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수만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공간, 책상 앞에 앉은 사람들은 조용히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종이를 사락거리며 응시하는 특색 없는 무채색의 장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도서관의 이미지다. 그러나 고정관념 속 도서관이 서서히 변화의 옷을 입는 요즘이다. 여전히 모두를 위한 편리하고 평등한 장소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편히 기대 쉴 수 있는 빈백이 있고, 메이커 스페이스를 갖춰 다양한 체험과 시도가 가능하다. 다채로운 인테리어와 특이한 소장 도서로 미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도서관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시민의 알 권리,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공공공간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전주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서관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유흥과 도서관을 이었다. 기존의 도서관 여행은 주로 도서관 관계자들이 세계의 도서관을 돌아보며 배울 점을 찾아오는 해외 시찰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에서도 저마다의 특색을 살린 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덕에 국내 도서관 여행 인프라도 충분히 갖춰져 있는 상태다. 특별히 전주시는 활발한 도서관 정책으로 관련 종사자들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21년 4월 책이 삶이 되는 책의 도시, 전주를 선포한 뒤로 다양한 주제의 도서관을 연달아 개관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자마자 아이러니하게도 해외로 나가는 항공권값이 널뛰고 있다. 국내 좋은 여행지들이 눈에 띄게 발전한 만큼, 올해는 전주로 도서관 여행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첫마중길에서 여행자를 반기는 컨테이너형 도서관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3가 746]

전주역에서 도보 7분(약 430미터) 거리에 있는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은 밝고 경쾌한 붉은 색 컨테이너 건물이 눈에 띄는 곳이다. 2021년에 개관한 이 도서관은 전주를 찾은 여행자들이 처음 지나가야 하는 첫마중길에 위치해 여행안내소 역할을 하는 도서관일 것 같지만 의외로 여행자를 위한 예술 쉼터라는 주제로 운영된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다 보니 방문객들의 손때가 묻지 않을까 괜스레 걱정되는 고가의 아트북, 그래픽노블, 사진집, 화보집, 팝업북 등을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데이비드 호크니의 한정판 아트북(국내 구매가 약 700만 원)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도서관 이용자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넘겨 볼 수 있도록 오픈되어 있다.

 

여행자를 위한 엽서 컬러링, 글감 상자 등의 체험 행사도 상시 운영하고 있어 전주를 찾은 여행자들이 예술적 영감을 잔뜩 충전하고 설레는 맘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양한 볼거리를 즐기느라 도서관 여행까지 하기 어려운 여행자라면 여정의 시작이나 끝에 잠깐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쉬어가며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도서관 여행자를 가장 먼저 환영하는 이곳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시민은 물론 전주를 방문하는 모두에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화 콘텐츠를 즐기도록 돕겠다는 전주도 서관의 마음이 느껴진다.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전경 © 직접 촬영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전경 © 직접 촬영

연화정도서관

아름다운 한옥에서 북큐레이션을 즐길 수 있는 곳

[전주시 덕진구 덕삼득로 390-1, 덕진공원]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에서 차로 10분 정도(약 4km) 이동하면, 전주의 대표 관광지이자 호수 가득 피어난 연꽃으로 유명한 덕진공원이 있다. 지난 해 덕진공원 안에 전통 한옥 방식으로 재건축된 약 400제곱미터 면적의 연화정도서관이 개관했다. 나뭇결이 살아 있는 창틀 너머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아름다운 공원의 풍경과 함께 책을 읽는 시간.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연꽃이 가득 핀 여름, 덕진연못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좌석은 이용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수밖에 없다.

 

연화정도서관은 점·선·면· 그리고 (…) 여백이라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큐레이션한 도서 1,852권을 비치해 한국의 미를 알린다. 큐레이션된 도서뿐 아니라 한옥 건축, 따스한 나뭇결이 살아 있는 테이블과 의자, 따듯한 노란 조명 등 도서관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와 인테리어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들어간 것 없이 단아하면서도 편안한 멋과 쉼을 제공한다.

 

연화정도서관 옆 연화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위치한 야호맘껏숲놀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덕진공원 옛 수영장 부지에 아동 친화 도시 전주시와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함께 조성한 특별한 놀이 공간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놀이공간이 구분되어 있고, 잔디마당, 황토마당, 아지트 등의 공간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 모래 놀이터, 무지개다리, 매달리기 밧줄 등 역동적인 놀이도 즐길 수 있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 덕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여행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연화정도서관 전경 © VISIT JEONJU
연화정도서관 전경 © VISIT JEONJU

다가여행자도서관

여행자에게 한걸음 먼저 다가가는 도서관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2길 28]

전주의 여러 도서관 여행지 중 여행자를 위해 특화된 도서관을 꼽으라면 다가여행자도서관을 꼽을 수 있다. 옛 다가파출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2022년 여행자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작은 공간 구석구석을 매우 알차게 활용했다.

