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을 원하시나요? 아래 페이지에 첨부된 월정액 서비스를….”
조금만 더 알아볼까 싶어 더보기를 누른 순간, 함정이라도 빠진 듯 가득했던 자료 화면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내 떠오른 결제창은 사용자들의 호기심과 맞바꿀 정도의 금액을 요구한다. 유료의 흐름은 미디어 저널리즘과 미디어 콘텐츠에 이미 널리 퍼져있다. 정말 필요한 핵심 정보, 더 선명한 화질과 광고 없는 미디어 콘텐츠를 받기 위해서는 매달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한 달간의 무료 체험 이후 모든 콘텐츠가 유료로 전환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사용자를 사로잡을 좋은 콘텐츠는 언제나 유료라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걸까?
사용자의 눈은 높아졌고 마음은 냉정해졌다. 돈을 지불하고도 전문성이 없거나 질이 떨어지는 콘텐츠를 제공할 경우, 사용자는 가차 없이 서비스를 해지한다. 유료 콘텐츠가 곧 좋은 콘텐츠라는 도식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문적인 양질의 콘텐츠를 얻을 수 있을까? 답은 바로 양질의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오픈 소스 미디어(Open Source Media)다.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드는 방법으로, 기존의 무조건적인 서비스 유료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다.
오픈 소스는 IT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애플리케이션이나 시스템의 소스 코드를 무료 공개해 누구나 수정과 개발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을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Open Source Software)라고 한다. 이는 집단 지성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된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장점이 있다.
무료 미디어 콘텐츠 역시 이와 같은 장점을 활용한다. 먼저 집단 지성의 장점을 이용하는 사례를 살펴보자. 무료 저널리즘 콘텐츠는 전문가의 글과 양질의 정보를 무료로 배포하며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을 알린다. 이와 같은 정보를 접한 사용자는 수동적으로 정보를 전달받는 대신, 공동체가 직면한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사용자의 의견은 다시 콘텐츠 제작의 원동력이 되고, 이렇게 집단 지성으로 만들어진 미디어 콘텐츠는 스스로 발전을 거듭하며 더욱더 우수한 무료 콘텐츠를 사용자에게 제공하게 된다. 다음으로 오픈 소스 미디어로 새로운 수익 창출 방법을 만든 사례를 살펴보자.
도라마코리아
선순환의 오픈 소스 미디어
일본 드라마를 한국으로 수입하여 방영하는 도라마코리아를 오픈 소스의 수익 창출 예시로 들 수 있다. 도라마코리아는 일본의 콘텐츠를 독점 수입한 후 한국 케이블 방송사에 방영권을 공급한다. 동시에 자체 애플리케이션과 공식 사이트에 광고 기반의 주문형 동영상인 AVOD(Ad-Supported Video on Demand) 서비스를 제공한다. 별도의 금액을 지불할 필요는 없지만, 사용자는 스킵 없는 광고를 필수적으로 시청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에 자칫 거부감을 느낄 수 있으나, 일본 현지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의 광고 삽입 포인트와 같은 지점이라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스킵을 방지하는 기능은 광고주에게도 만족스러운 장치다. 도라마코리아는 이렇게 발생한 수익으로 자체 자막을 제작하거나 드라마 후반 작업팀을 꾸리는 등 일본 미디어 콘텐츠 산업의 부흥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같은 운영 방법은 오픈 소스 미디어의 수익 창출 모델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무료 미디어 콘텐츠 산업의 운영에 있어 유의할 점 역시 존재한다. 도라마코리아의 예시에서 알 수 있듯, 오픈 소스 미디어는 사업의 안정적인 수익과 사용자의 자유로운 콘텐츠 활용을 균형 있게 조절해야 한다. 해당 산업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수익 구조와 운영 안정성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오픈 소스 미디어의 장점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곧 콘텐츠의 질적 저하와 사용자의 냉대로 이어진다. 기존 유료 서비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픈 소스 콘텐츠만의 수익 모델을 체계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주간 문학동네
무료 연재로 미리 읽는 신간
출판사 문학동네는 올해 초 무료 미디어 콘텐츠를 새롭게 기획했다. 주간 문학동네는 장편 소설이나 산문을 다루는 연재 전문 웹진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3시마다 한편씩 연재 글을 발행한다. 연재 기간에 모든 작품은 무료로 제공되지만, 연재 종료 후에는 ‘연재를 시작하며’와 1화만 게재되며 이후 작품은 단행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전에는 독자가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일단 출간이 된 후 구매해야만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주간 문학동네는 웹진 무료 연재를 통해 독자에게 신간을 먼저 선보이는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문학동네의 새로운 시도는 독자의 새로운 독서 습관을 만들었다. 독자는 매일 연재되는 글을 읽기 위해 주간 문학동네를 찾는다. 기존에 종이책으로 발행되던 문예지의 독자층이 한정적이었다면, 주간 문학동네와 같은 웹진에는 훨씬 많고 다양한 독자층이 접속할 수 있다. 따끈따끈한 신간을 매일 무료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은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인다. 이러한 관심은 연재 종료 후 단행본 발간 소식으로 자연스럽게 쏠리고, 독자는 소장용으로 단행본을 구매하게 된다. 이처럼 주간 문학동네는 무료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기존의 사업에 더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피티(Uppity)
사회 초년생의 경제습관을 책임지는 똑똑한 미디어
국내 무료 경제미디어 어피티는 사회 초년생 직장인이 일명 카더라라는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정확한 금융 지식과 재테크 노하우를 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사회 초년생이 어렵게 느낄 수 있는 경제 지식을 무료 뉴스레터와 유튜브 콘텐츠를 이용해 쉽고 즐겁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사용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피티는 구독자에게 질문을 받아 솔루션을 제시하며, 그 솔루션을 재구성하여 다시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법으로 사용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한다. 이러한 선순환으로 쌓인 콘텐츠는 사회 초년생을 위한 경제 가이드북이라는 제품으로, 경험은 세미나와 강의 등의 교육 사업으로 이어지며 수익 구조를 만들어낸다. 어피티의 운영 방식은 오픈 소스 콘텐츠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리며, 자체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낸 우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보를 바다처럼 생각했다. 끊임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손바구니를 들어 올리면 한가득 물이 담기는 것처럼, 무한한 정보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용한 정보와 양질의 콘텐츠는 바다가 아닌 소수의 유료 고객을 위한 프라이빗 풀(private pool)에만 존재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보의 독점보다는 공유의 가치가 더욱더 주목받고 있다. 정보의 제한적 소유보다는 정보의 새로운 활용이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사업자와 사용자가 옅은 경계선을 중심으로 마주 서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을 나눈다면 그 가치는 배가 될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오픈 소스 미디어의 확산은 기존의 제한적인 콘텐츠 산업구조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진정한 정보의 바다가 아닐까? 기존의 단단한 유료 콘텐츠 산업 구조에 혁신이라는 틈을 만드는 무료 미디어 콘텐츠의 성장은 앞으로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