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동네로 감각하기 시작한 시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주민이라면 도시를 자신이 속한 동네를 구성하는 기억들로 먼저 인식한다. 그러나 그 도시가 수많은 유동 인구가 있으며 2~4년 주기의 잦은 이주를 필요로 하는 도시라면? 서울과 같은 거대 도시에 사는 이는 자신을 동네보다 서울 시민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2019년 기준, 서울 주민 중 자가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42.7%로 전국 평균(58%)을 한참 밑돈다. 게다가 타지역에서 이주한 2030세대에게 서울은 더욱 동네와는 거리가 먼 도시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서울은 그 분주함에서 벗어나고픈, 매력을 상실한 도시일 수도 있다. 2021년 기준으로 286만 명의 2030세대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전체 거주 인구 대비 그 비율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2030 감소의 주된 사유는 서울시 밖 전출이다. 탈서울 인구의 1/2 가까이가 2030세대며 대개 전출 사유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직업(20대)과 주택(30대) 문제였다.
동네는 추억이다. 추억이 깃들지 않은 공간은 동네가 될 수 없으며, 동네라는 친근한 어감으로 호명하기 다소 어렵다. 기억과 구별되는 추억의 공간으로서 동네는 좀 더 촘촘한 의미망을 형성한다.
기억이 단순히 과거 어떤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라면, 추억은 과거의 사건을 감성적으로 반추하는 것이다. 그러니 추억의 물결에 촉촉이 젖을 수도, ‘기억의 그 장소’란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안상순, 우리말 어감사전 : 말의 속뜻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 도서출판 유유, 2010, p.103~104
어떤 공간이 내게 동네가 되기 위해서는 2가지 성립 조건이 필요하다. 꼭 거주하지 않더라도 내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특정 매력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거기서 수행한 개인적 활동을 계속 떠올리며 나만의 공간이 되는, 내재화된 추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거대 도시, 메트로폴리스는 동네가 될 수 있을까. 최근 메트로폴리스란 개념에 가려져 있던 로컬, 동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동네를 중심으로 중고 거래가 늘고, 주거 및 상업 시설이 밀집되어 녹지공간은 늘고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시민이 도보 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 개념이 뜨면서 하이퍼로컬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하이퍼로컬은 Hyper(극도의, 아주 심한)+Local(지역)의 합성어로 아주 좁은 범위의 특정 지역·동네에 맞춘이란 의미다. 슬리퍼를 신은 채 편한 복장으로 각종 여가, 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을 뜻하는 슬세권과 비슷한 말이다. 로컬이란 용어는 상대적으로 활용되는 개념이기에 글로벌 차원에서는 특정 국가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도시 차원에서는 특정 구나 동을 의미할 수도 있다. 본고에서는 거대 도시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서의 동네로 사용했다. (일례로 봉준호 감독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방문했을 때 아카데미는 국제 영화제가 아닌 로컬이다라고 표현한 것도 국제 차원에서 아카데미를 봤을 때이다.)
초기 저널리즘 영역에서 하이퍼로컬은 주류 언론이 다루지 않는 작은 의제들–지역 뉴스, 커뮤니티–을 다루는 것을 지칭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비즈니스 및 플랫폼 영역으로 그 용례를 넓혔다. 지역 주민 간, 또는 주민이 지역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등이 그 예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주민 간 중고 거래를 돕는 당근마켓, 주민이 자신이 사는 거주 공간을 숙박 시설로 운영하는 에어비앤비가 있다. 본고에서는 하이퍼로컬이 비즈니스와 플랫폼 경제 영역에서 어떻게 주목받고 있는지를 국내 주요 사례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생활권 지역·동네 중심의 향후 서울 도시계획과 맞물려 가까운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그 상상력의 단초를 제공하고자 한다.
