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NASA × MICA의 아스트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메릴랜드 예술대학 학생들이 천문학 데이터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과학적 사실을 감각적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NASA와의 협업 과학 커뮤니케이션 실험이다.
▪ 아트테크하우스와 NASA, PBS가 협업한 <Beyond the Light>와 <Blended Worlds>는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실제 데이터를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구현해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청각적 우주 체험을 제안한다.
▪ 글로벌 사이언스 오페라는 전 세계 학생들이 함께 과학 주제를 공연 예술로 풀어내는 온라인 협업 프로젝트로, 교육과 창작, 공감을 아우르는 STEAM 기반의 글로벌 실험이다.
과학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 흔히 상상하는 풍경은 이렇다. 하얀 실험복을 입은 연구자들, 복잡한 공식이 쓰인 칠판, 냉정한 숫자가 나열된 그래프, 차가운 형광등 아래 빛나는 실험기구들. 이처럼 과학은 주로 데이터와 이해의 언어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과학은 단지 사실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감각하고 상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이 시대의 과학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가 아닌 “우리는 과학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라고.
그리고 이 질문에 가장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응답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예술가, 디자이너, 애니메이터 등이다. 이들은 과학을 단순히 설명하거나 번역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 속에 잠들어 있던 미학, 서사, 정서를 깨워낸다. 천체물리학을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내는 예술대학 학생들, 분자의 움직임을 3D 그래픽으로 재현하는 시각화 스튜디오, 유전자 정보를 노래로 엮는 어린이 오페라팀, 감마선 데이터를 몰입형 공간으로 연출하는 전시 기획자는 과학을 지식이 아닌 체험의 언어로 바꾼다.
이제 과학은 더 이상 실험실 칠판 앞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다큐멘터리의 미장센으로, 오페라의 리듬으로, 몰입형 전시의 빛과 소리로 확장된다. 과학이 예술의 감각적 언어로 옮겨질 때, 우리는 비로소 데이터 너머의 의미를 발견하고 숫자 너머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이해를 넘어선 감각을 통한 공감의 과학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오늘날 과학이 예술과 손을 잡는 이유다.


우주의 언어를 다시 쓰는 법: NASA × MICA <Astro‑Animation>
우주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주 단어에 갇힌다. 블랙홀, 쌍성계, 중력파 등…. 모두 놀라운 개념이지만 그것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건 또 다른 일이다. 천체물리학은 정밀한 수학과 이론으로 움직이는 분야지만 그 상상력의 크기는 종종 예술과 맞닿는다. 바로 그 교차점에서 미국 항공우주국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이하 NASA)는 한 예술대학과 손을 잡았다. 나사와 메릴랜드 예술대학(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이하 MICA)이 함께한 천체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아스트로 애니메이션(Astro‑Animation)에 관한 이야기다.
MICA는 미국에서 오래된 예술대학 중 하나이자 실험적 커리큘럼으로 명성이 높다. 이들은 천체물리학자들과 함께 수년째 아스트로 애니메이션 수업을 운영 중이다. 핵심은 명확하다. 복잡한 과학 개념을 예술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술가와 과학자가 같은 우주를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Goddard Space Flight Center) 소속 과학자들이 멘토로 참여해 학생들을 돕는다. 학생들은 직접 수십 페이지 천문학 논문을 읽고 실제 천문 데이터를 해석하며 자신이 이해한 개념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해 애니메이션 콘티와 시나리오로 설계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천문학자들은 학생들이 과학을 오해하지 않도록 조언이나 피드백을 건네는 동시에 그들의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며 독려한다.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과학적 이미지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천문학적 지식과 예술적 상상력이 대등하게 충돌하며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드는 실험에 가깝다. 교실이 학문과 예술의 문화적 회합장이 되는 순간이다.
아스트로 애니메이션 수업에서 학생들은 블랙홀에서 중력파, X선 쌍성계, 감마선 폭발 등 다양한 주제를 선택한다. 그리고 15주 동안 매주 6시간씩 진행되는 수업 시간 동안 자신이 선택한 주제에 관한 논문과 리서치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각 프로젝트는 스터디 그룹으로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집중하는 지점은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이다. 감정, 분위기, 색감, 리듬 등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해 감각적 공명을 만들어 내는데, 예를 들면 펄사의 주기적 방출을 형상화한 단편 애니메이션은 실제로 사운드 디자인과 함께 연출되어 리듬감을 극대화했고,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 다가서는 입자의 여정을 그린 작품은 고요하면서도 압도적인 규모를 통해 우주의 낯섦을 환기시켰다. 이처럼 과학이 예술을 덧입는 과정에서 과학은 단순한 정보가 아닌 몰입형 경험으로 전환된다.
