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공공미술이 뭐예요? ③ : 새로운 공론장을 여는 한국 작가들
미술사학자 권미원은 공공미술을 크게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구분했습니다. 먼저 흔히 광장이나 건물 근처에 설치된 모더니즘 오브제 등을 포함하는 ‘공공장소에 위치한 예술(Art in public space)’, 또 주변 풍경을 고려하거나 적극 활용해 제작한 장소특정적 작품 등을 일컫는 ‘공공장소로서의 예술(Art as public space)’이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공공의 관심(또는 이익) 속의 예술(Art in the public interest)’이라 칭하는데, 혹시 여러분은 어떤 작품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공공의 관심 속의 예술’은 지난 글에서도 다루었던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과 통상 같은 범주를 뜻합니다. 여기서 공공의 장소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서로 다른 의견이 교차하는 담론의 장을 의미하며, 공공미술은 이를 만들어나가는 열린 과정입니다. 즉 공간의 조경적 측면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사회, 정치, 지역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공공미술에 있어 공공성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예술 활동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예술가는 주로 특정 지역의 주민 또는 소외된 사회집단을 협업자이자 예술 행위의 주체로 초청하고, 작품을 통해 이들의 존재와 이들 내부의 공유된 이슈를 드러내지요. 때문에 작가와 참여 집단 사이의 지속적인 만남과 대화 자체가 작업을 구성하는, 과정 중심적인 형태를 띱니다. 설명으로는 아직 감이 오지 않으신다고요?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미술 작업을 통해 관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국내 작가 두 팀과 그들의 대표적인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믹스라이스(Mixrice)
“우리에게 작업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초대하는 것, 서로가 서로를 청하는 것,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 쓰레기장 같은 마석 가구 단지에서 스스로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믹스라이스는 양철모, 조지은으로 이뤄진 작가 듀오입니다. 섞인 쌀 또는 잡곡밥이라는 뜻의 ‘콩글리시’로 표기된 그룹 이름에서, 아시아 등지에 뒤섞여 살아가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태도가 읽힙니다. 이들은 기존 대중매체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그리는 전형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그들의 실제적인 일상과 발언을 통하여 사회적이고 공적인 영역으로 예술실천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움직여왔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올해의 작가상을 통해 그간의 활동을 인정받기도 했지요.
오랫동안 단일민족국가를 표방해 온 대한민국에는 사실 합법적으로 국내 취업에 성공한 인원만 따져도 83만 4천여명(2017년 5월 기준)에 이르는 외국인 이주민이 한국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법체류로 인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더욱 많겠죠. 이들 중 상당수가 수도권과 시골 중간쯤 되는 교외 지역에 사는데, 자국민인 우리에게 이들의 삶을 별로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은 뉴스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묘사하듯 어눌한 한국말을 쓰며 공장에서 매를 맞고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아니면 사건 사고의 범인의 모습입니다. 덕분에 온정을 베풀어야 하거나 차라리 피하는 게 나은 대상처럼 여겨지죠.
“Mixlanguage(2004)”
이주노동자들로부터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듣고 사용하는 한국말을 수집해 완성된 노래.
작곡과 연주는 이주노동자 밴드 Stop crack down.
“Mixlanguage”, ©믹스라이스
‘이주’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여러 흔적과 과정, 경로, 결과, 기억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믹스라이스는 2002년 부천외국인노동자센터와 성동구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첫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촬영하는 대신, 그들의 손에 직접 캠코더를 건네주고 영상 제작 기법을 배워 스스로 자신의 일상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믹스라이스 영상 교실>을 열었습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주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리포터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섰고, 항상 타국의 언어와 시선으로 묘사‘당하던’ 이들이 이제 말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영상 속에서 한국과 미얀마의 발전과정을 논하거나, 고향에 돌아갔을 때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개인적인 고민을 풀어놓기도 합니다. 완성된 영상들은 지역 축제, 독립영화제 등 다양한 상영 기회를 통해 관객에게 선보여졌고, 한국 관객은 그들의 영상을 통해 이주노동자가 말하는 또 다른 차원의 한국을 보게 되었습니다.
2006부터 경기도 마석가구단지에서 이주민 공동체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던 믹스라이스는 2008년 즈음 이주민들이 직접 기획한 한국어 연극 모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긴밀하게 관계를 쌓은 이들의 작업은 이후 2012~2014년에 <마석 동네 페스티벌>로 확장되었습니다.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불법 체류 이주 노동자들이 한여름 밤에 녹촌분교 운동장에서 록페스티벌을 열고 타지역 사람들을 초대하는 기획의 모든 단계에서 믹스라이스는 이주민과 고민을 함께했습니다.
이 축제를 통해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와 사장, 천주교 신도와 개신교 신도, 불법체류자와 형사 등 일상에서 보통 대립 쌍으로 여겨지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악과 춤을 즐겼습니다.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가볍지만도 않은 방식으로 새로운 관계짓기의 순간을 다 함께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예술과 창의성이 재화를 만드는 또 다른 하나의 도구가 아닌 공통의 것을 공통의 소유로 만드는 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입니다. (…) 언어를 생산하고, 문제의 장소를 창작해 내는 과정들이 저희의 작품입니다.”
