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빅데이터와 플랫폼이 가져온 백인백색(百人百色) 트래블 라이프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던 12년 전 겨울. 그 당시 여행을 결심하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웬만한 영한사전 두께의 가이드북이었다. 유럽 각국의 도시 정보와 교통편, 유명 관광지, 맛집, 쇼핑타운 등 유용한 정보를 총 망라한 이 가이드북은 머나먼 타국에 홀로 떨어진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젊은이에게 마치 서바이벌 북과 같았다.

 

당시 유럽을 다니다보면 심심치 않게 한국인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한 손에 두툼한 가이드북을 들고, 도시 중앙역에서 배포하는 지도를 보며, 주요 명소를 찾아다녔다. 출판사는 달라도 가이드북이 추천하는 명소는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한 도시에 3박 4일 정도 머무르면 같은 사람을 여러 번 마주쳤다. 가령, 어제 에펠탑 앞에서 만난 2인조를 오늘 루브르 박물관 다비드 상 앞에서 만나는 식이었다.

 

실시간 정보가 필요하거나 현지 공연을 예약할 때는 우리나라 PC방과 같은 인터넷 카페를 이용해야 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가이드북을 꼼꼼히 정독하고, 숙소의 위치와 교통편을 확인한 후, 꼭 인터넷 카페의 위치를 확인하곤 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시키고 빠르게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그 시절 유럽의 인터넷은 너무나 느렸고, 필요한 정보를 짧은 시간 안에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드북의 정보에 대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아마 필자 또래들이 간직한 그 시절 배낭여행 사진첩에는 대동소이한 추억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런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사람들은 SNS로 남들과 차별화된 경험을 찾기 시작했다. 흔히 ‘있어빌리티’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트렌드는 여행자들로 하여금 ‘남들이 가보지 않은’, ‘친구들이 부러워할만한’ 여행을 지향하게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즐비한 #욜로 #여행스타그램 등의 해시태그가 말해주듯 ‘여행의 끝은 어디인가’의 경지를 보여주는 이들이 등장하였고, 그들이 발견한 색다른 여행 아이템들이 널리 확산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또한, 다양한 여행 관련 플랫폼이 등장은 전 세계 생면부지의 여행자들간의 상호 교류를 촉진시켜 집단지성을 만들어냈다. ‘위시빈’과 ‘Yelps’, ‘트립 어드바이저’ 등에 올라온 리뷰와 소개 글들을 통해 여행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백인 백색, 저마다 자유롭게 구상한 루트로의 여행이 얼마든 가능해졌다.

 

결정적으로,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여행의 커스터마이징에 크게 기여했다. 인터넷 상에 흩어져 있는 수 많은 정보와 리뷰를 수집하여 양질의 여행 아이템들을 추출하고, 스마트폰에 개인 계정에 저장되어 있는 기록들과 매칭하여 개인별로 최적화된 여행 코스를 추천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지금 여행을 결심하고 별 다른 정보 탐색 없이 당장 떠나도 충분한 정보와 함께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커스터마이제이션, 구글 트립스

 

2016년, 구글은 새로운 여행 플랫폼인 ‘구글 트립스’를 선보였다. 기존의 여행 어플들이 주로 사용자가 입력한 키워드를 바탕으로 관련된 정보를 찾아주는 백과사전 형 어플이었다고 한다면, ‘구글 트립스’는 구글이 그간 일궈왔던 ‘구글맵’, 메일 서비스, 검색기능 등이 총 망라된 여행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구글 트립스’를 사용해 본 여행자들은 이제 더 이상 가이드북은 필요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구글 트립스’가 가진 강력한 큐레이션과 스케쥴 매니지먼트 기능 때문이다.

‘구글 트립스’가 제공하는 기능들

© 앱스토어

구글이 정리해주는 나만의 여행스타일

 

‘구글 메일’을 주로 사용하는 여행자가 ‘구글 트립스’ 앱을 처음 설치한다면, 최근 몇 년간의 여행 기록을 깔끔하게 보여주는 기능을 먼저 발견할 것이다. 항공과 숙박 예약 메일을 ‘구글 메일을 통해 수신할 경우, 자동 스케줄링 입력은 물론 목적지의 탭이 별도로 생성되어, 그 안에서의 여행 일정 관리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구글 트립스’는 기본적으로 ‘구글맵’에 축적된 방대한 리뷰와 정보를 바탕으로 식당과 명소, 액티비티를 추천해 준다. 폐쇄적인 여행 전문 어플에 비해 훨씬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추천되는 항목들의 신뢰도가 높다.

 

여행지에서 맞춤형 정보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도 흥미롭다. ‘구글 트립스’의 가장 유용한 기능은 ‘Day Plan’인데, 체류 기간 별로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제시함으로 여행자가 헤매지 않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교통편과 이동 경로를 제공한다. 보통 기존 유저들이 많이 이용한 동선과 데이터에 수록된 여행지 정보들을 결합하여 추천을 하며, 여행자는 제공해 준 동선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자신의 입맛대로 변형하여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만들기 위해 구글은 명소간 물리적 접근성 뿐 아니라, 여행자의 이전 방문 기록과 각 방문지의 운영 시간, 그리고 입장료와 기회비용까지 다양한 정보들을 이용한다고 한다. ‘구글 트립스’는 그야말로 구글이 보유한 데이터와 위치기반 기술을 총 망라한 서비스인 셈이다.

