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코로나-19 도래 이후 우리가 가장 많이 들은 수사이다. 코로나 이후이든, 함께인 지금이든, 존재하지 않았던 이전의 세상이든 사유의 중심축에는 모두 코로나-19가 있다. 모든 분야에서 코로나-19와 공존하거나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돌파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한다. 영어 접두사 포스트(post~)는 ~뒤, ~이후 외에도 학문의 영역에서 종종 탈(梲), 벗어나다, 혹은 총체적 변화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있다. 이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J. Toynbee)에 따르면 포스트모던은 모더니즘 이후에 나타난 사조 외에도, 19세기 말 이후 서구 근대 문명의 위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됐다. 이후 1960~70년대 예술계에서 포스트모던은 모더니즘 엘리트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팝아트라는 반작용으로서 의미화되었고, 컴퓨터와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라는 가상의 세계를 주된 무대이자 키워드로 삼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하나의 사례를 들긴 했지만, 포스트는 단순히 시간적인 이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전의 패러다임, 논리, 사회적 합의 혹은 규칙(이라 여겨지는 것이)이 해체되고 재편되어 이전과는 다른(것이라 적어도 여겨지는) 현실의 논리 창안을 의미한다. 패러다임 전환이란 용어는 여러 분야에서 자주 등장한다. 전환이란 단어가 마치 과거로부터 현실, 혹은 미래로의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듯한 심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환이 진짜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손바닥 뒤집듯, 이전과 온전히 다른 것을 지칭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새롭다고 할 수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언택트, 비대면으로의 전환이 과연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일까? 쿤(T. S. Kuhn)이 <과학 혁명의 구조>(1962)에서 패러다임(paradigm)이란 용어를 제시하며 강조했던 부분은, 과학 활동에서 새로운 개념과 이론이 객관적 관찰보다는 연구자 집단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이었다. 과학의 역사는 연구자들의 객관적 관찰에 의한 진리의 축적에 따른 점진적 진보가 아니라 혁명, 즉 단절적 파열에 의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이론이었다.
이를 코로나-19가 도래한 오늘날에 적용한다면, 직관적으로 단절적 파열은 코로나-19 확산이 촉발한 비대면 시대/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비대면/디지털로 활성화된 만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패러다임이란 특정 과학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기법 등의 총체로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보다는 여전히 어떤 현상을 인식하고 이를 해석하는 인지로 명명되는 상대적인 과정이다. 그러니 디지털이라고 해서 무조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의 사용자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체험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오랫동안 축적된 과거의 습관과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새로운 서비스를 설계하는 사람이 과거의 성공적으로 기능했던 모델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오히려 디지털 세계에서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치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봐야 한다.
비대면으로 전환된 <2021 선댄스 영화제>와 <2020-2021 칸 라이언즈 라이브>에 이어, 마지막으로 다룰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은 이 같은 차이에서 비롯된 쟁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축제 패러다임 전환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동시에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던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드러냈다. 따라서 대전환 시대의 세계 축제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이렇게 재명명하고 싶다. 이전이 아닌, 새로운 이후로 돌아가는 방법으로 말이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 이하 줄여서 BCBF)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문학 박람회 중 하나이다. 1964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처음 개최된 이래로 픽션, 논픽션, 오페라프리마, 뉴호라이즌, 특별부문 등에서 뛰어난 도서에 라가치(Ragazzi)상을 수여한다. 그중 박람회를 통틀어 가장 주목받는 상은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상이다. 2020년 3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대 아동문학상 린드그렌 상을 받은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는 2005년 BCBF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상을 받았다. 2020년에는 국내 두 명의 작가가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었는데, <도토리시간>의 이진희 작가와 <위대한 아파투라일리아>의 지은 작가이다. 전 세계 66개국에서 2,574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응모했고, 그중 76명이 선정되었다.
2020년 초 확산되는 코로나-19 앞에서 유럽의 주요 도서전은 줄줄이 취소되었다. 런던 도서전, 파리 도서전, 라이프치히 도서전 등 대부분의 도서전이 갑작스런 전염병 앞에서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 와중에 BCBF는 도서전 취소보다는 5월로 연기하는 쪽을 택했다. BCBF는 전 세계 아동도서 작가, 삽화가, 출판사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자 각종 아동용 콘텐츠의 저작권을 거래하는 주요 접점이었다. 2020년, BCBF는 코로나-19로 대면 모임이 곤란해지자 언택트 도서전으로 전환해 팬데믹 시대 도서전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모두의 예상대로 BCBF는 디지털 방식을 채택했다.
BCBF표 언택트 도서전에서 빛을 발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볼로냐북플러스(BolognaBookPlus, 이하 BBPlus)다. 이탈리아 출판사 협회(AIE)와 협력 개발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대규모 국제 콘퍼런스, 저작권 교육 과정, 번역 워크숍, 출판사 피칭데이, 자비 출판을 위한 컨퍼런스 등을 제공한다.
