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고 신기술이 쏟아져 나온다. 챗GPT, 비전프로(애플 AR헤드셋), 자율주행차 등. 인간처럼 사고하고 학습하는 AI 기술은 우리의 미래를 순식간에 바꿀 수 있는 가공할 만한 힘을 지닌 것만 같다. 새로움 앞에서 당연히 불안감도 엄습한다. 창작자들은 생성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두렵다. 최근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이 단적인 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 시대가 도래하며 콘텐츠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작가들의 주당 평균 급여는 오히려 삭감됐다. 작가들은 글로벌 OTT가 긱 이코노미 시스템(Gig Economy, 임시 계약직 위주의 인력 시스템)을 만들어 냈고 작가들의 처우를 악화했다며 파업 이유를 밝혔다.
파업의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는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의 AI 활용 제한 여부다. 제작사 측에서 AI를 활용해 시나리오 초고를 쓰면 (인간)작가가 이를 수정하는 작업 방식을 도입하고자 했고, 이에 대한 작가들의 반발심이 파업을 점화했다는 설이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수십 년 동안 기계가 세상을 장악하는 공상과학 작품 대본을 집필해 온 할리우드 작가들이 이제는 로봇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못하도록 싸우고 있다고 전했으며, 특히 이번 파업에서 창작 과정 속 AI 역할 논쟁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AI 열풍으로 빅테크 기업의 주가는 연일 상향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엔비디아는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했으며, 연초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휘청대던 테슬라도 AI 기술이 접목된 자율주행차에 대한 기대감으로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애플도 애플워치 이후 9년여 만에 신제품 비전프로를 내놓으며 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AI 광풍으로 인한 주식 시장의 과열은 과거 닷컴버블(Dot-com bubble)을 연상시킬 정도다.
닷컴버블은 국내에서 인터넷 버블로도 불리는데, 1995년 인터넷이 새로운 기술이자 씬체인저로 대두되며 관련 기업들이 급속한 주가 상승을 맛보다 2001년 급속한 붕괴를 맞은 거품 경제 현상을 지칭한다. 이때 나스닥은 70% 이상 폭락하는 등 역사상 가장 큰 폭락장이 벌어졌다. 어찌 되었든 주식 시장과 별개로 신기술은 테크 기업에게 기회이자 새로운 먹거리다. 그렇지만 기술이 상용화되고 표준화되지 않는 한 일반 소비자가 일상에서 그것을 체감하기는 어렵다.
첨단 기술을 상용화하려는 시도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크게 브랜딩과 마케팅 측면에서는 소비자의 에토스(ethos)와 파토스(pathos)를 설득하는 방법이 유용하게 쓰인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저서 『수사학(Rhetoric)』에서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logos), 파토스, 에토스를 든다. 로고스는 이성에 호소하는 것으로 논증과 실증적인 근거를 통해 설득하는 방법이다. 파토스는 그 반대항으로 청중의 감정과 정념을 파악해 여기 공감하며 감정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이다. 에토스는 설득하는 이의 인품, 공신력, 도덕성으로 설득하는 방법이다. 현대 브랜딩과 마케팅은 순수하게 기술의 탁월성, 합리적인 가격으로 무장한 로고스만으로 소비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스타 마케팅, 사회 공헌 활동, 카리스마 창업자, ESG 등 다방면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활용해 파토스와 에토스를 빌드업한다. 그 과정에서 예술과 콜라보는 소비자를 호명하는 유용한 도구이자 브랜드 그 자체를 상징하는 본질이 될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로는 애플이 있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휴학 중 리드 칼리지(Reed College)에서 우연히 들은 캘리그라피 교양 수업을 통해 글씨체의 역사성과 예술성에 매료된다. 2005년 6월 12일, 그는 모교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리드 칼리지에서 서예 수업을 들으며 나는 세리프체와 산세리프 서체, 서로 다른 문자 조합 사이의 공간 크기 변화, 타이포그래피를 훌륭하게 만드는 요소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포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으로 미묘했고, 저는 그것이 매혹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글씨체의 예술성과 역사성에 매료된 그는 10년 후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이를 적용한다. 친근하면서도 우아한 컴퓨터를 만들고자 한 잡스 때문에 매킨토시는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다. 잡스는 그 강의를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맥에 여러 서체나 비례 간격 글꼴이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창업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도 애플은 기술 외적으로도 미니멀한 디자인과 심플함을 철학 삼은 특유의 미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잡스가 영혼의 파트너라고 불렀던 애플 전 CDO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가 애플의 디자인 철학은 제품이 아닌 유저의 인식을 디자인한다고 밝혔듯, 애플은 유저의 일상에 기술이 녹아들도록 신기술을 표준화∙상용화하는 일에 탁월함을 인정받아 왔다. 즉 애플에서 예술과 디자인은 기술을 표현하는 본질로 기능한 셈이다.
