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모험놀이터, 자연에 있는 그대로를 갖고 놀다

© Housing and Wellbeing in Glasgow

당신은 사진 속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흙더미와 벽돌, 판자와 각목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곳에서 아이들이 다 함께 무언가를 쌓고 있다. 또 손수레에 삽을 이용해 흙을 올리기도 하는데, 한 남성이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얼핏 보면 아동 강제 노역 현장은 아닌지 미심쩍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이 단단하고 거친 재료와 도구를 이용하는 이곳은 놀랍게도 그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장소다. 위 사진은 1943년 덴마크에 지어진 최초의 ‘모험놀이터’ 모습이다.

 

모험놀이터는 비형식적인 놀이터다. 고정 시설물이 놓인 ‘제조된’ 놀이터가 아니라, 어린이의 손길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변화를 겪는 놀이 공간이다. 보통 해당 공간의 지형적, 장소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한편 흙, 돌, 자갈, 물통, 바퀴, 통나무, 벽돌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재료, 폐품과 건축자재가 다양한 도구와 함께 마련되어서 아이들이 직접 건축물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불을 피우거나 물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집에서 도통할 수 없던 온갖 모험을 시도해보기 좋은 한편, 흔히 ‘플레이 리더’라고 불리는 성인 놀이활동가가 놀이터를 감찰하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물론 그의 주 역할은 아이들이 원할 때 필요한 도움을 주고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하는 일로, 감시나 제재와는 멀다.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국가로 퍼져나간 모험놀이터. 시간이 지나면서 앞서 언급한 모험 놀이 영역 외에도 실내놀이방, 식물재배영역, 동물사육영역 등 보다 복합적인 경험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장소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 모험놀이터에 대하여, 그 역사와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아이들은 폐허 위에서도 뛰놀더라

 

덴마크가 독일 나치의 지배를 받고 있던 20세기 초, 조경가 쇠렌슨(Carl Theodor Sørensen)은 공사장과 쓰레기장에서 노는 어린이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놀이기구가 있는 기존의 놀이터는 금세 질려 하던 아이들이 공터의 폐자재를 활용해 신나게 노는 것을 보고, 그는 이러한 환경이 외려 아이들의 모험심과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1931년 그는 아동에게 금지된 이러한 종류의 장소들을 놀이터로써 재고하고 활용하는 방향의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1943년 건축가 단 핑크(Dan Fink)와 함께 코펜하겐 엠드럽(Emdrup) 주택단지를 대상으로 ‘폐지 놀이터(Junk Playground)’를 설계했다. 그의 첫 디자인에는 제안되지 않았지만 이후 주택단지 내 제도상 놀이의 안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플레이 리더가 놀이터에 상주하게 되었는데, 이 구성은 이후에도 모험놀이터의 전형이 되어 계속 유지되었다.

“Nottinghill Adventure Playground”

이후 영국의 조경가 앨런 부인(Lady Allen of Hurtwood)이 엠드럽 폐지 놀이터를 방문한 후 크게 감명을 받아 런던을 중심으로 모험놀이터 조성에 힘썼다. 캠버웰 모험놀이터(Camberwell, 1948), 클리데스데일 모험놀이터(Clydesdale, 1952), 롤라드 모험놀이터(Lollard) 등이 그 예시로, 그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폭격과 폭발 때문에 파괴된 자리를 활용했다. 어른들이 벌인 극악무도한 전쟁의 흔적 위에서 이를 봤던 아이들이 놀이를 벌이는 상황이 지닌 저항적, 치유의 의미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앨런 부인은 모험놀이터를 만드는 동시에 아동 복지 및 교육을 위한 활동가로서 활약했고, 점차 영국의 기타 지역에서도 전후 세계의 도시재건 계획 일부로서 모험놀이터를 빠르게 수용했다(물론 한 번 만들어진 놀이터라도 전후 피해가 복구됨에 따라 해당 대지의 지주에게 되돌려질 시기가 오면 폐쇄되기도 했다). 이후 1950-70년대 사이에는 점차 스웨덴,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 일본 등 해외 각지로 모험놀이터 만들기가 퍼졌다.