MICA와 NASA의 협업은 수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매해 여름, 몇몇 학생들은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인턴십 기회를 얻게 된다. 이들은 단순한 디자인 보조가 아닌 실질적인 공동 창작자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NASA의 공식 교육 콘텐츠, 전시, 국제 과학 커뮤니케이션 자료 등에 이들의 작업이 채택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턴십은 단지 작업물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과학적 진실을 책임 있게 다루는 자세를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실제 데이터가 어떤 맥락에서 수집되었는지, 그 수치가 어떤 논쟁 속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데 어떤 윤리가 필요한지를 직접 들여다본다. 이러한 과정은 STEAM 교육의 본질적 목표인 학제 간 융합을 통한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실천을 체화하게 만든다.
빛 너머의 예술: NASA X ARTECHOUSE, PBS <Beyond the Light> & <Blended Worlds>
우주 감각 <Beyond the Light>
허블, 스피처, 제임스 웹 같은 우주망원경들이 보내온 데이터를 본 적이 있는가? 이 데이터가 숫자나 그래프가 아닌, 빛과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떨까? 워싱턴 D.C.의 몰입형 아트 스페이스 아트테크하우스(ARTECHOUSE)와 NASA가 함께한 전시 <Beyond the Light>는 바로 그러한 상상들을 현실로 만든 실험이다. 이 전시는 허블 우주망원경(Hubble),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찬드라 X선 망원경(Chandra), 스피처 적외선 망원경(Spitzer) 등이 수집한 실제 관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이를 360도 몰입형 영상, 인터랙티브 미디어, 공간 음향 시스템과 결합해 전례 없는 감각의 우주를 선사한다. 특히 웹 망원경이 포착한 고해상도 적외선 이미지와 블랙홀 시뮬레이션은 추상적이고 유기적인 시각언어로 재구성되며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운다.
관객은 단순히 우주를 보는 것을 넘어 그 안을 “걷고, 듣고, 반응하는 존재”로 경험한다. 발밑에서 은하가 꿈틀거리고 머리 위로는 성운의 입자가 확장되는 식이다. 이 다중감각적 체험은 우주라는 개념을 지식이 아닌 감정의 차원으로 끌어낸다. 아트테크하우스는 이 전시에 대해 과학적 발견을 문화적 체험으로 번역하는 프로젝트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공공과학의 예술화라는 비전이 숨어 있다.
이러한 과학X예술 콜라보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NASA는 이제 더 이상 숫자와 데이터만을 말하는 기관이 아니다. 아트테크하우스와의 협업은 단지 콘텐츠 확산을 위한 시도가 아니라 과학과 인간 감각 사이를 관통하는 새로운 언어 실험에 가깝다. 이들은 과학 데이터를 오디오비주얼적 감정으로 번역하며 관객에게 이해 이전의 몰입을 선사한다. 그 몰입의 경험 속에서 복잡한 과학은 친근하고 인상적인 체험의 옷을 입는다.
과학의 미학 <Blended Worlds>
2024년, PBS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Artbound》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 이하 JPL)와 협력해 또 하나의 독특한 융합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제목은 <Blended Worlds>, 말 그대로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개의 세계를 섞어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창작의 순간을 추적한 궤적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과학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우주를 사유하는 방식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JPL 소속 연구자들과 협업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한다. 어떤 작가는 화성 표면의 지형 데이터를 소리로 변환하고, 또 다른 작가는 외계 생명체 가능성을 빛의 파장으로 상상한다. 이 모두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는 그들의 작업 과정을 따라가며 데이터와 모델이라는 건조한 언어가 어떻게 감각적 상상력으로 탈바꿈하는지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JPL 연구소 내부를 하나의 “아틀리에”처럼 비춘 시선이다. 과학자가 현미경으로 미세한 변화를 분석하는 장면 위에 예술가의 드로잉이 겹쳐지고 우주선을 테스트하는 진동실에서 아티스트는 그 소리를 포착해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을 설치한다. 모든 공간이 과학적 실험인 동시에 예술적 영감의 공간이 되는 순간, <Blended Worlds>라는 제목의 의미가 완성된다.
이는 단순히 교육적인 효과를 넘어 과학의 공공성과 예술의 사회성을 연결하는 교차점을 만든다. 특히 아트테크하우스나 PBS 같은 문화 플랫폼은 일반 대중이 과학을 어렵거나 무겁지 않게, 오감으로 탐험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Beyond the Light>가 우주를 시청각 시뮬레이션으로 번역했다면 <Blended Worlds>는 그 감정을 서사화했다. 이처럼 과학 진입 문턱을 낮춘 두 프로젝트는 공공과학의 미디어적 전환이라는 동시대적 흐름을 예고한다.
