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인도네시아, 잠재력을 지닌 이커머스의 불모지

 

2017년 8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11번가의 이커머스 플랫폼 ‘일레브니아’가 철수했다. 2014년 야심차게 이 군도 국가에 도전장을 낸지 꼭 3년만의 일이다. 한때 ‘토코피디아’와 ‘라자다’에 이어 인도네시아 이커머스 매출 3위에 랭크되긴 하였지만, 수익을 좀처럼 내지 못한 채 적자만 남기고 사업을 현지 대기업 ‘Salim 그룹’에 매각하고 말았다.

흔히,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는 이커머스의 신대륙처럼 여겨지고 있다. 많은 인구 수와 생활 수준에 비해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 때문이다. 실제로 동남아시아의 이커머스 시장은 매 년 두 자리 수 성장을 거듭하며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여전히 이커머스가 전체 리테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인도네시아에서만 1% 정도에 그친다. 이미 이 비율이 20%에 육박하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갈 길이 멀기도,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은 시장이다.

오프라인 쇼핑이 곧 문화생활인 시장

 

4년 전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기점으로 니치마켓을 파고든 한 이커머스 쇼핑몰이 오픈했다. 일상에서 구매하는 식자재와 생활용품을 전문취급하는 B2C 쇼핑몰로, 아직 이커머스 사이트가 없는 마트들과 연계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사실 교통 상황이 열악한 자카르타에서 식료품을 사러 밖으로 나가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자는 이 시장이 어느 정도 비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고객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생활필수품을 구매하는 번거로움’ 그 이면에는 ‘쇼핑’이라는 고객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부들은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할 줄 몰랐고, 여염집의 주부들은 쇼핑을 하러 나가는 것이 곧 엔터테인먼트였던 것이었다. 결국 쇼핑몰은 얼마 운영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동남아 지역 쇼핑센터를 처음 가보면 다들 그 규모에 놀란다. IFC몰이나 롯데월드몰 못지 않은 크기와 1층 중앙의 광장을 방불케 하는 커다란 아트리움 때문이다. 몰의 포지셔닝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럭셔리명품부터 대중 타겟 점포까지 다양한 구색의 브랜드를 갖추고 있으며, 백화점과 대형 마트까지 입점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진국처럼 도시 내에 다양한 위락 시설이 없기때문에 동남아시아의 많은 고객들은 주말이나 여가 시간에 몰에 찾아와 시간을 보낸다.

자카르타에 위치한 ‘따만 앙그렉’ 몰

몰 중앙 아트리움에서는 박람회나 메이크업 쇼와 같은 행사는 물론 가수들이 출연하는 대형 공연을 개최한다. 또한, 영화관, 식당가, 오락실 등의 원스탑 엔터테인먼트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구, 가족들과 삼삼오오 모여 오랜 시간을 쇼핑몰에서 보내다 돌아온다. 따라서, 이커머스가 오프라인 쇼핑을 대체할 차세대 리테일이라고 하더라도, 오프라인 쇼핑을 대체할만한 충분한 고객 경험이 쌓이기 전까지 대세로 떠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앞서 예를 든 식료품 전문 이커머스 쇼핑몰의 실패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열악한 온라인 인프라 때문에 오프라인 쇼핑이 선진국에 비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동남아 국가 소비자들에게 쇼핑이 주는 다른 편익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큰 실수였다.

1. 신용 거래가 익숙치 않은 시장

 

이제 중국은 이커머스의 선진국이다. 많은 수의 중국인들이 ‘알리페이’로 상품은 물론 서비스까지 구매한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다른 여타 선진국들에 뒤지지 않는다. 중국은 엄청난 인구 대국이자 경제 대국이며, 이커머스와 모바일커머스의 현재이자, 미래다. 많은 이커머스 플레이어들은 중국을 넘어 넥스트 시장으로 동남아시아를 주목한다. 많은 인구가 모여 있지만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아직까지 비교적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이용자 비율이 높고, 이 수치는 점점 높아져가고 있지만, 이커머스가 뚫어야 할 난관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낮은 신용카드 보급률이다. 이커머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즉, 에스크로와 PG(Payment Gate)가 필수적이다. 이는 서로 멀리 떨어진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결제와 상품 인수가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결제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줄여 이커머스가 오프라인 리테일 구매에 비해 ‘편리하다’는 느낌을 주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낮은 신용카드 보급률은 이러한 결제 시스템을 원활하게 작용할 수 없게 만들어 이커머스의 빠른 확산을 저지하고 있다.

신용 거래보다 대인 교환거래 

 

COD(Cash on delivery), 즉 배송원이 집으로 찾아가면 구매자가 현금으로 결제하는 방식이 아직까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을 때 쓰는 방식이 아직 이 지역 이커머스에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방식의 결제는 이커머스가 쉽고, 빠르고, 편리하다는 인상을 소비자에게 주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식의 온라인 거래는 이 지역에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가장 성과가 좋은 인도네시아 이커머스 플레이어로 온라인 중고 사이트인 ‘OLX’가 꼽혔는데. 물론 대형 마켓플레이스와 이커머스 플레이어들의 노력으로 2018년 현재 순위는 바뀌었을 수도 있으나, 여전히 이 시장에서 개인간 중고거래가 이커머스의 큰 축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중요한 데이터이다.

