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어셈블 Assemble

 

공간을 넘어 사람까지 바꾸는 18명의 터너상 수상자

유휴공간의 잠재성을 실험하고, 창의적인 공동작업을 통해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예술가 그룹

사람은 목적을 세우고 그에 맞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거나 기존의 공간을 바꾼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상업성과 공공성 사이의 갈림길은 많은 고민을 낳았다. 결정의 결과에 따라 도시와 사회는 각각의 목적에 충실한 공간의 생태를 만들어냈다. 공간 생태는 그곳을 오가는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네트워크를 가지며 유기적인 흐름을 갖게 된다.

 

특히 그것이 공공성을 띄고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공적 요소를 활용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게다가 그 공간에는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능력 있는 인재들이 포진해있다. 사람들은 함께 공간을 누리며 새로운 힘을 만들어낸다. 공간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크고 작은 변화 가능성을 불러온다. 결국 공간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들 그 누구도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예술도 그렇게 반응해야 하고, 우리도 계속 변화해야 한다.”

루이스 슐츠, Assemble 멤버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청년들이 모인 그룹

 

이런 공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청년 18명이 있다. 예술, 건축, 디자인, 도시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간 20,30대 청년들로 구성된 예술가 그룹으로 공간에 사회적 맥락과 공공성을 참신하게 결합하여 지역사회와 공간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2015년 터너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셈블은 아카데미, 주택, 임시 무대, 식당, 갤러리, 공공장소, 사무실, 놀이터, 축제 등 지역 사회와 연결된 거의 모든 공간 프로젝트를 마치 놀이처럼 다룬다. 그들의 근원적인 작업동기는 ‘도시만들기 과정에서 대중의 배제를 극복하는 것’으로 도시 재생과정에서 지역과 사람의 유기적 관계, 그들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는지 조명하는 것이 어셈블의 특별한 능력이다.

 

어셈블이 바꾼 공공의 공간 속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것이든 탐색하며, 배우고, 움직이고, 직접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변화한다. 어셈블은 보다 많은 사람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역주민들이 참여자이자 협업자가 되기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며, ‘터너상 수상자’라는 수식어로는 이제 더이상 이들을 대표할 수 없을 만큼 세계 곳곳의 공간과 사람을 바꾸고 있다.

[Case Study]

1. Granby Four Streets

2. The Cineroleum

3. Blackhorse Workshop

Case 1. Granby Four Streets

 

어셈블이 터너상 수상자로서 일약 유명세에 올라탄 것은 철거 위기에 놓였던 리버풀의 노후 공공 주택단지를 개조한 <Granby Four Streets> 프로젝트 때문이다.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호황을 누렸던 리버풀의 번화가 그랜비 스트릿은 대량 실업과 가난에 이어 폭동까지 발생하며, 1981년 이후 황폐한 거리로 전락해버렸다. 그랜비를 되살리기 위해 거리에 남은 소수의 주민들이 어셈블을 찾아왔고, 어셈블은 주민이 스스로 창의적 생산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재생된 그랜비를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어셈블이 꺼내든 카드는 문화와 예술이었다.

문화 예술을 결합하기 이전에, 공간 재생의 초점은 사람이었다. 주민이 어떤 공간을 원하고, 이들이 할 수 있는 훈련과 사회적 행동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정기적으로 워크샵을 열어 의견을 적극 수용했다. 오래된 집을 수리하거나 정원과 시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손은 주민을 고용했고, 재생된 공간의 관리와 운영도 주민에게 맡겼다. 공사 후 나온 폐건축자재는 공예품과 재활용품을 만드는 워크샵의 수업 재료로 더할 나위 없었다. 주민들은 마을을 건설하는 능력과 공예 기술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그랜비는 어셈블이 공간의 주인인 주민들과 함께 구축한 도시 재생 공간이다. 다만 어셈블이 한 것은 주민들이 예술과 기술을 배워 경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일종의 자립적인 커리큘럼을 갖추고, 도시 재생 공간이란 목적에 적합한 사회적 생산 활동을 가능케 만든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과 SNS로 주민들이 만든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수익 구조를 갖춘 뒤, 이렇게 얻은 수익을 지역 주민의 고용과 훈련 사업에 투자해 지역 사회와의 파트너십도 강화했다. 문화 예술을 통한 새로운 고용 기회의 창출, 그리고 주민들이 문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해 창조적인 공동체를 탄생시켰을 때 지역 사회가 얼마나 자립성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그랜비 워크숍

 

‘그랜비 워크숍’은 강력한 커뮤니티 기반 사업으로 자리잡아 주많은 아티스트와 협업을 진행하며 <2018 베니스건축비엔날레>, <2018 런던디자인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현재까지도 지역 재건축에 기여하고 있다. 그랜비 워크숍은 주택 보수공사 과정에서 배출된 폐건축재료를 활용하여 지역주민들이 타일, 인테리어 소품을 제작하고, 이를 판매한 수익을 고용과 학습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재투자 활동을 펼치고 있다.

