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홈리스는 길거리 노숙인뿐 아니라 고시원, PC방, 찜질방 등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들과 자립준비청년, 난민 등 주거 불안정 상태의 소외계층을 일컫는다.
▪ 매거진 빅이슈는 검증 단계를 거쳐 자립 의지가 있는 홈리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빅판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다.
▪ 지난 9월 개최된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에는 FIFA가 최초로 공식 후원사로 참가하여 전 세계에 경기를 생중계하는 등 대중의 인식 개선 및 사회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일으켰다.
밤하늘이 어두워지면 지하철역과 공원 등의 거리는 노숙인의 집이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아래, 박스와 신문지로 만든 집이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대개 이러한 길거리 노숙인을 홈리스(homeless)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해외의 홈리스는 주거 불안정 상태의 소외계층 전체를 의미한다. 홈리스에 대한 UN의 정의만 봐도 그렇다. UN은 홈리스를 상당한 기간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쪽방촌 거주민, 자립 준비 청년, 난민 신청자, 위기 청소년 등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한 모든 이들이 홈리스인 것이다.
그러나 홈리스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은 길거리 노숙인에만 국한되어 있어 보호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로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 중인 사람들이 있다. 고시원, PC방, 찜질방, 비닐하우스 등 길거리는 아니지만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들 또한 홈리스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길거리 노숙인만을 홈리스로 여기는 사회 인식 개선 및 사각지대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빅이슈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잡지를 파는 이들이 있다. <빅이슈(The Big Issue)> 판매원들이다. 무료 급식소와 노숙인 보호시설에서 홈리스를 위한 식사와 주거 공간을 지원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일시적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그들의 자립 능력을 저하하기까지 한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빅이슈는 스스로 일을 통해 홈리스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일거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사회적 기업 빅이슈는 2008년 10월 온라인 커뮤니티 “빅이슈 한국판 창간 준비 모임”을 통해 한국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0년 7월 <빅이슈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정식 창간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빅이슈>는 사회적 가치를 담은 대중문화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다. 주로 주거권, 소수자 인권, 환경문제, 동물권 등 사회문화 이슈를 다룬다. 거리나 지하철역 앞에 있는 판매원에게 구매할 수 있는데, 스스로 자립하려는 의지가 있는 주거 취약계층은 판매원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나이, 학력, 장애 유무와는 무관하며 거리 잡지 판매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성범죄 전과, 정신질환 등의 경우에만 제약이 있다.
판매원이 되기 위해서는 빅이슈 사무실에 전화 또는 방문하여 신청할 수 있으며, 몇 가지 교육을 이수한 뒤 20일간 임시 빅판(빅이슈 판매원) 활동을 거쳐 얻게 된 평가 결과에 따라 정식 판매원 자격을 얻는다. 정식 빅판이 되면 판매처에 대한 우선권 부여 및 정식 ID카드가 발급되며, 임시 주거 및 휴대폰 개통지원, 판매 및 저축 교육, 치과 진료 및 의료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다. 또한 7만 원 상당의 잡지 10부를 무료로 제공하는데, 여기서 발생한 판매 수익의 절반은 판매원 몫으로 돌아간다. <빅이슈>는 현재 합법적으로 강남역, 안국역, 여의도역 등 20곳에서 판매 중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판매하며, 주말 및 판매 시간은 빅판이 지정할 수 있다. 판매 장소 선정부터 시간 모두가 “빅판”의 의사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잡지의 주요 타깃은 2040 여성으로, 유명인이나 반려동물, 인기 있는 전시회, 애니메이션, 웹툰 등의 콘텐츠가 표지를 장식한다. <빅이슈>는 다양한 사람들이 스토리텔러가 되어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고, 독자들의 구매와 빅판들의 판매 활동으로 함께 만들어진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빅판의 이야기
홈리스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한순간에 거리로 내몰린 사람, 기초생활수급자, 일용직 노동자, 나이가 많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사람, IMF 외환위기로 퇴사 후 노숙 생활을 하게 된 사람, 해외에서 다시 건너온 재외동포 등. 이들 중 처음부터 노숙을 한 사람은 없었다. <빅이슈>를 만나기 전까지 이들은 길거리나 쪽방에서 생활하며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주거 불안은 그들을 소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목표를 잃은 채 무료 급식과 시설 생활에 의지하게 됐다.
