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IT 기술의 발전은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85)>를 능가하고 있다. 아직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기는 했지만. 영화 속에서 나오던 신발끈이 저절로 묶이던 나이키 운동화도 이제는 현실에서 만날 수 있고, 그저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AR, VR 기술의 실용화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 됐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AR, VR, 4D 등의 IT 기술은 우리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고 있으며 또 다른 세상의 시작을 꺼낸다. 특히 이 기술들은 공연, 전시, 영화, 책 등 여러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삶의 편의를 위해 개발되던 기술이 이제는 즐거움을 위해 개발되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를 만난 IT 기술은 기술도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글과 그림이라는 틀 안에만 있던 문화예술과 상상이 기술을 만나 현실 세계로 나오는 모습은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더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기술과 만난 예술 작품을 볼 때마다 이런 질문이 불쑥 고개를 든다. “정말 이게 더 창의적인 것일까?”

 

 

IT 기술을 만난 작품은 더 이상 멈춰 있지 않는다

지난 5월 개최된 ≪Futuredays-시간의 공간展≫을 보면 작품 전시에 IT기술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AR과 VR 기술이 합쳐진 XR(eXtended Reality, 확장현실)로 만든 콘텐츠를 전시했으며, 어플을 통해 관람객에게 살아 움직이는 작품의 세계를 선사했다. 이 전시는 작품을 특정 어플로 보면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멈춰있던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의 동상이 눈이 내리고 있는 설원 속 나폴레옹으로 변하고, 프랑스 혁명 그림 속에 아바타가 직접 뛰어들어 실제 같은 현장감을 전해주기도 한다.

전시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책도 AR을 만나 활자와 그림 밖으로 나오고 있다. 유아 도서를 출판하는 블루래빗 출판사는 AR을 접목한 여러 도서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고기, 공룡, 동물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AR북 시리즈는 어플을 책에 비추면 살아 움직이는 고래를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책에 갇혀있던 고래, 상어, 앵무새, 티라노사우루스가 AR기술을 만나 책 밖으로 나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가만히 있는 게 당연했던 동상, 그림, 책이 IT 기술을 만나 이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해졌다. 지금 AR북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쩌면 책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발전된 기술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Untact) 문화가 생겨나면서 IT 기술의 영향력은 더욱 중시되고 있다. 느낄 수 없어도 느낄 수 있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며 사회, 기술을 넘어 미래의 예술, 문화, 경험으로 대두될 만큼 막강한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IT 기술이 유독 문화예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각광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AR은 창의력의 표현일까? 아님 새로운 틀일까?

전시부터 책까지 여러 문화예술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IT 기술은 상상만 했던 사람의 생각을 실제로 만들어 주고 있다. 책을 보며 바다 속 고래를 상상만 했다면, 이제 눈 앞에서 고래가 수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 사람의 상상을 표현해주는 것은 글이었고,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이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상상력이 실제로 마법처럼 보여지는 것은 창의력을 새롭게 성장시켜 주기도 하지만, 새로운 틀을 만들기도 한다. 상상력을 표현해주는 IT 기술이 왜 상상력을 막는 틀이 된다고 하는 걸까? 우리가 보는 전시, 공연, 영화, 책 등등 문화예술은 만든 이와 보는 이의 경계가 있다. 그 경계는 만든 이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보는 이의 상상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IT 기술이 접목된 문화예술은 그 틈을 기술로 메워버린다.

 

예를 들어 사과가 그려진 그림을 볼 때, 보는 이가 생각도 하기 전에 넓은 사과밭을 보여준다면 과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생각을 해보려 해도 보여지는 것에 묶여 생각의 걸음이 정체되지는 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발전된 기술이 사람의 창의력을 반드시 높여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각과 체험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지만 새로운 틀이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상상은 보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오히려 보지 않아야 더 자유로운 생각,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또 만든 이의 창작 의도 자체를 봤을 때 우리의 생각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보이는 상상력은 어쩌면 영화를 보기도 전에 내용을 이미 다 알아버리는 환경에 놓이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신기술을 통해 체험하고 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정신을 부여한다. 그리고 기술을 만난 엔터테인먼트가 주는 즐거움도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확실한 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지 않는가. 넘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 필요한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