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Mars. 화성은 됐고.” 홍대입구역 지하철 8번 출구를 나오면 보이는 대형 광고판에 적힌 도발적인 문구다. 파타고니아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전 세계 곳곳에 내건 캐치프레이즈인데 누가 봐도 2029년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하겠다는 일론 머스크를 저격하는 문구다. 파타고니아는 그 어떤 다른 행성이 아닌 지구의 생명을 바라보겠다고 선언하며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고 가치를 명확히 드러냈다.
거주 불능 지구라는 모순적인 말이 점차 모순적이지 않아지는 요즘이다. 기후 위기를 표현하는 수식어에 붙은 역대, 최고, 최대, 최악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 지구온난화로 섭씨 몇 도가 올랐는지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그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기후 위기가 몇몇 개인이 나서서 해결할 만한 문제가 아니란 사실이다. 전 지구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마치 영화 <돈룩업 Don’t look up>에서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대놓고 기후 위기를 외면하는 현실을 저격한다. 가령 과학자들은 인류를 즉각 멸종에 이르게 할 혜성 충돌이 얼마 안 남았음을 경고하지만 영화 속 미디어는 셀럽의 약혼과 파경 소식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정치권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혜성 충돌로 공포를 조장해 선거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한다. 선동당한 사람들은 오히려 과학자들에게 혜성 충돌의 과학적 증거를 대라며 비웃거나 음모를 제기한다. 마치 지구온난화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믿는 기후 위기 부정론자들처럼 이들은 다가오는 재난을 부정한다. 더 나아가 영화의 제목과 상응하는 “Don’t look up” 캠페인을 전개한다. 혜성이 점차 가까워지자 아예 보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영화는 인류의 무지만을 다루지 않는다.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자 Look up 캠페인을 전개하는 이들도 있다. 최초로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 민디 교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사람들의 협박과 조롱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혜성의 위험을 경고한다. 영화는 인간의 회피와 무지를 풍자하면서 동시에 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들의 용기와 투지를 그려낸다.
결국 종말까지 다다르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관객은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얻는다. 다가오는 위기를 외면하지 말고 이를 수용하라. 우리의 종말을 앞당기는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과 음모론에 지성을 맡기기보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이렇게 탈진실의 시대 속에서 간절하게 진실을 찾고 행동하기를 촉구한다. 이처럼 영화는 불편할 정도로 현실(정치)을 풍자하면서도 지금의 우리가 정신 차리길 바라며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기적으로 지구 탈출에 성공한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이 새로운 행성(아마 화성을 저격하는 거 아닐까)에서 외계 생명체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은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기란 불가능함을 은유하기도 한다.
기후 위기는 활동가 혹은 과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기후 위기 대응과 환경보호를 핵심 정체성으로 삼는 브랜드가 점차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그 예다. 창업주 이본 슈나드 회장은 가족이 보유한 회사 지분 모두를 환경보호를 위해 기부했다. 파타고니아는 1973년 설립된 이래 그간 비상장 회사로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에 대해 슈나드 회장은 그간 몇 차례 회사를 상장하라는 조언과 압박이 있었지만 기업공개를 하면 단기수익과 주주에 좌우돼 기업의 핵심 가치를 지키기 어려워지고 기업의 책임을 외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밝히며 상장을 거부해 왔다. 그랬던 그가 현재 30억 달러(한화 4조 2천억 원)에 이르는 파타고니아 주식을 통째로 기부하면서 “지구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파타고니아처럼 친환경을 핵심에 둔 국내외 친환경 브랜드의 다양한 시도를 살펴보면서 환경을 보호하려는 감각적인 창의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Just Project: 쓰레기를 편애합니다
It is trash, but treasure to me. 져스트 프로젝트는 쓰레기로 일상의 물건을 만든다. 2014년에 시작된 디자인 프로젝트로 과자봉지, 빨대, 플라스틱, 티셔츠, 신문지 등 모든 쓰레기가 재료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언제나 새로운 쓰레기 소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업사이클링 받침대, 가방, 지갑, 노트북 케이스 등을 만들며 다양한 기업과 쓰레기 관련 B2B를 진행 중이다.
