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용어, 브랜딩은 모든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자 기업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가치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브랜드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할 필수 절차가 되었다. 그런데 브랜딩이 정확히 무엇일까? 생각보다 여러 기업이 제품 경쟁력보다 SNS 홍보나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을 브랜딩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브랜딩은 과연 부족한 제품력을 감추기 위한 상술에 불과할까?

 

용어의 정의가 애매모호하고 많은 신생 기업이 오용하거나 남용한다고 해서 브랜딩의 가치가 무의미한 건 아니다. 제품력의 결함을 가리기 위한 빛 좋은 개살구처럼 취급하는 것도 지나치게 비관적인 시각으로 보인다. 우리는 제품력을 담보하고 있으면서도, 제품력 강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소비자에게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재제작해 홍보하는 여러 기업을 알고 있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품질과 신뢰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분야인 식음료(Food & Beverage) 기업들은 제품력을 담보한 상태에서 브랜딩을 통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시키고 있다.

우연이 시작하고 곰표가 완성한 브랜딩

1952년 인천에서 설립된 대한제분은 밀가루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백곰을 로고로 설정했다. 이후 1955년, 산하 브랜드 곰표를 출시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곰표가 탄생했다. 곰표는 장수 기업이지만 기업에 밀가루를 납품하는 형태, 즉 B2B(기업간거래)로 매출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에게는 잊혀 가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2017년 가을 곰표에서는 브랜드전략 TF팀을 결성하고 곰표를 새롭게 브랜딩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다소 뜬금없게도 브랜딩 전략이 처음 효과를 발휘한 것은 자사의 밀가루 제품이 아닌 티셔츠였다. 2017년 12월, 슈퍼주니어 멤버 신동 씨가 공항에서 곰표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공교롭게도 이 티셔츠는 상표를 무단 도용한 표절 제품이었다. 그러나 대한제분은 곰표 로고를 무단 도용한 4XR라는 빅 사이즈 전문 티셔츠 제조 회사에 책임을 묻는 대신 협업을 제안했다. 그 결과 2018년 7월, 다섯 종류의 곰표 티셔츠가 출시되었고, 순식간에 완판된 후 SNS에 구매 인증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곰표 티셔츠 성공 이후, 대한제분은 CGV 왕십리에서 열흘 동안 곰표 밀가루 포대에 팝콘을 담아 매일 100개 한정으로 판매하면서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곰표 팝콘의 열풍을 본 BGF리테일의 러브콜 받은 곰표는 CU와 협업해 곰표 오리지널 나쵸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콜라보 성공 흐름 속에서 곰표는 자사 제품인 밀을 활용해 곰표 밀맥주를 출시했다. CU에서 독점 판매한 곰표 밀맥주는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맥주 부문 매출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팬덤을 구축하며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을 타깃으로 삼은 곰표의 새로운 브랜딩 전략은 생각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소 우연한 방식으로 주목받았던 곰표는 그것을 기회로 삼아 잊혀 가던 오래된 브랜드에서 가장 젊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기업의 정체성인 밀을 활용한 다양한 곰표 콜라보 제품들은 브랜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오래된 브랜드를 젊은 세대를 위해 새롭게 구축한 성공 사례일 것이다.

곰표 후라이드 오징어튀김 Ⓒ 곰표하우스
곰표 레트로 에코백 Ⓒ 곰표하우스

풀무원이 만든 MZ를 위한 지구식단

브랜딩의 핵심이 되는 ESG(Eco, Social, Governance) 경영은 기업에게 이제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요소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이제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할 때만 제품을 구입한다. 따라서 기업이 지속 가능한 제품을 생산하는지, 이것이 과연 바른 제품인지에 대해 소비자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풀무원은 주목할 만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풀무원은 이미 2015년부터 건강에 좋은 것이 곧 환경에도 좋다는 슬로건 아래 건강한 먹거리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풀무원의 바른먹거리 캠페인이 ESG 경영 가치와 궤도를 함께한다는 인식을 따로 심어줄 필요가 없다.

 

풀무원 바른먹거리의 시작에는 옹고집 시리즈가 있다. 풀무원의 옹고집 시리즈는 무공해를 강조하는 건강식품의 시초가 되는 캠페인이다. 1981년 5월 채소가게에서 출발한 풀무원은 옹고집 콩나물, 옹고집 참기름, 옹고집 두부를 시작으로 “자연 그대로의 건강을 고집합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기업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바른먹거리-풀무원을 브랜드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후로는 풀무원과 바른 먹거리를 동일시하며 소비자에게 풀무원이 추구하는 가치를 각인시켰다. 바른먹거리 캠페인의 일환으로서 “자연을 담는 큰 그릇” 시리즈의 성공에 이어, 자연주의 작가인 이철수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만든 “생명을 하늘처럼” 광고는, 자연과 공존하며 만든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한단 점에서 생명 존중이라는 풀무원의 철학을 일관되게 유지한 시리즈였다.

 

이처럼 과거 풀무원의 광고는 일반적으로 가정의 먹거리를 담당하는 주부들이 주 대상층이었다. 그러나 풀무원은 최근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까지 타깃을 넓히며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는 중이다. 풀무원의 지속가능식품 전문 브랜드 지구식단은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6일까지 성수동의 와인 큐레이션 플랫폼 위키드와이프와 협업해 지구식단플랜트바를 운영했다.

