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스테이의 대명사
스테이폴리오
건축을 전공한 이상묵 대표가 2015년 설립한 스테이폴리오는 머물고 싶은 좋은 스테이를 표방하며 다채로운 숙소를 큐레이팅하는 플랫폼이다. 그 시작은 소박하게도 이상묵 대표의 개인 블로그였다.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뒤 도시설계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2011년 제로플레이스란 공간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25년 동안 운영하던 식당을 숙박시설로 탈바꿈해 다변화하고 급박한 현대 사회 속에서 도시인에게 필요한 대안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충남 서산 해미 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0으로 돌아가는 장소란 의미를 담고 있다. 여담이지만 과거 식당의 상호였던 영가든과 맥락을 같이 하기도 한다.
이상묵 대표는 제로플레이스가 황락 호반과 가야산을 배경으로 비움과 느림의 가치를 실현하는 장소이자 크리에이터를 위한 영감의 장소로 기능하길 원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 제로플레이스의 숙박 예약을 받아 운영하기 시작했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숙소 200여 군데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커머스와 콘텐츠 큐레이션이 결합된 그의 블로그 명은 바로 머무른다는 stay와 포트폴리오의 folio를 결합한 합성어, 스테이폴리오였다. 건축 전공자의 시선에서 다룬 숙소 리뷰는 다분히 차별성이 있었다.
지금의 스테이폴리오와 같은 구체적인 형태를 구상하게 된 배경에는 아이폰 출시가 있다. 앞으로 모든 일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재편되리라 예측한 그는, 블로그 중심의 이용자가 접근하기 불편한 UX/UI가 아닌 모바일에 최적화된 웹사이트를 고민한다. 그렇게 2013년 첫 웹사이트가 세상에 나왔고, 2016년에는 실시간 숙박 예약 시스템과 직접 설계한 12곳의 숙소를 선보였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 숙소들을 마치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처럼, 스테이폴리오 오리지널 숙소라고 표현했다.
그는 건축 전공자라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좋아할 만한 가치 있는 숙소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해 기존의 숙소 중개 서비스를 넘어서려고 했다. 2022년 10월 기준 현재 스테이폴리오에 입점해 있는 국내외 숙소는 300여 개, 그중 스테이폴리오가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는 숙소는 50개, 나머지 250곳 중 60%는 스테이폴리오에서만 예약 가능한 독점 숙소이다. (참고로 공간을 설계하는 업무는 Z랩이란 건축회사로, 플랫폼 운영과 큐레이션은 스테이폴리오로 분업화되어 있다.)
왜 다수의 숙소는 스테이폴리오에서 독점 공개하는 쪽을 택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테이폴리오가 지향하는 플랫폼 고유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혹자는 이를 MZ세대를 겨냥한 감성적이면서도 힙한 숙박 플랫폼이라 표현한다. 힙(hip)의 고유 의미를 상기하면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힙하다라는 용어가 원조로 쓰인 영어권에서의 용례를 살펴보면 단순히 트렌디한 것보다 다른 이들처럼 쉽게 성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남다른 것을 찾아 지향하는 스타일을 지칭한다. 주류 문화와 다른 독립적인 사고방식과 매몰되지 않는 가치를 의식적으로 지향하는 것이다.
스테이폴리오는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되는 공간을 지향하는 파인 스테이 플랫폼임을 표방한다. 이를 위해 가격 중심의 경쟁 논리에서 벗어나 디자인, 운영 철학, 지역성 등 브랜드 가치를 기반으로 독특한 개성을 지닌 숙소를 선별한다. 양질의 개별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처럼 세계 곳곳에 숨은 파인 스테이를 소개하고 연결, 제작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여행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입점 신청의 네 가지 기준은 독창성, 디자인, 환대, 그리고 가격이다. 자신만의 콘셉트와 가치로 로컬과 조화를 이루는 스테이. 그렇기에 숙소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자 소우주가 되는 곳을 선별해 파트너십을 맺는다. 이상묵 대표는 “공간에는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의 정체성과 열망이 담깁니다. 정체성과 열망이 없는 장소와 공간은 우리도 특별한 곳으로 만들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마치 장어구이 집을 운영하며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아버지의 열망을 이해한 그가 제로플레이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스테이폴리오는 공간에 담겨 있는 사람의 이야기와 호흡하듯 지역과 관계 맺는 공간에 주목한다.
