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최근 책이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소재로 적극 활용되면서 브랜드와 연계된 책 출간, 북토크, 팝업 스토어 등이 재미난 행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 이솝의 <이솝 우먼스 라이브러리>와 미우미우의 <썸머 리즈>, 샤넬의 <문학적 만남> 등은 문학과 여성을 주제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 감각적인 텍스트 프린팅으로 유명한 발렌티노와 꾸준히 여행책을 출간 중인 루이비통, 북토트와 책을 연결지은 디올 등은 저마다의 색을 드러내며 문학과 패션 사이의 상관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난 6월 개최된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시선을 끈 부스 중에는 들으면 바로 아는 그 이름, 엘르가 세운 “엘르 보이스(ELLE VOICE)”도 있었다. 엘르 보이스는 세계적인 패션 잡지 <엘르(ELLE)>가 발행하는 뉴스레터로 작가, 아나운서, 뮤지션, 팟캐스터 등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삶과 레퍼런스를 나눈다. 이번 도서전에서 엘르 보이스는 “여성의 삶 속에서 평화를 지키는 다양한 방법”이라는 주제 강연과 함께 온라인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참여자의 에세이 취향을 선별해 50종의 에세이 중 한 편을 뽑아 나눠주는 “엘르 페어링 바”를 진행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런데 알록달록한 디자인으로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은 이 독립 부스에서 판매하는 책은 흥미롭게도 단 한 종류, 바로 권당 38,000원-40,000원 사이의 두툼한 양장본 표지가 붙은 『엘르 데코 북』이었다. 마치 책을 놓을 만한 고급 인테리어 가구와 넓은 집이 필요할 것 같은, 이 고가의 커피 테이블 북을 2030 젊은 여성들로 가득한 전시회장에 엘르가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 커피 테이블 북에 대해 살펴보자. 콜린스 코비드 영어사전은 “커피 테이블 북(coffee-table books)”을 “사진이 많은 크고 값비싼 책으로, 제대로 읽히기보다는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보통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놓여 있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조금은 낯선 이런 형태의 책은 책꽂이에서 책등의 제목으로 어필하기보다는, 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손님을 맞는 응접실에 놓인다. 한마디로 책이지만 텍스트보다 이미지가 중심인 셈이다. 대체로 올 컬러 이미지를 두툼하게 채운 도록 형태라 권당 10만 원이 넘는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 책은 아트북, 컬처북 등으로도 불리며, 예술·건축 서적은 물론 샤넬·루이비통·고야드·까르띠에 등 명품 패션 브랜드북으로서도 오랜 시간 사랑받아 왔다. 2010년대부터는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애플, 몽블랑 등 다양한 브랜드가 브랜드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커피 테이블 북을 제작하고 있다.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스쳐 지나가기 마련인 제품을 책이라는 가장 고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물성에 넣어 알리려는 모습은 이들 브랜드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 하는 바람처럼 읽힌다. 그렇기에 하이 퀄리티의 사진과 두툼한 두께, 양질의 종이를 사용한 커피 테이블 북의 가격은 결코 저렴할 수 없다. 만만치 않은 무게와 크기로 커피 테이블 위에 무심한 듯 툭 놓인 이 책은 주인의 취향과 관심사를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진에 의존하는 이 형식이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빠르게 소비되는 숏폼과 다르게 영구적으로 남는 오래 가는 이미지. 고급스러움이 중요한 브랜드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망을 충족해 브랜드 이미지의 한 조각을 커피 테이블 북으로 소유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아로마틱한 독서, 이솝
독특한 갈색 약병 용기로 자연주의 화장품 이미지를 그려내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이솝(Aesop) 또한 지난 2019년 『이솝: 더 북』이란 제목의 커피 테이블 북을 발간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건강하고 정적이며 숲속에 있는 듯한 이솝의 이미지에 문학의 이미지를 얹어 낸 것이다. 화장품 브랜드로는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이솝이라는 브랜드명 자체가 이솝 우화에서 따왔기에 이야기, 스토리, 문학과의 이어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만든 『이솝: 더 북』에는 아로마와 스킨케어 아이템으로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이솝 고유의 향과 느낌이 가득 담겼다.