이영연 대표는 왜 쓰레기냐는 물음에 그것이 내 취향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2018년 행복이가득한집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환경 운동가라기보다 쓰레기란 물성에 이끌리고 흥미를 느끼는 디자이너이자 쓰레기녀라고 스스로를 지칭한다. 어릴 때부터 새것보다는 버려진 것을 다시 만드는 일에 이끌렸고 쓰레기 집하장을 산책하러 가듯 자주 다녔다고 한다. 이유는 쓰레기는 반전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제품을 접한 사람들은 특유의 감각적인 디자인에 이끌리지만 그것이 과자 봉지와 같은 쓰레기로 만들어졌다는 숨겨진 스토리에 흥미를 보인다. 져스트 프로젝트는 보물 같은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모아 생활용품, 전시, 콘텐츠 등 쓰레기 유니버스를 창조한다. 흔한 가방, 지갑, 파우치가 알고 보니 더 흔한 쓰레기로 만들어졌다는 독특한 의외성을 져스트 프로젝트 제품만이 지닌 매력으로 재맥락화한다.
Just project, 이건 그냥 프로젝트야. 브랜드명을 봐도 대표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활동가 특유의 정의로움보다는 쓰레기가 좋아서 쓰레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탐구하고 연구하는 그저(just) 하나의 프로젝트다. 이영연 대표는 쓰레기를 좋아했기에 오히려 더 롱런할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디자이너이자 기획자로서 자신의 사회적·환경적 책임과 그 범위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한다. 디자이너는 사회적·환경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그린 디자이너이자 국민대 명예교수 윤호섭의 생각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심미성, 디자인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잃고 싶지 않다고 한다. 종종 기업과 기관에서 B2B를 제안할 때 마주하는 그린 워싱(greenwashing, 환경보호 효과가 없거나 친환경 이미지 제고만을 위해 진행하는 위장 환경주의) 성격의 제안을 볼 때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은 제품 생산뿐 아니라 전시 기획, 계간지 발행 등 여러 방면에서 쓰레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에는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재료 상점이란 관객 참여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쓰레기를 일반적인 소재로 구입하고 사용할 것을 전제해 대형 문구점처럼 재료를 나열하고 관객이 필요한 제품과 수량을 골라 사가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2019년에도 비슷한 작업을 뷔페 세팅으로 전시했다. 이때 관객들이 진지하게 어떤 쓰레기를 골라갈지 흥미로워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작년 12월에는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에 참여해 노플라스틱선데이와 함께 폐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각종 가구를 10명의 아티스트와 협업해 디자인했다.
져스트 프로젝트는 현재 충무로 삼훈빌딩 5층에서 쇼룸을 선보이고 있다. 가방, 필통, 브로치, 러그 등 져스트 프로젝트만의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만나볼 수 있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져스트 프로젝트가 어떻게 쓰레기 유니버스를 만들어 나갈지 기대된다. 계속해서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허스키-Huskee: 커피로 만들어진 커피 전용 텀블러
허스크(Husk)는 커피 공정 과정 중 버려지는 커피 생두 껍질을 의미한다. 커피의 열매에서 사람이 먹는 부분은 씨앗인 원두이기에 수확한 열매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제거되어야 한다. 이때 원두 이송 중 발효가 일어나거나 곰팡이가 펴 썩을 수 있으니 건조 과정이 필요한데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수세식(wet processing)과 자연건조방식(dry processing)이다. 허스크는 자연건조방식으로 가공한 커피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며 보통 커피농장에서 배출되는 허스크만 해도 매년 약 170만 톤이다.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소비하는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3kg의 허스크가 폐기되어야 한다. 매년 일회용 컵이 쓰레기 매립지에 쌓이는 양은 약 5천억 개다. 이 두 개의 폐기물을 줄이려는 노력에서 시작된 게 다회용 텀블러 허스키컵이다.
