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핫플레이스와 코로나19

동네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고요했던 골목에, 울적할 때 한없이 위로가 되어 주었던 이름 모를 동네에 낯선 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다. 한순간에 갈 곳을 잃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새어 나온 말들이 흩어져 사람들에게 닿았고 이전에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무자비하게 달려들 뿐이었다. 이들의 가벼운 행동은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그 장소를 지켜봐 왔던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물론 동네를 찾는 모든 이들이 가벼운 마음을 가졌다고 판단할 수 없고, 잘못되었다고도 말할 순 없다. 다만 이들의 발걸음이 지속된다면 더는 마음 편히 머물 수 없게 될 것임은 분명했다.

 

그렇게 동네에 대한 열병이 언젠가 끝나길 바랐는데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열병이 찾아왔다. 인간의 노력으로 제어할 수 없는 열병 COVID–19(코로나19)다. 2019년에 시작된 코로나는 2년이 다 되어가도록 멈출 기세를 안 보인다. 확산세를 막아 보려 각국에서 애를 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감염된 인원과 상황에 따라 거리두기 단계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자연스럽게 많은 인원이 한 장소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어졌다. 과거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던 동네에 사람이 줄었다. 북적대며 활기를 띠던 거리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OO동, OO거리로 불리며 상징성을 지니던 동네·거리 대신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이 반영된 브랜드 상점이나 짧지만, 임팩트 있는 경험이 가능한 장소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전에 없던 완벽히 새로운 방식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 보니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을 가만히 내버려 두기보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며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한다. 이에 맞는 공간을 골라 시간을 보낸다. 예를 들면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명동과 북촌한옥마을은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고, 대신 성수동의 OO마켓, 여의도의 OO백화점, 문래동의 OO카페 같은 개별 단위로 존재하는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변치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동네든 상점이든 ‘힙’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가 끊임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대중을 이끄는 특정 사람들과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있는 한, 그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변화는 있을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삼각지 뒷골목, 사람들의 방문이 잦아졌다 Ⓒ 직접 촬영
삼각지 무인카페 Ⓒ 직접 촬영

#어둡고 침침했던 골목길에, 누군가

이태원과 가깝고 미군 부대와 맞닿아 있는 삼각지. 골목길마다 작은 가게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매력적인 동네다. 어느 시점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가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새로운 가게들이 급속히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조만간 사람들이 몰려오겠구나. 핫 플레이스라 불릴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기존과 다른 성격을 가진 물리적 공간이 형성되고 거주하는 연령층이 다양해지면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기도 하는데 삼각지가 딱 그랬다. 새로 생기는 가게들이 급증했고 속도도 빨라졌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골목길에 갑자기 아스팔트가 깔렸다. 이유를 알고 싶어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 보았더니 새로 생긴 아파트 입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이전의 삼각지에 변화가 전혀 없었다고는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명을 다한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들이 떠났다.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지만 3년이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그렇게 변화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다만 우리가 즉각 인지할 만큼 빠르지 않았을 뿐이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시작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용산에서 시작된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비효과처럼 물밀 듯 삼각지로 퍼졌다.

울퉁불퉁한 모습 대신 아스팔트가 깔린 길 Ⓒ 직접 촬영
삼각지 화랑거리에 있는 가게들 Ⓒ 직접 촬영

#삼각지 미군 부대와 기지촌

과거 삼각지는 미군 부대를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번성기를 누렸다. 1950년대에는 미군에게 초상화나 그들의 고향, 한국의 전통그림을 그려 주던 화가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1960년대에는 그 화가들이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려 판매했다. 이때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담을 액자 전문점이나 도구를 파는 표구점도 같이 자리를 잡았다. 외국으로 작품이 수출되기 시작하면서 상업미술 시장이 커졌다.

 

1980년대 후반, 제1기 신도시 개발 당시 인테리어 경향 중 하나가 그림이었다. 집에 걸어 둘 작품을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며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IMF 이후 불황을 겪으며 현재는 약 40여 개의 화랑과 액자 가게들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삼각지 거리를 걷다 보면 이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반면에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던 기지촌도 존재했다. 현재는 대구탕 골목으로 알려진 골목이다.

 


김정자가 아직도 남아 있는 옛 ‘포주집’을 발견했다. 그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정: 이거…노란 거… 음식점…

현: 노란 거 보이는 데, 저 집이야?

( -중략- )

김정자는 온몸을 떨며 옛 포주집 주위를 서성였다. 지금은 음식점으로 바뀐 옛 ‘포주집’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은 마냥 즐거워 보이기만 했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라고 안내하다가 결국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p.222 –


 

겉으로는 전혀 알 수 없고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들을 수 있는 삼각지 기지촌의 존재. 알고 보니 건물이 달라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심정으로 일을 했을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오래된 건물만이 그 시절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여전히 군부대가 넓게 분포되어 있고, 군부대 사람들이 인근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 당시 건물이 남아 있기에 아마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이 더 또렷해질 것이다.

포주집이 있던 골목, 현재는 대구탕 골목 Ⓒ 직접 촬영
재개발로 모두 철거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딱 한 군데의 집 Ⓒ 직접 촬영

#이곳에서 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지촌 이야기를 알고 나서부터 삼각지라는 장소가 어느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깐 말이다.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그 시절의 시간을 오롯이 품고 있는 건물이 있고,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사건은 꼬리표처럼 계속해서 따라다닐 것 같았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 시간을 느끼려 애를 쓰다 보니 오히려 변화된 현재의 모습은 희미해지고 과거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고 트렌디하다고 해서 핫 플레이스, 힙한 곳이라고 칭하는 것이 해당 동네의 공간적 특성을 놓고 봤을 때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는 정말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보려 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며 세밀하게 구석구석 잘 살펴보면 오랫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서지고 생겨나고를 반복하고 있는 곳에서 소음과 진동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잘 드러나진 않지만, 우리 가까이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새로 생긴 아파트 인근에는 철길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철거되어 사라진 마을이 존재한다. 그 사이로 생을 이어 가는 사람이 있었고, 맞은편엔 새로 생긴 힙한 카페가 있다. 카페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의 시선은 사라진 마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집과 마주한다. 과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이라고 모른 척해야 할까?

 

으레 짐작하여 애써 던지는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들이 어떤 상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대비되는 장면들이 반복되는 삼각지에서 복잡한 심경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고 뭐라도 남겨진 이곳에서 내가 보려 하는 것은 무엇이고, 당신이 보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그동안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삼각지의 시층들이 보인다. 살아 있는 역사 속 시간들을 온몸으로 마주하기도 하며 변화의 물결 속에서 혼란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보이는 것들을 붙잡고 흘리기 보다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물으며 우리 모두 제대로 보자고 제안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