과학을 노래하다: Global Science Opera
과학이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노르웨이의 한 작은 학교에서 시작된 실험은 점차 교실을 넘어 도시로, 도시를 넘어 세계로 뻗어갔다. 글로벌 사이언스 오페라(Global Science Opera, 이하 GSO)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40여 개국 수천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이 거대한 협업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예술 공연과는 다르다. 과학이 중심이 된 이 무대의 주인공은 전문 성악가나 배우가 아닌,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전 세계 청소년들이다.
학생들은 자국의 언어와 방식으로 과학 개념을 해석하고 이를 뮤지컬, 연극,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 장면들이 모여 하나의 통합된 오페라가 되고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에 중계된다. 연출, 작곡, 영상 편집, 의상, 안무까지 이 모든 과정이 교육자와 과학자, 예술가가 함께 설계한 STEAM 기반 창작 교육이 된다.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의 진짜 힘은 기술이 아닌 공감에 있다. 국경과 언어, 문화적 배경을 초월해 과학이라는 주제를 함께 노래하고 공연한다는 점에서 GSO는 그 자체로 21세기형 과학 커뮤니케이션 실험이자 지속가능한 지구 시민 교육이기도 하다.
GSO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의 과학적 주제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극적 서사를 구성하고 각국의 학생팀이 분절된 장면을 맡아 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 역시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실시간 채팅, 선택형 내러티브, 증강현실(AR) 콘텐츠 등이 결합된 이 공연은 “인터랙티브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실험한다. 예를 들면 2021년 발표된 작품 〈Thrive〉는 생명 유지 시스템, 기후변화, 우주 식민화 가능성을 테마로 삼았는데, 각국의 팀은 이 주제들을 바탕으로 각각의 장면을 맡아 제작했고 시청자는 스트리밍 중 실시간 채팅, 선택형 내러티브, AR 콘텐츠를 통해 공연과 상호작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직접 과학자들과 소통하며 리서치를 진행하고 과학 원리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한다. 때로는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를 다룬 랩 뮤지컬이 나오고, 때로는 블랙홀의 시간을 춤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는 단순한 과학 설명이 아닌 과학적 상상력을 문화적 언어로 전환하는 창조적 교육이 된다. 공연 하나를 위해 학교 수업 전체가 프로젝트 중심으로 재설계되기도 하고 Zoom, Padlet, Miro 등 다양한 디지털 협업 도구가 사용된다. 덕분에 GSO는 예술교육을 넘어 디지털 협업, 시스템 사고, 창의적 문제 해결을 학습하는 미래형 STEAM 모델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 결과 이 프로젝트는 UNESCO, CERN, ESA, NASA, EU 등 다양한 과학기관 및 문화 기구의 지원을 받아 왔다. 2023년에는 <Quantum Mechanics and Human Emotions>를 주제로 삼아 양자역학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감정과 인간관계로 풀어낸 작품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아이들이 양자 얽힘을 우정과 연결하고 확률을 선택과 삶의 우연으로 표현하는 순간, 과학은 더 이상 이해의 대상이 아닌 감정의 언어가 되었다. GSO 교육의 강점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과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질문을 탐색하는 방식 예술을 활용한다. 전통적인 교과 중심 교육이 소외시켰던 감정, 움직임, 음악, 서사 등이 다시 학습의 중심에 돌아온 결과, 과학은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고 학생들은 그것을 노래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사례는 단순한 과학 콘텐츠의 확장을 넘어 과학을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제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과학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 감각의 전환은 오늘날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나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방향성을 함의한다. 정보의 시대를 넘어 해석의 시대, 더 나아가 공명의 시대가 온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움직임이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출발점에는 학생, 청년 아티스트, 소규모 창작팀이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우주망원경의 데이터를 로컬 예술 공간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양자역학을 뮤지컬로 번역하며 과학의 언어를 감각의 언어로 치환해 왔다. 이처럼 과학의 민주화는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현실화되고 있으며 과학은 더 이상 “전문가만의 언어”가 아닌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되고 있다.
오늘의 과학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블랙홀의 정보 이론, CRISPR 유전자 편집, AI 기반의 분자 설계. 이 모든 것들은 기존의 언어로는 담기 어려운 세계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많은 감각적 번역자를 필요로 한다. 예술은 그 번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언어이며 그 언어는 상상력이라는 이름의 보편성을 갖는다. 그렇기에 이 흐름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과학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가 아닌 “과학을 어떻게 공감하게 할 것인가?”로 말이다. 우리가 과학을 함께 노래하고 그릴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의 다음 장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과학을 “예술”로 다시 정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그 실험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