호주 시드니의 친환경 스타트업 허스키(Huskee)에서 만든 이 컵은 론칭할 때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Kick Starter)에서 펀딩 돌풍을 일으킬 정도로 화제였다. 허스키컵은 세련되고 모던한 디자인과 뛰어난 내구성으로 환경뿐 아니라 커피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로줄이 음각으로 표현돼 손쉬운 그립감으로 실용성을 보장하며 전자레인지 및 식기세척기에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다. 사용 기간은 2~3년 정도이며 환경호르몬(BPA) 또는 기타 유해한 물질이 나오지 않는다.
텀블러 본연의 기능이라 할 수 있는 보온, 보냉 기능도 훌륭하고 겉으로 튀어나온 세로줄 음각은 홀더처럼 뜨거운 온도로부터 우리의 손을 보호한다. 그 결과 커피 찌꺼기에서 탄생한 커피 전용 텀블러의 탄생은 여러 명의 챔피언십 바리스타와 스폐셜티 커피 협회에서 찬사를 받았다. 문화 평론가 한희는 매일경제 리뷰에서 허스키컵을 두고 “작은 건축물처럼 조형미가 뛰어난 데다 군더더기가 하나 없어, 보는 순간 소장욕을 자극할 정도”란 평을 내리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유명 로스터리 카페 펠트(FELT), 커피스니퍼, 어니언의 식기 및 굿즈로 활용되고 있으며 투썸플레이스와 협업해 전용 MD 텀블러를 출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29CM, 더마인드풀 등 온라인 셀렉트샵에서 만날 수 있다.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았지만 친환경을 향한 허스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플라스틱을 연상시키는 허스키컵과 대조되는 새로 나온 허스키리뉴는 유리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과 재질로 만들어졌다. 특유의 허스크 소재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폐기물을 줄이려는 브랜드의 철학에 맞게 50%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졌다. 그 외에도 수동 에스프레소 메이커, 강아지 밥그릇 등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내세우고 있다.
플라스틱 아크: WE ARE NOT NICE, JUST MAKING NICE ONES
No coating, No painting, No bonding. 플라스틱 아크를 단순히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브랜드로 생각하기엔 아쉬운 면이 있다. 이들에게는 폐플라스틱을 별도로 염색, 코팅 등 후가공하지 않고도 이를 분쇄, 분류한 뒤 특정 무늬를 계속해서 양산해 다종, 다양의 색이 블렌딩된 플라스틱 아크만의 빛깔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별도의 염색, 코팅, 접착을 거부하는 이유는 업사이클링된 플라스틱이 다시금 재활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김시형 플라스틱 아크 대표는 “제품을 상용화하기 위해 300곳이 넘는 제작사에 접촉을 시도했고, 이때 보여줄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직접 플라스틱을 성형했다”면서 “180~200도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화상을 입을 정도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플라스틱 아크를 단순히 유명 연예인(수지, 트와이스 다현, BTS RM과 제이홉)이 사용한 폰케이스 및 브랜드라고만 말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아크(Ark)란 이름에는 노아의 방주처럼 플라스틱을 녹여 새로운 길을 만들고 현재 전지구적 재앙이 되어버린 쓰레기 홍수 속을 헤쳐 나갈 방주를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창립자 김시형 대표는 복지 재단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영향 아래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초기에는 친환경 제품을 소개하는 온라인 숍을 만들고자 했으나 의외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이 많지 않았다.
