사랑받던 U2만의 스타일을 전면적으로 분해하고 멤버끼리 치열하게 갈등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오죽했으면 이 앨범이 나오기 전에 멤버들은 해체를 고려할 정도였다. 때마침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멤버들은 동독과 서독이 하나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분단된 나라도 하나가 되는데 정통 록과 실험적인 전자음으로 나눠 극한의 대립을 하는 자신들이 초라하다고 생각했고 다시 의기투합해 역작을 만들었다.

 

U2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밴드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76년 데뷔 이래 누적 앨범 판매량 1억 7,500만 장, 그래미상 22번 수상,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등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단순히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스피어가 자신들의 시작점에 U2를 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U2는 미래주의 커뮤니케이션(futurist communication)을 표방하며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공연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공연업계의 미래라 여겨지는 스피어에서 이들을 첫 공연자로 호명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이다. 이와 관련된 뉴욕타임스의 기사 <U2 Returns, in Las Vegas Limbo>의 리뷰 코멘트를 그대로 빌려오자면 다음과 같다. “스피어가 U2를 선택한 건 일리가 있습니다. 메시아적 공연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메시아적 밴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a messianic band for a messianic venue).”

라스베이가스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스피어 ⓒ Harold Litwiler
벽면과 천장의 구분 없이 펼쳐진 스크린 화면, <U2: UV Achtung Baby Live at Sphere> 현장 ⓒ Rich Fury/Handout/Reuters

투자금 총 3조 원, 세계 최대 규모의 구형 건축물

“당신은 이곳에 와 아이스하키 경기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보노는 애플 뮤직과의 인터뷰에서 스피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대부분의 콘서트장은 스포츠 경기장이다. 경기를 위해 지어졌지, 공연을 위해 지어지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말했다. “(스피어는) 공연 퍼포먼스와 시네마 상영에 최적화돼, 관객의 몰입을 끌어오기 위해 지어졌다.”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라이브 공연의 가치를 절감했다.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공연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그리워 했다. 스피어는 다음의 이유로 공연이 줄 수 있는 경험치를 혁신한다. 첫 번째는 규모다. 공연장의 전체 높이는 약 112m에, 바닥 지름은 약 157m이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의 높이가 약 68m인 점을 고려해 보면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다.

 

공연장 내부 스크린 면적은 15,000m²(축구장 두 배 크기), 외벽 스크린 면적은 53,884m²이다. 국내 최대 상영관인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의 스크린 크기는 약 694m² 정도. 내부 스크린만 비교해 봐도 스피어가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의 약 22배임을 알 수 있다. 내부 스크린은 곡면으로 휘어져 있어 서라운드 효과를 자아낸다. 천장까지 닿은 화면에는 18K 초고해상도 영상이 펼쳐져 마치 보는 이가 영상 속에 존재하는 듯한 환상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세계 최고의 해상도를 자랑하는 이 랩어라운드 LED 스크린은 2억 5천6백만 개의 다양한 색상을 표현해 공연장을 사막, 우주, 공상과학 속 미래 도시, 거대한 캔버스 등 그 어느 것으로도 변모시킬 수 있다.

 

애초부터 경기장이 아닌 공연장으로 기획되었기에 음향에는 더 큰 공을 들였다. 16만 개의 스피커로 어디 앉든 깨끗한 음질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좌석은 총 17,500석. 좌석마다 개별 4D 기계가 설치돼 관객은 진동, 바람, 향기 등 다양한 특수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외벽에는 LED 전등 약 120만 개를 설치해 역동적인 이미지를 플래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 외벽은 광고판, 미디어 파사드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라스베이거스 시내 어딜 가든 눈에 띈다. 최근 국내 게임 회사 넥슨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메이플스토리 대표 캐릭터 IP를 활용한 글로벌 광고를 게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스피어의 건설비는 25억 달러(한화로 약 3조 2,000억 원)다. 참고로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건설하는 데 투입된 돈은 3조 5,000억 원이었다. 단 롯데월드타워는 쇼핑, 비즈니스, 주거, 문화시설 등 다양한 용도가 응집된 복합공간이라면 스피어는 오직 공연·상영 등 엔터테인먼트 목적으로 지어진 단일한 공간이다. 이를 고려하면 스피어 기획사 MSG 그룹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음을 알 수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투자회사 맥쿼리의 애널리스트 폴 골딩은 스피어 경영진은 라이브 공연 부문에서 새로운 표준을 세우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스피어는)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공연을 선보이며, 디지털과 물리적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호평했다.

스피어 내외부를 보여주는 단면 ⓒ Courtesy/Sphere Entertainment Co.
스피어와 세계 주요 건축물 간 높이 비교 ⓒ REVIEW-JOURNAL

3차원과 4차원을 아우르는 공연장

스피어 기획의 중심에는 제임스 돌란(James Dolan)이 있다. 제임스 돌란은 미국의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기업 MSG(Madison Square Garden) 그룹의 회장이다. MSG 그룹은 NBA 뉴욕 닉스(Knicks)와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 NHL 뉴욕 레인저스(Rangers) 등 스포츠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퀸이 공연했던 전설적인 공간 매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과 라디오 시티 뮤직 홀(Radio City Music Hall) 등 여러 경기장과 공연장을 운영·소유하고 있다.