더 나아가 이솝은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에 영감을 받아 여성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계속 알리고 여성의 힘과 연대를 고취하겠다는 의미로, 2022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이솝 우먼스 라이브러리” 팝업을 시작했다. 싱가포르 내 2개의 시그니처 매장으로 시작된 이 행사는 2023년 5월에는 한국, 2023년 및 2024년 6월에는 말레이시아의 매장으로 꾸준히 이어지며 문학과 여성 커뮤니티를 알렸다. 특기할 만한 점은 LGBTQ를 주요 가치로 삼는 뉴욕에서는 여성에 국한하지 않고 퀴어 라이브러리를 진행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2023년 5월 23일부터 6월 4일까지 진행된 국내 행사에서는 이솝 한남점에서 “글로 쓰는 예술과 문화”라는 주제로 팝업을 열었다. 또한 6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는 이솝 가로수길 매장에서 “글로 쓰는 삶: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주제로 <이솝 우먼스 라이브러리>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행사 기간 각 매장은 여성 작가의 작품 7종을 큐레이션해 전시했고, 행사장을 찾은 이들에게 선착순으로 책을 선물해 평일에도 긴 줄을 세우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방문객은 이솝의 향기를 품은 린넨 파우치에 담긴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는데, 편안한 집으로 돌아가 책을 펼치는 순간 책과 함께 이솝의 향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효과적인 마케팅이었다고 평가받았다. 또한 브랜드에 향기를 입히듯 선별된 큐레이션 도서들이 자연스럽게 이솝의 이미지로 이어지기도 했다. 여성 창작자의 작품과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이솝만의 브랜드 가치를 소비자에게 은은하게 발산한 셈이다.
럭셔리 브랜딩과 아트 콜라보레이션은 이제 제법 흔해졌다. 전통의 가치를 중시해 온 하이엔드 브랜드가 현대 예술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젊은 층을 새로운 소비자로 끌어당기는 전략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루이비통은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쿠사마 야오이(Kusama Yayoi), 제프 쿤스(Jeff Koons) 등의 예술가와 꾸준히 협업해 왔고, 프라다는 2008년을 시작으로 더블 클럽(Double Club)이라는 예술, 영화, 사운드, 디자인 전반에 걸친 이벤트를 개최해 왔다.
흥미롭게도 많은 예술 장르 중에서도 요즘의 패션 업계를 사로잡는 것 역시 문학이다.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는 SNS 개인 계정에 자신이 책을 읽는 모습을 주기적으로 업로드하며, 뉴욕에서 Bookmarc라는 서점도 운영 중이다. 안나수이(Anna Sui)는 2024 F/W 쇼의 영감을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추리 소설 속 인물인 미스 마플(Miss Marple)과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로 부터 받았다고 밝히며, 이번 쇼를 뉴욕의 유명 중고 서점인 The Strand Book Store에서 진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톰 브라운(Thom Browne) 역시 애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런웨이에 올렸다. 이렇듯 최근 패션계 이곳저곳에는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문학적 감성이 넘쳐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런웨이까지, 그동안 참고 자료로 숨어만 있던 문학과 책의 영향력을 숨기지 않는 브랜드들은 새로운 프로모션 이벤트에도 문학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미우미우가 쓰는 여름의 글
프라다 그룹의 자회사 미우미우(Miu Miu)는 지난 6월 7일과 8일 밀라노, 파리, 런던, 뉴욕, 서울, 상하이, 홍콩, 6월 8일과 9일 도쿄,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썸머 리즈(Summer Reads)>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여성 창작자로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조명하여 문자로 표현된 딸, 연인, 아내, 엄마로서의 삶을 성찰했다. 현대적 사고와 문화를 위한 미우미우 노력의 연장선을 보여준 셈이다.