기후 위기란 거대 담론보다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발견할 수 있는 플라스틱을 활용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제품이 Dirty Pot, 플라스틱 화분이었다. 세컨드히어로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왜 화분이었냐란 질문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듯 화분 안에 씨앗을 심거나 분갈이를 하면 생명이 피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개발하는 데만 2년 반의 시간이 걸렸고 기존의 브랜드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해외 논문을 읽어보며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아예 커스텀 장비까지 제작해 샘플을 만들었고 기술적인 문제를 이유로 거절한 수백 곳의 업체를 찾아가 플라스틱 업사이클링 할 때 발생하는 수축, 절개선 등 퀄리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환경 문제에 진심인 김서형 대표와 그의 팀원들이지만 그들의 노력을 보면 단순히 업사이클링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폐플라스틱에 미적 감각이란 숨결을 불어 넣어 우리의 생활 소품을 가득 메우는 브랜드가 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전략이 보인다. 친환경 브랜드로서 플라스틱 아크만의 특별한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도리어 친환경이라는 점을 앞세워 마케팅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환경에 좋아서란 이유보다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제품이 되겠다는 데 집중한다. 마치 본인 취향에 맞는 제품이 없어 플라스틱 아크를 만들었던 것처럼 MZ세대가 이건 좀 힙하네라고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활용해 누구나 사고 싶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바람이다.
플라스틱 아크의 브랜드 목표는 순환이다. 구매 시 제품 가격의 5%, 사용한 제품을 반환하면 제품 가격의 10%를 전용 온라인 스토어에서 사용 가능한 포인트로 적립해 준다. 또한 구매 여부 상관없이 병뚜껑, 화장품 용기 등을 세척, 분류 후 보내면 1kg 당 10,000원 포인트를 준다. 향후에는 포인트를 많이 모은 사람을 위한 한정판 제품 등 다양한 리워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적립된 포인트 이름은 아크 코인으로 플라스틱 아크 공식 홈페이지에서 적립 및 사용이 가능하다.
노브레이너: 보라색, 주황색, 파랑색의 대나무 휴지
대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이다. 나무들이 자라려면 보통 20~50년이 걸리지만 대나무는 24시간 안에 최대 1미터까지 자리기도 해 4~5년이면 충분히 자라고도 남는다. 그래서 대나무를 나무로 분류하지 않고 식물로 분류한다. 이런 대나무를 원료로 사용하면 어떨까? 심지어 다시 자라기 때문에 심을 필요도 없다. 효율적이기에 얼마든지 재생 가능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집들이하면 떠오르는 클리셰와 같은 선물은 세탁 세제와 하얀색 두루마리 휴지다. 대나무를 원료로 휴지를 만드는 브랜드 노브레이너는 이 흰색 휴지에 당당히 맞선다. 대나무로 만든 휴지는 다른 나무보다 30% 물을 적게 사용하고 이산화탄소는 5배 더 많이 흡수하며 35% 더 많은 산소를 배출한다. 결과적으로 일반 휴지보다 65% 월등히 적은 탄소를 배출하는 셈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환경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문할 수 있다. 흰색 휴지에 비해 대나무 휴지는 비위생적이거나 까끌까끌하지 않나요? 노브레이너는 또 노(NO)라고 답한다. 흰색 휴지는 화학 공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하얀색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유해 화학 첨가물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표백 염료 형광증백제, 내구성을 높여주는 포름알데히드, 색을 넣기 위한 인공색소, 향을 내기 위한 인공향료, 휴지의 2겹 및 3겹이 분리되지 않도록 고정하는 접착제.
반면 노브레인의 대나무 휴지는 무 화학성(Chemical Free)이다. 대나무 섬유는 조직이 견고하고 유연해 흡수력이 좋고 잘 찢어지지 않아 손이나 엉덩이를 닦을 때도 잔여물을 남기지 않는다. 노브레이너는 모든 면에서 이점을 지닌 대나무 휴지를 우리에게 적극 권하기 위해 시작했다. “우리의 계획은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용품을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제품으로 교체시키는 것이에요. 당신이 아주 자연스럽게 환경에 기여하고 죄책감 없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을 만듭니다.”