스테이폴리오는 이야기가 가득 담긴 숙소를 중심으로 커머스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이들이 소개하는 콘텐츠 서비스로까지 자연스레 나아간다. 공식 홈페이지 [JOURNAL] 섹션과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치를 지닌 곳을 조명하는데 [JOURNAL]은 숙소와 건축가의 이야기를 담은 [MAGAZINE], 국내 주요 숙소를 이용자의 시선에서 리뷰한 [TRAVEL], 직접 추천하는 주요 숙소를 리스트업한 [PICK] 이렇게 세 개의 코너로 나뉜다. 섹션별로 주요 내용을 간추려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고, 이를 다시 반려동물 동반, 부모님과 함께, 나에게 집중 등 이용자 편의에 맞춘 세부 항목으로 나눈다. 특히 스테이폴리오가 각 숙소를 소개하는 방식은 진심이란 표현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독점 숙소는 모두 독자적인 웹페이지를 만들어 소개한다. 하나의 가맹점처럼 소비되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정체성을 지닌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말이다. 공간을 소개하는 영상부터 메이킹 스토리와 인터뷰를 담은 예약 페이지를 보면 해당 공간에서 어떤 경험이 가능한지 예상하고 기대하게 만듦으로써 공간이 지향하는 가치에 블렌딩 되게끔 유도한다.
스테이폴리오는 지난해 연말 1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특히 투자 한파 시기에 해당 규모의 유치를 이룬 것은 스테이폴리오가 그만큼 차별성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향후 스테이폴리오는 국내용 숙박 플랫폼이 아닌 글로벌 파인 스테이 플랫폼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코로나 동안 글로벌 인프라 구축과 스마트 호스피탈리티 서비스 개발에 집중해 온 만큼 위드코로나로 점차 여행이 활성화되는 이 시점에 스테이폴리오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현대카드 브랜딩의 디지털 싱크로나이즈
DIVE
스토리텔링에 강점에 둔 콘텐츠 시장에 뛰어든 건 비단 커머스뿐만이 아니다. 브랜드 또한 적극적으로 콘텐츠 영역에서의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중이다. 과거 구글 임원이자 현재 성공적인 벤처 기업 로어케이스 아이 오브 로어케이스 캐피탈 Lowercase I of Lowercase Capital(당황스러울 정도로 이름이 긴 회사로도 유명하다)을 운영하는 크리스 사카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로 불린다.
그가 초기에 투자한 기업들은 트위터, 우버, 인스타그램 등 현재 빅테크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의 신조는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뛰어난 스프레드시트를 이긴다다. “아무리 회계가 어떻고 MBA 어떻고 하는 소리를 늘어놔도 우리는 결국 감정에 좌우되는 인간이다. 우리는 숫자가 아닌 어떤 서사와 늘 연결되고 싶어 한다.” 유명 브랜드가 스토리텔링이 전부라 할 수 있는 콘텐츠 영역에 뛰어드는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브랜드만이 표방할 수 있는 독자적인 스토리텔링을 빌드업해 소비가 아닌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최근 신용카드 사용액 점유율 4위에서 3위로 한 단계 더 오른 현대카드의 비법 중 하나인, 컬쳐 앱을 표방하는 DIVE처럼 말이다.
2019년 처음 출시된 DIVE는 그간 오프라인 위주로 진행돼 온 현대카드의 브랜딩 활동을 온라인, 그것도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한 디지털 문화 콘텐츠 공간이다. 베타 서비스 때부터 누적 다운로드 수 30만을 돌파했고 카테고리 내 인기 앱 2위를 차지하는 등 호평을 얻었다. 놀면 놀수록 빠져드는 컬쳐 앱답게 매일 업데이트 되는 디자인, 음악,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컬처 트렌드 아티클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현대카드 컬처 이벤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슈퍼콘서트, 스토리지 전시의 예매 소식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할 수 있다. 에어비앤비, 왓챠 등 브랜드 이야기도 풍부하게 담았다.
