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다가온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적이 있다.
때마침 연말이었다. 콘서트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그녀를 위해 콘서트 데이트라는 일급 비밀 미션을 수행하기로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가수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좋은 좌석 차지를 위해 마우스 클릭만 빨리하면 됐다. 하지만, 진골 팬의 마우스 클릭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내공이 부족하여 일반석을 예매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그녀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예매한 것을 자부하고 있었다. 더욱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연말 콘서트 티켓을 말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아닌데도 잔뜩 기대에 부푼 상태로 그녀와 함께 콘서트장에 갔다. 어린이날 놀이동산에 놀러 간 아이처럼 엄청나게 신날 줄 알았는데 그녀의 표정이 어째 좋지 않다. 콘서트가 끝나고 집에 데려다줄 때까지도 내가 예상한 표정은 나오질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어둡다.
‘아, 망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잘못 알고 있었나?’
‘좌석 때문인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재미가 없었나?’
불길한 예감은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녀가 표정이 좋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가수였지만 사람이 많아 혼잡하고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기 때문에 콘서트 데이트는 본인의 취향이 아니었다고 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그 이유를 들었더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집에서 편하게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스피커를 구매했다. 사실 필자도 콘서트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콘서트를 다녀온 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는 지인들을 볼 때마다 꽤 신기했다. 그런데 당분간 그런 경험담조차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열광적인 콘서트 공연에 가기란 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콘서트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시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언택트 시대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언택트(Untact)란 콘택트(Contact)에서 부정의 의미인 Un-을 합성한 말로, 사람과의 접촉을 지양하는 것을 뜻한다. 밀집된 공간의 감염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에 제아무리 콘서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콘서트장에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올 3월부터 각종 공연∙전시 행사의 취소가 줄을 잇고 있다.
음악 공연도 마찬가지다. 현대카드는 지난 3월 31일 예정이었던 가수 톰 워커(Tom Walker)의 내한공연을 취소했고, 올 4월 방탄소년단의 서울 콘서트 <BTS MAP OF THE SOUL TOUR – 서울>이 취소되었다. 최고시청률 35.7%의 기염을 토하면서 트로트 열풍을 불러모은 <미스터트롯>의 전국투어 콘서트도 당초 4월 말에서 5월로 연기했으나,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를 나타내면서 6월 말로 미루어져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렇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뮤지션과 팬의 만남을 무심하게 갈라놓고 있다. 그런데 최근 랜선 공연으로 음악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인터넷 연결에 필요한 랜(LAN) 케이블 단어를 이용해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공연을 통틀어 랜선 공연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랜선 공연이 음악 공연 문화를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공연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꿀 랜선 공연
4월 19일 새벽, <One World : Together At Home>이라는 대규모 콘서트가 온라인을 통해서 생중계되었다.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공연 기획에 참여했고, 세계보건기구 WHO와 국제옹호단체 글로벌 시티즌(Global Citizen)이 주최한 이 콘서트는 엘튼 존(Elton Jonh), 존 레전드(John Legend)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슈퍼M 등 약 110여 명의 유명 아티스트가 참여한 대규모 랜선 공연이었다. 온라인 공연이기에 가능한 규모일지도 모른다. 아티스트들은 각자의 집이나 작업실에서 최소한의 편성으로 공연했다.
4월 오프라인 콘서트 취소 소식을 발표한 방탄소년단은 오는 6월 <방방콘 더 라이브>란 이름으로 온라인 콘서트를 개최한다. 방탄소년단과 팬클럽 아미(ARMY)가 온라인으로 실시간 교감하는 온택트(On-Contact) 방식의 공연으로, 6월 14일 오후 6시부터 약 90분 동안 유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펼쳐진다. 이미 방탄소년단은 지난 4월 18, 19일에 기존 콘서트 영상을 담은 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방방콘)를 공개해 양일간 총 5,059만 건, 최대 동시 접속자 수 224만 명을 기록했다.
온라인 공연의 대표 콘텐츠로 JTBC 뉴스룸에도 소개되었던 가수 선우정아가 네티즌의 꾸준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15일 온라인 공연 브랜드 재즈 박스(JAZZ BOX) 론칭과 함께 첫 라이브 생중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재즈 박스는 선우정아가 사전에 준비한 재즈곡과 팬들의 신청곡을 직접 라이브로 공연하는 방식으로, 팬들과 유기적인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온라인 공연이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MBC 예능 <놀면 뭐하니?> 프로그램의 방구석 콘서트에 출연하여 팬들과의 언택트 소통을 다양한 방면으로 이어나갔다.
50년 넘게 방치되어 있다가 최근 음악섬으로 재탄생한 노들섬에서 온라인 콘서트 <음악노들 온 에어(ON AIR)>를 4월 14일부터 5월 7일까지 진행했다. 10cm, 딕펑스(Dickpunks), 브로콜리너마저, 몽니 등 총 9개 팀이 참가한 이번 공연은 서울시에서 대관료와 온라인 중계 비용 등의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여 화제를 모았다. 이 행사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피해를 보고 있는 뮤지션을 돕고, 심신이 지친 시민을 위로∙응원하기 위해 개최되었다.