노브레이너의 공동창업자인 일레인은 세컨드히어로와 인터뷰에서 사업 아이템의 아이디어를 미국에서 얻어왔다고 고백한다. 온전히 새로운 걸 창안하기보다 이미 기존 시장과 소비자들에게 한번 검증받은 제품이 왜 한국에서는 제공되지 않을까 여러 고민을 거치면서 출시된 게 대나무 화장지였다. 또 다른 공동창업자인 고지원은 미래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 왔다며 사람과 환경에 둘 다 이로울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고민했다고 한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닌 이용하는 사람에게도 기존보다 더 좋은 성능의 더 무해한 제품을 제공하고 싶다는 비즈니스의 본질에 충실했다. 훌륭한 제품의 조건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지원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훌륭한 제품이란 소비 자체가 피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비 과정, 만들어지는 과정, 공정 과정에서 누구에게든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은 소비라고 생각한다.
친환경, 환경보호, 뛰어난 사명감보다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이들이 꿈꾸는 목표도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 지속가능 에너지 등 기후 위기 담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이며 모두 인지는 하고 있지만 사실 어떻게 실천할지 막막한 게 현실이다. 노브레이너는 스텝바이스텝 돌다리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갑자기 비건이 된다거나 갑자기 모든 걸 플라스틱 프리 제품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생활 습관을 극단적으로 바꾸지 않고 점차 바꿔나갈 수 있는 지구 친화적인 제품을 통해 일상 속 한 걸음씩 실현 가능 방법들을 제품을 통해 제시한다.
하얀색 화장지가 아닌 대나무 화장지로 바꿔보는 간단하지만 의미 있는 시도를 통해 우리 모두 간단하지만 지속가능한 변화를 맞이하게끔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좀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비닐로 포장된 대형 휴지 다발이 아닌 하나하나 감각적인 색깔로 정성스럽게 휴지를 포장해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옅은 파란색, 진한 초록색, 쨍한 주황색과 보라색의 포장지들이 휴지들을 감싼 채 화장실에 활기를 더해준다. 당연하게도 포장지는 콩으로 만든 이크와 FSC 인증(산림관리협의회에서 구축한 산림경영 인증시스템) 재생지를 사용했다. 노브레이너의 미래는 이제 시작이다. 이들은 비누, 청정, 스프레이, 탈취제, 샴푸, 치약, 손 세정제 등 다른 생활필수품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바꿔나가려고 한다.
앞서 소개된 친환경 브랜드들을 살펴보면 참 영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 위기, 환경 보호라는 지금 당면해 있지만 자칫 거대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담론을 자신의 관심사와 맞물린 브랜드로서 내재화했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층을 주 타깃으로 삼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지만 않는다. 결국은 영리적 활동을 코어로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며 이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삼는다. 플라스틱 아크가 자사 제품이 쓰임을 다한 뒤에도 재활용될 수 있도록 자체 기술을 개발한 것처럼, 져스트 프로젝트가 대량 생산 체계를 돌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모두가 뚝심 있는 고집과 마케팅의 영역 사이에서 부단히 고민하며 성장을 일궈내고 있다.
모두가 ESG 경영을 외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그린 캠페인과 친환경을 타이틀로 내건 브랜드를 마뜩잖게 바라본다. 실제로 몇몇 기업들은 그린워싱을 하며 이런 시선에 냉소의 힘을 더하기도 한다. 동시에 우리는 한계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활동가가 될 수 없으며 모두가 가장 이상적인 가치와 방법을 최우선에 둘 수 없음을. 그렇기에 부단히 그 스펙트럼의 가운데서 우리가 모색할 수 있는 변화를 제시하는 이들의 비전은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때론 그 가치를 믿고 적극 동참해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날 가치 소비라 명명되는 하나의 물결에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