초기 필진으로는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아레나의 편집장 박지호를 필두로 월간 디자인 전은경 편집장, 트렌드 매거진 인디드의 성범수 편집장, 배우 봉태규 등 각자 고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유한 힙한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했다. 콘텐츠와 크리에이터뿐만 아니라 앱의 UX/UI 디자인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2018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iF Design Award 앱 디자인 부문 수상에 이어 올해 스마트 앱 어워드 브랜드 이노베이션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디자인과 기술적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앱을 켜보면 콘텐츠가 바둑판식으로 나열된 게 아닌, 한 화면에 콘텐츠 하나만을 노출하는 무한 스크롤링 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구조는 이용자 입장에서 분야별로 다양한 콘텐츠를 한눈에 접하기 어려워 자칫 후킹이 약하거나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다. 그러나 정태영 현대카드 CEO의 유튜브 브랜딩 강의 [브랜딩하기] 편을 보면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이 제시된다. “브랜딩이란 sychronize이다.” 음식 앱을 열든, 금융 앱을 열든, 하물며 현대카드에서 보내는 청구서를 볼 때도 그 속도와 느낌은 같아야 한다. 그의 말을 해석해 보자면 브랜딩이란 동질적인 정체성과 특유의 리듬감 속에서 전혀 다른 서비스라 하더라도 하나의 유니버스 안에 있는 것처럼 동률적인 질감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UX/UI에 관한 가장 전형적인 고정관념은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의가 아닌 체험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른 앱과 차별화된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또 하나의 브랜딩 전략이자 고정관념을 비트는 지점이 된다. 정태영 CEO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완벽한 브랜드가 되는 것은 단 10%한테도 관심을 못 받는 브랜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브랜드만의 존재감을 만들어 가는 과정, 다이브의 의도적인 불편함은 그 자체로 다이브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현대카드란 유니버스를 은유하는 정체성 아닐까 싶다. 여기에 콘텐츠의 후킹이 되어주는 다섯 단어 이내 콘텐츠 타이틀은 직관적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콘텐츠로 빠져들 수 있게끔 좋은 출발점이 되어준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신세계건설의 철학 집약체
VILLIV
신세계건설의 주거 브랜드, 빌리브(villiv)는 스테이폴리오와 유사하게 집을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삶의 공간이자 이야기를 품은 곳으로서 그 가치를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좋은 삶에 대한 신세계건설만의 철학을 녹이고자 했던 빌리브는 모던한 형태의 마을인 Village와 존중되는 사람의 공간인 Live를 결합한 브랜드명이다. 2018년에 출범되었으며 주택사업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과 같은 콘텐츠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빌리브는 현재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 대구, 울산, 부산, 광주, 제주 등 전국 곳곳에 프리미엄 주거시설을 설계했다.
빌리브가 표방하는 이념은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다른 집이 있어야 한다는 다양성이다. 가령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에 공급한 빌리브 하남의 경우, 8가지 면적에 4가지 타입의 층고, 31개의 신평면, 4가지 조망 등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다양한 공간을 선보였다. 입주민이 일률적인 디자인과 주거 타입에 맞추는 것이 아닌, 입주민의 기호와 필요에 의해 다양한 선택지를 적극 제공한다. 여기에 스카이 가든, 루프탑 가든, 복도 아트리움 등 녹지공간을 도입해 자연과 도시를 함께 누리고 싶은 도시민의 판타지도 충족한다.
