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브랜딩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더욱더 어렵다. 고객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브랜딩에는 수많은 기법과 이론이 있다. 하지만 복잡계로 이루어진 상품 시장에서 그 이론과 기법을 뛰어넘는 성공 사례가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브랜딩은 다른 제품과 구별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고객은 브랜드 이미지를 통해 상품과 서비스에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은 결국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구매로 이어진다.

 

브랜딩은 상품 시장뿐 아니라 대중음악과 같은 상업예술 세계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TV 프로그램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의 흥행 이후로 대한민국에서 힙합이란 장르는 대세가 되었다. 음악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며 그 입지가 더욱 커지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만 명의 사람이 래퍼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래퍼는 그들 사이에서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대한민국 힙합씬에서 많은 래퍼가 성공을 거두었고, 그들의 브랜딩과 마케팅 방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인 염따와 뱃사공을 통해 래퍼의 1인 브랜딩을 짚어본다.

 

플렉스의 대명사, 염따

요즘 한국의 힙합 문화 중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바로 플렉스(Flex, 자신의 부나 재능을 과시하는 것)다. 플렉스 하면 떠오르는 래퍼가 바로 염따다. 염따는 2019년 음악과 브랜딩, 마케팅을 통해 큰돈을 벌게 되었고, 이후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명품 플렉스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오랜 무명 시절을 견뎌낸 반짝스타다. 2006년 데뷔한 이래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며 가끔 방송에 얼굴을 내비쳤지만, 대중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러던 2015년, 아버지의 별세로 큰 충격을 받은 염따는 후회 없는 노력을 음악에 쏟아보겠다며 음악 활동에 전념했다. 청자의 반응이 없다면 음악을 접겠다는 의지로 앨범을 만들겠다는 노력이 결실을 보였다. 데뷔한 지 10년도 넘어서야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염따를 있게 해준 것은 음악적 노력에 비견하는 유쾌함이다. 그는 평소 유쾌하고 재밌는 생활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팬과 소통했다. 음악으로 번 돈을 자랑하기 위해 금반지를 사러 종로 3가에 들르는 과정을 유튜브에 담기도 했다. 종로3가에서 금반지를 현금으로 산 뒤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반전미는 구독자에게 큰 웃음을 안겼다. 유쾌한 유튜브 콘텐츠 외에도, 그의 유명세를 만든 일등공신은 티셔츠 마케팅이다. 앨범을 만들며 디자인한 티셔츠 판매가 대박 난 것이 좋은 마케팅 사례로 꼽힌다. 염따의 티셔츠를 원하는 팬들은 염따에게 “형님, 주접떨지 마시고 티셔츠나 만드십쇼”라는 댓글을 달며 그를 놀린다. 염따는 이를 재밌게 받아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염따는 특유의 유쾌함을 활용해 팬과 소통하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최근 그는 실수로 래퍼 더콰이엇(The Quiett)의 외제차와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는데, 차 수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티셔츠와 후드티, 슬리퍼를 제작했다. 이 스토리는 그의 팬과 힙합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엄청난 매출로 연결되었다. 이 마케팅을 통해 염따는 3일 만에 후드티로 20억 원 매출액을 기록한 사나이가 되었다.

 

염따를 부자로 만들어 준 후드티, 티셔츠, 슬리퍼 Ⓒ 염따

그의 마케팅 중 독특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사지마 마케팅이다. 가난한 래퍼였던 그는 판매 제품의 모든 유통과 배송 과정을 혼자 책임져야 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많이 팔린 제품을 보며 팬들에게 제발 더이상 구매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팬들은 그를 돕기 위해, 동시에 놀리기 위해 더욱더 많은 제품을 구매했다. 염따의 티셔츠와 후드를 입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또한, 그는 팬들에게 염충이들이라고 이름 붙이며 소속감을 높였다.