네이버가 개발한 커스터마이징 인공지능, 코나

 

최근 흐름에 발맞춰, 국내 IT기업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최근 ‘코나(ConA, Context recognition AI)’라는 인공지능 기반 맞춤 정보 서비스를 런칭했다. 운영되는 방식은 ‘구글 트립스’와 비슷하지만, 별도의 여행 전문 어플을 런칭한 것이 아니라 네이버 웹사이트와 통합 어플에 구현 것에 차이가 있다. 검색창에 지역명을 검색하면 테마별로 적합한 동선을 추천해 주는데, 네이버는 독자적인 전세계 지도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구글맵의 정보를 차용하여 제공한다.

 

다만, 네이버가 기반으로 하는 정보 풀이 네이버 서비스 내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의 참고 리뷰들이 네이버 카페나 블로그에 의존하고 있어 대부분의 정보가 한국인들에 의해 가공되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들에게 오히려 친근하고 편리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 기반 여행 정보는 이방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명소는 물론이고, 개인 취향에 부합하는 여행 정보 접근도 얼마든 가능하게 해주었다. 다만, 이러한 여행 추천 서비스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에 의해 검증되고 각광받는 명소에 다소 치우친 경향이 있어, 점점 세분화되는 여행 니즈를 모두 수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여행지를 ‘정복’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못 올 것처럼 최대한 많은 곳에 가서 사진을 찍던 10년 전과는 다른 부류의 인류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여행족들은 적은 수의 경험을 하더라도 가치 있는 특별한 것을 원한다. 자국 관광객들이 붐비는 에펠탑과 트레비 분수에서 인증샷을 찍기보다는 여행 동안이라도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즈넉하고 색다른 경험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여행은 살아보는거야.’ 에어비앤비

 

이러한 여행 사조에 가장 먼저 대응한 곳은 방 하나 없이 세계에서 가장 큰 숙박 체인을 구축한 ‘에어비앤비’다.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그게 단 하루더라도.”라는 슬로건을 기치로 여행이 낯선 세계에 이방인으로 잠시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이라도 로컬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것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에어비앤비’에 숙소를 잡게 되면 어떤 형태로도 호스트와의 교류가 발생하며, 그를 통해서 외국인이나 타 지역 사람들이 접하기 쉽지 않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필자의 경우, LA 여행 중에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집 호스트가 펍에서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였다. 체크인 하는 날, 시간 있으면 자기가 공연하는 곳에 와서 맥주 한 잔 하라는 말에 무심코 찾아가보았는데, 그 곳이 마침 여행 직전에 영화관에서 관람했던 <라라랜드>의 촬영지였다. 물론, 마음 먹고 인터넷으로 검색했다면 찾아가볼 수 있었겠지만, 현지인 호스트의 초대로 가게 된 곳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특별한 경험으로 마음에 남았다.

 필자의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공연을 했고, 영화 ‘라라랜드’에 나왔던 LA ‘The Lighthouse’

‘에어비앤비’는 이제 단순히 숙박을 중개해 주는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로컬 액티비티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비록 호주 퀸즈랜드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벌룬을 타고,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등산열차를 하는 것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액티비티는 아니지만, 현지인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소규모 여행자들을 위한 체험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쿠바 아바나의 작은 연습실에서 탱고 강습을 받고, 몽골 홉스골 호수 초원에서 말을 타거나, 여행자라면 쉽게 초대받기 어려운 소규모 콘서트나 루프탑 파티에 초대받는 등의 아기자기하고 특별한 액티비티를 ‘에어비앤비’를 통해 소개받을 수 있다.

현지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에어비앤비’의 로컬 액티비티 제안 화면

지구별 여행자들을 위해 

 

떠나는 일은 늘 설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다. 우리는 항상 낯선 것에 기대감을 품지만 그만큼 조심스러워한다. 그리고 이 여행이 특별하기를 우리는 소망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보고 느끼며, 충분한 휴식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심 끝에 목적지를 정하고, 부푼 가슴을 안고 떠난다.

 

디지털의 발전은 이러한 우리의 기대에 부응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최신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집단 지성과 빅데이터는 우리가 낯선 곳에서 처음 하는 경험도 실패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만약, 현지와 동화되는 조금 더 특별한 경험이 싶다면, 플랫폼을 통해 검증된 리뷰와 신뢰할 수 있는 현지인을 만나 조력을 얻고, 그들의 생활에 편승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의 여행 산업은 이러한 현상들과 떼어놓고 상상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디지털 기술의 진보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지구별을 이곳 저곳을 여행하던 여행자들의 욕구가 기술의 발전을 촉매로 이제 막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