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10, 20년 사이에 전자상거래의 개념은 사라지고 ‘신(新)유통’만 남게될 것이다.
2016년 10월,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미래의 5개 트렌드(신유통, 신제조, 신금융, 신기술, 신자원)를 언급하며 한 말이다. 그 중 현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고 자주 회자되고 있는 개념은 ‘신유통’으로, 디지털을 미래의 국가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겠다고 천명한 시진핑 주석의 뜻과도 맞닿아 있다.
마윈이 언급한 ‘신유통’은 온/오프라인과 물류가 결합하여 새로운 유통 패턴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요즘 자주 화제가 되고 있는 O2O(Online to Offline)가 이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 최근 십 수년간 오프라인 유통을 대체할 대안으로써 주목 받아왔던 전자상거래가 이제는 ‘구식’이라 불렀던 오프라인과의 결합하여 ‘신유통’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넓은 영토와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세계 어떤 나라보다 앞으로 전자상거래의 전망이 촉망되는 중국에서, 그리고 중국 제일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라바바의 수장인 마윈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그 배경을 궁금케 한다.
알리바바 ‘신(新)유통’의 배경
사실 중국은 이미 전자상거래 대국이다. 전체 리테일에서 전자상거래의 비중이 25%에 달할 만큼 중국 소비자들은 이미 구매의 많은 부분을 전자상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50% 이상씩 성장하던 중국 전자상거래의 성장률은 2010년대 후반들어 30%선 아래로 떨어지고 있으며, 2020년대에 들어서면 20%선 역시 붕괴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전히 오프라인 리테일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전자상거래의 성장률이 둔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한 의미의 전자상거래의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장 한계는 중국 소비자층의 니즈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초창기 전자상거래의 비즈니스 모델은 매우 단순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중국인들의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고, 80后, 90后(8, 9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들로 소비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전자상거래에서도 점차 품질과 경험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가짜 상품’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자 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심리는 전자상거래의 지속적이고 폭발적인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또한, 중국 전자상거래 플레이어들의 혁신 수준이 상향평준화 되었다는 사실도 이러한 ‘신유통’ 흐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중국 온라인 혁신기업들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에는 알리바바가 거의 유일한 플랫폼 기업이었으나, 최근 ‘징동닷컴’, ‘텐센트’ 등 다른 경쟁사들이 투자 규모와 매출은 물론 혁신 속도 면에서도 빠르게 알리바바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어, 유통 분야에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는 분석이다.
전자상거래에서 ‘신(新)유통’으로
사실, 알리바바는 이커머스를 기반으로한 유통 생태계에 가깝다.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타오바오는 판매자와 최종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며, 고객 증모와 참여하는 판매자의 수가 상호 점층적으로 증가하며 폭발력을 가진다. 알리바바가 고객 경험을 증강시키면 시킬수록 고객의 수는 증가하고, 이 증가된 고객 풀을 보고 더 많은 판매자들이 이 생태계에 참여한다. 따라서 알리바바가 고객 경험 증대를 위한 빅데이터와 AI 등의 기술과 편리한 결제를 위한 핀테크 등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고객의 변화, 시장의 변화라는 외적 환경 변화와, 최종 소비자의 만족에 봉사해야하는 미션에 의해 도출된 온/오프라인 융합 신유통은 알리바바의 당연한 선택지이며, 앞서 마윈이 선언한 바와 같이 알리바바를 필두로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들이 가장 역점을 두고 실행하고 있는 사항이다.
