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브랜드의 이미지는 그 브랜드의 업무공간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위치하는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사무실이 단순히 업무만 처리하는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의 모든 이야기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업무만을 위해 공간을 택한다면, 차라리 소비자의 눈에 띄지 않는 지역에 조용한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브랜드의 제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업무공간으로도 그 브랜드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제 막 탄생한 스타트업이 공유 오피스 기업인 ‘위워크(WeWork)’에 자리 잡길 원하는 이유는 동종업계 네트워킹의 기회도 있지만,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가 더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유 오피스가 아닌 개별 사옥을 가진 기업의 경우에는 그 공간의 디자인에 따라 해당 기업의 조직 문화를 유추할 수 있다. 이렇듯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도 유의미한 공간 마케팅이 이루어지는데, 대규모 사옥을 가진 브랜드의 이미지 마케팅과 이에 따른 파급 효과가 큰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옥은 한마디로 브랜드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자, 브랜드 철학의 광고판이라 할 수 있다. 매장과 예술이 결합하면 브랜드 이미지가 상승하는 것 처럼, 사옥과 예술이 만나면 브랜드 디자인을 완성하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사옥에 예술을 더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인 3가지 브랜드를 만나보자.

 

<목록> 

A. 아모레퍼시픽(Amore Pacific) 신사옥 @용산

B. 현대카드 사옥 @여의도

C. 일신방직 @여의도 & 한남

A. 아모레퍼시픽(Amore Pacific) 신사옥 @용산

 

완공과 동시에 용산의 랜드마크가 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키워드는 ‘연결’이다. 브랜드와 지역사회, 소비자와 직원을 잇는 교감의 공간이 되겠다던 신사옥은 규모도 압도적이었지만, 지역 경관의 수준을 순식간에 끌어올린 아름다운 정사각의 건축미로 화제를 모았다. 국내외 건축 사무소 49팀이 참여한 공모에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설계안이 당선된 것 또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곳은 완공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건축가가 달항아리 모양을 모티브로 설계안을 짜는 데만 4년, 건축물을 완공하기 까지는 총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주변 지대와의 조화를 고려해 고층 디자인을 과감히 포기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사옥이 보이는 위치의 부동산 값이 ‘아모레 뷰’라는 웃돈이 붙어 급등할 정도였으니, 이 건물이 얼마나 주변의 환영을 받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건축가들에게 ‘최근 3년간 서울에 들어선 외국 건축가의 작품 중 최고’로 뽑혔다. 이 사옥은 새로운 아름다움의 역사를 쓰겠다던 브랜드의 야심찬 목표에 큰 힘을 실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 건축가(David Chipperfield Architects)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 전경 ©데이비드 치퍼필드 건축가(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5층 '옥상정원' ©아모레퍼시픽

“백자에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당당히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노골적으로 한국적인 미를 표방하는 건물이 아니라 그 본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 데이비드 치퍼필드

 

광화문의 디타워와 같이 아모레퍼시픽 역시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을 대중에게 개방했지만, 상업 공간은 가능한 한 지하로 배치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대신 1층에 중앙 정원인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문화와 커뮤니티 공간을 꾸렸다. 서성환 선대 회장이 수집한 미술품에서 역사가 시작되어 현재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기획 전시로 소개하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지상 1층과 지하 1층을 차지했다. 맞은편의 ‘에이피랩(apLAP)’에는 전 세계 박물관과 도록을 보관하고 전시해 아모레퍼시픽의 예술관을 짐작하게 한다.

 

사옥의 소공원인 ‘포켓파크’에 설치된 12m 지름의 <오버디프닝(Overdeepening)>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작품이다. 이는 감각과 지각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의미를 담았으며, 휑한 공간을 미적 가치로 가득 채웠다. 2층의 ‘아모레퍼시픽 아카이브’ 박물관에서는 브랜드의 70년 역사와 함께 화장품의 주요 원료와 제품의 변천사를 살필 수도 있다. 사내 어린이집에는 가공하지 않은 자연의 원목 환경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대형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미래의 아모레퍼시픽 인재를 키우겠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지상 1층 로비의 '에이피랩(apLAP)' ©아모레퍼시픽
야외 소공원 '포켓파크' 설치작품 '오버디프닝(Overdeepening)' ©아모레퍼시픽