이처럼 예술과 기술의 콜라보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예술은 기술 발전을 발판 삼아 점차 창작의 저변을 넓혀가고, 기술은 예술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산업 논리 내에서 시도하기 힘든 실험성을 탐험할 수 있다. 어떤 기술은 예술을 만나야만 감정적 동화를 자아낸다. 그렇기에 패션, K팝, 영화, 주택, 모빌리티 등 여러 방면에서 아트앤테크가 융복합된 브랜드 사례들은 그 방향성을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앞서 언급한 애플처럼 예술이 기술의 정체성이 된 브랜드도 있으며, 사회공헌의 일환이자 첨단 기술의 무궁무진한 활용 방향을 모색한 케이스도 있다. 또한 신기술 자체가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며 문화예술 소비 경험을 확장하는 브랜드도 있다.
현대자동차 제로원
Art-Tech-Biz로 그리는 퓨처 모빌리티
1886년 1월 겨울, 독일제국 특허번호 DRP 37435. 한 독일인은 가스로 가는 자동차란 이름으로 삼륜차를 특허 등록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42살. 그가 특허를 등록한 이 자동차는 작동이 어려워 주행할 때마다 벽을 들이박곤 했고 주위 사람들은 비웃는다. 그러나 이 발명가는 말이 끌지 않는 자동차란 원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890년대에 요즘의 자동차 형태인 사륜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고틀립 다임러(Gottlieb Daimler)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던 이들은 의기투합했고, 각자의 이름을 따 다임러-벤츠 AG를 설립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시작이다. 이들이 세운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대는 그렇게 100년이 넘도록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테슬라를 시작으로 퓨처 모빌리티 시장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이란 2가지 키워드로 정립되는 듯하다. 현대자동차는 여기 호응하듯 최근 열린 <2030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2030년, 전기차 200만 대 판매”라는 중장기 사업 전략을 발표했다. 기존 내연기관 생산 라인에서 전기차 생산이 가능한 혼류 생산 라인으로 전화하고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역량 강화는 물론, 차세대 배터리 선행기술 개발 등에 적극 나서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미래의 청사진이 전기차에 있음을 명확히 밝힌 셈이다.
내연기관의 상징과 다름없는 스포츠카 럭셔리 브랜드들도 전기차 전화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 모두 하이브리드 스포츠카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으며, 롤스로이스는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의 전기차 전환을 선언했다. 과거 업계에서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 스포츠카의 인기가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스포츠카 내연기관 특유의 엔진 떨림과 배기음을 전기차에서는 느낄 수 없으며, 전기차의 고속 출력도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후 위기에 따른 글로벌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서 업체들은 변화의 흐름에 적극 탑승하기 시작했다. 여기 AI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으로 자율자동차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퓨처 모빌리티의 비전이 뚜렷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 흐름의 선두에 서고자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zer01NE)을 설립했다. 제로원은 참여 인재풀을 기술, 비즈니스 분야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아티스트로까지 확장해 아트(Art)-테크(Tech)-비즈(Biz)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각 분야 크리에이터에게 창작 비용, 공간, 네트워킹을 지원한다. 왜 이들의 협업 범위가 아티스트로까지 확장된 걸까? 현대차는 가장 이질적인 분야와 협업을 우선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제로원이 처음 탄생했을 때는 IT 인재가 육성 중점 대상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 자문위원이 질문을 던졌다. 정규 교육 과정으로 코딩을 학습한 프로그래머가 과연 코딩을 잘할까? 그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오히려 인문학을 공부한 프로그래머가 재밌게 코딩을 잘한다는 것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의 지향점이 현대차와 협업할 기술자나 스타트업을 데려오는 데 그친다면, 앞서가는 타사와 격차는 줄더라도 산업의 근본적인 지각 변동을 일으킬 창의적인 비즈니스 솔루션을 제시하기는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는 양극단에 있을 것만 같은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택했다.