문화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카드 업계도 랜선 공연에 뛰어들었다. 신한카드는 지난 4월 26일, 밴드 소란과 함께 <Digital Stage>라는 온라인 콘서트를 진행했다. 2시간 동안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된 이번 콘서트에서 소란의 보컬 고영배가 노래를 부르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마이크를 넘기자, 실시간 댓글 창에 다음에 이어질 노래 가사가 도배됐다. 이른바 랜선 떼창이다. 디지털 스테이지의 반응이 좋아 차이코프스키 연주회, 타악기 연주자 김소라, 지진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이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었다. KB국민카드도 지난 3월 가수 스텔라 장(Stella Jang), 에이프릴(April), 노라조, 국카스텐 등의 가수들이 출연하는 보이는 라디오를 실시간 중계했고, 현대카드는 그레이(GRAY), 강민경, 제시(Jessi)와 함께 <슈퍼마켓 콘서트>, 방콕 라이브 등의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언택트 공연의 진화, 가상현실(VR)
이처럼 온라인 공연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뮤지션과 팬의 만남 사례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온라인으로 공연을 중계하고 소비하는 방법도 점차 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이하 VR)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VR 산업의 가능성을 집중 조명한 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의 한 IT 컨설턴트가 VR을 이용하여 바닷속을 구경하는 사례를 소개했는데, 그는 “나는 안락의자에 앉아 물에 젖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러 번 해왔듯이 바닷속을 수영하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바다에 가지 않고도 바닷속을 수영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이 VR 기술은 2016년 HTC의 바이브(Vive)와 오큘러스(Oculus)의 리프트(Rift) 출시로 한때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잠시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하드웨어 기술의 한계, 네트워크 인프라 확충이 더딘 이유도 있으나 가장 큰 문제는 킬러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VR 기술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조명받는 이유는 다양한 분야에서 언택트 체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V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4월 초, 미국 애플(Apple)이 VR 콘텐츠 제작 기업인 넥스트 VR을 1억 달러 규모에 인수를 타진한다는 보도가 나왔고, 대만 HTC는 VR 기반 협업 플랫폼인 바이브 싱크(VIVE Sync)를 출시했다. 국내 이동통신사는 5G 네트워크의 핵심 콘텐츠로 VR을 강조하고 있다. 3D 기반의 VR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기가(Gbps·초당 기가비트)급 속도로 대량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5G 네트워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VR 기술을 활용하여 랜선 공연을 펼친다면 지금보다 더욱 생동감 넘치고 실감 나는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지난 3월, 경기아트센터 산하 예술단인 <경기팝스앙상블 콘서트>를 VR 카메라로 촬영하여 생중계했다. 5G 네트워크 기반 VR 생중계는 이번이 전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경기아트센터 관계자는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관객이 VR을 통해 생생한 현장감을 느꼈으면 한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VR 관련 인프라 구축을 통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을 예고했다. VR을 접목한 온라인 공연이 조금씩 늘어난다면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VR 콘텐츠도 자연스레 늘어날 테고, 킬러 콘텐츠가 확보된다면 현재 오프라인 공연의 보조제 역할인 온라인 공연이 또 다른 경쟁력을 얻게 될 것이다.
언택트 문화, 인류사의 새로운 변곡점
최근 N차 감염의 매개 사유로 일부 지자체에서 노래방 업종의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5월 22일 브리핑에서 손 씻기와 실내 마스크 착용을 강조했고 클럽, 주점, 노래방 등 밀폐된 다중이용시설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신규 환자 10명 중 4명에 달하는 20대 청년층에게 “코로나19 장기화로 청년층도 그간의 긴 사회적 거리두기로 불편이 컸을 것이고 학업, 취업의 어려움으로 스트레스, 우울감도 크리라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사회공동체의 안전과 청년층의 건강을 위해 청년층 문화도 생활 속 방역과 조화를 만들어가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고, 콘서트장에 가서 떼창할 수도 없는 시기이다. 중국 고서 기록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음악과 가무를 좋아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우리 민족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춤과 노래로 신을 위로하고 백성들은 축제를 즐겼다. 그만큼 흥은 우리 민족의 힘의 원천이고, 그 흥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것은 삶을 무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랜선 공연은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을 것이다. 음악 공연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예술 공연을 온라인으로 즐기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이 생활 속 방역 문화를 정착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랜선 공연 문화가 건강하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대안을 찾았다고 자화자찬할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국가∙사회적인 지원과 제도 정립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클래식∙국악 등 순수공연예술 관계자로 이루어진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전년 대비 1분기 매출액이 70~100%까지 하락하고, 지난 4개월 동안 수입이 0원인 종사자가 무더기로 나오고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공연산업 매출의 90%는 유료 관객에서 발생하기에 온라인 공연이 유료가 아니라면 소용없다. 온라인 공연도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무대, 조명, 효과 장치가 필수다. 또한, 실시간 중계에 필요한 장비 및 인력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직접∙즉각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공연도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관람하는 시민의 의식 고취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