“공간이 생각을 지배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아모레퍼시픽의 정신으로 사람이 중심인 건물을 만든다.”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임직원에게만 개방된 5층의 옥상 정원은 사옥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말 그대로 건축적 예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곳을 완성하기 위해 여러 층의 공간 활용을 포기해야 했지만, 청단풍을 낀 연못 너머로 펼쳐진 서울 도심의 풍경은 그 대가로 충분했다. 업무 성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아트리움이나 옥상 정원 등의 독립적 공간에서 진실한 연결성이 발현된다는 것이 치퍼필드의 설명이다. 상층과 하층 사이를 관통하는 얕은 연못은 하늘의 빛을 건물 내부에 그대로 투과시켜 마치 이 공간 속에 있는 사람이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사옥의 외관뿐 아니라 내부에도 아모레퍼시픽이라는 브랜드를 잘 나타내는 디자인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다. 오로지 사옥만을 위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서체는 건물 내 안내표시 등 글자가 존재하는 부분에 일괄 적용됐다. 휴식 공간에는 이광호, 윤여범, 최형문 등 국내 작가들의 가구 작품이 들어섰다. 정방형 건물의 동서남북으로 문을 만들어 연결성을 높인 것도 특징이다.

 

이처럼 아모레퍼시픽의 사옥은 거대한 규모의 유동인구를 수용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역의 경관을 개선하고 건축 문화를 발전시키며 브랜드 정체성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B. 현대카드 사옥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은 도시의 환경과 건축, 예술이 깃든 공간을 탐사하는 도시건축축제, ‘오픈하우스 서울(OPEN HOUSE Seoul)’에서 다뤘던 건물 중 하나다. 이곳이 위치한 여의도는 금융의 중심지로 고도 제한 등 건축 관련 규제가 강해 빌딩 외관이 매우 일률적이다. 현대카드 역시 주변의 빌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현대카드 본사의 격자 패턴을 미장 재료를 활용해 옮겨오면서 아날로그적 분위기가 녹은 외관을 완성했다. 예술과 디자인에 가장 친화적인 금융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 현대카드인 만큼,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독특함과 색다름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현대카드 여의도 사옥 전경 © 오픈하우스 서울(OPEN HOUSE Seoul)

“경영의 본질은 과학이고 승부는 예술에서 갈린다.

과학이 없으면 예선전 탈락이고 결승전은 예술로 승부가 난다.”

–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로비에 들어서면 자전거 여러 대와 심상치 않은 미감의 탁구대가 눈에 띈다. 역시나, 현대카드 측에서 직접 디자인한 시설이다. 사옥 곳곳에는 현대카드의 전시문화 공간 ‘스토리지’의 큐레이터가 직접 구입해 설치한 미술 작품들이 걸려있다. LED, 영상, 조각,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감각적으로 다루는 팝 아티스트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미디어 예술 작품은 현대카드가 표현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외에도 개념주의 사진 운동의 대가 ‘이언 월러스(Ian Wallace)’의 사진, 유리공예 작가 ‘제프 짐머만(Zeff Zimmerman)’의 유리조형물 등 수많은 작품이 설치되어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현대카드 전시공간 '스토리지' 큐레이터들이 직접 구입한 미술 작품 © 럭셔리(LUXURY)

사옥에서 가장 독특한 ‘카드 팩토리’는 말 그대로 신용카드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직원 외에도 일반인, 카드 발급자 모두 방문할 수 있다. 카드 방문 수령을 발급 옵션에 둘 정도로 이곳의 관람을 환영하고 있다. 또, 산업혁명과 자동화, 산업디자인에 관한 200여 권의 도서도 많은 이들의 열람을 기다리고 있다.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과 같은 검은색 인테리어, 공장 굴뚝을 닮은 조명, 작업 지시대 위의 확성기와 같은 소품들을 활용해 가장 진화한 현대 화폐인 신용카드의 생산 과정을 산업자본의 시각과 미적 감각으로 풀어내었다.

 

금융 서비스 디자인을 맡고 있는 ‘디자인 랩’은 ‘금융이라는 무형의 서비스를 시각적 형태로 가치 있게 표현하는 일’을 담당한다. ‘디자인 랩’의 공간은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 매년 인류와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이다)을 수상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창고를 콘셉트로 설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일 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시도와 영감을 위해 이곳을 디자인했다. 또한, 아모레퍼시픽이 사옥을 위해 서체를 개발한 것과 같이, 현대카드는 디지털 브랜드로 발돋움하기 위해 사옥의 안내 문구를 코딩 언어로 대체하는 텍스트 디자인을 시도했다. 사내 카페와 식당, 회의실, 휴게실, 그리고 사무실 비품에도 코딩 언어로 된 문구를 붙였는데, 이는 코딩 언어에 친숙해진 직원이 더욱 빠르게 기업의 디지털화를 실현하게 하기 위함이다.

