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귀여운 캐릭터들은 소비자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거나 친근함을 느끼게 만든다. 동시에 캐릭터가 지닌 귀엽고 무해한 이미지들은 캐릭터를 운영하는 기업의 이미지로 전이된다. 그렇기에 기업이 지속적으로 캐릭터를 활용해 제품을 홍보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캐릭터 마케팅은 효과적이다. 2021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캐릭터 이용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만3~69세) 중 62.4%가 “상품 구매 시 캐릭터에 영향을 받는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캐릭터는 기업의 매출과 이미지를 동시에 책임지는 훌륭한 역군인 듯 보인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캐릭터 이미지 하나만으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서 캐릭터들은 어떠한 특정 세계에 위치한다. 그렇기에 캐릭터가 세계 속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노출하는 일은 결과적으로 캐릭터에게 애착을 형성할 수 있게 만든다. 나와 같이 삶을 꾸려 나가는 존재라는 스토리텔링 속에서 소비자들은 캐릭터들에게 마음을 쏟는다. 귀엽고 무해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삶을 꾸리는 여정을 통해 소비자들은 삶을 돌아보고 그들의 행복을 빈다.

 

그런데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캐릭터의 귀엽고 무해한 이미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기업은 캐릭터의 이미지뿐 아니라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소비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캐릭터가 각자만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단 사실, 그리고 그 스토리가 마치 구전 동화처럼 우리 모두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이 캐릭터에 생명력을 더한다. 심지어 어떤 캐릭터들은 제품 마케팅을 위해 만들어졌단 본분을 잊고 제품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있기도 하다. 제품은 단종되었지만, 캐릭터는 살아남아 지속해서 다른 제품과 콜라보되며 재출시되는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캐릭터와 그들의 이야기가 지닌 힘을 엿볼 수 있다.

031bb155-a845-4f34-bb92-9e3b8b2089bf Ⓒ Pexels

영국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Percy Pig

1992년 영국 M&S(Marks&Spencer)가 자사 브랜드로 기획한 젤리, 퍼시 피그(percy pig)는 매년 4억 개 이상 팔리는 유명 젤리 제품이다. 본인의 커리어를 젤리로 시작한 퍼시는 영국인을 비롯한 세계인들에게 사랑받으며 퍼시 피그 인형, 슬리퍼, 잠옷, 입욕제까지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렇듯 퍼시 피그 제품들이 사랑받으며 강력한 팬덤을 확보하게 된 배경에는 퍼시의 스토리가 있다.

 

2002년 M&S는 퍼시 피그와 친구들(Percy Pig and Pals)을 출시하면서 딸기 맛 돼지인 퍼시와 함께 콜라 맛 소, 오렌지와 딸기 맛 양을 출시했다. 2008년에는 퍼시 피그의 아이들, 퍼시 아기 돼지(Percy Piglets)를 출시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퍼시 피그의 여자친구인 레몬 맛 젤리, 페니 피그(Penny pig)를 소개하면서 Percy Pig loves Penny라는 이름의 젤리를 출시했다. 퍼시와 페니가 함께 산책하고, 저녁을 같이 먹었다는 스토리가 공개되면서 M&S는 그들이 사귀고 있다는 공식 입장까지 밝히기도 했다.

 

2015년에 페니가 퍼시의 아이를 출산했고 2018년 그들이 결혼했다고 밝힌 M&S의 스토리텔링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렇기에 소비자들은 퍼시 피그 자체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극히 현실적인 퍼시 피그의 스토리텔링 때문에 퍼시 피그는 2008년에 낳은 아이들이 혼외자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실제로 자신과 어릴 때부터 함께 했던 퍼시가 여자친구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삶을 보고 있다 보면 기업의 캐릭터라는 인식보다는 어릴 적부터 함께한 친구로 여겨 지기 때문이다.

