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미국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품고 있는 도시 

필라델피아 올드 시티 (OLD CITY)

오래된 것을 지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를 보존한다는 건 그저 가만히 두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방치가 아니라 관리를 필요로 하고, 지키려는 것의 고유한 가치가 변색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월을 덧입으며 시간 속에서 사그라지지 않도록, ‘오늘’ 여기에서 ‘어제’의 역사가 차지하는 위치와 교훈을 상실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필라델피아 올드 시티(Old City)는 도시가 오래된 것들을 어떻게 품고, 확장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된다. 과거,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도시 이곳저곳을 누볐던 역동적인 움직임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도시의 살아 있는 오늘이 아름다운 내일이 될 수 있도록, 올드 시티는 오늘도 많은 이들의 눈과 마음을 이곳으로 모으기 위해 열심을 내고 있다.

 Old City District, 

올드 시티의 ‘오늘’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independent by design”

 

올드 시티 디스트릭트(Old City District – 이하 OCD)는 1998년 필라델피아 시의회의 조례에 의해 설립된 히스토리컬 필라델피아(Historical Philadelphia)의 일부이다. 델라웨어 강(Delaware River)에서 7번가(7th Street)까지, 바인 스트릿(Vine Street)에서 롬버드 스트릿(Lombard Street)까지 이어지는 이 지역은 세계 유산 도시기구(OWHC)가 지정한 미국 최초의 세계 문화 유산도시이자, 국가의 발상지이다.

 

OCD는 문화유산 도시답게 경계 안에 있는 다양한 역사적 유산을 지키고 알리는 일에 열심을 낸다. 그러나 OCD의 역할은 단순히 유적지를 보존하고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미션은 역사적 공간들을 유지하고 보수할 뿐 아니라, 경제 개발 및 홍보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필라델피아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만나고, 쇼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목표 아래, 현재 19명의 멤버로 구성된 이사회는 도시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도시 발전의 주축이 되는 공공-민간 파트너십은 시 정부와 현대적 사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올드 시티를 유지하고 개선한다. 특별한 점은 OCD의 사업이 시 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민간 기관들이 보조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시 정부와 민간 사업체 및 예술가들이 고유의 것을 지키며 어우러지는 형태의 발전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사실 올드 시티가 가진 역사적 자산을 지키는 데만 초점을 맞추어도 OCD는 충분히 풍부한 관광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OCD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문화예술 및 상업을 위한 공간을 내어 줌으로 어제를 품은 도시에 오늘의 활력을 더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통해 올드 시티만의 독특하고도 오묘한 매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 시작이 된 도시, 필라델피아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필라델피아 올드 시티에는 미국에서 가장 크고 방대한 역사 유적이 모여 있는 인디펜던스 내셔널 히스토리컬 파크(Independence National Historical Park)가 있다. 매년 360만 명 정도가 방문한다고 추산되는 이곳은 그야말로 국제적인 관광지이다.

 

초기 필라델피아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문화와 모습을 가진 이민자들이 모인 이곳에서 새로운 나라가 탄생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미국 독립선언문과 미국 헌법은 모두 올드 시티에 위치한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에서 논의되고 서명되었다.

인디펜던스홀 (Independence Hall)

그렇기에 미국의 시작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올드 시티를 들러야 한다. 미국의 초기 지도자들의 행적뿐 아니라 어느덧 자유의 상징이 되어버린 리버티 벨(Liberty Bell), 벤자민 프랭클린 박물관 등 걸출한 유적지가 군집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규모는 작으나 매우 큰 의미와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장소들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미국 국기를 만들었던 베스티 로스 하우스(Besty Ross House), 1700~1800년대 거리 풍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엘프레스 앨리 (Elfreth’s alley) 골목, 벤자민 프랭클린을 비롯한 미국의 초기 지도자들의 무덤이 있는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 Burial Ground), 화폐 경제 도입으로 자유와 평등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미국의 첫 번째 은행 등. 미국의 ‘어제’를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장소가 처음의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도시 안에서 이토록 많은 문화유산을 확인할 수 있다니. 이것만으로도 올드 시티를 방문할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Old City District(OCD), 일 년 내내 볼거리로 가득하다 

 

올드 시티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다. 매년 시민과 방문객을 위한 아트페스티벌(Old City Fest), 영화제, 파머스마켓이 열리고, 1991년부터 필라델피아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소개하고 지역개선을 위해 시작한 ‘First Friday’와 여름이면 목요일 밤마다 올드 시티의 30개가 넘는 식당과 선술집에서 특별할인을 제공하는 ‘Old City Eats’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홀리데이 시즌이 되면 시즌 중 목요일 밤마다 미국에서 가장 역사적인 거리인 올드 시티 지구에서 ‘Historical Holiday Night Old City’가 열린다. 이때는 소개한 베스티 로스 하우스를 포함한 문화유산 공간과 갤러리, 박물관을 연장 개방하고, 부티크 배당, 살롱, 레스토랑, 카페에서는 기간 한정 메뉴를 출시하거나 스페셜 이벤트를 하고, 지역민 모두 참여하여 할리데이 기간을 즐긴다.

OCD가 자랑하는 ‘첫 번째 금요일(First Fridays)’

 

뿐만 아니라 올드 시티에는 미국 문화예술의 ‘오늘’과 ‘내일’을 확인할 수 있는 힙한 예술 지구가 있다. 40여 개가 넘는 아트 갤러리와 홈 데코 쇼룸 등은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특별히 OCD는 1991년부터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첫 번째 금요일(First Friday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올드 시티 내 다양한 갤러리들은 새로운 작품을 전시하고, 찾아 온 방문객들에게 와인을 제공하는 등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상점들 역시 늦은 저녁 시간까지 오픈하여, ‘첫 번째 금요일’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편의를 제공한다. 2013년에는 아트 플레이스 파운데이션(Art Place Foundation)이 선정한 미국 내 최고의 ArtPlace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이미 그 명성이 자자하다.

 

올드 시티를 채운 다양한 상업 공간을 구경하는 것도 굉장히 큰 볼거리다. 벽화로 유명한 도시인 만큼 재미난 건물 페인팅을 마주할 수 있고, 빈티지한 중고매장에서부터 디자이너 패션 부티크-쿠튀르 상점까지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볼 수 있다.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올드 시티 커피(Old City Coffee)나 한번 맛보면 쉽게 잊을 수 없다는 타르트즈 베이커리(Tartes) 등은 도시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올드 시티만의 고유한 매력을 선사한다.

자유와 평등이 기반이 된, 아름다운 나라를 기대하며

 

앞서 말했듯,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일은 힘들다. 꽤 힘들다. 공간의 실용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새것보다 기존의 것을 거기 두는 게 더 가치 있다는 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것을 바로 맞추기 위해 보수하며 지키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을 쏟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올드 시티가 낡은 모습으로 방치되지 않게 하려는 OCD의 노력은 이민자들이 모여 시작된 미국이란 나라가 그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다른 국가들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유와 평등을 모토로 시작된 국가의 고귀한 가치가 다음 세대의 기억 속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붙드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오늘날처럼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보고, 듣고, 사는 이 모든 행위는 과거 많은 이들의 치열한 논의와 투쟁이 기반이 된 자유와 평등이 주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디 ‘오늘’ 도시를 찾는 젊은이들이 ‘어제’의 숭고한 시작을 기억하며, 보다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미국의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