제로원은 2018년, 20여 명의 예술가를 선발했다. 이들과 협업할 8개의 스타트업을 뽑은 후, 적극적인 교류와 파트너십 형성을 위한 작업∙사무 공간을 지원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때 예술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소회했다. 사내의 기술자, 마케터, 연구원 등은 예술에는 문외한이었는데, 이들은 예술가가 자신들과 매우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특히 예술가는 일반 대중이나 상품∙서비스 개발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세상의 예민한 변화를 잘 포착했다. 문학을 문학답게 만드는 것은 일상화되어 친숙하거나 반복된 관념을 특수화하는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고 주장한 시클로스키(Shklovsky)처럼, 아티스트들은 현상 이면에 대해 사고하고 이를 발굴해 냈다.
2019년에는 크리에이터의 범주를 아트에서 테크, 비즈 분야로까지 확대해 25명을 선발했다. 교육∙세미나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매달 2번씩 모여 역량을 공유하게끔 유도했다. 2020년에는 혁신의 청사진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리고 크리에이터 간 협업을 적극 유도하기 위해 세부 연구 주제를 정했다. 인터-유니버설리티, 유동하는 모빌리티, 플로팅 스트럭쳐, 멀리 휴머니티가 그 세부 주제이다. 2021년에는 모빌리티X사용자, 새로운 배움, 미래 모빌리티, 초연결이, 2022년에는 미래 모빌리티, 초연결, 새로운 기반, 초월적 휴머니즘, 지속가능성 이렇게 다섯 가지가 정해졌다. 이는 현대차의 중장기 미래 전략과 긴밀히 연관된 것으로, 여기에는 뉴미디어 아티스트, 설치 예술가, 작곡가,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해 왔다.
제로원 프로젝트의 결실은 매해 진행되는 제로원데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제로원데이에는 각 크리에이터의 프로젝트와 비즈니스 모델을 관람할 수 있다. 2022년에는 4일간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진행되었으며, 앞서 언급된 5가지 주제를 필두로 방문객이 직접 프로젝트를 체험하고 관람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뉴미디어 크리에이터 그룹 아이브이에이에이아이유 시티(IVAAIU CITY)는 스팟 에코시스템을 통해 로봇과 공생하는 미래 공간 설계 규칙을 구축한 결과를 전시했다. 2020년 현대차가 인수한 미국 로봇 개발 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사족보행 로봇 스팟과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크리에이터 얄루(Yaloo)는 <Pickled City, Night Gate>란 작품에서 기후 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물속에 잠긴 심해도시를 상상하며 이를 가상현실(VR)로 표현했다.
또한 제로원시티 v1.0을 통해 크리에이터-스타트업-현대차가 협업한 콘셉트 차량도 체험형 전시 형태로 공개되어 자율주행차의 방향성과 사용자 경험을 제시했다. 관객은 정차된 콘셉트 차량에 탑승해 자율주행차가 대중화된 2035년 제로원시티로 이동하는 여정을 차량 내 디스플레이 신기술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함께 운영한 크리에이터 토크(Creator’s Talk)에서는 음악평론가 차우진, 뇌과학자 장동선 등이 참여해 총 나흘간 미디어 머신, 인공지능과 창작, 메타 휴먼 네이처, 바이오필릭, 서울의 공공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 등 10가지의 다양한 주제로 아트X테크X비즈니스 퓨처리즘을 탐색했다.