2020년 새롭게 출범된 이 행사의 목적은 아동 출판 저작권과 라이선스 매매를 소개하고 촉진함으로써, 더욱 공정한 환경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제공하는 데에 있다. 올해 2021년 BCBF에서 BBPlus는 Global Rights Exchange라는 보다 광범위해진 디지털 저작권 거래 플랫폼으로 재편된다. 새 플랫폼에서 사용자는 연중 내내 저작권을 검색, 구매 및 판매할 수 있으며, 번역 기능이 있는 채팅방 및 플랫폼에서 참여자들과 직접 화상 통화를 할 수 있다. 새 온라인 플랫폼은 올해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2021 BCBF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두 번째는 Open Up- The BCBF Skill Box로 명명된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다. 연중 365일 이용할 수 있으며 마스터 클래스, 국제 컨퍼런스, 스페셜 프로젝트, 출판업계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각종 트레이닝 코스 등을 제공한다. 2021년에 예정된 마스터 클래스는 이용자가 개별 콘텐츠를 구매해 감상하는 온디맨드(on-demand) 형태로 제공되며 2021년 BCBF 심사위원 만나기(Meet the jury), 어린이 잡지 속으로(Inside the kid magazine), 어린이 잡지 일러스트레이터와 출판사 간 관계), 출판 에이전시의 작동 원리(Inside the agency : Agents and artist agency – How they work), 그림책의 세계(Inside the picture book), 마지막으로 콘텐츠가 장악하다 – 새로운 디지털 환경 속 출판 및 라이선스(Content reigns supreme. New digital landscapes in publishing and licensing)가 계획돼 있다.
특히 마지막에 언급된 클래스는 크로스 미디어-멀티 플랫폼에서 자란 오늘날 어린이, 청소년에게 어떤 콘텐츠가 매력적으로 다가올지 분석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미래 세대를 위한 비즈니스 및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구축하는 법이 궁금하다면 4월 22일 오후 3시, 6시(볼로냐 현지 시각)에 예정되어 있는 해당 클래스를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마스터 클래스는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에서 라이브로 이뤄지며, 가격은 25유로(라이브), 20유로(녹화본)로 책정되었다. 서비스는 영어로 제공된다.
국제 콘퍼런스에는 4개의 세션이 준비돼 있다. 미래를 추동하다 – 팬데믹: 방해인가, 재사유의 기회인가(Forging Forward : The Pandemic an interruption, or an opportunity to rethink), 인간의 창의성과 기계번역(Machine Translation and human creativity), 국제 어린이 라이선스의 날(Internation Kids Licensing Day), 이탈리아에서 자비로 출판하는 법(How to SELF-PUBLISH in Italy)이다. 이 중 팬데믹과 관련해 진행되는 첫 번째 콘퍼런스를 추천한다. 이 세션에서는 글로벌 출판 사업이 코로나-19 시대에서 포괄적이고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지 풍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국제 출판사 협회(IPA) 회장 보드로 알 카시미(Bodour AI Qasimi)와 블룸즈버리 퍼블리싱(Bloomsbury Publishing) 대표이사 리처드 찰킨(Richard Charkin)이 연사로 나선다(블룸즈버리 퍼블리싱은 국내에서는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출판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차세대 독자, 지속 가능성, 교육, 미디어 및 지역 전반에 걸친 기술 및 콘텐츠 구현 주요 주제이며, 세부 테마로는 접근성, 지속 가능성, 포괄성, 오디오 출판, 저작권 등이 있다.
해당 콘텐츠는 6월 14일(현지 시각), 99유로에 제공된다. 스페셜 프로젝트에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포트폴리오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본격 24시간 리뷰 마라톤(24H Marathon The Worldwide Illustrators Survival Portfolio), 오픈형 디지털 게시판 : 일러스트레이터 벽(ILLUSTRATORS WALL)이 있다. 2020년 처음 시작된 일러스트레이터 벽에는 2,500명 이상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참여했다. 작가들은 자신의 포스터, 그림, 사진, 이미지 등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 소개했고, 프로필 및 연락처를 기재해 디지털로 고객과 출판사를 만났다.