오늘날, 해외의 모험놀이터 사례

 

1) 영국, 골목을 누비다 “The Land”

“The Land (2015), Erin Davis“

웨일즈 플라스 매독(Plas Madoc)에 위치한 ‘The Land’는 2011년부터 5살에서 16살에 이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상설 모험놀이터다. 약 4000㎡ 넓이를 가진 놀이터에는 개울이 가로질러 흐르고, 판자 더미와 타이어, 거꾸로 뒤집힌 낡은 배, 외바퀴 손수레, 사다리, 어망, 다양한 쓰임의 해머와 밧줄, 펀치백 따위가 어지럽게 쌓여있다. 이곳에서 6~12명의 놀이활동가가 ‘Street Play’와 ‘Get out and Play’라는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에게 해당 지역의 골목들을 활용한 놀이를 제안한다. 2015년에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놀이를 미국의 한 영상감독이 다큐멘터리로 담아 관심을 모았다.

2) 독일, 농장과 놀이터가 같이 있다 

© laja-bayern.de

유럽의 모험놀이터가 1000여 개쯤으로 확인되는 현재 그중 절반 이상이 독일에 있다고 집계된다. 일반적으로 독일의 모험놀이터는 어린이 농장과 모험놀이터를 함께 운영하는 형태가 많다. 일찍이 아동 및 학생의 권리 신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던 1960년대, 비슷한 시기에 베를린시에는 영국 모델을 따르는 모험놀이터가 지어졌고 슈투트가르트(Stuttgart)시에는 동식물 친화적 환경에 집중한 어린이 농장이 지어졌다.

 

그리고 1972년 슈투트가르트시에서 ‘어린이농장 및 모험놀이터 연합(Association of Youth Farms and Active Playgrounds)’이 국가기관으로 등장하면서 이후 두 형태가 합쳐진 놀이 장소가 다양한 지역에서 나타났다.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도전적인 놀이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농사와 가축사육을 직접 경험해보면서 생명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예컨대 베를린에 위치한 ‘Kolle 37’은 한쪽에 뭔가를 만들어볼 수 있는 다양한 재료와 도구, 심지어 도자기 가마와 대장간 노까지 마련한 한편 토끼, 기니피그 등 동물이 있는 뜰과 바이크 렌탈샵 같은 시설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3) 일본, 자신의 책임으로 자유롭게 놀기

하네기 플레이파크

© Driscoll Reid & Bonnie McElfresh

일본 내에서는 1970년대부터 모험놀이터를 조성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 확산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일본 최초의 모험놀이터 ‘하네기 플레이파크(羽根木プレーパーク)’가 있다. 이곳이 위치한 도쿄 세타가야구는 주택가로, 오오무라 켄이치, 아키코 부부가 유럽의 모험놀이터를 보고 감명을 받아 귀국 후 관심 있는 일본 학부모들을 모아 ‘놀자’라는 모임을 결성해 조성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근 어린이집 등을 빌려 단기간 프로그램 형식으로 놀이 활동을 진행하다 세타가야구에서 하네기 공원 내에 모험놀이터를 개설하도록 지원해주어 1979년 상설 모험놀이터로 문을 열었다. 면적은 약 3000㎡이며 플레이 리더 하우스, 목재 창고, 취사도구 창고, 수도시설, 물 미끄럼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의 책임으로 자유롭게 놀기’라는 이곳의 모토를 따라 현재 400여 개의 단체가 물, 불, 흙, 목재를 이용한 다양한 놀이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도 있다. 모험놀이터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말부터 놀이터 조성 및 운영관리 방식에 있어 조금씩 새로운 시도가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2007년 말 조성된 노원구 공릉동 ‘씨알 어린이공원’이 실제 이용자인 어린이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제작 과정에 참여하게 한 국내 첫 번째 사례다. 시민단체 ‘도시연대’와 전문가 그룹 ‘커뮤니티디자인센터’, 한국토지공사가 의기투합해 어린이 공원을 리모델링한 사업으로 직접 어린이와 주민을 찾아가 워크숍, 면접, 설문지 등으로 의견을 모으고 디자인을 공유하는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아동문학가의 제안과 순천시의 추진력으로 만든 기적의 놀이터

 

