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함께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사람들은 이제 일상에서 호접지몽을 경험하고 있다. 호접지몽은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뒤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라는 인간이 된 꿈을 꾼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사자성어이다. 현실과 꿈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데서 생겨난 호접지몽처럼, 고도로 발달한 IT 기술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메타버스 시대를 열고 있다. 전문가들은 머지않은 훗날,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오감으로 경험 가능한 메타버스의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예측한다.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처럼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페이스북(Facebook)이 만드는 메타(Meta)의 시대
이런 흐름에 부응하듯 SNS 플랫폼으로 잘 알려진 페이스북(Facebook)은 얼마 전 사명을 메타(Meta)로 변경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5년 후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기업으로 인식되길 원한다며 관련 사업을 강화할 것을 발표했다. 그는 새로운 사명을 공개와 함께 현재의 사명은 페이스북이라는 하나의 제품만 나타내고 있어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 우리가 하는 다양한 일을 대표할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VR·AR 관련 연례행사인 커넥트 콘퍼런스에서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어떻게 구상 중인지 대략적인 그림을 선보인 것이다.
메타(Meta)는 페이스북, 인스타 그리고 왓츠앱을 운영하는 다국적 SNS 기업이다. 세 가지 플랫폼만 해도 대략적인 사용자의 수가 52억 명에 달한다. 최근 메타는 이를 활용해 사용자들이 가상에서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화폐 디엠과 가상화폐 지갑 노비를 만들었다. 이는 이미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상태에서 가상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 메타버스 경제 활동을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훗날 메타버스에서 현실보다 더 많은 경제, 사회, 문화 활동 등이 벌어진다면 메타는 다른 기업에 비해 상당한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다. 즉 메타는 가상 세계의 경제 규모가 커질 것을 이미 예상하고, 그 안에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품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메타로의 사명 전환은 그 신호탄과 같다.
메타 시대의 금융 시스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경제 활동이 일어난다.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다. 가상 세계에 사람들이 모이면 업무, 문화, 예술 등 상상 이상의 경제 활동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직업군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메타는 가상 세계에서 허용되는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려는 듯 보인다.
가상 세계에서는 실제 화폐를 가상 화폐로 바꾸어 사용하는 사이버머니를 이용한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실제 화폐를 가상 화폐로 변환한다는 점이다. 만일 가상 세계 내의 금융 시장이 확대된다면 메타는 결과적으로 실제 화폐인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금융 제국이 될 수 있다. 유사한 예로는 스타벅스가 있는데, 현재 스타벅스의 예치금은 약 2.3조 정도에 달한다. 이는 웬만한 은행보다 많은 수치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장밋빛 미래만을 꿈꿀 수는 없다. 페이스북 자체 통화인 디엠은 달러와 페깅되어 1디엠=1달러의 공식이 성립된다. 이를 스테이블 코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메타만의 자체 금융 시스템을 보유하는 일은 자칫 달러 화폐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질 위험이 있어 정부의 규제를 피하기가 쉽지 않다. 쟁점은 테크기업의 특성상 마주할 수밖에 없는 규제라는 장애물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이다. 메타가 법망과 규제책을 잘 이겨내고 메타만의 장점을 활용해 메타버스를 구축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가상과 현실을 잇는 블록체인 기술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인은 막연하게 상상만 해 오던 재택근무를 일상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업무 공간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기며 낯설게만 느끼던 메타버스와의 거리감도 좁혀졌다. 마치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인이 오프라인에서 더 활발히 교류하게 된 것처럼, 기술 발전으로 인해 온라인상에서 소통하고 유기적으로 맺는 관계의 폭이 훨씬 더 넓어졌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기술의 발달이 불러온 필연적인 일상의 변화다.
세계인이 접속하는 새로운 우주 공간이 메타버스라면 블록체인은 이를 현실 세계와 연결하는 가교로 기능한다. 가상 세계의 소유권(NFT)과 경제활동(DEFI)이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국내 최대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 김서준 대표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메타버스는 다 가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가상 자산이 기반이 되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우주적인 스케일의 가상 경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소수의 사람이 통제하는 메타버스가 아닌,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메타버스가 형성될 수 있다.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를 기본 철학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성장 속도가 더디다고 해도 퍼블릭 블록체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여야만 그 기본 철학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플랫폼을 사용할 때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결정을 해 왔다. 그러나 퍼블릭 블록체인상의 의사결정은 중앙집권 주체의 개입 없이 이루어진다.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즉 개인들이 모여 자율적인 제안과 투표 등 의사 표시를 통해 다수결로 의결을 하고 이를 통해 운용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DAO의 사례로는 컨스티튜션다오(ConstitutionDAO)가 있다. 소더비 경매에 올라온 미국 헌법 초판본을 낙찰받아 공동으로 소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DAO다. 대중이 헌법을 보유하고 국민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DAO에는 약 1만 7천 명이 참여해 967ETH(약 55억 원)가 모였다. 컨스티튜션다오의 사례는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드러내며 다오의 개념을 주류 문화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타버스는 0과 1로 이루어진 공간이자 또 다른 세계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지고, 인연이 생기고, 규칙과 법에 따른 제재 또한 새롭게 정립된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겨난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 흐름을 지켜볼 것이며, 가까운 훗날 메타버스가 안정됨에 따라 현실보다 가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변화는 쉽지 않다. 그것이 크든 작든 늘 해오던 방식을 거슬러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타의 새로운 도약이 세계인의 일상과 사회 구조에 가져올 변화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메타가 꿈꾸는 메타버스의 내일이 현실의 부조리함을 답습한 형태가 아닌, 지속 가능하고 건설적인 메타버스 생태계로 구현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