C. 일신방직 @여의도 & 한남

 

세계적인 건축가와 협업해 건물을 세우거나 외관을 고치는 것이 사옥을 활용한 예술 브랜딩의 전부는 아니다. 단순히 예술 작품을 구매하는 것 이상으로 작가 친화적인 공간을 꾸리는 것 역시 꽤 효율적인 마케팅이 되는데, 일신방직을 이끄는 김영호 회장의 공간이 그 좋은 예다.

 

우선 김영호 회장은 현대미술관회에서 이사, 부회장, 회장을 역임했다. 또, 메세나 협회 회장, 석남미술문화재단 창립 이사, 삼성문화재단 이사, 예술의 전당 후원회 부회장 역임, 그리고 몽블랑 예술후원자상 수상 등 그가 걸어온 길은 그가 얼마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지 말해준다. 그는 작품 하나를 고르는 눈썰미도 심상치 않은 데다, 작가의 인지도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작품이라면 누구의 것이든 기꺼이 수집한다. 홍익대와 서울대 미대의 졸업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좋은 작가와 작품을 찾아다니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이끄는 브랜드 사옥은 어떤 예술적 감각이 서려 있을까.

 

일신방직 한남동 사옥 입구의 설치 미술.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조형물 © 일신방직
왼쪽 : 디자이너 '에토레 소사스(Ettore Sottsass)'의 가구 '칼튼책상', 백남준 비디오 아트 '선덕여왕', 오른쪽 : 한남동 사옥 로비 © 럭셔리(LUXURY)

91년에 먼저 준공된 여의도 사옥은 공사 과정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든 독특한 케이스다. 국내 1세대 설치 작가인 양주혜 작가에게 의뢰해 공사판에 흔히 쓰는 가림막 틀을 작품화한 것이다. 1.5m의 장방형 비닐에 11가지 색으로 실크 프린트한 2,500장의 그림이 공사장을 장식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는 굉장히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공사 후에는 이 과정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어 공사 현장 사진과 함께 사옥 9층 아트리움에 전시했다. 또, 이탈리아의 ‘마우로 스타치올리(Mauro Staccioli) 작가’에게 직접 의뢰해 탄생한 ‘일신 여의도 91’을 사옥 앞에 두기도 했다.

 

여의도 사옥 공사 과정에서 설치했던 가림막을 모티브로 한 작품. 사옥 9층 아트리움 © 더 저널, 김진녕기자

국내 원로 건축가인 우시용이 설계한 한남동 사옥 정면에는 김영호 회장이 직접 수집한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건물 외관뿐 아니라 내부에도 예술 작품이 더욱 빼곡하다. 국내에서 마주하기 힘든 해외의 현대미술 명작들이 대부분이라 미술계에서도 일신방직 사옥에서 열리는 전시를 호시탐탐 노린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앤디 워홀(Andy Warhol), 장 뒤뷔페(Jean Dubuffet),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바스키아(Basquiat), 솔 르윗(Sol LeWitt) 등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들이 로비부터 복도까지 늘어서 있다.

 

여의도와 한남동 두 사옥 모두에 많은 작품이 걸려있지만, 아직 창고에 잠들어 있는 작품 수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영호 회장의 꿈은 그 아까운 예술 작품들을 ‘일신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공공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교환 전시를 하는 것이다. 지금도 시간을 쪼개어 홍콩 아트페어 등에서 작품을 수집한다는 그의 사옥은 브랜드가 가진 예술관과 안목의 수준,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이해도마저 투명하게 보여준다.

최근의 브랜드 마케팅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능 및 성능을 강조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는 특정 요소에 대한 감성적 판단으로 브랜드 전체를 평가하는 성향이 짙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옥 디자인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장 빠르게 보여준다. 과거에는 건물 외관 디자인에만 신경썼다면, 이제는 사옥 내부를 어떤 디자인과 콘텐츠로 채울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사옥을 대중에 개방하는 흐름에 따라 시민들이 공간 내부로 깊숙이 들어와 브랜드의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간 경험을 통해 브랜드를 인식하는 소비자의 안목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또한, 예술을 품은 사옥은 제품의 이미지는 물론, 조직 구성원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술 완성도가 높은 사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갖는 자긍심과 만족감은 애사심으로 발전하며, 조직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을 발견할 수 없는, 매력 없는 사옥을 탈피해 이제는 브랜드가 가진 철학을 예술로 표현하는 사옥으로 대내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