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아트페어(Art Fair)는 갤러리들이 한 장소에 모여 미술 작품을 거래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행사다. 작품 감상을 포함해 작가와 갤러리 홍보, 미술품 구매까지 한자리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능 덕에 현대 미술시장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는 비엔날레와는 달리 아트페어에서는 시장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회화, 조각, 사진 작품이 대다수를 이룬다.

 

예전에는 주로 갤러리에서 미술품을 거래했는데 아트페어가 활성화되면서 현장에서 거래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관람객이 많이 늘었다. 갤러리에서의 거래와 비교해 본다면 여러 갤러리에서 출품한 작품을 비교·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데다 관련 정보도 공개돼 있어 현 미술시장 트렌드에 잘 맞는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미술품 경매와 비교했을 때는 수수료가 낮은 데다 입찰 경쟁 없이 서두르지 않는 상태에서 감상이 가능해 아트페어에 대한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신진 작가 중심의 아트페어인 ‘더프리뷰 성수’ 전경 © 직접 촬영

국내외 유수의 대형 아트페어들이 영향력 있는 컬렉터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거래되는 미술품 가격이 비교적 낮아 접근이 쉬운 중소규모의 아트페어도 늘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아트 컬렉터 층은 미술 트렌드에 대한 뉴스와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트페어에 참여한 갤러리와 작가들은 이런 흐름을 반영해 가격대가 높은 대형 작품보다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작품을 출품하거나, 중저가 작품 거래를 위한 특별 부스 설치 같은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이처럼 합리적인 가격대의 작품을 선보이는 해외 아트페어로는 어포더블 아트페어(Affordable Art Fair)가 대표적이다. 1999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개최된 어포더블 아트페어는 뉴욕과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행사가 되었다. 한국에는 2015년 처음 진출했으며, 2016년까지 2년 연속 개최되었다.

 

아트 바젤 같은 글로벌 아트페어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참여 갤러리를 선발하고 VIP 프리뷰 기간에도 컬렉터를 등급화하여 고급화된 아트페어를 지향하는 것과는 달리, 어포더블 아트페어에 출품되는 미술품의 가격대는 평균 200~300만 원대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구매자의 25%가량은 이곳에서 처음 미술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올해는 시드니, 홍콩, 멜버른, 뉴욕, 런던, 암스테르담, 함부르크, 싱가포르에서 아트페어가 진행될 예정이다.

Affordable Art Fair NYC 2022 전경 © 어포더블 아트페어

미술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국내에도 다양한 규모의 아트페어가 생겨났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개최된 아트페어는 총 78건으로, 2019년 49건에서 2년 만에 약 60% 증가했다고 한다. 작년 한 해 동안 매월 평균 6개 이상의 아트페어가 개최된 셈이다.

 

화랑미술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아트부산(Art Busan), 대구아트페어 같은 대규모 아트페어뿐 아니라 지난해 25억 원에 달하는 역대 최고 매출을 올린 아트 제주를 비롯해 더프리뷰, 연희 아트페어, 을지아트페어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생 아트페어 또한 부상하고 있다. 올해도 80여 개의 크고 작은 아트페어 개최가 예정돼 있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국내 신진 작가 중심 아트페어로는 더프리뷰 성수가 있다.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진행된 더프리뷰 성수는 미리보기(preview)라는 의미처럼 새로운 갤러리, 작가, 작품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아트페어로 채워졌다. 2021년 더프리뷰 한남이라는 이름으로 한남동에서 첫선을 보인 이 아트페어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신생 전시공간을 한곳에 모아 기성 미술시장과의 접점을 만들고 이를 통해 미술시장 생태계를 확장하겠다는 목표로 출범했다.

 

실제로 이번 더프리뷰 성수에서는 기존의 갤러리들뿐 아니라 디피, 미학관, 온수공간 같은 신생 공간이 참여해 새로운 에너지를 보탰다.이번 더프리뷰 성수에는 총 53개의 갤러리와 27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1999년생 최연소 작가를 비롯해 90년대생 작가들이 주를 이루었고, 기성 작가들도 신작을 출품하며 미술시장의 최신 트렌드를 소개했다. 부스 전시뿐 아니라 퍼포먼스, 강연 형식의 더프리뷰 토크, 애니메이션 상영 등 특별 프로그램이 진행됐으며, 마세라티(Maserati), 러쉬(LUSH), SJYP 등 기업들도 스폰서로 참여해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였다.

‘더프리뷰 성수’ 전경 © 직접 촬영
저 아래 by 살롱 드 께세(salon de Cassé) 퍼포먼스 © 더프리뷰

올해 9월 말 개최 예정인 브리즈 아트페어(Breeze Art fair)도 주목할 만하다. 브리즈 아트페어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으로 2012년에 시작되었다. 예술가와 관람객을 연결하고 새로운 컬렉터 층을 발굴해 예술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축제를 표방하고 있다. 작년 9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제8회 브리즈 아트페어가 개최되었으며, 총 62명의 작가가 600여 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브리즈 아트페어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 공개 모집을 통해 공정한 창작 환경에 기여한다는 점과 미술품 구매 장벽을 낮추기 위해 상한가를 정하고 10개월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of English) 산하 미술품 대출 사업 기관인 오운 아트(Own Art)는 영국에서 미술품을 구입하는 일반인에게 영국 정부가 무이자로 대출을 해 주는 오운 아트 론(Own Art Loan)을 운영하고 있는데, 브리즈 아트페어 또한 이와 비슷하게 작품 구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새로운 방편을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미술시장에 할부라는 개념을 도입해 일반인 컬렉터를 발굴하고 구입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는 궁극적으로 미술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MZ세대라면 작가 주도형 아트페어에도 참여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트페어는 갤러리가 주축이 되어 미술품을 거래하는 장인 데 반해, 작가 주도형 아트페어는 중간에 갤러리를 통하지 않고 작가가 직접 소비자와 만나는 미술장터다. 대표적인 국내 작가 주도형 아트페어로는 유니온아트페어, 블라인드데이트, 그림도시, 《굿즈》 전 등이 있다.

 

작가 주도형 아트페어는 그 자체로 새로운 현상은 아니며, 1964년 미국에서 팝아트 작가들이 작품에 직접 가격을 붙인 《슈퍼마켓》 전시도 작가가 직접 기획과 판매에 참여한 예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기존 미술시장의 불균형 현상을 뛰어넘으려는 목적과 함께 작가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문화축제 형식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현재 국내 미술시장에서 작품이 실제로 거래되는 작가의 수는 전체의 10% 수준으로 추정된다. 운 좋게 몇 점의 작품을 거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작가들이 지속 가능한 예술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미술 소비자층이 단단해진다면 작가들의 작품 활동에 기여할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미술시장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술계가 매년 새로운 형태의 아트페어를 통해 MZ세대를 미술시장으로 유입시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미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중소규모의 아트페어가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에서 다수의 작품을 동시에 감상하며 신진 작가를 후원하는 방식이 신진 컬렉터, MZ세대에게 미술시장에 참여하는 새로운 즐거움이 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