<빅이슈 코리아> 홈페이지는 빅판으로 활동하는 홈리스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고속버스터미널 8번 출구의 오현석 빅판은 가장 오래된 빅판으로, 2010년부터 10년 이상 꾸준히 활동 중이다. 그는 무료 급식소 줄을 기다리다가 <빅이슈> 직원이 나눠준 전단지를 보고 판매원이 되었다. <빅이슈>를 통해 임대주택에 입주하며 내 집 마련에 성공했고,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
사당역 3번 출구의 박영길 빅판은 대기업에서 30년 동안 일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쪽방촌에 살게 되었고 이후 공항 노숙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인생의 두 가지 소원 중 하나가 임대주택 입주, 또 하나는 평생 일하는 것이었는데 빅판 활동으로 모두 이루었다고 한다. 처음 <빅이슈>를 판매할 때는 숫기가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으나 현재는 독자와 만나고 소통하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종각역 5번 출구의 김훈재 빅판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판매 활동을 통해 사회생활을 한다는 자신감과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말소됐던 주민등록을 되살리고, 정부 지원도 받고, 거리로 나와 사람들과 대화하며 생활 리듬이 달라졌다. 이처럼 빅판으로 활동하는 홈리스들은 자신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독자들과 만나 소통하고 판매로 수익을 창출하며 그들의 인생은 다시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푸드트럭 사장을 꿈꾸고 가족에게 떳떳한 가장이 되기 위해, <빅이슈>는 그들이 다시 한번 사회로 발을 내딛게 만드는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집은 없어도 꿈은 있는,
우리는 국가대표 선수입니다
2023년 개봉한 아이유와 박서준 주연의 영화 <드림>은 홈리스월드컵이 소재다. 실화 바탕의 영화로, 주거 취약계층인 홈리스들이 국가대표로 처음 홈리스월드컵에 출전한 성장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홈리스월드컵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홈리스월드컵은 홈리스에 대한 인식 개선 및 해결책 도모를 위해 2003년부터 매년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전 세계 70개국이 참여할 정도로 큰 규모이며 어느덧 올해로 19회를 맞았다. <드림>은 2010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가 모티브가 되었는데, 극 중 중장년층의 <빅이슈> 판매원도 선수로 등장했다.
현재는 참가 대상을 보육원 청소년, 자립 준비 청년, 다문화 가정 등으로 확대하여 한국 국가대표팀 평균 연령이 21세 정도 된다. 전반적으로 청소년이나 청년층의 비율이 높다. 브라질이나 칠레 등의 국가에서는 빈민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축구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국가대표로 선발한다. 한국에서는 홍보물을 통해 국가대표 선수를 공개 모집했다. 본인이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 지원할 수도 있고 단체에서 추천할 수도 있다. 접수 이후 테스트를 통해 최종 선발되며 예비 선수를 포함하여 남성 18명, 여성 18명의 선수가 국가대표로 경기에 참여한다.
2024 홈리스월드컵 국가대표 신청서에는 자기소개 문항이 있다.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해 주세요, 현재 가장 고민되거나 어려운 점이 있나요?,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어야 하는 이유를 적어주세요,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에 참여하게 된다면 이후 어떤 변화가 가장 기대되나요?” 등. 이 질문들에서 자립 의지가 있는 홈리스들의 변화를 돕기 위한 홈리스월드컵의 취지가 느껴진다.
경기의 승패를 떠나 홈리스들은 월드컵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드림>에서 흑인 용병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부상 당한 선수들이 직접 경기에 참여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다른 국가의 선수들과 함께 뛰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연습하는 모든 과정이 홈리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온다. 실제로 홈리스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은 꿈을 위해 검정고시를 치르고, 축구 코치가 되고, 사회복지사가 되는 등 다양한 배경의 주거 빈곤 및 사회적 소외를 가진 홈리스가 큰 변화를 겪었다.
경기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달리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한 번쯤은 느껴보고 싶습니다.