 

M&S의 퍼시 피그 사례는 캐릭터 마케팅이 이미지 하나로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퍼시 피그의 스토리를 구성하고, 스토리에 부합하는 제품을 출시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스토리텔링이 단순하게 이야기를 짜 맞추는 형식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님을 알려 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퍼시 피그의 나이까지도 고려한 M&S 기획팀의 스토리 구성은 영국 국민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M&S는 퍼시 피그의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2022년 7월 23일, 퍼시 피그의 30번째 생일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7월 초에는 패딩턴에 위치한 푸드홀에서 명판을 공개하여, 퍼시 피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팝업 스토어를 진행했다.

 

이처럼 M&S의 스토리텔링 성공 사례는 소비자들이 퍼시 피그를 단순한 기업의 홍보 목적을 위한 캐릭터가 아닌, 애정을 가지고 함께 하는 친구로 여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캐릭터는 전적으로 기업이 생산하고 기업의 매출에 따라 폐기되거나 사라지는 인공물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애정과 관심 속에서 삶을 구성하고 동시대를 살아나가는 존재다.

개성 강한 초콜릿들 M&M’s

마즈(Mars)의 M&M’s는 1941년 손에서 녹지 않은 초콜릿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해 오랫동안 사랑받은 초콜릿이다. 초창기에는 갈색뿐이었지만, 1960년대에 노랑 초록 빨강 등 다양한 색깔을 입힌 초콜릿을 출시하면서, 각각의 캐릭터를 출시했다. 색깔에 맞춰 각기 다른 성별과 성격을 선보인 M&M’s의 초콜릿 캐릭터들은 공식 홈페이지에 각자의 성격을 보여주는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1990년대에는 여러 컬러 중 M&M’s의 새로운 멤버를 선출하는 투표 이벤트도 진행해, 블루라는 새 멤버를 영입하기도 했다.

 

M&M’s에는 각각의 캐릭터가 맡은 대표 제품이 존재하며, 맛별로 캐릭터의 성격과 외향을 구성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옐로우는 몸 안에 땅콩이 들어있는 초콜릿이라 다른 멤버들보다 조금 더 길쭉한 편이다. 또한 M&M’s의 캐릭터들은 먹히기 싫어한다는 설정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먹힐 때의 반응이 캐릭터마다 다 다르다. 느긋한 성격인 옐로우와 먹히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레드처럼 M&M’s는 1990년대부터 캐릭터의 성격을 통해 흥미 요소를 부각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광고에서는 M&M’s의 초콜릿들이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걸려 먹힐 위기에 처하는 스토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M&M’s의 캐릭터 설정은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M&M’s의 초콜릿 중 여성 캐릭터였던 그린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지만, 2022년 1월 캐릭터를 리뉴얼하는 과정에서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린이 항상 취해 오던 선정적인 포즈도 허리에 손을 올리는 당당한 모습으로 변경되었으며, 그린의 살구색 다리는 무채색으로 바뀌어 다양한 인종을 포용하겠다는 가치도 선보였다. 캐릭터에게 인종 혹은 여성성을 강조해 희화화하던 전략을 시대적 요구에 맞춰 변경한 것이다.

 

올해 8월에 출시한 퍼플은 12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캐릭터로, 여성으로 설정되었다. 전투화를 신고 “나는 그냥 나 자신이 될 거야(I’m just gonna be me)”라는 노래를 부르는 퍼플의 캐릭터는 시대적인 성평등의 요구를 반영한 듯 보인다. 실제로 마즈 측은 모두를 포용하는 세상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흐름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마즈는 기업이 캐릭터를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시키면서 모두에게 무해하고 불편하지 않은 캐릭터를 구축했다. 각종 광고와 캐릭터 설정을 통해 일관된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것을 광고로 선보이는 M&M’s의 캐릭터 마케팅은 1940년부터 마즈가 어떻게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도 마즈는 캐릭터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전달하고, 소비자들도 캐릭터를 통해 기업에 요구하는 바를 전달하며 쌍방향 소통을 이루고 있다. M&M’s의 캐릭터들은 재미뿐 아니라, 소비자와 기업 사이를 오가는 소통 창구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타이어의 아이콘 Bibendum