사실 알리바바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이라는 기치 아래, 이미 많은 오프라인 리테일에 투자하며 손에 닿는 고객 경험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7년 초 백화점 체인 ‘인타임 리테일’을 인수한 것과, 같은 해 말 슈퍼마켓 체인인 ‘선아트 리테일그룹’의 지분에 투자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래에 소개할 ‘허마셴셩(盒马鲜生)’과 ‘티몰스토어(天猫小店)’는 알리바바의 ‘신유통’과 가장 부합하는 사례로 꼽힌다. 신속한 배송 시스템이 아니면 유지하기 어려운 ‘신선식품’을 O2O의 영역으로 끌어왔고, 핀테크와 첨단기술 등 알리바바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점조직처럼 분산된 중국 영세 소매점들의 활로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허마셴셩(盒马鲜生)’: 알리바바 핀테크, 물류, 빅데이터, O2O의 총화
‘허마셴셩’은 원래 상하이에서 2015년 창립되어 신선식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스타트업이었다. 이후 알리바바의 전략적 투자를 받아 완벽한 디지털 사업 모델로 자리잡은 허마셴셩은 신선식품, 전자상거래, 모바일 결제, 스마트 물류가 결합하여 ‘신유통’을 가장 잘 구현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2016년 1월 상하이에 1호점을 오픈하였고 2018년 2월 현재 30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허마셴셩은 상품의 신선도를 직접 확인해야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고, 빠른 배송을 통해 신선도를 유지해야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했다. 오직 허마셴셩 앱을 통해 가입한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고, 알리페이를 통해서만 결제가 가능한 배타적 시스템 안에서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장에서의 회원 인증과 결제의 복잡함 없이 쾌적한 쇼핑 경험을 고객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허마셴셩 고객들은 매장에 들러 상품의 신선도를 확인하고 카트에 담거나 QR코드를 스캔하여 즉석에서 모바일로 주문한다. 그렇게 모아진 상품들은 매장 천장의 레일을 따라 쉴새 없이 돌아가는 바구니를 통해 한 곳에 집하되는데, 이렇게 모아진 상품들은 허마셴셩의 자체적인 물류 시스템을 통해 반경 5km 지역에 30분 내 배송을 약속한다.
이렇게 직접 고른 최상의 상품을 신선도가 유지된 채로 빠르게 전달받는 탁월한 고객 경험 때문에, 허마셴셩의 반품률은 다른 온라인 식품 반품률보다 현저히 낮은 1%대에 머물고 있다.
허마셴셩은 그 자체로도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긴 하지만, 그 뒷단에는 상품, 매장, 결제, 배송, 고객이 하나로 묶인 파이프라인이라는 것에 더 큰 의의가 있다. 이미 회원 가입을 한 고객풀과 결제수단을 꽉 쥐고 있기 때문에, 단 한 건의 주문에도 상당한 양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해당 지역 허마셴셩 회원들의 신선식품 취향과 구매 패턴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인사이트를 남기기 때문이다.
‘티몰스토어(天猫小店)’: 중국 내 미지의 영토를 찾아서
허마셴셩이 알리바바의 인프라를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O2O의 영역을 개척했다면, ‘티몰스토어’는 중국 전자상거래의 둔화된 성장을 넘어 어떻게 알리바바의 유통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업 모델이다. 사실 알리바바는 ‘중국의 아마존’이라고 불리지만, 제조부터 판매까지 전 범위의 밸류 체인에 걸쳐 고객 만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아마존과 달리, 중간 판매자들이 커 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애써왔다.
이는 미국과 달리 중국의 커머스가 충분히 선진화 되지 않았던 요인에도 기인한다. 따라서 알리바바는 먼저 낙후된 배송 시스템을 강화하고 알리페이와 같은 결제방식의 혁신에 힘썼으며,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활용, AI와 로봇 기술에 투자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중국에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와 같은 1선 대도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막과 고원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통 환경이 존재한다. 알리바바는 물리적으로 낙후된 환경을 온라인으로 묶고, 알리바바의 플랫폼에 소속된 인프라와 인텔리전스를 제공하여, 단순히 매장과 전자상거래를 잇는 것이 아닌, 전 중국 리테일 시장을 묶으려 한다. 티몰스토어는 이러한 알리바바의 신유통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업 모델 중 하나이다.
중국의 영세 소매점들은 중국 전역에 걸쳐 가장 널리 퍼져있지만 새로운 유통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의 오프라인 유통 역시 선진화가 계속되고 있는데, 한국에서처럼 패밀리마트, 로손 등 글로벌 편의점 체인들이 로컬 상권까지 침투하여 점차 영세 상점들을 위협하고 있다. 깔끔하고 도시인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품을 갖춰놓은 모던함에 기존 영세 상점들의 고객은 점점 더 이탈해 나간다.
이에, 티몰스토어는 로컬 상권과의 상생을 추구하며, ‘풀뿌리 신유통’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알리바바는 현대화되지 않은 영세상점을 상대로 구매, 물류, 마케팅을 지원한다. 상점들은 소정의 보증금과 연간 기술 서비스료(약 70만원 선)를 알리바바에 지불하고, 전체 판매상품의 30%만 알리바바의 B2B 플랫폼 ‘링서우퉁(零通)’을 통해 조달받는 조건만 충족하면 티몰스토어 가입이 가능하다.