<썸머 리즈>의 국내 행사장이었던 서울 성수동 로와이드 커피 베이커리에서는 6월 7일과 8일 이틀간 미우미우가 직접 엄선한 세 권의 작품(알바 데 세스페데스(Alba De Céspedes)의 『금지된 노트북』, 시빌라 알레라모(Sibilla Aleramo)의 『여성』,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설득』) 중 한 권의 원서를 아이스크림과 함께 선착순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선 2024년 4월 17~18일, 미우미우는 밀라노 패션위크 기간에 미우미우 문학클럽 <쓰는 삶(Writing Life)> 행사도 개최했다. <썸머 리즈> 큐레이션 도서의 저자인 이탈리아 작가 시빌라 알레라모와 알바 드 세스페데스를 주제로 대화와 공연이 가득한 이틀간의 팝업 문학 살롱을 연 것이다. <썸머 리즈>가 1020 여성들에게 책과 함께 나누어 준 막대 아이스크림처럼 발랄하고 팝한 여름 방학과 같은 이미지였다면, 문학클럽은 행사명 그대로 유럽 대저택에서 열리는 예술인들의 비밀스런 살롱과 같은 이미지로 치러졌다. 살롱의 패널로 초대받은 이들은 2000년 퓰리처상 수상자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이탈리아 작가이자 스트레가상 최종 후보인 클라우디아 두라스탄티(Claudia Durastanti), 영화감독 겸 작가 셰일라 헤티(Sheila Heti), 이탈리아 작가 비올라 디 그라도(Viola Di Grado), 작가 셀비 윈 슈워츠(Selby Wynn Schwartz), 중국 태생의 영국 소설가이자 회고록 작가 및 영화감독인 샤오루 궈(Xiaolu Guo)이다. 행사는 이들의 대담과 함께 주제 작가(시빌라 알레라모, 알바 드 세스페데스)들의 작품 일부 낭독 및 공연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쯤 되면 문학 브랜드, 발렌티노
발렌티노(Valentino)는 소설가 한강의 수상 덕에 한국에 널리 알려진 영국의 저명한 문학상 “부커상”의 2024년 주요 후원사로 이름을 올려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발렌티노는 이미 한야 야나기하라(Hanya Yanagihara), 가와카미 미에코(Mieko Kawakami), 엘리프 샤파크(Elif Shafak), 레일라 모틀리(Leila Mottley) 등 부커상 후보에 오른 다양한 세계의 작가들과 협업한 바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24 S/S 남성복 패션 위크에서는 쇼의 주제를 “내러티브(The Narratives)”로 정하고 한야 야나기하라가 쓴 소설 『리틀 라이프(A Little Life)』의 한 구절을 프린팅한 재킷, 데님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문학에 조예가 깊은 발렌티노는 2018년부터 꾸준히 문학가, 독립 서점, 북클럽 등과 협업하고 있다. “발렌티노 내러티브 캠페인”을 통해 주제에 어울리는 전 세계 작가들의 소설 또는 시 속의 한 문장을 텍스트와 컬러로만 이루어진 아름다운 카드로 만들어 글 한 자락을 소장하고 공유할 수 있게 했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소설가 정세랑의 『덧니가 보고 싶어』의 한 구절이 사용된 바 있다. 최근에는 세계(미국, 이탈리아, 튀르키예, 프랑스, 영국, 일본, 스페인, 아랍에미리트, 한국)의 독립 서점 열 군데를 선정하여 인터뷰한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참여 서점에서 브랜드 가방을 전시하는 독특한 마케팅을 진행한 적도 있다. 서울에서는 방송인 김소영 씨가 운영하는 당인리책발전소가 참여하였다.