비벤덤(Bibendum)은 프랑스 타이어 회사인 미슐랭의 오래된 마스코트이다. 1831년 고무 제품 제조공장이 설립되고, 1888년 앙드레 미슐랭(André Michelin)과 에두아르 미슐랭(Édouard Michelin) 형제가 회사명을 미슐랭 고무 제조회사로 변경한 것이 미슐랭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전시회에 참석한 미슐랭 형제가 타이어가 쌓인 모습을 보고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은 후, 오갈롭(O’Galop)이라는 화가에게 의뢰해 비벤덤이라는 역사적인 마스코트가 탄생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미슐랭 가이드를 주관하는 미슐랭이 바로 이 타이어 회사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미슐랭 가이드에서 훌륭한 식당을 소개하는 부문인 빕 구르망(Bib Gourmand)의 이름이 마스코트인 비벤덤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 온 비벤덤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와 달리, 처음부터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원래 비벤덤의 외양은 얇은 타이어가 여러 겹 겹쳐 있는 모습이었다. 설립 초기 미슐랭은 자동차 타이어보다 자전거 타이어를 주력으로 생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미슐랭이 자동차 타이어로 주력 상품을 변경하자, 비벤덤의 타이어들도 두꺼워졌다. 타이어 캐릭터가 하얀색인 것도 제품과 관련이 있다. 타이어인데 왜 하얗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이는 초기 타이어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처음에 흰색이었던 타이어는 1910년대에 탄소가 첨가되기 시작하며 검은색으로 변했다.

 

처음 등장했을 때, 한 손에는 항상 술잔을 든 채 미라처럼 서 있던 비벤덤은 검투사와 킥 복서 출신이라는 설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사치품이었던 시가를 문 모습으로도 자주 등장했는데, 이는 당대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상류층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모습을 연출한 결과였다.

 

1907년 미슐랭이 출간한 이탈리아 여행 잡지에는 비벤덤의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칼럼에서는 여행 중 겪은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는 100년 전 캐릭터에게 숨결을 불어 넣는 기업의 마케팅이 유효했음을 확인하는 지표가 되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결과에 힘입어, 비벤덤은 다양한 기업과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아일랜드의 가구 디자이너인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의 비벤덤 암체어는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으며, 20세기 가구 디자인의 역작이라고도 불린다.

 

비벤덤은 2000년 파이낸셜타임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로고”로 선정되었고, 120주년이었던 2018년에는 세기의 아이콘으로도 선정되었다. 이처럼 비벤덤은 미슐랭 회사의 마스코트 역할 뿐 아니라, 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모두가 아는 친숙한 캐릭터의 역할을 독자적으로 구축했다.

아일린 그레이의 '비벤덤 암체어' Ⓒ ClassiCon

현실을 지탱하는 허구의 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라는 소설가의 오래된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세상을 뜨기 1년 전 즈음, 공원에서 산책하던 카프카는 울고 있는 한 아이를 마주치게 된다. 카프카가 왜 우는지 묻자 아이는 자신이 아끼던 인형을 잃어버려서 울고 있다고 대답했다. 카프카는 아이에게 인형이 여행을 떠난 것이라고 달래 주고는 집으로 돌아가 인형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아이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인형이 모험을 떠난 이야기를 몇 차례 편지로 전하면서 인형이 먼 나라에서 결혼해 정착했다는 결말까지 잊지 않았다.

 

아이는 인형을 떠나보낸 슬픔으로 울며 지내기보다 카프카가 보내 주는 인형의 여행 이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인형은 사라진 무엇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였다.

 

이야기는 세계를 새롭게 구성한다. 기업이 캐릭터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지속하는 과정은 인간에게 이야기가 삶을,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기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캐릭터는 더 이상 기업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캐릭터와 그들의 세계는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상까지 반영하며 모두를 통해 구성된다. 우리는 그들에게 애정을 쏟고 그들은 우리에게 다정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애정은 받는 자뿐 아니라 주는 자에게도 큰 기쁨을 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을 일구는 캐릭터를 통해 우리 삶을 반추하며 더 많은 사랑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