Case 2. The Cineroleum

 

흉물로 버려진 영국의 폐주유소는 자그마치 4천여 개.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Cineroleum> 프로젝트는 어셈블이란 그룹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2010년, 클러큰웰Clerkenwell의 폐주유소를 임시 영화 극장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 시작점이었다. 값싼 산업재와 기증 받은 자재를 백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손으로 다듬고 합쳐가며 재생, 활용, 저비용으로 거리의 영화관을 리모델링했다.

 

대도시에서 쉽게 마주하는 멀티플렉스의 대기업 상영장과 달리, 어셈블의 영화관은 오래된 방송국의 팝콘 머신과 미니 바를 갖추고 고전 영화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사람들은 폐학교에서 가져온 학생 의자에 앉아 상영 시간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맛본다. 문화와 예술이 주는 기쁨을 찾기 힘든 도시의 대로변에 위치한 시네롤리움은 현실에서 벗어나 영화가 주는 감정과 상상력의 소중함을 관람객에게 선물한다.

Case 3. Blackhorse Workshop

월섬 포레스트Waltham Forest에 위치한 블랙홀스 워크숍Blackhorse Workshop은 책 대신 갖가지 연장을 빌려주는 일종의 공구 도서관이다. 지역 주민들의 창의적인 생산을 독려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중 참여를 조성하기 위해 나무와 금속을 다루는 현지의 전문 기술, 도구, 공간 일체를 제공한다. 워크숍의 대상은 공구를 쓰는 모든 이들이다. 가구 제작자, 건축가, 제품 디자이너, 가죽 세공인, 금속 세공인, 자전거 제작자 등 공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전문가, 사업가, 소규모 기업, 개인 애호가 모두에게 교육과 작업의 기회를 주는 것이 목표다.

 

널찍한 마당과 거대한 2층 규모의 공간은 기존의 공간 파티션을 재구성하고, 초기에 건설된 맥락에 맞춰 2개의 공간을 새롭게 추가했다. 워크숍이 가능한 작업 공간은 물론이고 Ma-tt-er 단체가 운영하는 교육 공간과 재료를 다루는 라이브러리도 작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리셉션, 베이커리 겸 카페, 브루어리는 지역 사회에 공공으로 개방시켜 주민들이 공동체에 유기적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모든 공간은 재활용 가능한 산업재 및 기성품, 혹은 손으로 제작한 자재들로 구축해 경제적이면서도 실용적이고 개성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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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작업도 가능하지만, 목각 수업이나 악기 제작 등 나무와 금속을 다루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워크숍도 진행한다. 이곳은 사람들이 창작과 생산에 대한 고무적인 열정을 심어주는, 대체 불가능한 공간이다. 사람들은 도구의 제약 없이 마음껏 창작 활동을 펼치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보다 쉽게 성취를 달성한다. 다른 창작자들과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형성하는 창의적 네트워크는 새로운 기법과 재료 활용을 협업해 참신한 프로젝트를 탄생시킨다. 말 그대로 집단지성의 공간이다. 블랙홀스 워크숍이 열린 이래 현재 모든 사람들이 공실 없이 다양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어, 성공적인 공간 운영 사례로 꼽힌다.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공간을 만드는 

철학과 가치 

예술, 건축, 디자인을 다루는 18명의 그룹 어셈블. 이들은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구조로 이해하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자재로 지속가능한 건축을 설계한 뒤, 그 공간의 요소를 활용할 공동체가 어떤 방식의 지속가능한 자발적 삶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기존의 공간이 가진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어셈블이 꺼내든 카드는 문화와 예술이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교육은 사람들에게 창조적인 작업에 대한 열망을 심어준다. 창조적 작업을 수월하고 즐겁게 해낼 수 있는 공간에서라면 열망은 성취로 실현된다. 어셈블은 그 공간의 바탕을 만들어 결국 사람을 바꾸는 뛰어난 창작자들이자 예술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