핸드폰과 슬리퍼 하나면 돼, 하이퍼로컬 플랫폼
코로나19 이후, 영화관과 미술관을 제치고 동네 공원(아파트 내 공터·생활권 공원)이 도시민의 최대 여가·야외활동 장소로 꼽혔다. 이처럼 팬데믹의 장기화는 도시민의 생활 반경을 좁혀 이전엔 그저 스쳐 지나가기 바빴던 동네를 자세히 보게끔 했다. 재택근무의 장기화와 실내 활동 시간 증가는 팬데믹 이전부터 주목받던 슬세권을 부동산 주요 이슈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원거리 연결을 지향하던 플랫폼 경제에서 더 좁고 밀착된 공간 속 사람 간의 연결을 도모하는 하이퍼로컬 플랫폼을 새로운 산업 가능성으로 점쳐지게 만들었다.
당신 근처의 마켓을 의미하는 당근마켓은 2015년 7월 처음 서비스를 시작해, 2021년 국내 모바일앱 실사용자(MAU) 순위에서 8위를 기록했다. 페이스북(9위), 티맵(10위)보다 더 많은 유저가 방문한 당근마켓은 순위권에 오른 앱 중 유일하게 지역 커뮤니티를 표방한다. (특정 지역(동네) 내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의 민족이 7위를 기록했다.)
당근이세요?란 신조어 및 각종 패러디를 만들어낼 정도로 당근마켓은 하이퍼로컬커머스로 성공했다. 2021년 시리즈D 투자 유치를 끝낸 뒤 국내 16번째 유니콘 기업(상장하지 않은 스타트업 기업의 가치가 1억 달러(1조 원) 넘은 일)이 된 당근마켓은 동네 속 각종 중고 거래와 커뮤니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중고 거래의 대명사로 불리던 중고나라를 제치고 당근마켓이 성공하게 된 배경에는 모바일 앱을 활용한 사용자의 실시간 기동성을 확보했다는 이점이 있다.
네이버 카페 플랫폼에 의지하고 있는 중고나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 간 실시간 소통을 도모하기가 어렵다. 이용자 중 일부가 게시판을 광고로 도배하거나 허위 광고 등을 올려 이용자의 신뢰를 잃어가기도 했다. 또한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란 다소 반어법적인 인터넷 밈(meme)이 보여주듯 각종 사기나 허위 매물로부터도 안전하지 않다. 개인 간 상호 신뢰 하에 이루어지는 중고 거래라는 생태계가 보장되지 않은 중고나라는 결국 당근마켓에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당근마켓은 이용자 간 동네 기반 직거래에서 오는 신뢰를 마케팅 전략으로 삼았다. 이용자는 GPS 기반 지역 인증 후 반경 6km 내에서만 거래가 가능하기에 신원이 불분명한 인물과 거래한다는 불안감을 일면 해소한다. 인근 동네가 기반이 되기에 대면 직거래가 용이하다는 점도 큰 위안이다. 벽돌이 왔다, 내용물이 비어있더라가 아닌, 판매인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 자리에서 물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사기 가능성이 줄었다.
그러나 당근마켓의 매력은 사실, 중고 거래라는 본연의 기능에만 있지 않다. 바로 지역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기능이다. 새로운 목표를 “맘카페를 뛰어넘는 지역 커뮤니티가 되는 것”이라고 밝힌 당근마켓답게 [동네생활] 탭에는 동네질문, 취미생활, 분실실종 센터, 강아지 등 다양한 태그 속에서 등산 동호회 모집글, 맛집 추천, 산책 코스 문의 등 글이 올라온다. 동네의 다양한 소식과 정보 집결지로서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최근 당근마켓은 국내 성공을 발판으로 해외의 동네들을 공략해 나가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4개국 87개 지역에서 캐롯(Karrot)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해 거점 지역을 100개까지 확보할 예정이다. 당근마켓 글로벌프로덕트 부문 총괄 김결은 파이낸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구글 지도와 같이 글로벌에 최적화된 캐롯 앱을 여러 국가에 동시 선보이는 형태로 확장할 예정이며 지역 특성과 문화에 맞는 세부 전략도 마련해 하이퍼로컬 서비스를 만들겠다” 밝혔다.