책으로 떠나는 세계 일주, 루이비통
팝업 스토어가 무료 도서 배포처가 아닌 실제 서점으로서 기능하며 도서를 판매한 경우도 있다. 『시티 가이드』, 『트래블 북』, 『패션 아이』 등 여행과 예술에 관한 총 100여 개의 출간물을 꾸준히 자체적으로 출간해 온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2021년 생 제르맹 데 프레 매장에서 서적과 문구류를 함께 판매하는 팝업 서점을 열었다. 루이비통이 1998년부터 지금까지 발간하고 있는 『시티 가이드』는 전 세계 주요 도시의 패션, 디자인, 문화를 감각적으로 담아낸 여행 가이드북이다. 전 세계 30개 이상의 도시별 가이드북이 책자와 디지털 형식으로 발간되었다.
루이비통은 이후로도 2022년 카프리와 이탈리아, 2023년에는 베이징, 상하이, 청두에서 팝업 서점 행사를 진행했으며, 2023년에는 『시티 가이드』 두바이 편을 기념해 키오스크 프로모션을 펼쳤다. 여행 가방으로 유명해진 루이비통과 잘 어울리는 컨셉의 팝업 스토어였다. 루이비통의 서점 팝업스토어는 대형 매장보다는 각국의 로컬 가게들과 협업하는 방식을 꾸준히 고수한다. 각 팝업 스토어의 디자인에도 지역화를 꾀하되, 루이비통 트래블북 특유의 현대적이고 생생한 색감을 그대로 드러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루이비통 재단은 파리에 있는 재단 건물에서 서점을 상시 운영한다. 이 서점은 재단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으며 현대 미술, 건축, 응용 미술, 청소년이라는 4가지 테마로 분류된 도서들을 판매한다. 전시 카탈로그, 단행본 연구서, 한정판 도서, 아동 도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책, 연 2회 재단에서 발표된 작품을 소개하고 문화 프로그램 내용을 담은 잡지 등을 판매하며 온라인 서점도 함께 운영 중이다.
이토록 우아한 독서, 샤넬
2021년부터 샤넬(Chanel) 앰버서더이자 대변인으로 활동 중인 샬롯 카시라기(Charlotte Casiraghi)는 “Les Rendez-vous littéraires rue Cambon(깜봉가에서의 문학적 만남)”을 통해 그 시작을 알렸다. 샤넬의 설립자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이 자신의 살롱에 예술가들을 초대했던 것을 오마주한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분야의 여성 작가, 배우 등을 초대해 원탁에 둘러앉아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문학 살롱 행사이다. 참여자들이 모여 문학에 대한 애정과 삶과 문학과의 연결 지점을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는 흔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 “문학적 만남(Les Rendez-vous littéraires)” 시리즈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이 프라이빗한 문학 살롱은 유튜브 채널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공개되기도 했다.
