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있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도시 재개발로 순식간에 동네가 뒤바뀌는 건 일상이 되었고, 거대한 자본이 기존의 주민과 지역 활성화에 기여한 이들을 밀어내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새로 들어선 건물은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우리는 그런 급변하는 도시의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새것처럼 반짝이는 도시의 풍경이 아닌, 낡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지워질 풍경을 마지막까지 기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다큐멘터리, 웹 지도, 영상 작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라지는 도시를 담아낸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정재은과 정용택, <옥수동 트러스트 프로젝트>의 기획자 장상미, 미디어·설치미술가 정기엽이 바로 그들이다.

 

도시의 이면을 담아내려는 이들의 기록은 누군가의 비판처럼 오직 감정에 대한 호소나 누추한 가난, 추억을 파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정도 존재하지만, 기록을 통해 이들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와 도시의 일방적인 밀어냄과 삭제에 대한 반동이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급변하는 도시의 풍경 뒤로 그만큼 빠르게 사라져가는 도시의 풍경이 있다는 것. 이들은 이 사실을 기록을 통해 직시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도시의 담론을 만들어간다. 과연 이들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도시의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정재은 – 공공 건축 다큐멘터리 시리즈

정재은 감독은 2001년 장편 극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데뷔했다. 영화를 찍으며 그 배경이 되는 공간, 도시, 지역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건축 다큐멘터리 영화 3부작을 기획했다. 그는 <말하는 건축가>(2011),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3), <아파트 생태계>(2017)를 통해 공공 건축 프로젝트와 공공 주택인 아파트를 둘러싼 수많은 갈등의 교차점을 담아낸다. 또한, 현재 제작중인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갈등 속에서 밀려나는 존재를 상기시킨다. 도시의 무수한 이익 관계가 부딪히는 모습에 대한 기록은 우리가 갈등의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나, 갈등 자체와 그 핵심적인 문제를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말하는 건축가>는 무주 공공 프로젝트, 기적의 도서관 등 사람과 자연을 향한 공공 건축을 평생에 걸쳐 말하고자 한 정기용 건축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정재은은 정기용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추구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한편, 건축가가 마주해야 했던 공공 건축을 둘러싼 갈등의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빠르고 싼 방법을 고집하는 행정절차와 그에 뒤얽힌 정치적 갈등, 수많은 단체의 이익 다툼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사라져 버리고, 공공 건축은 최소한의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된다. 외지고 사회적 약자를 향할수록 공공 건축은 아름다움도, 안전함도, 의미도 없는 덩어리가 된다. 공공이라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다.

 

<말하는 건축 시티:홀> 역시 권력형 공공 프로젝트에서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다큐멘터리다. 도시의 랜드마크 건설을 위한 예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기업 시공사, 각종 위원회와 관련 단체들의 갈등 속에서 애초에 그 랜드마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의미는 휘발된다. 그리고 거대한 금액의 예산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과시욕 충만한 어떤 공공 건축에 쏟아 부어진다. 정재은은 서울시청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이를 둘러싼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갈등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공공 프로젝트의 핵심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어쩌면 공공 건축이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갈등의 교차로에서, 진정한 공공의 의미는 너무 쉽게 지워져 버린다.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존재의 다툼 뒤에는 언제나 힘없이 밀려나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오직 약하고 자본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없는 음지로 쫓겨난다. 정재은의 다큐멘터리 <아파트 생태계>는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의 보급을 목표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후죽순으로 건설되었던 아파트의 현 재건축 상황을 둘러싼 갈등을 담는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재건축 사업은 어떤 사람에게는 일확천금의 기회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을 잃고 점점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방적인 배제의 경험이다.

 

정재은이 제작중인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재건축으로 철거된 둔촌 주공 아파트에서 서식하던 300마리의 길고양이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주민과 활동가의 갈등을 그렸다. 두 세력이 서로 고양이를 이용한다고 비난하며 깎아내리는 사이 삶의 터전을 갑자기 잃은 고양이들을 죽거나 사라지고, 둔촌 주공 아파트의 철거는 결국 완료된다. 2016년부터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보호 활동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그 과정에서도 갈등이 존재하고, 사실상 가장 먼저 도태되는 것은 가장 약한 존재인 길고양이다. 정재은은 그러한 과정을 기록하며 도시에서 가장 힘없이 쫓겨나는 존재에 주목한다.