하이브
AI로 K팝의 판도를 뒤집다
BTS를 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하이브의 다음 핵심 전략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다. 아티스트와 스타를 주 무기로 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왜 AI를 노리는 걸까? K팝에 한정해 본다면, 그간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스타의 재능을 발굴하고 육성함으로써 탄탄한 팬층을 지닌 킬러 IP로 키워내 수익을 벌어들이는 구조였다. 그러나 하이브는 이런 전통적인 모델에만 의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방시혁 의장은 4월 26일에 공개된 미국 매체 <빌보드 매거진(Billboard Magazine)>의 인터뷰에서 인간만이 음악을 창조하는 존재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전부터 의심을 품어왔다며, 인간 아티스트만이 사람의 욕구와 취향을 충족하는 시대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이런 포부는 최근 하이브IM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L로 구체화되었다. 하이브IM은 하이브 산하 게임 개발사로 첨단 인터랙티브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음악·아티스트·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접목해 자체 게임 개발과 IP 라이선싱, 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프로젝트 L은 하이브IM이 빅히트 뮤직과 협업해 준비한 아티스트 미드낫(MINDATT) 데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정우용 하이브IM 대표는 음원과 뮤직비디오에 신기술을 접목해 아티스트의 음악적 메시지를 한계 없이 구현하고, 팬들에게는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시도라고 본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미드낫은 자정을 뜻하는 스웨덴어로 <심장이 없어>, <잘가요 내사랑>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혼성그룹 에이트(8eight)의 보컬 이현이 참여했다. 그는 긴 공백기 속 음악적 변화가 간절해 새로운 기술과의 만남에 참여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소녀시대의 <훗> 등 히트곡을 다수 보유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히치하이커(Hitchhiker)가 전체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타이틀곡 <Masquerade>의 가사와 뮤비는 화려한 과거를 그리워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해 진화하고픈 마음이 간절한 자아를 그려냈다.
<Masquerade>는 오디오와 비주얼 분야에 기존과는 다른 신기술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국어 발음 교정 기술을 적용해 세계 최초로 음원을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6개 언어로 동시 발매했다. 가수가 먼저 6개 언어로 녹음하면 AI가 자연스러운 발음으로 교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기술은 올해 초 하이브가 인수한 AI 오디오 기업 수퍼톤이 있기에 가능했다.
수퍼톤의 AI 오디오 기술은 음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조합해 목소리를 생성함으로써 극사실적인 노래와 연기 등을 실시간으로 구현한다. 가령 최근 유튜브에서 2주 만에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해 화제가 된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부른 뉴진스(NewJeans)의 <Hype Boy> 영상 같은 AI커버 곡도 이 기술의 대표적인 사례다. AI에 브루노 마스의 목소리를 학습시킨 뒤 다른 음원 등과 합성함으로써, 그가 직접 부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로 커버 곡을 만든 것이다. 이외에도 가수 이현의 목소리를 리디자이닝해 여자 목소리로 바꿔 음원 중간에 삽입하기도 했다.
비주얼 분야에선 뮤직비디오 제작 시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다. 미드낫에 내재된 여러 자아의 표상을 세 명의 인물로 등장시켜,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이질적인 가상의 공간에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뮤비는 리얼타임 솔루션 기업인 자이언트스텝과의 협업으로 확장 현실(XR) 시스템을 활용해 제작했다. 자이언트스텝 XR 전용 스튜디오인 A.I-One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이곳에서는 리얼타임 엔진으로 가상의 배경∙물체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촬영, 송출, 피드백이 가능하다. XR 기반의 버추얼 스튜디오 솔루션과 리얼타임 엔진 기술로 아티스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어, 촬영 현장과 로케이션의 물리적인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상상 그 이상의 연출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리얼타임 엔진이란 애니메이션, 디자인, 그래픽처럼 시각 자료를 실시간으로 즉시 생성하는 엔진을 의미한다. 실시간 시각화가 필요한 프로그램을 위한 프로그램이라 이해할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언리얼 엔진과 유니티가 있다. 현재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제조, 설계, 건축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는 중인데 추후 XR, 메타버스로까지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숲 로케이션을 제외하고 온전히 XR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미드낫의 뮤직비디오는 가상현실과 CG가 공간 그 자체를 만들어 내 음악의 컨셉에 더욱 부합하고 더 잘 표현해 내는 촬영 기술의 미래를 보여준다.
하이브IM 정우용 대표는 본 프로젝트 기획 의도와 의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음악과 기술의 만남으로 하이브의 본질인 음악과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더 풍성하게 전달하면서 음악 산업의 경계를 확장하고, 또 산업의 토양을 비옥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다. 동시에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티스트의 음색이 지문과 같아 숨길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기술보다 기술이 가리키는 아티스트의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게, 음악·기술 결합의 순기능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AI 기술이 아티스트 정체성의 근간을 흔들거나 K팝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보다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낙관한 셈이다.