 

식물성 제품을 재료로 활용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면서, 환경 보호를 위한 채식 위주의 식단이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단 것을 보여준 이 팝업스토어는 자연스레 풀무원이 지향하는 가치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활발한 SNS 홍보를 통해 젊은 층이 다수 유입된 이번 캠페인은 지속가능식품을 기업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풀무원의 일관된 가치관을 성공적으로 드러냈다. 지구식단에는 식물성 제품을 판매하는 식물성 지구식단뿐 아니라 동물복지의 가치를 지향하는 동물복지 지구식단도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육식이 필수라면 적어도 지속 가능한 육식을 지향해야 한다는 최근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풀무원은 1980년대부터 생명 존중과 자연과의 공존을 브랜드 핵심 가치로 추구했으며, 이러한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브랜딩을 통해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지속 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자연에게 유익한 것이 모두에게 건강한 것이라는 풀무원의 가치에 누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공간에서 답을 찾은 누데이크

인스타그램만 봐도 알 수 있듯 현재 서울에서 가장 핫한 카페는 단언컨대 누데이크일 것이다. 하우스도산의 지하 1층에 위치한 누데이크는 젠틀몬스터가 런칭한 카페이다. 누데이크는 New/Different/Cake라는 단어들을 조합해 만든 단어로, “Making New Fantasies Through Artistic Dessert”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누데이크는 슬로건에 걸맞게 말 그대로 예술적인 디저트를 선보인다. 이상하고 기괴하게 생긴 예술적인 케이크들은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평일 오후 3~4시에도 웨이팅이 필수일 정도다.

 

일부에서는 누데이크를 인스타 감성 카페로 거칠게 요약하지만, 이것은 절반만 타당한 진술이다. 누데이크가 인스타 감성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무엇이 인스타 감성 카페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답은 젠틀몬스터와 누데이크가 브랜드 전개의 핵으로 삼고 있는 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

 

누데이크는 젠틀몬스터가 런칭한 카페라는 점에서 편집숍 혹은 팝업스토어로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하우스 도산점 중앙에 설치된 미디어 작품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디저트들은 마치 선글라스와 머플러와 같은 패션 잡화처럼 전시되어 있다. 먹고 마시는 단조로운 공간으로서의 카페 너머에 전시장과 같은 누데이크만의 공간이 있다.

 

젠틀몬스터와 유사한 인테리어 구조 또한 누데이크를 새롭게 만든다. 카페인지 편집숍인지 구별하기 힘든 인테리어는 소비자에게 감각적인 인상을 남긴다. 디저트의 맛 또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진한 맛이라고 평가받는데, 이는 “100명이 50퍼센트를 즐기고 가는 것보다 50명이 100퍼센트를 즐기고 갈 수 있는 방향을 선택”했다는 기획 방향에 따른 결과다.

 

최근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뉴진스(NewJeans)가 싱글 앨범 발표를 앞두고 누데이크와 협업한 팝업 스토어인 OMG! 누+진스(NU+JEANS)를 오픈한 배경에는 누데이크의 감각적인 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저 인스타 감성 카페로 일축되기엔 누데이크의 공간 브랜딩 전략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인스타 감성 카페는 수없이 많지만, 누데이크만큼 성공을 거둔 카페는 드물다. 예쁜 케이크에 집착하지 않는 기괴하고 파괴적인 케이크 디자인으로 성공을 거둔 누데이크의 브랜딩 전략은 단순히 인스타 감성에 기댄 요행은 아닐 것이다.

도넛 시장에 새로운 모범답안이 된 노티드

노티드, 다운타우너, 리틀넥 등등의 F&B 브랜드를 운영하는 GFFG는 F&B 영역에 명확한 비주얼을 입혀 성공한 기업이다. GFFG가 운영하는 많은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카페 노티드(knotted)는 2017년 도산 공원에 오픈한 지 5년 만에 12개의 매장을 런칭했다. 던킨과 크리스피도넛이 장악하고 있던 도넛 시장에 이렇다 할 광고 없이 오직 입소문을 통해 성공한 노티드는 던킨과 크리스피도넛과는 다른 방향으로 도넛을 브랜딩하기 시작했다.

 

동심을 테마로 아기자기한 캐릭터 도넛을 선보인 노티드는 MZ세대를 빠르게 매료시켰다. 매장 또한 도넛의 컨셉에 맞게 귀여운 인테리어로 꾸며 디자인/플레이팅/인테리어 모두를 갖춘 도넛 매장으로 평가받으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모든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해 균일하게 유지한 도넛의 맛 또한 성공 비결이었다. 도넛의 필링을 부드럽고 달달하게 채움으로써 보다 대중적인 맛을 구현한 노티드는 테이크아웃 또한 용이하게 만들어 매장 앞에 고객들을 줄 세우는 것에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상권이 아무리 좋더라도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상권에는 진출하지 않겠단 GFFG의 운영 원칙을 통해 로컬과 브랜드의 결합과도 성공했다.

 

노티드는 이니스프리, 스파오, 롯데제과 등과의 콜라보를 통해 노티드만의 아기자기함을 간직하면서도 도넛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콜라보를 통해 마케팅 성공으로 이끈 노티드는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자에게 노티드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렇게 노티드는 F&B 분야에서 제품력을 담보한 브랜드가 훌륭한 브랜딩을 덧입는다면 어떻게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

모두가 브랜딩을 외치는 시대에서 나만의 브랜딩이 주목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좋은 브랜딩이란 명확히 존재한다. 기업의 핵심적인 틀은 일관되게 유지하면서도 브랜드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재제작한 위의 성공 사례들은 브랜딩의 힘을 보여준다. 고객이 브랜드를 보았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성해 나가는 것이 브랜딩이라면, 브랜드는 단순히 그럴싸한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 정교한 방식으로 브랜드의 노선을 명확히 할 때만 소비자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분명히 파악하고 브랜드에 감화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