정재은 감독 Ⓒ Esquire Korea
<말하는 건축가>(2011)의 포스터

정용택 감독 – 안티 젠트리피케이션

정용택 감독은 2000년에 진보네트워크 참세상 방송국에서 노동, 농민, 철거 운동에 관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그 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는 사람들과 사라지는 문화, 그리고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서 자꾸만 지워지는 진정한 도시재생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뉴타운 컬쳐파티>(2011)와 <파티51>(2013)은 홍대 앞 칼국숫집 두리반의 강제 철거에 반대하며 모여든 인디 뮤지션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의미를 만들었던 중요한 사람과 문화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가장 먼저 밀려나는 상황을 포착한다. 또한,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재생에 반하는 서울시의 도시 행정을 비판하는 취지의 전시인 <박원순 개인전>에는 <봉산개도 우수가교>라는 영상 작품을 출품했다. 이처럼 정용택은 도시 정책 속에서 점점 사라지는 공간과 문화, 밀려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시화하고 숨겨진 문제를 밖으로 끌어낸다.

 

2009년, 홍대입구역에 경의선역과 공항철도역이 들어오면서 칼국숫집 두리반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두리반은 말도 안 되는 적은 보상금과 강제 철거에 반발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자 했고, 홍대의 인디 뮤지션과 예술가가 그 뜻을 함께했다. 정용택의 <뉴타운 컬쳐파티>와 <파티51>은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홍대의 예술가가 두리반으로 모여든 이유는 그들의 상황이 철거민들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홍대를 인디 음악의 메카로 만든 사람들은 땅값과 건물값이 오르자 더 큰 자본의 힘에 밀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했다. 그 지역이 다시 핫플레이스가 되면 또다시 힘없이 밀려나는 수순이었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개성 넘치는 문화예술의 흔적은 점점 더 거대 자본에 의해 강제철거를 당하듯 쓸려나갔다. 결국 살아남는 건 가장 거대한 프랜차이즈 기업이었다. 정용택은 떠오르는 핫플레이스의 이면에 가려진, 쫓겨나면서도 서로 연대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드러낸다.

 

자본의 논리는 소상공인과 가난한 주민, 힘없는 예술가를 도시에서 밀어낸다. 그렇다면 상생과 포용을 강조하는 도시재생 사업은 다를까. 정용택 감독은 <박원순 개인전>에서 전시되었던 영상 작업 <봉산개도 우수가교>를 통해 외형적인 도시재생만을 추구한 결과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메이커 시티 세운 도시재생 사업에서 정작 그 중심에 있어야 할 공구 장인들이 쫓겨나고 그들의 노포가 철거된 것처럼 말이다. 2019년 초에 을지로의 상업화랑에서 열린 <박원순 개인전>은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을 비판하기 위한 전시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60대 중견 작가로 가정하고, 그의 어시스턴트를 자처하는 작가들이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을 선보였다. 정용택의 봉산개도 우수가교는 5분 분량의 영상이다. 청계천과 을지로의 재개발 모습과 함께 쫓겨나는 상인들의 인터뷰를 담은 자막이 깔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상생과 소통의 포용 도시에 대한 활기찬 연설이 목소리로 들어간다. 밝은 희망을 말하는 사운드와는 달리, 영상과 자막은 삶의 터전을 잃고 밀려나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낸다. 영상과 사운드의 충돌과 거기서 발생하는 괴리를 통해 정용택 감독은 도시재생 사업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시화한다.

정용택 감독 Ⓒ Esquire Korea

장상미 – 옥수동 트러스트

장상미 기획자는 오랜 경력의 시민활동가로, 개인 작업실이자 동네 책방인 어쩌면 사무소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2011년 9월부터 당시 재개발 예정지였던 성동구 옥수동 13구역의 모습을 기록하는 옥수동 트러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재개발로 사라지기 전 찍은 옥수동의 모습을 웹 지도와 웹 앨범으로 남겼다. 2017년에는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공개되어있던 옥수동 트러스트의 작업을 책으로 정리한 <지금은 없는 동네-옥수동 트러스트>를 출판했다. 옥수동 트러스트 프로젝트의 웹 지도는 지금은 완전히 지워진 재개발 이전 옥수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장상미 기획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기록을 통해 다양한 도시의 담론을 끌어낸다.