아디다스
가심비 저격, NFT 아트 프로젝트
세계적인 스포츠 패션 기업 아디다스는 요즘 부쩍 NFT(대체불가능토큰, Non-fungible token)에 관심이 많다. NFT는 대표적인 아트앤테크 사례로,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 자산의 소유주를 증명할 수 있는 가상의 토큰이다. 디지털 파일인 그림과 영상 등에 대체 불가한 토큰을 담아 해당 파일이 고유한 원본이자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음을 증명한다. 복제품을 가품으로 만들고 명확한 진품을 표한다는 점에서 주민등록증 개념과도 유사하다.
아디다스는 순식간에 불어닥친 메타버스, NFT 트렌드를 선도하고자 2021년부터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들은 왜 아직도 현실에 안주하는가. 지금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갈 때! 란 모토 하에 2021년 12월 메타버스 속으로(In to the Metaverse)라는 이름의 NFT 컬렉션을 출시했다. 자체 NFT ITM을 발행했고, 3만 점 한정 수량으로 ITM 1개당 0.2 이더리움(ETH, 블록체인 기술 기반 스마트 계약을 위한 암호화폐), 한화 약 98만 원에 판매했다. ITM은 마켓에서 재판매되며 계속해서 금액이 변동하는데, 4개월 뒤 2022년 3월 ITM 최저가가 초기 금액의 7.7배인 1.549ETH를 기록할 정도로 가치가 급상승했다. 구매한 ITM으로 아디다스 메타버스 내에서 디지털 NFT를 사면 동등한 상품을 실물로도 받아볼 수 있다. 가령 메타버스에서 아디다스 NFT 후드티를 구매하면 같은 디자인의 후드티를 현실에서 소유할 수 있는 식이다.
NFT는 희소가치를 생명으로 하기에 아티스트와 협업을 필수로 한다. 해당 아티스트의 고유한 작품임이 전제되었을 때 해당 NFT가 원본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인정받기 때문이다. 아디다스 또한 본인들의 NFT 상품 라인업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를 진행했다. 원숭이 그림 NFT로 유명한 보어드에이프요트클럽(BAYC, Bored Ape Yacht Club), 만화를 소재로 한 펑크스코믹(Pucnkscomic), 지머니(Gmoney)와 손을 잡았다.
BAYC는 직역하면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이란 의미로 2021년 4월 블록체인 스타트업 유가랩스(Yuga Labs)가 처음으로 발행했다. 지루한 표정의 원숭이가 프로필 사진을 찍은 듯한 구도의 일러스트다. 이들이 지루해진 배경에는 가상자산 가격 급등으로 큰 부자가 돼 세상의 모든 게 권태로워져 원숭이들만의 늪지에 아지트를 만들어 숨었다는 스토리가 숨어 있다. 배경색을 포함해 모자, 눈, 의상 등 170가지 다른 특성의 맞춤형 생성 알고리즘으로 제각각의 특성을 부여하며 희소성이 높은 캐릭터일수록 더 높은 가격에 팔린다. 출시가는 0.08ETH(약 39만 원)이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사상 최고가 43만 4,000달러(한화 약 5억 6천만)를 기록하는 등 NFT 역사상 최고 인기 수집품이자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가상 자산이 되었다. 마돈나, 저스틴 비버, 에미넴 등 유명인들이 이 NFT를 구매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디다스가 NFT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희소성에 기반한 경제 원리 때문이다. 최근 MZ 세대를 중심으로 리셀링 열풍이 보여주듯 희소성 있는 제품이 지니는 경제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아디다스와 나이키를 중심으로 스니커테크(스니커+재테크)가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디다스는 희소성, 한정판이란 프리미엄을 노려 NFT 상품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BAYC와 파트너십을 맺은 아디다스는 BAYC의 #8774 작품을 구입한 뒤 해당 원숭이 캐릭터에 아디다스 제품을 접목해 자체 메타버스 캐릭터 인디고 허즈(Indigo Herz)로 리브랜딩해 출시했다. 개당 한화 약 91만 원에 내놓았는데 순식간에 팔려나가 몇 시간 만에 약 274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인디고 허즈는 오픈 당시인 작년 4월 기준의 약 2배인 170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물은 희소성에 기반한 아디다스의 마케팅이 역시 통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실물 상품이 지닌 기능성, 실용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다. 가상임에도 타인이 갖지 못한 것을 소유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희소성이 하나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의 값어치가 매겨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씁쓸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BAYC는 그 열풍이 식고 난 뒤, 최근 그 가치가 1/10 정도 폭락했는데 이에 따라 피해를 본 다수가 BAYC를 홍보한 연예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이는 예술을 심미적 혹은 예술적 가치로만 평가하기보다 희소성 및 수집품으로서만 대했기에 발생한 일종의 해프닝이기도 하다.