로컬 기반 동네 거래는 상대적으로 물류비가 비싼 해외 이용자들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대중교통이 보편화된 서울과 일본은 반경 4~6km로, 단독주택 문화로 거리가 먼 미국과 캐나다는 10~20km로 현지화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2021년 연말 당근마켓은 연말 총결산 데이터를 공개하며, 지역생활 커뮤니티로서 한층 더 성장한 당근마켓의 진화를 회고했다. 특히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 동네생활에서는 약 3,000만 건의 소통이 이뤄졌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을 기록하며, 단순 중고 거래 플랫폼 이상의 하이퍼로컬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네이버 또한 로컬의 온라인화를 주도하고자 기존 네이버 카페 앱의 한계를 보완해, 2021년 12월부터 카페 앱에 이웃 탭을 추가했다. 이용자는 활동 지역 설정을 통한 지역 인증이 완료되면 이웃 톡에서 동네 주민과 교류할 수 있다. 이곳에선 숨겨진 맛집, 동네 생활 꿀팁 등 각종 정보가 오간다.
네이버는 코로나19 이후 부상한 동네, 로컬의 가치에 공감하며 다음 전략 세 가지를 수립했다. 첫 번째, 쇼핑·금융·예약 등 네이버 핵심 서비스의 근간인 중·소상공인의 온라인 채널을 네이버로 흡수한다. 두 번째, 코로나19 이후 가치가 재조명된 오프라인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래를 선점한다. 세 번째 당근마켓, 배달의 민족, 병원·맛집 앤 등 지역 기반 버티컬(특정 카테고리 특화) 플랫폼들이 가져간 네이버의 검색 파이를 방어한다. 또한 지속해서 큰 강점으로 꼽힌 기존의 커머스 사업에 지역 밀착 서비스를 추가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단골 가게 있다면 개별 QR코드를 부여받아 스마트폰을 이용해 네이버페이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블로그 후기를 남기면 더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지역 중소상공인과 네이버 콘텐츠를 엮고 있다.
재활용 분리수거 및 쓰레기를 버려주는 서비스를 구독 형태로 도입한 국내 라이프매니지먼트 솔루션 미고 또한 새로운 하이퍼로컬 주자로 조명받고 있다. 비슷한 해외 플랫폼으로는 지역 기반 소셜 미디어이자 중고 커머스 넥스트도어(Next door), 페이스북의 중고 거래 서비스 마켓 플레이스(Market place), 영국의 식료품 이웃 나눔 서비스 올리오(Olio), 중국 이웃 간 공동구매 서비스 판둬둬(拼多多) 등이 있다.
하이퍼로컬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구독 경제와 궤를 같이한다. 이는 단순히 우유와 신문을 배달받던 구독경제 1.0, OTT 및 음원 스트리밍을 하는 IT서비스 구독경제 2.0과는 다른 구독경제 3.0에 해당한다. 구독경제 3.0은 거주지역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서비스가 세분되고 초개인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단순한 온라인 가상공간에서의 서비스를 넘어 일상과 거주 공간을 온라인화해 일상 속 편의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BC카드 빅데이터센터에 따르면 거주지 500m 이내의 결제가 2년 사이 25.6%에서 32.9%로 늘어난 시대 속, 로컬을 사로잡기 위한 플랫폼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시
하이퍼로컬 경제가 동네 일상을 온라인화했다면, 도시 계획 속 하이퍼로컬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팬데믹으로 좁아진 생활 반경은 누군가에게는 안전을 도모하는 행동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열악한 주거 환경과 동네 생태계로 도피할 수 없는 재난일 수도 있다. 걷고 싶은 동네, 일상 속 여가생활을 보내고 싶은 동네를 실현하려면 시정 차원에서 전사적이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 3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을 공개했다. 참고로 도시기본계획은 한 도시가 수립할 수 있는 최상위 단계의 법정 도시계획이다. 20년 단위로 수립하되 5년마다 재정비하게 되어 있다. 2014년에 수립된 <2030 서울플랜>이 최종 버전이며 이를 재정비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에서는 향후 20년 동안 서울의 미래상을 담았다. 이번 계획은 총 6가지 공간계획 미션을 골자로 한다. ①‘보행 일상권’ 도입 ②수변 중심 공간 재편 ③중심지 기능 강화로 도시경쟁력 강화 ④다양한 도시 모습, 도시계획 대전환 ⑤지상철도 지하화 ⑥미래교통 인프라 확충이다. 하이퍼로컬 관점에서 핵심을 꼽자면 걷고 싶은, 걷기만 해도 되는 도시를 만들고자 함이다.