BBCF는 2020년 온라인 에디션을 통해 이번 시리즈에서 소개한 다른 비대면 축제들처럼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총참석자 수는 2019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6만 명 이상이 방문했으며 그중 75%는 이탈리아 외부에서 참여한 이들이었다. 또한 5월 4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온라인 이벤트 기간에는 40만 개 이상의 페이지뷰를 달성했다. 하지만 많은 수의 관람객이 찾았다고 해서 도서전이 성공리에 마쳤다고 볼 수 없다. 도서전의 성패는 단순히 관람객 수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국제 출판 언론 Publishing Perspectives의 편집장이자 국제 무역 기자인 포터 앤더슨(Poter Anderson)은 자신의 글 볼로냐의 디지털 이벤트 : 온라인 방문자 60,000명, 해외 방문자 75%에서 BBCF 온라인 에디션에 대해 몇 가지 코멘트를 달았다. 이 글은 디지털로 전환된 온라인 축제(이벤트)가 유의해야 할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 내비게이션(탐색)이 전부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탐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즉, 효율성이 가장 중요하다. 수많은 출판사, 저작권 관리감독 에이전트, 편집자들은 플랫폼 내의 화려한 그래픽에는 생각보다 별로 관심이 없다. 24시간 쏟아지는 업무로 분주한 그들은 구축된 디지털 플랫폼 내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찾기까지 가능한 적은 시간을 투자하길 원한다. 그렇기에 어디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명확한 안내가 이루어져 찾을 수 있는 간단명료한 메뉴 및 분류 체계 설계가 중요하다.
– 번역: 국제 행사는 적어도 1~2개 국어 이상의 오디오 채널을 확보해, 더 많은 국제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언어적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 비주얼 디자인: BBCF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한 국제 도서전답게 훌륭한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였지만, 종종 그로 인해 이용 효율성을 저하시키기도 했다. 일례로 온라인 전시회 가이드 투어 때, 화면 중 비디오가 재생되는 프레임이 작아 예술 작품들이 잘 보이지 않거나 감상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올해 BCBF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어린이 콘텐츠의 공생 네트워크(A Symbiotic Network of Children’s Content)이다. 매해 BCBF는 비주얼 아이덴티티 워크숍을 통해 그해 도서전을 기념하고 대표하는 정체성(identity)을 창안한다. 작년 3~4월 봉쇄 기간 동안 진행된 워크숍은 BCBF가 이질적인 종(種)을 만나 서로의 시각을 공유한 결과임을 규정했고, 도서전의 전문성과 시선은 실시간(live)으로 진행되는 축제, 물리적 공간으로서 축제 그 이상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비주얼 아이덴티티의 핵심 키워드 Symbiosis(서로 다른 종 간의 공생)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두 이질적인 유기체가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 동거하거나 긴밀한 결합, 사람과 그룹 간 협력 관계 워크숍 팀은 프랑스 삽화가 장 말라드(Jean Mallard)를 초대해 사람, 생명, 기계, 자연 등 이질적인 것들을 부분적으로 그려 가며 연결 지었고, 이를 통해 구현된 하나의 총체로서의 생태계에 집중했다. 그 결과 도서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아래처럼 형상화됐다.
이질적인 종인 엮이고 접합된 세상.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비대면 속에서 서로 마주 보는 현재 우리의 상황이 뉴노멀이란 이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팬데믹과 함께 찾아온 이 뉴노멀들은 과연 새로운 것인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전환이 그저 대면해서 하고자 했던 것들을 비대면으로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진 않는지 다시금 묻게 된다. (2020-2021 BCBF에서도 주로 채택된 방식인 화상회의 중심의 영상 콘텐츠들이 이를 드러낸다.)
단순히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입장의 상상력 부족으로 성급하게 결론짓지 않겠다. 오히려 뉴노멀을 대할 때마다 마치 새로운 선물꾸러미가 우리 앞에 당도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하나의 트렌드가 도리어 그게 정말 새로워?라는 의문 가득한 질문을 낳은 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2020년의 비대면 축제들을 한 세기에서 다른 세기로 이어지며 역사가 축적된 축제가 선보이는, 그간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과 성급하지 않은 상상력의 어디쯤이라고 명명하고 싶다.찰을 발견했다. 웹을 통해 더 다양하고 광범위한 시간과 장소 속에서 관객들을 만나며, 완벽한 비배제성은 힘들더라고 그것이 최소화될 수 있는, 포괄성(Inclusion) 또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의 가치가 전면화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단순히 다양성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특정한 차이가 장벽 혹은 경계로 기능하지 않도록 그것을 포괄할 수 있는 디지털적인, 플랫폼적인, 그리하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적인 축제의 시대, 다시 말해 포괄성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비대면 축제들이 선보인 새로운 동시에 축제의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는,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다.
찰을 발견했다. 웹을 통해 더 다양하고 광범위한 시간과 장소 속에서 관객들을 만나며, 완벽한 비배제성은 힘들더라고 그것이 최소화될 수 있는, 포괄성(Inclusion) 또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의 가치가 전면화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단순히 다양성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특정한 차이가 장벽 혹은 경계로 기능하지 않도록 그것을 포괄할 수 있는 디지털적인, 플랫폼적인, 그리하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적인 축제의 시대, 다시 말해 포괄성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비대면 축제들이 선보인 새로운 동시에 축제의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는,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