리슨투더시티는 시각예술과 도시공학을 공부한 박은선 작가를 중심으로, 때마다 서로 다른 멤버가 함께 활동하는 예술, 디자인, 도시, 건축 콜렉티브입니다. 이들은 강, 산, 공기, 물, 거리와 광장, 그리고 도시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모든 이들의 공통재(the commons)라는 사실을 중요시하면서, 이를 통제하거나 사유화하려는 국가와 기업 등을 경계하고 그 권력 관계를 깊이 탐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리슨투더시티는 소리 없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 지워지는 도시의 다양한 역사와 존재들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현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는 흔히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사실 이 미래적인 유선형 건물이 지어진 배경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2007년에 서울시가 발표한 ‘디자인서울’ 계획에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서 기존의 동대문 운동장을 현재의 DDP로 변모시키자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철거된 기존 동대문 운동장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체육시설이자 주요 국가 행사 시설이었고, 크고 작은 노점상들의 오랜 상권으로서 역사성을 띤 공공건물이었습니다.
어반 드로잉스03 : 동대문 디자인파크의 은폐된 역사와 스타건축가 (2013)
리슨투더시티는 지나치게 짧은 기간 내에 수립된 계획의 무자비한 진행 과정을 자세히 조사하고 이를 공론화하기 위한 여러 워크숍을 병행했습니다. 동대문 운동장은 건축물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시민들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한 채 철거되었고, 많은 노점 상인들이 사전 대화도 없이 생활 터전에서 쫓겨났습니다. 공사 중 지하에서 발견된 방대한 조선 시대 문화재도 허술한 발굴만을 거쳐 처리되는 등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죠.
리슨투더시티는 2013년에 이 내용을 정리해 <어반 드로잉스03 : 동대문 디자인파크의 은폐된 역사와 스타건축가>를 출간했습니다. 이들은 작업을 통해 건물이 지닌 공공성은 무엇이었고, 중요성에 불구하고 철거 전에 왜 이 건물을 자료화되지 않는지, 나아가 왜 우리는 이러한 폭력적 과정을 당연시하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어 리슨투더시티는 서울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과 경상북도 내성천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형태의 조사, 세미나,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근처에 위치한 옥바라지 골목은 일제시기부터 군사독재정권까지 약 100년에 이르는 근현대사 속 민중의 중요 기억들이 스민 장소이지만, 소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을 위해 철거 예정에 놓여있었습니다.
한편 낙동강에 1급수를 공급하던 상류 지천, 내성천은 4대강 사업 일환으로 계획된 영주댐 건설로 인해 그곳에 서식하던 동식물의 종류와 개체수, 그리고 습지 면적이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리슨투더시티는 수년에 걸쳐 철거와 신축에 앞서 해당 지역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출판 및 전시 활동을 벌였습니다. 또 시민과 정책 결정자를 향해 해당 지역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공론화를 시도하고, 무단 철거에 맞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지켰죠. 이들은 이렇듯 도시에 등장한 새로운 건축물의 휘황찬란한 등장 이면에 무심하게 지워지는 시간과 장소, 존재를 많은 이들에게 보이고 들리게 만들었습니다.
미술을 넘어선 미술
서론에서 언급한 ‘공공의 관심 속의 미술’은 확실히 우리가 기대하는 ‘미술’의 이미지를 넘어섭니다. 여기서 작가는 특정 집단 또는 지역이 공유하는 구체적인 사회, 정치 문제를 포착하고, 이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새로운 창구를 만들어냅니다. 때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법정에 서거나 당국자를 만나는 과정을 서슴지 않죠. 이 모든 과정이 어느 순간 해당 작업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독특한 상황, 관계, 대화를 여는데, 이것이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 지향하는 ‘미술’입니다. 미술은 더이상 사회문제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장기간에 걸친 직접 개입을 통해 이 문제가 어떻게 의미 있고 또 달라질 수 있는지, 보이지 않던 세계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또, 이러한 종류의 작업을 하는 작가들 역시 ‘예술가’의 이미지를 넘어섭니다. 이들은 때로는 미술작가로, 때로는 활동가로, 때로는 중재자로, 또는 프로젝트 매니저, 교육 지도자, 아니면 평범한 이웃으로 다각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작가는 더이상 함께 작업하는 공동체를 단순히 작품의 피사체로 삼거나 퍼포먼스에 동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은 제쳐두고, 오히려 사람들을 자주, 오래 만나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이미 그려놓은 ‘그림’을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 해당 공동체의 관심사와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하는, 동시에 대중에게 가닿을 수 있는 새 미술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세 개의 글을 통해 공공미술의 커다란 맥락과 다양한 유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공공미술과 관련한 국내외 전시 및 행사를 소개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