앞서 다이브에서 설명했듯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되는 콘텐츠 사업은 브랜딩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자연스럽게 해당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고, 전문성 있는 콘텐츠는 결과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빌리브는 라이프매거진과 뉴스레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라이프매거진의 주제는 건축에 초점을 맞추되 가드닝, 공공주택, 반려동물, 노마드, 오가닉 등 건축을 통해 구현되는 라이프스타일에 집중되어 있다. 건축의 심미성 혹은 예술적 탁월성보다 그 공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거주민의 철학에 대해 논한다는 이야기이다. 빌리브 홈페이지에서 접할 수 있는 이 웹매거진은 검색창을 기반으로 내가 원하는 아티클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마드를 검색하면 노마딕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탐험 정신의 카메라 가게, 제주에 차린 베이스캠프, 밴에 살아가는 아티스트 커플 등 수많은 양질의 콘텐츠가 쏟아진다. 2023년 4월 기준, 총 665개나 존재하는 이 방대한 빌리브의 통찰 속에서 실로 각자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끝도 없이 탐구할 수 있지 않을까?
2021년에는 매거진 구독자 수가 이미 20만 명을 돌파했고, 특히 3040 트렌드세터들에게 사는 곳의 의미를 환기하고 공유하는 장으로 유의미하게 자리 잡았다는 평을 받았다. 신세계건설은 이에 힘입어 종이 매거진을 제작해 스타벅스와 까사미아 등 주요 신세계 계열사 오프라인 매장에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오디오북까지 제작해 매거진의 영역을 오디오로까지 확장했다. 다양한 삶을 담아내겠다는 브랜드의 포부가 느껴지는 다매체 전략답다.
힙스티지 브랜드의 온라인 쇼룸
PRISM
여기 조금은 색다른 시도 중인 커머스가 있다. 앞서 플랫폼 중심의 커머스(및 콘텐츠)의 사례를 살펴보았다면 프리즘(PRISM)은 브랜드 중심의 이커머스를 지향한다. 그렇다고 다이브, 빌리브처럼 자사의 이미지를 빌드업하기 위한 브랜딩 전략은 아니다. 같은 장르 내 브랜드를 모아 이들을 운집하면서 점차 수렴되는 하나의 이미지, 그걸 노렸다. 프리즘의 모토는 소위 힙스티지 브랜드를 섭외해 온라인판 성수동 쇼룸을 만들자였다.
힙스티지란 힙(hip)과 위신, 명망을 뜻하는 단어 프레스티지(prestige)의 합성어로 폭넓은 대중성보다 브랜드 개성과 고유 가치를 중시하는 중고가 브랜드나 제품을 의미한다. 프리즘에서 창안한 이 단어는 MZ세대 선호 정체성이 뚜렷한 브랜드를 파트너로 호명하며 이들이 동경할 수 있을 만한 어도러블(adorable) 라이프스타일 커머스를 만듦으로써 구현이 된다.
프리즘은 쿠팡의 창립 멤버이자 전 티몬 의장인 유한익 대표가 론칭한 커머스 플랫폼이다. 모바일 상거래 분야 1세대라는 점에서 오는 전문성, 온라인판 성수동 쇼룸을 만들겠다는 포부 덕에 론칭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2021년 3월, 처음 공개된 프리즘은 4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작년 연말 기준 누적 가입자 수 35만 명을 기록했다. 신생 플랫폼임에도 어떤 이커머스와도 파트너십을 맺지 않은 조선팰리스, 국립중앙박물관의 첫 라이브커머스 파트너가 되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1천 개 프리오더 물량을 완판했다. 여기에 힘입어 올해 4월 12일부터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 협업해 현대미술 아티스트가 재해석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 외에도 프리즘에 입점한 힙스티지 브랜드는 빈티지 패션 브랜드 시엔느, 아날로그 퓨처리즘 스타일 브랜드 아모멘트 등 대중적이진 않지만 뚜렷한 브랜드 정체성으로 매니아층을 보유한 곳들이다. 이처럼 패션, 가구, 조명, 오디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카테고리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그렇다면 신세계 산하 동일 계열사인 SSG닷컴과도 협업하지 않은 조선팰리스가 프리즘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즘을 경유하면 소비의 양보다 질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MZ세대, 숙박을 하나의 체험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로 여기는 이들에게 닿기 위해서였다.