 

이는 마케팅 이론 중 Belonging(소속감 높이기)이라고 볼 수 있다. 팬들은 그를 놀리며 특별한 관계를 형성했다. 결과적으로 브랜드 로열티를 높인 셈이다. 염따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염따의 사지마 마케팅은 파타고니아(Patagonia)가 전개했던 코즈 마케팅(Cause Marketing)인 “Don’t Buy This Jacket”과도 유사하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지키는 철학을 강조하기 위해, 자사의 재킷을 여러 벌 사지 말고 한 벌만 사서 오래 입으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슬로건은 홍보와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했고, 결국 매출 성장으로 이어졌다. 염따는 이러한 사지마 마케팅을 통해 같은 맥락의 매출을 만들어낸 것이다.

 

탕아 뮤지션, 뱃사공

염따와는 정반대의 브랜딩을 선보이는 래퍼 뱃사공이다. 최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그는 래퍼들의 플렉스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뱃사공은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한다. 2016년까지도 배달원 투잡을 뛸 정도로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만, 당당한 자세로 음악에 임했다. 돈에 대해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인생관 덕분에 그는 흔들림 없이 음악을 할 수 있었다. 2018년의 인터뷰에서도 여전히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뱃사공은 본인의 음악색이 변하는 게 싫다며 쇼미더머니의 프로듀서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한 그의 고집과 열정을 알아주는 대중이 늘기 시작했다. 그의 2집 앨범인 <탕아>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래퍼 뱃사공은 이제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 분야에서 등장하고 있다. 팬들은 2019년에도 소속사 건물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뱃사공의 모습을 유튜브로 확인한다.  그는 최근 MBC와 딩고(Dingo)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주X말의 영화>에 참여해 단편영화 <잠은행>의 음악감독으로 선정되었다. 유튜브 영상 제작사 딩고는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다. 팬들은 뱃사공의 일상과 음악 작업을 지켜본다. 비록 가난하지만 자신의 열정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뱃사공의 모습을 보며 감동받는다. 뱃사공은 조금 느리더라도 낭만을 잃지 않는 탕아적 삶을 살아간다. 누구보다 솔직하고 가식 없는 그의 유쾌한 모습에 많은 팬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까지 독립하지 못한 그의 모습을 보며, 팬은 마치 옆집 형을 보는 듯한 측은함마저 느낀다. 뱃사공은 자칫 나태하고 현실도피를 일삼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진정한 음악인의 삶을 걷는 것이다.

힙합크루 리짓군즈의 래퍼 뱃사공 Ⓒ 무신사
영화 <잠은행>

지금까지 래퍼 염따와 뱃사공의 브랜딩, 마케팅에 대해 알아보았다. 미국의 브랜드 혁신전문가 제레마이어 가드너(Jeremiah Gardner)의 책 『린 브랜드(The Lean Brand)』에 따르면 성공하는 브랜드는 몇 가지 법칙을 따른다고 한다.

 

  1. 고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
  2. 상징요소를 만들어 고객과 연결고리를 만든다.
  3.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

 

염따와 뱃사공의 브랜딩은 이 린 브랜드 법칙에 들어맞는다. 두 래퍼는 고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는 스토리를 통해 브랜딩에 성공했다.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고객과 지속적인 연결고리도 만들고 있다. 브랜드는 감성적인 매력을 전달해야 한다. 두 래퍼는 이를 성공해냈다.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염따를 보며, 나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위로를 받는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와 음악 활동을 힘겹게 병행하는 뱃사공을 보며, 탕아적 삶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느낀다. 브랜딩은 고객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겨 차별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염따와 뱃사공은 자신들의 진실한 삶을 보여주며 다른 아티스트와 차별화를 이루었다. 팬은 이를 보며 특별함을 느꼈고, 그들의 음악에 귀 기울였다.

 

정답이 없는 브랜딩과 마케팅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본질이다. 염따와 뱃사공이 보여준 브랜딩 성공의 중심에는 본질이 있다. 그들의 본업, 즉 음악성이 기반이 되었기에 성공적인 브랜딩이 가능했다. 이들은 단순히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브랜딩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좋은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노력이 저변에 있었기에, 차별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본질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뮤지션에게 음악은 팬과의 약속이다. 염따와 뱃사공은 그 약속을 지키는 동시에 유쾌한 모습으로 소통함으로써 그들의 음악을 더욱 효과적으로 알리고 있다. 래퍼 염따와 뱃사공의 사례를 통해 상품시장의 본질과 브랜딩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