 

각 층의 이름도 여행자에게 안성맞춤이다. 여행을 테마로 큐레이션한 여행가이드북, 국내외 사진집, 에세이를 만날 수 있는 1층은 다가오면, 여행자들이 LP를 들으며 여유롭게 책을 보고 쉬어 갈 수 있는 2층은 머물다가, 옥상인 3층은 노올다가, 지하 1층은 다가독방이다. 1층의 숨은 외부공간인 <책정원>과 <책풍덩!>은 작은 자투리 공간마저도 유쾌하게 활용한 형태다. 지하 1층의 <다가독방>에는 누구나 꿈꿔왔던 다락방처럼 한 사람만이 포근하게 앉을 수 있는 숨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들러 보자.

다가여행자도서관 외부 전경 © VISIT JEONJU
다가여행자도서관 내부 전경 © VISIT JEONJU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숲과 시와 바람, 그리고 낭만으로 가득한 공간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2가 산81번지]

학산과 맏내호수가 모여있는 곳에 시인의 향기가 가득한 숲속 작은 오두막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이다. 도서관은 1층, 계단 옆, 2층 다락방 공간마다 주제별 큐레이션을 달리해 문학 전문 출판사의 시집 모음, 세계 각국의 외국어 원서 시집, 그리움, 기다림, 계절 등 주제별 시집, 우리나라 대표 시인들의 저자 친필 사인 시집,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시화집 등을 모아 소장하고 있다.

 

연중 프로그램으로 시 필사 체험, 이달의 시인 소개, 스케치와 필사 등 이용자들이 남긴 작품을 전시하고, 유명 시를 변형해 나만의 시 만들기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시인과 시민이 만나는 다양한 강의 및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또한 숲속 전망의 아름다움 때문에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한 명소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여행길 위에서 긴 글을 읽기는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짧은 시 한 편을 차근차근 소리 내어 읽어보며 숨을 고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할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초록이 가득한 공간에서 오롯이 나무 냄새를 맡으며 아름다운 우리말을 읽는 여유를 선사하는 시집도서관을 추천한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전경 © VISIT JEONJU

한옥마을도서관 & 최명희문학관

한옥의 멋과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책의 집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 68-3]

앞서 소개한 연화정도서관도 한옥형 도서관이지만, 실제 전주 한옥마을 안에도 여행자를 위한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1월 전주시는 고즈넉한 한옥마을을 거닐던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책을 살피며 쉬어 갈 수 있는 도서관을 열었다. 전주한옥마을 옛 전주공예명인관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이 도서관은 한옥마을 내 공간을 이용하다 보니 각각의 공간이 특화도서관만큼 넓진 않다. 그렇지만 삶을 돌아보고 찾아가는 마음 여행길인 마음 곳간(열람 공간), 나의 마음을 채우는 꿈 여행길인 꿈 방앗간(채움 공간), 일상을 풍요롭게 가꾸는 소통 여행길인 대나무숲(체험 공간) 등 알찬 주제별 공간을 자랑한다. 한옥마을 정보를 담은 책과 여행 관련 책을 포함해 2,100여 권을 갖추고 있다.

 

여행 중 지친 다리를 쉬어가도록 넓은 마룻바닥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책을 넘겨보는 시간은 더 편안한 기억을 남겨줄 것이다. 전주가 자랑하는 『혼불』 최명희 작가의 문학관도 한옥마을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전주시 완산구 최명희길 29) 작가의 친필원고 및 엽서, 작가가 사용했던 문방오우(몽블랑만년필, 자, 칼, 끈, 가위) 등의 전시품이 갖춰져 있으니 한옥마을을 방문했다면 놓치지 말고 함께 찾아가 보자.

한옥마을도서관 전경 © 직접 촬영
한옥마을도서관 전경 © 직접 촬영

이외에도 전주시에는 헌책도서관, 서학예술전문도서관, 이팝나무그림책도서관 등 각양각색 다양한콘셉트의 도서관이 분포해 있다. 서울·경기의 경판본과 함께 조선시대 출판문화를 주도한 완판본을 찍어냈고,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에 보관해 온 조선왕조실록을 끝까지 지켜낸 글의 고장답다. 아울러 전주시는 인구 대비 도서관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해마다 독서출판문화 축제인 전주독서대전도 열고 있다.

 

전주시는 지난 2021년 6월 전주 도서관 여행 인스타그램을 개설해 도서관 여행의 시작을 다졌다. 2021년 12월에는 전주 도서관 여행해설사 8인을 모집, 예전부터 전주 도서관 자원봉사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활동하던 이들이 지금도 전주의 관광안내자이자 도서관 해설사로 열정적으로 도시 곳곳을 소개하고 있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서관 여행코스를 개발 및 진행한 덕에 지금까지 2,500여 명의 여행객이 전주 도서관을 찾았다. 올해는 야간코스 추가, 경기전, 팔복예술공장 등 전주의 주요 관광지를 잇는 코스도 개설해 더 폭넓은 방식으로 여행자들의 이목과 발길을 끌 예정이다. 매주 토요일 3회, 매월 마지막 금요일 1회 도서관 해설사와 함께하는 도서관 여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이 가능하다.

*https://lib.jeonju.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