– 김성준 선수, 홈리스월드컵 한국팀, JTBC 뉴스 인터뷰 中
아시아 최초,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
얼마 전 개최된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은 9월 21일부터 9월 28일까지 한양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올해는 전 세계 46개국 61개 팀, 약 500명의 선수가 대회에 참가했다.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되었으며, 처음으로 FIFA가 공식 후원사로 참여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지아니 인판티노(Gianni Infantino) FIFA 회장은 홈리스월드컵은 축구가 어떻게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인식에 도전하고, 불우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라고 밝혔다.
스포츠는 세상과 사회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힘이 있다. FIFA는 이번 대회에서 메달과 트로피, 공인구, 유니폼 등 물품과 장비를 후원했다. 또한 6,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FIFA의 스트리밍 플랫폼 “FIFA+”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해 더 많은 사람에게 홈리스월드컵을 알렸다. 이번 FIFA와의 파트너십 체결은 향후 기업들의 스폰서 또는 협력사 참여를 유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네이버 스포츠와 호각(AI 자동 스포츠 중계 플랫폼)에서도 경기를 중계했으며, 한국과 이집트 경기에서는 네이버 스포츠 누적 시청자 약 1,800명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홈리스월드컵은 주거 불안정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일을 목표로 삼는다. 대회에 참가하는 홈리스의 자립과 사회 연결 매개체인 동시에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2024 홈리스월드컵 개최지로 대한민국 서울이 선정되는 데 기여한 <빅이슈 코리아> 안병훈 이사는 홈리스월드컵으로 인식과 제도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홈리스를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하고 우울한 이미지로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러한 인식을 홈리스 축구 선수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자신감을 통해 시민들의 편견 없는 지지를 얻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직접 찾은 홈리스월드컵 경기장에는 여느 스포츠와 다를 것 없이 선수들의 땀과 관객들의 응원으로 열기가 가득했다. 흔히 홈리스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경기장 한편에서 다음 경기를 위해 연습을 하는 사람들과 메달을 목에 걸고 국가의 응원가를 부르며 환호하는 이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이 경기는 단순한 게임이 아닌 듯했다.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홈리스월드컵이 사회로 돌아가도록 돕는 주거 빈곤 해결뿐 아니라, 자립 지원의 필요성까지 충족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홈리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 일자리를 찾지 않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처럼. 홈리스는 궂은 날씨나 생활 환경보다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했다. 자립 의지를 가지고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에게 이유 없이 술 먹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들은 그저 사회적 소외계층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대해주길 바란다. 홈리스들이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예상치 못하게 홈리스가 될 수도 있다. 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뿐 우리와 동일한 인격체다. 그렇기에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홈리스의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빅이슈>, 홈리스월드컵 같은 사업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2024년 3월 넷플릭스에서 홈리스월드컵을 주제로 한 영화 <The Beautiful Game(홈리스월드컵)>을 선보였다. 역시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영국 축구팀이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로마로 향하는 과정을 담았다. 과거 잘나가던 프로선수 비니가 축구를 그만두고 홈리스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축구 감독에 의해 홈리스월드컵에 출전할 것을 제안받는 사건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처음 비니는 자신이 다른 노숙인들과 다르다고 거절하지만 홈리스월드컵을 통해 다시 한번 축구 선수로 경기를 뛰게 된다. 잔뜩 움츠려있던 홈리스들은 경기에 참여하며 소속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정부와 사회단체는 홈리스를 비롯하여 사회적 소외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모금을 유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빈곤 포르노는 도리어 악영향을 일으켜 사회적 소외계층을 사회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일차적인 경제적 지원보다도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이 오히려 간극을 줄이며 사회에 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빅이슈>는 단순히 잡지 판매를 통해 돈벌이만 제공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홈리스가 세상에 나아가도록 통로를 개척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홈리스월드컵 역시 단순한 노숙인 행사가 아니다. 팀에 소속되어 연습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한 명의 선수로서 경기를 뛰는 과정 등을 경험하며 스포츠 정신을 통해 삶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 안에 연민의 시선보다는 그들의 자립을 응원하고 독려하는 건강한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