서울시는 보행 일상권이란 용어를 내세워, 주거 위주로 형성된 일상생활공간을 전면 개편해 도보 30분 이내 보행권 안에서 일자리, 여가문화, 수변 녹지, 상업시설, 대중교통거점 등 다양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누리는 자립적인 생활권으로 업그레이드하고자 한다. 파리에서 제안된 15분 도시와 유사한 개념으로, 일상화된 재택근무와 이동이 제한된 현실에 적응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 도시민이 좀 더 좁아진 구역에서 고밀도·집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동네 생활권을 구축하고자 함이다. 이는 지역 기반 일자리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여가 및 문화 활동까지 지역 안에서 누릴 수 있어 지역 균형과 상권의 부흥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보행 일상권의 핵심은 지역이 자립적인 생활권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행 일상권이란 장밋빛 워딩이 즉각적으로 인구, 문화 지표, 상업 활성화, 교통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불균형이 만연한 서울의 지역들을 자립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특히 지역균형발전을 논할 때마다 씨름하고 있는 문제인 지역 내외 젠트리피케이션과 일관성 없는 도시정책 또한 큰 문제가 된다.
실제로 서울시가 도심 노후 지역 재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청계천‧을지로 일대 상인들은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서울 최대 재개발 지역으로 떠오른 을지로3가부터 충무로역 일대를 아우르는 세운지구에서는 재정비 촉진이라는 명분으로 을지로 골목을 지켜온, 기억 그 자체인 노포들이 축출되고 있다. 40년 이상 을지로를 지켜온, 서울 3대 평양냉면 맛집 중 하나 을지면옥만이 홀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마저도 곧 철거 위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을지면옥은 과거 서울시가 보존할 가치가 있는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했던 공간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정비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가 1년 후 다시 을지면옥 등 노포들을 철거한다고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 을지로의 상인들은 그간 힙지로라는 칭호 아래 생겨난 살인적인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 재개발이란 행정 목표에 가려지기만 했다.
을지로 사례가 보여주듯, 힙한 공간이 되거나 핫플이 되면 붙는 ○리단길 시리즈처럼 서울은 특정 지역만 이름값하는 지역으로 의미화되기 쉽다. 서울 및 수도권 주민에게는 여가나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한남동, 성수동 등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는(해야만) 문화가 보다 익숙하다. 보행 일상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 불균형 해소는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동네, 골목 문화를 형성한 상점들이 밀려나지 않도록. 또 밑천 없는 이들이 지역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법과 조례,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성동구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법률(지역상권법)로 제정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더 이상 밀려날 걱정 없이 성동구에서 자리를 잡고 싶다는 청년들의 요청으로 2014년부터 시작한 법 제정 노력이 마침내 21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사례다. 지역상권법은 급격한 임대료 상승이 우려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서 지역상생구역과 자율상생구역을 지정하도록 했다. 지역상생구역은 지역 상권 보호에 초점을 맞춰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업종의 상권 진입 여부를 지역상생협의체가 사전 심사하게 했다. 