 

2011년 당시 옥수동에 거주 중이었던 장상미 기획자는 옥수동 13구역을 직접 걸어 다니며 곧 사라질 동네의 풍경을 지도에 기록하는 옥수동 트러스트를 진행했다. 그 작업을 통해 옥수동 13구역 달동네의 마지막 모습이 담겼다. 급격한 산업화가 일어났던 70~80년대에 도시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의 역사가 담겨있는 모습이다. 장상미 기획자는 사람은 일부러 사진에 담지 않은 대신 장소와 공간을 충실히 기록했다. 빈집과 비어 가는 동네에 대한 기록은 동네에 실제로 사는 주민이지만, 사실상 그 집의 물질적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힘없이 밀려나 다른 곳으로 가야 했던 존재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재개발의 의미와 재개발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공간, 그리고 그 위에 들어선 공간에 담긴 새로운 욕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옥수동 트러스트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영향을 받아 지은 이름이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 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려는 시민운동이다.

장상미 기획자 Ⓒ 스페이스 살림
『지금은 없는 동네 – 옥수동 트러스트』

정기엽 – 지금은 없는 동네

미디어·설치미술가 정기엽은 유리 오브제, 물, 안개, 영상과 소리 등을 이용하여 결핍의 뿌리에 대한 탐구와 자본주의의 오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작품 활동을 해왔다. 최근에는 성북동, 을지로, 옥수동 등지에서 도시재생과 재개발에 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에는 장상미의 <지금은 없는 동네 – 옥수동 트러스트>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12분짜리 영상 작품인 <지금은 없는 동네>를 만들었다. 옥수동 트러스트가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옥수동의 재개발을 기록한 아카이빙 자료라면, 정기엽 작가의 작품은 소설과 사실적 기록물이 섞인 비디오 작업이다. 작품에는 재개발로 쫓겨난 옥수동 달동네 세입자들, 재개발로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대기업의 대단지 아파트에 담긴 욕망, 그리고 철거의 폭력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지금은 없는 동네>는 옥수동 트러스트에 담긴 장상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기엽이 새롭게 창작한 이야기를 실제 기록물과 함께 영상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작품에는 장상미의 뜻에 따라 저작권 없이 쓸 수 있는 옥수 13구역의 철거 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 사용되었다. 저자의 허락을 얻어 동명의 제목을 단 12분짜리 영상은 독립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느낌을 섞은 비디오 작업으로, 기괴하고 우울한 거친 사운드와 함께 짧은 이야기가 진행된다. 고층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선 동호대교와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옥수동 언덕이 그 배경이다. 주인공은 아직 옛 모습이 폐허처럼 남아있는 장소를 지나가다 갑자기 쓰러진다. 재개발로 쫓겨나야 했던 주인공의 과거가 스마트폰을 통해 드러나고, 주인공은 회상 속에서 과거의 자신과 맞닥뜨린다.

 

정기엽은 <지금은 없는 동네>를 통해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강제철거가 의식주라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가해지는 국가의 폭력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재개발로 지워지는 동네와 집의 모습,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가시화하며 그 자리를 차지한 아파트에 담긴 욕망을 비춘다. 역세권에 규격화된 편리함, 정형화된 소속감과 안정감에 대한 추구는 아파트 공화국을 만들어낸다. 아파트는 삶의 공간이 아닌 투자의 대상이 되고, 집값과 땅값이 점점 오르며 사회적 약자들은 점점 더 도시의 변두리로 밀려난다. 정기엽은 최근의 도시재생 사업 역시 천천히 이루어지는 재개발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국가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대기업만 배를 불리고, 실제로 그곳에서 살던 이들의 역사는 재개발과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진다. <지금은 없는 동네>는 옥수동 트러스트의 기록이 가진 의미를 작가의 시선과 문제의식으로 재창조한 또 다른 기록이다.

정기엽 작가 © 김종훈
<지금은 없는 동네>, 단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12‘00’‘, 2019

사라지는 도시에 대한 기록은 재개발과 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으로 지워지는 역사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정재은의 말처럼 도시의 기억은 그 자체로 공공적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공공의 기억은 자본의 논리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개발을 명목으로 그 가치와 소중함이 무시되고 지워진다. 도시의 많은 공공 프로젝트는 전시 행정으로 얼버무려지거나 소수 거대 자본의 승리로 끝난다. 그 과정에서 또 누군가의 삶과 문화는 음지로 쫓겨난다. 그리고 이 악순환은 계속 반복된다. 점점 더 빠르게 변하는 현대의 도시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사라지는 도시를 기록하는 것은 그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도시에서 반복되는 배제와 삭제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