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어? 이상하다. 이렇게 박자가 쿵쿵대니 내가 아는 노래가 분명한데, 목소리는 구수하고 움직임은 흥겹다. 전통 노래의 가사를 읊고 있지만 풍성한 한복 치마 대신 플리츠스커트를 입은 가수는 자꾸만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의심하게 만든다. 낙서 가득한 한복과 꼿꼿한 갓이 빨간 트레이닝복의 강렬함과 의외로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고조되는 이들의 댄스와 노랫가락… 빠져들듯 보고 있다가 문득 깨닫는다. “아, 이거 국악이구나?”

 

국악의 틀이 견고하다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건드려선 안 될 귀중한 유산처럼 여겨지던 이미지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현재의 대중문화와 소통하는 국악은 올드힙(Old-Hip)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재즈나 힙합은 물론 펑크 리듬과 함께 펼쳐지는 국악 공연이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참신하고 새로운 문화영역의 물꼬를 튼 것이다. 국악이 보여주는 다른 장르와의 화려한 케미스트리는 지금까지 좁은 시야를 갖고 있던 것이 전통문화가 아닌, 바로 우리의 편견이었음을 오롯하게 드러낸다. 가무를 즐기는 흥의 민족이 어딜 가랴, 옛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은 무료했던 대중문화의 강렬한 스파크가 되었다.

그렇다면 국악이 다시금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낯선 것에서 풍기는 익숙함의 냄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유행은 문화 전반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 가운데서 만들어진 비슷비슷한 결과물 혹은 익숙해서 자칫 무료하기까지 한 패턴들은 대중의 싫증을 불러온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유행에 익숙해진 대중이 새롭고 신선한 흐름을 찾아 나서는 것은, 어쩌면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만드는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조건 새로운 흐름이기에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중의 흥미를 끌어오기 위해선 낯선 것을 향한 호기심뿐 아니라 기존의 흐름이 갖던 안정성을 고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바로 그때 올드 벗 뉴(Old, But New), 즉 새로움과 익숙함의 균형을 맞춘 국악이 등장했다. 활기차고 화려한 템포를 가진 대중문화와 고요하고 깊이 있는 전통문화가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내며, 가장 적당한 온도로 대중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어릴 적 교과서 이후로 쉽게 접하지 못했던 국악이 내가 알고 있는 리듬과 섞이며 보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과정은 대중의 마음을 금세 홀리며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러한 흐름에서 지금 당장 신 국악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영상화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무대 위로 공연을 올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대중이 국악의 부흥, 더 나아가 모든 공연 예술의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무대의 노력을 온전히 담아낸 영상 제작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악의 대중화와 더불어 공연의 영상화에도 힘쓰는 두 가지 플랫폼을 소개해본다.

 

국립극장 국립극장 tv

본연의 성질을 오롯하게 간직한 문화예술을 소재로 품격 있는 무대를 선사하는 국립극장은 국악의 변주라는 흐름에 올라탔다. 국립창극단은 <수궁가>로 익숙한 삼국사기 <귀토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전통 판소리의 어려운 한자어를 쉽게 옮기고,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적 장식을 덜어내 시대 감성과 소통했다. 또한 <2020 여우락 페스티벌>을 개최해 악단광칠, 이날치밴드 등 퓨전국악인의 무대를 국립극장 유튜브 및 네이버TV에 소개했다.

 

또한 국립극장은 오프라인에서도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공연 취소 및 연기가 잦아지자, 영상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공연영상회 자문위원회를 구상한 것이다. 올해 안으로 영상화 사업안이 마무리된다면 내년부터는 국립극장의 실황 영상을 직접 제작하고 유통해 큰 공백 없이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국립극장의 자체적인 영상 제작과 유통은 무대 공연의 저작권 보호에도 든든한 뒷받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문화재단 온스테이지2.0

최근 대중에게 인디음악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은 어느 대학로 뒷골목이 아닌, 온라인 음악 채널 온스테이지2.0다. 온스테이지는 2010년 ‘숨겨진 아티스트에게 조명을 비춘다’라는 모토를 바탕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밴드와 뮤지션의 공연 영상을 제작했다. 서론에 소개했던 이날치밴드의 <범 내려온다> 뿐만 아니라 밴드 악단광칠의 <영정거리>, 전주 판소리 합창단과 함께한 림 킴의 <민족요> 등의 감각적이고 신선한 무대는 마음 깊이 숨겨진 흥을 불러일으킨다.

 

온스테이지는 타 음악 채널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우선 스튜디오 촬영만을 고수한다는 점이 그렇다. 시선 분산의 요소가 다분한 야외 촬영 대신 가수와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는 무대 디자인을 선택한다. 스튜디오 전면에 설치된 정육면체의 설치물과 조금 어두운 조명은 온스테이지의 시그니처다. 원테이크(One Take: 시작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한 컷으로만 촬영하는 방식) 촬영 또한 온스테이지의 차별성이다. 기존 음악 채널은 가수의 얼굴이나 멤버의 연주 모습 혹은 환호하는 관객석까지 끊임없이 컷을 나누지만, 온스테이지는 편집 없는 원테이크 방식을 고수한다. 덕분에 관객은 무대에 온전하고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다. 이러한 온스테이지의 세심한 영상 제작 방식은 공연 무대 영상화의 좋은 본보기다.

현재의 신(新) 국악 시대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전통문화의 정체성이 흐려지진 않을까, 단지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는 당연하다. 많이 소비될수록 그만큼 빠르게 싫증 내는 대중의 취향을 고려할 때, ‘이게 진짜 국악이야? 입맛에 맞춰 맘대로 바꾼 건 아니고?’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악답다’ 혹은 ‘국악답지 않다’는 경계는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일까?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는 시도를 거듭하는 국악을 향해, ‘너답지 않아’라는 평가는 너무 섣부른 것 아닐까?

 

국악을 각색하고 변주하는 일은 그동안 대중의 관심과 멀어졌던 거리를 좁히고 전통문화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고유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금 더 필요한 것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 전통문화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 흐름을 주도하는 국악의 모습을 한때의 소비가 아닌 기회로 본다면, 국악은 소수만 즐기는 너만의 것이 아닌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우리의 것으로 변모할 수 있다.

 

성급하게 내린 평가로 대중문화의 확장을 막고 전통문화의 빛나는 도전을 거부하기보다, 잠시 걱정되는 마음을 내려놓았으면 한다. 그보다 먼저 유연한 상상력 속에서 맘껏 헤엄치는 국악을 일단 흥겹게 즐기는 것이 어떨까. 듣고 느끼던 과거의 국악에서, 보고 상상하는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국악으로 성장한 무대의 막이 오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