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문화 상권의 흥망성쇠 ① 인사동

“문화 상권의 등장”

 

요즘 뜨는 상권의 키워드는 ‘문화’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먹거리나 즐길거리가 많은 지역보다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간다. 교통의 편리함이나 입지보다 문화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며, 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문화 상권’이라는 개념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고유하거나 독특한 문화와 콘텐츠를 가진 상권이라는 의미다.

 

문화 상권의 역사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 시작한다. 오렌지족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거리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1988년 맥도날드 1호점과 한국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 ‘쟈뎅’이 처음 자리를 잡은 로데오거리는 당시 소위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였다. 패션을 좇는 청년들은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강남 부유층 자제들의 서브컬처가 태동하기도 했다. ‘압구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소비되는 모든 것들은 곧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1988년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문을 연 맥도날드 1호점 

ⓒ맥도날드코리아

그러나 압구정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는 없었다. 건물주들은 임차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 임대료를 요구했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상인들은 로데오거리를 떠나 가로수길과 이태원, 홍대 등으로 이동했다. 기존 상인들이 떠난 자리에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자본 계열의 상점이나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서 몰개성화되었고, 자연스럽게 압구정동은 문화 상권의 지위를 잃었다. 동시에, 서울 각 지역에서는 독특한 콘텐츠와 지역성이 만난, 새로운 문화 상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의 홍대, 2000년대의 인사동 쌈지길과 삼청동, 가로수길, 2010년대의 서촌, 해방촌, 연남/상수동, 문래동 등이 앞서 말한 문화 상권에 해당한다. 이중에서는 이미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전철을 밟아 쇠락한 곳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주변부를 확장하며 도시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지역도 있다. 과연 어떤 차이점이 문화 상권의 흥망성쇠를 가르게 되었을까?

전통 문화의 거리, 인사동 

인사동 거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서울을 처음 구경 온 사람이 갈 만한 동네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십중팔구 인사동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만큼 인사동에는 다른 동네가 감히 넘보지 못할,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인사동은 골동품과 화랑, 표구, 필방, 전통 공예품/찻집/음식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에 하나로 상주인구보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관광객의 보행 편의와 원활한 문화행사 개최를 위해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한다.

 

인사동이 독특한 문화 자원을 가지게 된 이유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인사동 자리에는 조선 초기 한성부 중부 관인방과 견평방이 있었다. 이 일대는 거주지이자 관가였는데, 특히 견평방에는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도화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인사동이라는 동명이 생긴 것은 일제 강점기 때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행정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대사동, 원동, 승동,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등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14년, 한 차례 더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관인방과 대사동의 가운데 글자인 인(仁)과 사(寺)를 따와 인사동이라는 동명이 생겼던 것이다. 도화서는 폐지되고 사라졌을 때지만, 미술 거리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1930년대 근처 북촌의 몰락한 양반들이 생기면서 고서화나 골동품이 인사동으로 흘러 들어왔고 이를 미군과 일본인이 사고 팔면서 골동품 상가가 형성되었다.

인사동 골동품 상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주인 잃은 고서와 고미술품이 인사동에서 모이면서 이곳에 미술품 관련 상점이 많다는 확고한 인식이 생겼고, 화랑이나 표구점 등은 인사동으로 집중된다. 1970년대에는 상업 화랑이, 1980년대에는 한겨레 창간 사무실이 안국빌딩에 자리 잡으면서 미술인들과 문인들을 인사동으로 끌어들였고 이들의 모임 장소가 될 만한 찻집과 술집 등이 생기며 인사동은 문화예술의 거리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1988년 인사동 일대가 ‘전통 문화의 거리’로 지정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화 양상을 보인다. 전통을 보호하고 그 문화를 알리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기존의 술집과 찻집, 전통 공예집들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특히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하면서 유동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에 따라 관광객들을 위한 상점이 늘어났다. 이들 중에는 인사동의 특색을 따른 곳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아이스크림 가게나 화장품 로드샵 등 기존의 인사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1988년 인사동 거리의 모습 

ⓒ경향신문

현재 인사동은 한국적, 전통적인 느낌이 많이 퇴색되면서 전통을 알리는 거리가 아닌 전통을 가장한 상업 지구라는 비판을 받는다. 인사동을 찾는 관광객들은 ‘훌륭한 관광지이지만, 한국적인 면모를 느끼기에는 어렵다’는 소감을 내놓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인사동은 다른 상업지구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이런 문제점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무분별한 개발을 할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인사동으로 만들 것인가이다. 1980년대까지 인사동은 문인들과 예술인들을 위한 거리였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관광객들을 위한 거리가 되면서 전통은 사라지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보여주기식’ 전통 문화만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반드시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엇에 중심을 두고 제도를 수립하며 거리를 만들어 나갈지 고민해야만 유행이나 대세에 영향 받지 않고 흔들림 없이 한국적인 요소를 지켜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사동의 문화 공간 

 

인사동은 2002년 4월, 제1호 문화지구로 지정되었다. 문화지구란 문화업종의 육성, 특성화된 문화예술 활동의 활성화 또는 문화자원과 문화적 특성 보존을 위해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지정된 지구를 말한다.* 그래서일까. 인사동에는 지역만의 특색을 내세우며 만들어진 문화 공간들이 많다. 최근에는 코리안 스타일의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인사동마루와 빠고다 가구의 공장 건물을 재생 건축한 인사1길 컬처스페이스 등이 들어오며 신구의 명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지형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쌈지길

ⓒ대한민국 구석구석

그중에서도 2004년 오픈한 쌈지길은 인사동의 특색을 잘 담아낸 쇼핑몰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이름났다. 우리 공예와 디자인 상품을 다루는 공예전문 쇼핑몰 쌈지길은 인사동하면 떠오르는 골목의 이미지를 공간에 형상화했다. 실제로 1층 초입에 있는 짧은 계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완만한 경사로로 되어 있어, 길을 걷듯 천천히 구경하다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꼭대기에 있는 하늘정원에 다다르게 된다.

 

쌈지길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1층에 위치한 열두 개의 상점에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표구점과 공방 등의 상점이 있었는데 대규모 고층 건물이 들어올 계획을 세우면서 이들은 퇴거 명령을 받게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인사동 사람들과 문화예술인들은 ‘작은 가게 살리기 운동’을 펼쳐 고층 건물의 설립을 막았고, 이 부지를 인수한 쌈지가 최문규 건축가에게 열두 가게를 유지하면서도 인사동길을 재현한 건물을 의뢰하면서 쌈지길이 탄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쌈지길도, 그것이 위치한 인사동처럼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다. 신기한 구조에 발걸음하던 관광객과 손님들도 두 번 방문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쌈지길은 여전히 인사동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자 이색적인 건축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초기의 그 마음처럼, 지역만의 색깔과 특징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면 다시 인사동의 명소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