2023년 1월 인디고 허즈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아디다스 글로벌 웹3 활동을 위해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스튜디오의 이름은 아디다스 로고를 본뜬 /// 스튜디오(Three Stripes Studio)가 될 거라고 밝혔다. 이 스튜디오는 웹3 브랜드 전략, 파트너십, 커뮤니티 활성화 등을 담당할 예정이다. 아디다스뿐 아니라 NFT에 뛰어드는 브랜드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나이키 또한 RTFKT 디자인 스타트업을 인수해 이들이 디자인한 가상 신발을 판매 중이다. 가상 신발을 구매하면 AR 필터를 보내주는데 이것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장착하고 내 발을 찍으면 가상 신발이 신겨 있는 것처럼 찍힌다. 스타벅스는 2022년 12월 스타벅스 오딧세이(Strabucks Odyssey)란 새로운 멤버십 서비스 체험판을 출시했다. 멤버십에 가입한 이용자는 웹/앱에서 커피를 향한 여정을 설계하면 해당 여정 속 미션을 달성할 때마다 NFT 여행의 여행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 스탬프를 받은 사람에게는 에스프레소 마티니 제조 클래스 참여, 코스타리카 스타벅스 커피 농장 견학 등 여러 혜택이 주어진다.
이들이 이렇게 NFT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새로운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브랜드의 소비자이자 팬으로 끌어당기기 위함이다. MZ세대의 주 소비 트렌드는 가성비에만 국한되지 않은 가심비(가격 대비 객관적 품질을 따지는 게 가성비라면, 가심비는 주관적인 마음의 만족을 더한 개념이다)다. 소비함으로써 재미를 느끼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상품일수록 이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NFT는 놀이와 희소성이란 두 가지 속성을 지녔기에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상품을 기획할 때 빠뜨리기 힘든 요소다. 또한 브랜드-고객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이용자 간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해 고객-고객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촉진한다. 이를 통해 브랜드 팬덤을 형성하고 팬덤 내 교류를 통해 다시금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니 소위 힙해지고자 하는 브랜드들이 여전히 NFT에 주목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거,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미디어 파사드(Media Façade), 디지털 아트 전시회 등 기술을 예술 표현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기술은 단순히 예술의 실현 도구로서 기능하던 시기였다. 이와 반대로 기술 관련 업계에서 예술을 활용하는 방식은 기술의 경이로움, 컷팅에지(cutting edge)를 심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명화와 기계적으로 결합한 전형적인 데카르트 마케팅(유명 예술가 또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제품 디자인에 적용하여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마케팅 전략)에 그쳤다. 물론 이러한 융합이 직관적이고 대중적이기에 유수의 브랜드에서 이런 전략을 채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지금도 유효하다. 최근 디올 하우스의 컨셉스토어 디올 성수가 연말을 맞아 네 가지 테마의 디스플레이를 선보인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로맨틱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디올의 핵심 코드를 재해석해 디올 성수의 메탈릭한 외관을 미디어 파사드를 가득 채워 연말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며 기술과 예술은 좀 더 촘촘한 형태로 얽혀가고 있다. 어디까지가 기술이고, 어디까지가 예술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새로운 스토리를 써 가고 있다. 앞서 우리는 예술과 기술의 기계적 결합이 아닌, 융복합 그 자체가 브랜드의 주요 미래 전략이자 본질로 기능한 사례들을 살펴봤다.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의 혁신을 상상하며 다시 한번 예술과 기술, 이 둘 간의 구별이 무의미함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