 

사실 제임스 돌란은 HBO 창립자이자 억만장자인 찰스 돌란(Charles Dolan)의 아들이다. 그렇지만 영향력에 비해 늘 좋은 평판만을 얻은 건 아니다. 여담이지만 닉스의 구단주로서 20여 년간 저조한 성적을 낸 팀의 성적표 탓에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한 일화가 있다. 스스로를 33년간 닉스의 골수팬이라고 소개한 한 유저가 이베이에 닉스에 대한 팬심을 경매에 부친 사건이다. 팬은 돌란과 함께한 17년을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표현하며 “닉스 대신 입찰자가 지정하는 팀을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낙찰가 3,450달러에 LA 레이커스(Los Angeles Lakers)의 팬이 된 그는 “제임스 돌란은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수치”라는 말을 남기고 닉스로부터 탈덕했다.

 

스포츠 분야에서의 악명과는 별개로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의 그는 선구안을 지닌 사람으로 평가된다. 제임스 돌란은 스스로를 음악가라 소개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커리어 초기에는 음악 분야에서 경력을 쌓기도 했다. 어느 날 지구 모양의 공연장을 스케치하던 그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재창조하겠노라고 결심한다.

 

2018년 뉴욕, 제임스 돌란은 스피어 초기 구상 계획에서 “외벽을 통해 3차원(3D)으로 표현되는 공연이 가능하게 하고, 내부엔 4차원(4D) 체험을 할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스피어의 컨셉을 밝혔다. 그는 “공연장은 더 이상 관람하는 장소가 아니라, 참여하는 곳”임을 명시하며 “아티스트와 팬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킬 것 (revolutionize)”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스피어를 관객 별로 최적화된 오디오와 초고해상도 영상을 제공하는 지능형 공연장(intelligent venue)으로 거듭나게 할 거라고 밝힌 셈이다.

스피어를 기획한 MSG 그룹의 회장 제임스 돌란 ⓒ The New York Times
경기도 하남시 미사아일랜드에 들어설 K-스타월드(예상 조감도) [출처] 경기일보 ⓒ 하남시

그렇다면 스피어를 구상하게 된 그의 영감은 어디서 왔을까? 제임스 돌란에 의하면 <화성 연대기> 작가로 유명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단편 소설 <대초원에 놀러 오세요(The Vedlt), (1950)>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60여 년 전 쓰인 SF 소설로, 벽 사방이 아프리카 대초원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놀이방이 배경으로 나온다. 이 공간에서는 아이들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원제는 <아이들이 만든 세계(The World the Children Made)>였다.) 놀이방은 입체 스크린으로 코팅된 벽으로 구성되어 투사되는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까지 모두 생생했다. 마치 지금의 스피어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스피어는 공연의 미래를 재정의한다는 호평을 받으며 런던, 두바이, 리야드 등 세계 주요 도시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경기도 하남에 스피어가 지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하남시 미사아일랜드에 K-스타월드가 조성될 계획인데 여기 들어설 전망이다. K-스타월드는 미사아일랜드 약 90만m² 부지에 3조 5,000억 원을 투자 유치해 K팝 전용 공연장, 영화 촬영 스튜디오, 테마파크 등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 조성 프로젝트다. 미사아일랜드는 강남에서 15분, 인천공항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최적의 교통 네트워크와 한강수변 등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다. MSG 스피어의 데이비드 스턴(David Stern) 부회장은 “K-스타월드 조성사업은 우리의 계획과 잘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하남시가 추진하는 K-스타월드 프로젝트가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과 같은 만큼 MSG 스피어만의 유니크한 콘텐츠와 결합된다면 큰 효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나친 몰입은 사유의 공간을 남기는가?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한 아동심리학자는 놀이방이 아이들에게 이롭지 않다고 부모들에게 경고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더 이상 놀이방을 이용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치 오늘날 게임 중독과 그를 둘러싼 담론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아이들은 놀이방을 폐쇄하려는 부모들을 오히려 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가상현실에서 만들어 낸 상상의 존재를 동원해 부모를 살해한다. 섬뜩한 결말이다. 작가가 경고한 것처럼 말이다.

 

놀이방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충족시켰지만 동시에 사유와 성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몰입을 통해 현실을 초월하게끔 만드는 스피어도 그 영감의 원천과 유사하다 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CNN 칼럼니스트 홀리 토마스(Holly Thomas)가 쓴 칼럼 <스피어는 주요한 질문을 제기한다(The Sphere raises an important question)>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U2의 공연을 관람하고 난 뒤, 스피어가 마치 휘핑크림과 캐러멜 소스를 곁들인 화이트초콜릿 프라푸치노와 동일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도파민의 광분(dopamine frenzy)을 불러오는 이 공연장은 우리에게 더 큰 자극에 대한 탐닉과 중독을 불러온다. 그는 스피어를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에 비유한다. “콜로세움은 당대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건설된 게 아니다. 주의를 산만하게 하려고 건설되었으며 그곳에서 열리는 글래디에이터의 혈투는 시민들이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 밝히며 “스피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즐겁게 하려고 함(entertain)이 아니다. 우리를 집어삼키기 위함(engulf)”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그의 코멘트는 다가오는 엔터테인먼트의 혁신과 환상 앞에서 우리가 늘 유념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