링서우퉁은 알리바바와 협력 관계에 있는 모든 브랜드들이 집합되어 있는데, 온라인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충분하다. 또한 알리바바는 기본적인 리테일 운영 인프라는 물론, 빅데이터에 기반한 상권 분석, 진열, 상품 구색, 고객 프로파일링 등 다양한 데이터를 가맹점에 제공하기 때문에, 가맹점들은 글로벌 편의점 체인에 못지 않은 마켓 인텔리전스로 무장할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상반기를 넘긴 시점에 링서우퉁에 가입한 상점은 이미 50만 개를 넘어섰고, 알리바바는 이 숫자를 연말까지 100만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전역에 영세 상점 수의 추정치가 600만개라고 하는데, 이는 얼마나 알리바바가 티몰스토어에 공을 들이고, 공격적인 속도로 확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티몰스토어를 통한 알리바바의 신유통은 공유경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알리바바는 신유통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다. 물론, 유통의 플래그십 스토어 역할을 하는 백화점과 슈퍼마켓 체인을 인수하는 것도 알리바바가 중점적으로 실행하는 분야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 달리 여전히 최신 디지털의 영향력이 모든 중국인들에게 같은 속도로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알리바바가 재래식 유통채널에 관심을 갖고 신유통 생태계 안에 편입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알리바바는 유통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그 생태계에 더 많은 참여자들이 흡수되도록 인프라를 갈고 닦는 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리바바는 로컬에 직영 상점을 열지 않고도 수백만에 달하는 O2O 거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는, 호텔과 같은 고정자산 없이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숙박 체인을 운영하는 ‘에어비앤비’나, 자동차 한 대 없이도 세계적인 택시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우버’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렇게 알리바바는 플랫폼 파워를 활용하여 분산되어 있는 영세 리테일 시장을 하나로 모음으로써 신유통의 활로를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향후 알리바바는, 티몰스토어를 통해 디지털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O2O를 실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거리의 빠른 배송을 통해 고객 경험을 차별화하는 알리바바에게, 티몰스토어는 중국 전역에 걸친 오프라인 물류 허브는 물론 로컬 상권, 고객 정보가 축적되는 데이터 집합소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아직 전국에 걸쳐 물류 신경망이 완성되지 않은 중국의 경우, 전자상거래를 통한 신속한 배송, 그리고 차별화된 고객경험을 완성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수백만 개의 영세 상점을 활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지난 1월 프럼에이에 소개된 ‘요우러’의 사례처럼 말이다.
앞으로의 과제: 물류 첨단화를 통한 고객경험의 완성
실제로 ‘라스트 마일(Last mile) 배송(엔드 유저의 근거리에 물류 허브를 개설하여 고객들의 사소한 편의까지 고려하는 물류 시스템)’은 고객경험을 중시하는 전자상거래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꼽힌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10년 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10년 뒤에도 변치 않을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고객들이 변치 않고 원하는 것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많은 선택지’, ‘저렴한 가격’, 그리고 ‘빠른 배송’. 그 중 앞 두 가지는 아마존은 물론 알리바바를 비롯한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이 이미 상당수준 도달해 있다. 하지만 마지막 ‘빠른 배송’은 로보틱(Robotic) 기술, AI, 드론 등 테크놀로지로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는 영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물류에서의 혁신은 결과적으로 소비자 만족에 크게 기여한다. 최종 소비자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소비자의 요구사항은 다양하고 세분화되기 때문에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를 운영하는 역량 역시 고도화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아마존과 알리바바를 포함한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통해 고객들의 니즈를 선행적으로 예측하고, AI 기술을 활용한 음성인식 단말기를 보급하며, 로봇, 드론 등의 기술을 활용해 신속한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오프라인 거점을 마련하여 라스트 마일 배송이 이루어지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결국 ‘온/오프라인과 물류가 결합하여 새로운 유통 패턴을 만들어간다’는 마윈 회장의 ‘신유통’의 끝은 고객 경험을 향한 끝없는 여정이다. 이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말한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단순히 온라인의 편의성과 오프라인의 고객 경험을 합치는 것만으로 현 시대의 O2O 흐름을 정의해서는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고객이 움직이는 본질적 동인에 주목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중국 시장과 고객의 변화 속에서 주창한 마윈의 신유통이 어떤 미래를 꿈꾸며 도출된 것인지 고민해보고, 알리바바와 그의 경쟁자들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 주목해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