자율상권구역은 상권 활성화를 강조해 임대차계약 협약체결 지원, 교육 및 경영 지원 등을 추진한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수변이다. 서울 전역에 흐르는 61개 하천을 시민 생활 중심의 도시공간으로 재편해 각종 테라스 카페, 쉼터, 문화공간 등으로 재탄생시킨다는 내용이다. 이는 로컬의 스케일을 구, 행, 정, 동 등 행정 단위로만 국한한 게 아닌, 수변이라는 하천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한강 르네상스와 유사한 정책 계보에 있는 이번 수변 중심 공간 재편 계획은 지천 르네상스로도 생각할 수 있다. 하천의 크기 및 위계에 따라 ①소하천, 지류 ②4대 지천(안양천, 중랑천, 홍제천, 탄천) ③한강의 수변 활성화 전략으로 나뉜다. 소하천, 지류는 수변테라스 카페, 쉼터, 공연활동 등으로 수변친화 생활공간을 조성하며, 4대 지천은 특화거점을 찾아 명소로 조성해 배후 주거지와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 한강은 수변과 도시공간 간 경계를 허물어 한강과 일체화된 도시공간을 조성하고, 업무, 상업, 관광 중심으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중랑천 인근에서 소음과 매연을 유발하던 동부간선도로 지하화가 추진될 예정이다. 중랑천은 경기 양주시에서 발원해 서울 중랑·동대문·성동구를 관통해 흐르는 하천이다. 이중 서울 구간 대부분은 동부간선도로에 둘러싸여 있어, 시민들의 중랑천 접근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동부간선도로는 서울 동북권의 성장을 견인한 유일한 교통로이지만, 평균 통행속도 24kn/h로 고속도로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집중호우 때마다 침수되기 일쑤였다.
서울시는 2028년까지 동부간선도로 구간 아래 장거리 통행이 가능한 4차선 지하도로를 신설하고, 이후 동부간선도로를 지하화하는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2034년 모든 공사가 종료되면 중랑천은 생태공원이 둘러싸고 있는 여가 및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될 계획이다. 런던의 도크랜드(Dockland)나 마드리드 M30 같은 하천 중심의 친환경 시민 여가 공간을 목표로 한다. M30은 스페인 마드리드 도심을 순환하는 고속도로인데, 점차 팽창됨에 따라 도시가 양분화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시정부는 고속도로를 지하화해 남은 빈터에 공원을 조성하고 보행 전용교도 여럿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줬다. 소용돌이 모양 디자인으로 관광명소가 된 아르간수엘라 도교도 여기에 설치됐다.
으레 새로운 용어가 그러하듯, 하이퍼로컬 또한 코로나19라는 외부적 환경으로 인한 뉴노멀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살펴본 하이퍼로컬은 서비스의 세분화 및 초개인화라는 비즈니스적 흐름, 거대 도시 속에 종종 잊혀지거나 거대 담론에 밀려난 지역, 동네가 다시금 재조명받게 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니 하이퍼로컬은 그다지 새롭지 않은 개념이다.
초연결 사회가 보여준 외로움이라는 사각지대, 기후 위기와 양극화 속 불균형과 격차가 일상화된 시민에게 다시금 도시를, 동네를 돌려주는 시도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과거 농촌 사회 혹은 소규모 마을 공동체 특유의 따뜻한 동네(neighborhood), 끈끈한 공동체 및 연결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거대 도시는 필연적으로 끈끈한 연결을 지양하고 정주와 이주가 반복되는 특성을 지녔기에 그럴 수 없다.) 오히려 거대도시는 무수한 유동 인구와 밀도 높은 인구 밀집도로 수많은 문제와 변수, 이벤트 등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안전과 유흥이 동시에 추구되고, 역사와 전통의 보존과 하이테크가 한 공간에 교차되고 병존한다.
다만 나 혼자 살 수밖에 없는 1인 가구로서, 내가 (임시로나마) 거주하고 활동하는 공간에 대한 안전과 애정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게 하이퍼로컬이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하이퍼로컬은 단순 현상을 지칭하는 가치 중립적인 용어이지만, 그 용어를 표방하며 발생하는 비즈니스 영역과 도시는 어쩌면 추억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억될 수 있는 도시 속 동네를 발견하는, 꽤 의미 있는 과정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