국내 대표적인 모험놀이터의 예로 최근 순천시에 나타난 ‘기적의 놀이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2017년 각각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 ‘기적의 놀이터 2호 작전을 시작하~지’가 순천시 연향동과 그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룡면 신시가지에 조성되었다. 일찍이 어린이 놀이터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아동 문학가 편해문 씨가 순천 시장의 의뢰로 총괄담당자를 맡고, 단계별로 100여 명의 어린이가 낸 아이디어를 반영하며 시민 및 전문가 그룹과 의견을 나누어 완성되었다.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

©한겨레

기적의 놀이터 1호는 자연지형을 최대 활용해 잔디 미끄럼틀, 출렁다리, 모래밭, 굴다리 등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언덕을 뛰어오르거나, 모래 놀이, 물놀이 등을 할 수 있다. 2호 역시 기존 하천과 언덕을 그대로 살리면서 모래밭, 미끄럼틀, 굴다리, 물놀이 시설 등을 설치했다. 여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에펠탑 모양을 띤 네트다. 두 곳 모두 주변에 학교와 주거지역을 두고 있어 실제 이용률이 높다. 상시 개방되어 누구나 언제든 찾아갈 수 있고, 놀이활동가가 배치되어 찾아온 아이들의 놀이를 돕는다. 순천시는 기적의 놀이터 1호를 시작으로 5년 이내에 총 10곳을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도봉구 창동, 산 지형을 이용한 뚝딱뚝딱 놀이터

 

한편, 2017년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지어진 뚝딱뚝딱 놀이터는 운영방식에 있어 조금 다르다. 초안산 자락에 있는 이곳은 인근 아파트 주민 어머니들 모임과 도봉구가 함께 아이들 의견을 조사하고 놀이 행동을 관찰하면서 설계했다. 산 지형을 활용한 오름 놀이대, 생물 관찰 가능한 생태연못, 집라인(zipline), 울창한 숲이 있어 아이들이 자연을 만끽하며 놀 수 있다.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곳 운영 방식의 특징이다. 예컨대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는 사전예약을 통해 15~20명가량의 유치원 혹은 어린이집 원생들이, 이후 4~6시는 예약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끔 조율한다. 자체적으로 놀이 프로그램을 꾸준히 제공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놀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도 참여해볼 수 있게 기회를 넓힌다.

“뚝딱뚝딱 놀이터” 

© 뚝딱뚝딱 놀이터 블로그

놀이터를 짓는 어른들에게 주어진 과제

 

국내 한 논문에서 우리나라도 이미 1980년대에 모험놀이터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 모험놀이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매우 최근의 일이다. 모험놀이터의 도입은 우리나라에서 왜 이리 늦어졌던 것일까? 그 주요 이유는 놀이터의 운영 및 관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험놀이터는 시민 주체가 놀이터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이 또 다른 특징이다. 놀이터를 만들 공간 제공, 시설 유지 관리 및 놀이활동가 배치에 드는 비용, 공간 구성 및 프로그램 개발 등의 운영 – 이 세 가지를 행정 주체와 시민 주체가 나누어 맡는 게 필요한데, 보통 해외의 모범 사례들은 행정이 공간 제공을 맡고 나머지 모두를 시민이 자발적으로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행정이 너무 많은 책임을 맡게 되면, 미연의 사고와 후처리를 방지하기 위해 아이들의 놀이를 대단히 제지하는 방식으로 흘러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국, 독일, 일본 등은 공통으로 놀이환경을 위한 규모 있는 모험놀이터 네트워크 혹은 비영리기구가 잘 설립되어있다. 이들은 놀이활동가 양육 및 동네 모험놀이터 개설에 대해 정보를 활발히 공유하고 기타 다양한 방면에 지원한다.

 

즉 놀잇감과 놀이방식, 외관에서 기존 놀이터와 많은 차이가 있는 모험놀이터는 결국 그 배후에 숨겨진 사회적 합의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끌어내기까지 많은 관심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모험놀이터의 국내도입 역시 늦어졌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모험놀이터에 있어 심혈을 기울일 부분은 외형적인 설비와 시설이 아니라 더 나은 경험을 만들어줄 놀이 그 자체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협의임을 잊어선 안 되겠다. 가까운 미래에 세종시를 포함한 다양한 지역에서 모험놀이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부디 ‘모험놀이터’라는 또 하나의 단일 형식을 재생산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지역마다 그곳의 지형과 인적구성에 맞는 놀이 장소를 만들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