“문학적 만남” 시리즈가 여성의 삶에 밀착된 작가와 작품을 주요 대담으로 삼는다면, “도서관에서(In the library)” 시리즈는 샤넬의 뮤즈들을 불러와 그들의 삶에서 중요했던 책과의 만남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샤넬의 의상을 착용한 이들은 평소 앰버서더로 활동하지만, 영상 내내 브랜드의 이야기 대신 자기 삶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애정하는 작품에 대해 말한다. 브랜드 홍보는 온데간데없고 삶과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책 이야기만으로 20여 분의 긴 시간을 채우는 이 영상을 통해 샤넬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두 시리즈에는 책으로 빼곡한 책장이 삼면을 가득 채운 높은 층고의 저택이 등장한다. 이곳은 바로 고인이 된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개인 도서관이다. 독서광으로 유명한 그는 샬롯 카시라기에게 다양한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샤넬의 설립자 가브리엘 샤넬부터 샤넬을 다시 일으킨 칼 라거펠트까지, 샤넬의 주요 디자이너들은 책을 깊이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덕에 샤넬은 단순한 패션으로의 옷이 아닌 역사, 문화, 음악, 문학을 아우르는 문화 아이콘으로서의 패션을 자연스럽게 내세우게 되었다. 샤넬은 여전히 문학에 대한 사랑과 후원 역사를 작금의 시대로 이어가고자 노력 중이다. 샤넬이 자체 제작하는 예술 문화 팟캐스트 “샤넬 커넥츠(CHANEL Connects)”도 그 일환이다. 영화, 예술, 춤,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독창적∙혁신적인 인물들과 함께 참신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샤넬 커넥츠”는 2022년 가수 지드래곤이 출연해 국내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이에는 이 북토트에는 북, 디올
이외에도 북토트백을 홍보 중인 디올(Di0r)은 북토트 클럽(#DiorBookTote) 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중이다.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 로저먼드 파이크(Rosamund Pike), 베아트리체 보로메오(Beatrice Borromeo) 등의 여배우들이 디올의 북토트백을 메고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식이다. 북토트백은 오랫동안 존재했던 모델이지만, 최근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책을 홍보의 소재로 삼는 것에 영감을 받아 이와 같은 인터뷰 영상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커피 테이블 북으로 돌아와 보자. 럭셔리 브랜드가 문학 행사 영상과 이벤트 장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한결같다. 바로 벽난로와 나뭇결이 살아있는 묵직한 책장,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운 가죽 장정의 양장본, 커피 테이블 북이 놓여 있을 법한 럭셔리 가구로 채워진 공간이다. 빈티지 가구에 앉아 고전을 이야기하고 힙한 로컬 책방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하지만, 이들은 결코 편의점에서 맥주를 들이켜거나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손에 잡는 셀러브리티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부를 과시하는 이미지이자 상징으로서의 책 소비이다. 자연스레 패션을 교양과 연결하는 교묘하고 영리한 전략이자, 계급을 나타내던 상징으로서의 교양의 쓰임을 떠올리게 만든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The story of fashion’s love of literature(패션의 문학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아티클을 쓴 사이먼 칠버(Simon Chilvers) 에디터와 파이낸셜 타임즈 팟캐스트 진행자 루루 스미스(Lulu Smyth)와의 흥미로운 논쟁을 살펴보자. 루루 스미스는 패션계가 문학을 끌어오는 방식이 새로운 엘리트 계층을 확립하려는 시도, 부유층만 책을 읽던 시대와 같은 지적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 1,000파운드 재킷에 문학적 인용문을 붙이는 것이라고 그들의 의도를 해석하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인다. 반면 패션계의 소식을 꾸준히 알려 온 사이먼 칠버는 그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곧 하이엔드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쇼를 준비하면서 얻은 수많은 문학적 예술적 영감의 근원을 드러내는 방식이자 풍성한 콘텐츠의 제작자로서 이들의 또 다른 시도라고 바라본다.
요즘들어 더 자주 눈에 띄는 패션계의 문학 사랑은 과연 옛 부유층의 전용이었던 교양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시대의 역행일까? 아니면 아티스트를 통해 패션의 영역을 보다 더 넓은 문화의 영역으로 넓히려는 의도 중 하나일까? 혹 그것도 아니라면 옛 메디치 가문처럼 가난한 문화 시장에서 든든한 후원자로 나서고 싶은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언제나 불황을 이야기하는 세계 출판인들은 문학에 대한 이들의 관심을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 분명하다.
젊은 세대들은 럭셔리 브랜드가 요즘 부상하는 텍스트힙에 화려한 이벤트들로 더 반짝이는 후광을 비추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독서가 대중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지고 알려지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루루 스미스의 지적처럼 책을 읽는 이의 이미지가 그러한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들만 가능한, 그리하여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하는 이와의 비교우위를 취하기 위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그것은 결코 닿지 못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오랜 문학의 본령에서 가장 멀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