프리즘은 티몬의 DNA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힙스티지 브랜드 전용 플랫폼다운 차별화된 쇼룸을 제공한다. 티몬의 브랜드와 콘텐츠를 결합한 콘텐츠 커머스의 기조를 이어간다. 하지만 어떻게 보이는지 비주얼에 3배나 더 신경을 썼다. 기존 이커머스 대비 3배 이상의 해상도를 구현해 모바일 쇼룸이나 숏폼 영상 등 브랜딩 콘텐츠를 만들었다. 프리즘은 설사 해외에서 촬영했더라도 고해상도의 영상을 송출할 수 있다는 점을 자신들의 강점으로 어필하기도 한다. 온라인 시장의 한계는 직접 보고 미감을 느낄 수 없다는 데 있다. 프리즘은 이 한계를 적극 보완해 비주얼라이징에 민감한 힙스티지 브랜드의 욕망을 충족한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라이브커머스 기능을 갖췄다. 바로 라이브 슬라이드 경매와 래플(추첨)이다. 입찰과 낙찰, 응모와 추첨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이 기능은 응모자 ID가 화면에 돌아가고 슬롯머신처럼 화면이 멈추면 당첨되는 방식이다.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생동감 있는 UX 디자인은 별도의 특허도 냈다고 한다. 프리즘은 이를 활용해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린다. 기존 라이브커머스가 시간당 1~2분이라면 프리즘에 체류하는 시간은 평균 10분이라 한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자기를 소개할 시간이 다른 플랫폼보다 긴 편이니 경쟁력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리즘의 사업 파트너는 패션, 의류, 가구뿐만 아니라 식품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매일유업은 친환경 가치를 지향하는 식물성 음료 브랜드 어메이징 오트를 프리즘을 통해 1만 세트 한정 100원 딜로 선보였다. CU는 CU 시크릿 상점을 주제로 지친 일상을 보내는 직장인들이 숨겨진 비밀 가게에서 CU 음식을 즐기고 위로받는다는 컨셉의 쇼룸을 진행했다. 프리즘의 운영회사 RXC는 금리 인상으로 투자의 혹한기라 불리는 요즘, 누적 4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여기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만든 제트홀딩스 투자 자회사 제트벤처캐피탈과 JTBC·중앙그룹이 투자자 등이 이름을 올렸다. 1세대 이커머스가 저물고 그다음 세대들의 각축전 속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쿠팡·네이버 등 이커머스 강자들 이외에도 자신만의 색으로 무장한 커머스(및 콘텐츠)가 계속 떠오르고 있다. 여기엔 콘텐츠 기업이 커머스로 확장되는 전략 혹은 그 반대의 전략이 있으며, 브랜딩의 일환으로 콘텐츠와 커머스가 결합한 형태 등 생각 이상으로 형태가 다양하다. 이들은 로컬, 친환경, 힙스터,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 등 다채로운 키워드를 중심으로 콘텐츠와 커머스, 그리고 이를 구현할 테크를 결합해 고유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처럼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무장한 이들의 유니버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많이 파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보이는지에 공을 들였다는 점에 있다. 즉 스토리텔링에 방점이 있다는 의미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법의 대가이자 작가들의 정전으로 유명한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의 저자 로버트 맥키는 최근 스토리노믹스라는 새로운 책을 발간했다. 스토리(story)와 이코노믹스(economics)를 합성한 이 단어는 디지털 생태계에 최적화된 스토리 마케팅 전략이 광고가 아닌 자연스럽게 붙잡고 유의미한 정서적 경험으로 보상하는 스토리 중심 마케팅이라고 주장한다. 훗날 기업은 광고를 위해 레거시 미디어를 활용하기보다 자체 플랫폼에서 브랜드 스토리를 생산하며 스트리밍하는 데 훨씬 더 큰 비용을 투자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그의 말을 확장해 보면 브랜드의 특별한 정체성을 끄집어낼 수 있는 플랫폼일수록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 코로나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커머스 시장은 올해 10조 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플랫폼과 브랜드가 자신만의 이야기로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그 각축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