 

‘OLX’뿐 아니라 ‘Kaskus’와 같은 상품 후기 사이트에서 이루어지는 대인 거래 역시 활발한 편이다. 이러한 사이트에서 소비자들은 필요한 물건들을 서로 사고 팔며 자체적인 이커머스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구매자는 지근거리에 살고 있는 판매자의 물건과 위치를 확인하여 서로 만나 물물교환을 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데, 이는 COD와 본질적으로 같다. 즉, 신용거래가 익숙하지 않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똑같이 COD 방식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거래를 진행하는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의 거래가 큰 메리트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2. 열악한 물류 인프라

 

또한 열악한 물류 인프라 역시 이커머스의 확산에 장애가 되고 있다. 개인 거래의 경우 거래 의사를 확인한 당일이라도 서로 만나 상품을 교환할 수 있지만, 교통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은 인도네시아나 여타 동남아시아의 경우 멀리 떨어진 도시의 구매자까지 배송하는데 1주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육로 교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물론, 지역 거점의 물류센터와 잘 훈련된 점 조직과 같은 배송망이 없는 것도 문제다.

사실,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딜레마와 같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여전히 인도네시아의 이커머스의 규모는 전체 리테일 커머스의 1%도 되지 않으며, 그나마 70% 이상의 수요가 수도 자카르타가 위치한 자바 섬 한 군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이커머스 플레이어라도 아직 성숙하지 않은 이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인도네시아의 이커머스는 점진적인 수요 확장에 맞추어 조금씩 투자도 확대되는 양상을 띠고 있지만, 위와 같은 점이 안에 기포를 가득 품고도 서서히 뚜껑을 열어 분출하지 못하는 콜라 캔처럼 폭발력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3. 기다리지 못한 자

 

다시돌아와서 앞선 ‘일레브니아’의 실패 요인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인도네시아라는 잠재력 있는 시장에 들어와 성급하게 과실을 따려고 했던 데에 있다. 앞서 밝혔지만, ‘일레브니아’의 매출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런칭 초기에 기대했던 것만큼 시장은 폭발력이 없었고, 생각보다 많은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진출 단계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일레브니아’ 뿐 아니라 ‘Yes24’, ‘GS홈쇼핑’과 같은 여타 이커머스 기업들이 진출하였지만 철수하거나 고전하게 된 배경에는 변변한 투자 없이 진득하게 기다려주지 못하는 한국 본사들의 냄비근성 역시 한 몫 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존의 시장을 대하는 자세에서 배우다

 

1990년대 중반, 아마존은 인터넷 서점을 표방하며 시장에 등장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마존은 ‘롱테일 법칙’을 앞세워 오프라인 매장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 서적까지 취급하는 ‘매장 하나 없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서점’일 뿐이었다. 아마존은 모바일 혁명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모바일 커머스가 대중화 되기 시작하면서 그간 투자해온 AI, 빅데이터, 물류 서비스와 같은 기능들이 아마존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제공해 주었다.

 

2018년 현재, 아마존은 모든 리테일을 아우르는 시장의 최강자가 되었다. 한반도의 수십 배에 달하는 미국 땅에서 이틀 안에 배송할 수 있는 ‘프라임 배송’ 서비스는 오프라인 쇼핑 경험과의 격차를 줄여주었고, Alexa와 같은 음성인식 기술은 새로운 고객 경험을 창출하였다. 또한 Whole Foods와 같은 오프라인 거점들을 인수하면서 O2O라는 리테일 장르를 개척하여 오프라인 리테일과의 정면 승부를 꾀하고 있다.

아마존의 잠재력은 아직 폭발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마존은 창립 이래 이익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2016년, 아마존의 순이익은 24억 달러로, 1360억원에 달하는 매출에 비하면 채 2%도 되지 않는 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 순이익 규모는 아마존 창립 이래 거의 변화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미래를 위해 사내유보금을 두지 않고 계속 새로운 기술과 설비에 투자하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현재 아마존 기업가치의 90% 이상은 그간 공들인 투자에 의해 2020년 이후 아마존이 펼칠 잠재력에서 나온다고까지 말하곤 한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려는 이커머스 플레이어들에게 아마존의 이러한 전략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실제, 동남아시아의 현재는 이커머스가 태동하던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미국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커머스를 ‘시간과 노력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오래 걸리고 재미는 없는’ 쇼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이 걷히고 국가 차원에서의 인프라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잠재력을 끌어내는 플레이어가 시장을 선도할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이 시장 역시 이커머스가 중요한 리테일의 축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그 시기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알리바바’는 싱가포르 베이스의 이커머스 기업 ‘라자다’에 투자하였고, ‘소프트뱅크’ 역시 ‘토코피디아’에 대규모 자본을 투하하였다.

 

얼마전 기사로 일본 업체들은 직접 동남아시아의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길을 닦고 교차로 신호체계를 개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도요타가 현지 일본 법인과 기부형식으로 시작한 공사인데. 심각한 교통체증이 해소되야 차량판매도 올라가고, 현지 진출한 일본업체 물류도 트이기 때문에 시작했다고 한다. 도요타는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다른 일본 업체와 벌써 다음 공사도 계획하고 있으며, 스미토모전기는 방콕 교통을 담당하는 부서에 신호 중앙제어시스템도 제안한다고 한다.

 

단기적인 시각으로 뛰어든 플레이어들은 시장이 생각보다 완성되지 않았다며 지레 뛰쳐나가지만, 선견지명이 있는 기업들은 당장의 적자를 감수하고도 이 시장의 잠재성을 믿으며 현명하게 기다릴 줄 안다. 동남아시아에서 황금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직한 기다림과 그 때를 대비한 철저한 준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